멈춰서버린 맥주 정기 배달 서비스 비어포스트, ‘주세법 해법을 찾자’ 워크샵 개최
7월 19일 맥주 정기 배달 서비스 벨루가의 페이스북(www.facebook.com/velugabrewery)에는 서비스를 잠정 중단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이날 배달을 마지막으로 휴업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지난 5월 본격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3개월만이다. 가입 기간이 남은 고객들에게는 환불을 진행한다. 벨루가는 2주에 한번씩 원하는 장소로 맥주와 안주를 배달해주는 서비스. 한 달 단위로 서비스 신청을 받아 첫째와 셋째 수요일에 맥주 각 4병(한달 총 8병)과 안주를 오토바이 퀵으로 배송했다. 국내 최초 맥주 정기 배송 서비스로 주목을 받으면서 누적 400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벨루가에 무슨 일이?
벨루가를 창업한 김상민 대표가 이 서비스를 구상한 것은 2016년 7월. 주류 배달 관련 고시가 개정되면서다. 정부는 2016년 7월 29일 ‘현실에 맞게 주류 관련 규제를 개선한다’며 음식과 함께하는 주류 배달은 허용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김 대표는 개정된 주류 고시를 기반으로 일반음식점으로 사업자등록을 하고 견과류 등과 같은 스낵류와 맥주를 페어링해 배송을 시작했다. 김 대표와 직원 한 명이 맥주와 안주를 선정하고 소싱하고 포장, 고객관리 등을 모두 하면서도 매달 늘어나는 매출과 감사하다는 고객들의 인사에 힘든 줄을 몰랐다.
그러던 올 6월 30일 갑작스럽게 ‘주류의 통신판매에 관한 명령위임 고시’가 개정됐다. 전화 등을 통해 주문 받은 ‘음식에 부수해’ 주류 배달을 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벨루가는 음식에 대한 비중이 커야 한다는 판단 아래 부랴부랴 셰프를 영입했고 햄버거, 핫도그, 치즈스틱 등의 메뉴를 직접 조리해 맥주와 배달하기 시작했다. 음식과 맥주 배송이 안정을 찾을 무렵 관할 세무서인 마포세무서에서 연락이 왔다. 불법적으로 주류 배달을 하고 있다는 민원이 들어왔다는 것. 세무서 직원은 직접 사무실로 나와 “벨루가는 맥주에 초점이 맞춰진 서비스 형태라고 판단된다”며 “위법적 소지가 있다”고 구두경고를 했다.\
김상민 대표는 “음식에 부수해서 배달을 해야 한다는 문구 자체가 해석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면서도 “계속 서비스를 하다가 고객들의 신뢰를 잃거나 업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 같아서 휴업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또 “매출이 급 상승하고 있고 서비스 시작 후 첫 여름을 맞아 가입자들도 눈에 띄게 늘고 있는데 정말 안타깝다”고 전했다.
벨루가가 서비스 중단을 결정한 것은 주세법 때문이다. 주세법에서는 기본적으로 주류를 배달할 수 없게 돼 있고 ▲소매점에서 대면 결제를 한 후 배송 ▲치킨 등 음식과 배달 ▲맥주 보이와 같이 한정된 지역에서 배달 등과 같이 제한적으로 주류를 배달할 수 있게 허용하고 있다. 이와 맞닿아 주류의 온라인 주문과 결제 역시 엄격하게 규제된다. 전통주로 지정된 주류에 한해 우체국 등 일부 온라인 사이트에서만 주문을 할 수 있다. 국세청 등 정부 당국에서는 규제의 이유를 청소년 보호와 국민 건강 등으로 든다.
그러나 이렇게 주류의 배달과 온라인 주문을 금지하는 것은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규제다. 미국, 중국, 일본, 싱가포르 등에서는 온라인 주문이나 배달이 모두 허용된다. 이에 따라 크래프트 맥주와 관련된 정기 배송, 맥주 큐레이션, 온라인 판매 등 신규 서비스가 활발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만큼 크래프트 맥주를 둘러싼 생태계가 탄탄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에서는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전역에 맥주를 공급하기 어려운 만큼 온라인, 통신 판매를 통해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터 놓고 얘기합시다 ‘주세법 워크샵’
주세법이 가로막고 있는 것은 비단 주류 배달뿐만이 아니다. 크래프트 맥주 업계를 둘러싼 거의 모든 이슈가 주세법으로부터 비롯 된다고 봐도 된다. 맥주 제조 면허에서부터 제조, 유통 등 전 과정에 걸쳐 주세법과 관련한 이슈가 대두되고 있다. 대기업 맥주에 비해 크래프트 맥주에 대해 과도한 세금이 매겨지는 주세법 구조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서부터 벨루가 사례처럼 실질적으로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개별 기업들의 이슈로만 머물러 있고 사회적으로는 물론, 업계 내에서조차 큰 울림을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비어포스트에서는 벙커원과 함께 7월 28일 ‘주세법 워크샵-민주주의와 맥주거품’을 열어 크래프트 맥주 시장 발전을 위한 주세법에 대해 논의했다. 소규모 브루어리 용량 제한규제부터 배달, 온라인 주문 등 유통 등을 광범위하게 다뤘다. 특히 업계 전문가들 이 지금까지 접하기 어려웠던 생생한 해외의 사례들을 소개해 눈길을 모았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열린 공간에서 주세법의 문제는 무엇인지, 또 해법은 어떤 것인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자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어포스트에서는 이번 주세법 워크샵의 내용을 비어포스트 Batch-021(9월호)에 담을 예정이다. 또 업계의 의견을 모으고 발전시켜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공론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