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캔 1만원’ 수입 맥주와 싸울 자 누구인가, 국산 소규모 맥주 소매점 유통 허용...
# 집에 맥주가 떨어졌다. 어제 펍에서 마셨던
홉 향이 가득한 국산 더블IPA가 너무 마시고 싶다. 상큼 발랄한 향으로 코를 사로잡고 달달함과 쓴 맛으로 내 혀를 자극했던 그 아이. 하지만 그 맥주를 구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펍에 가서 마시거나 브루어리에까지 가서 포장해와야 한다. 동네 슈퍼는 아니더라도 인근 대형 마트에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좋아하는 맥주 한잔 마시자고 의관정제하고 먼 길을 떠나야 하나?
의문이 든다. 왜 국내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은 적극적으로 유통망을 개척하지 않는 것일까? ‘이러니 국산 수제맥주의 접근성이 떨어져서 확산이 못 되지’ 혼잣말을 하며 혀를 끌끌 찬다. 펍까지 나가기는 너무 귀찮다. 결국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4캔 1만원’ 맥주 중 찰나의 순간이라도 홉 향을 느끼게 해주는 맥주를 골라 양으로 승부하기로 한다.
맥주 애호가들이 자주 겪었을 법한 이야기다. 최근 이런 불편이 해소될 수 있는 실마리가 마련되고 있다.
카브루, 플레이그라운드 등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를 갖고 있는 국내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캔이나 병에 맥주를 담아 포장할 수 있는 장비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대형 마트, 편의점, 슈퍼 등에 맥주를 유통하기 위해서다.
그 동안 소규모 맥주 제조자 면허를 받은 브루어리들은 대부분 케그 단위로만 맥주를 유통해왔다. 병이나 캔을 공급할 소매점에서는 이들 맥주의 유통이 금지돼 있었기 때문이다. 소규모 맥주 제조자의 맥주는 해당 맥주를 양조한 브루어리와 펍, 식당 등 영업장에서만 판매 가능했다. 이런 규제 때문에 그 동안 세븐브로이, 코리아크래프트브류어리, 플래티넘 등과 같이 일반 맥주 제조자 면허를 받은 브루어리에서 생산된 맥주만 마트와 편의점 등에서 만날 수 있었다.
소규모 맥주 소매점 유통 허용…캔입 장비 도입 한창
이제 제도가 바뀌어 소규모 면허 브루어리의 맥주도 소매점에서 살 수 있게 됐다. 4월 1일 이후 출고되는 소규모 맥주 제조자 맥주를 대형마트, 슈퍼마켓, 편의점 등 소매점에서 판매할 수 있도록 주세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소규모 맥주의 소매점 유통 시대가 열림에 따라 브루어리들은 분주하게 준비 중이다. 캔과 병 포장 설비를 도입하고 소매 유통 회사들과 협의도 추진하고 있다.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와 맥파이 브루어리는 최근 함께 맥주 캔 포장을 해 유통할 수 있는 장비를 도입했다. 카브루는 4월에 준공되는 제3브루어리에 캔입과 병입이 가능한 장비를 들여놓는다. 강릉의 버드나무 브루어리는 병입 장비를 마련했고 바이젠하우스, 트레비어, 어메이징브루잉 등도 캔, 병 포장 장비를 도입하거나 도입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핸드앤몰트는 지난 2016년 캔입 장비를 도입해 애플 사이더 캔을 백화점 등에 공급한 바 있다.
브루어리들은 유통망과의 협의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카브루는 6월 편의점을 시작으로 대형 마트로 유통처를 넓혀갈 예정이다. 또 특정주류도매상을 통해서 소규모 슈퍼들에까지 캔 맥주를 공급한다는 방침이다. 현재 시간당 1200개 캔 포장이 가능한 라인을 마련했고, 월 3000박스 공급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나의 브루어리가 단독으로 대형 유통망을 개척하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여러 브루어리들의 맥주를 모아 유통망에 공급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이를 통해 4월 중순 소매점에서 국산 크래프트 맥주 병과 캔을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편의점, 마트에서 팔면 팔수록 손해?
국산 크래프트 맥주의 판로를 넓힐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됐는데도 업계에서 기대하는 분위기는 감지하기 어렵다. 일부 브루어리들은 소매점 유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을 정도다. 사업적인 이득을 얻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미 마트나 편의점에서 맥주를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가격 저항선은 ‘500㎖ 4~5캔 1만원’에 맞춰져 있다. 수입 크래프트 맥주의 경우에도 ‘330㎖ 3병 1만원’ 등의 행사가 아니면 원활한 판매가 어려운 실정이다. 기본적으로 국산 크래프트 맥주의 생산 원가 등을 감안할 때 이런 가격대로 공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이런 상황에서 세금 체계마저 기존보다 불리하게 설정돼 있다. 4월부터 소매점에 유통하는 병, 캔 맥주는 펍, 음식점 등에 공급했던 맥주보다 높은 세금을 내야 한다.
그 동안 소규모 맥주 제조자들은 맥주 제조원가에 마진 10%를 더한 금액을 과세표준으로 세금을 부과 받았다. 일반 맥주 제조자들의 과세표준이 출고가인 것과 다른 점이었다. 일반 맥주 제조자들은 마진이 모두 포함된 출고가에 대해 72% 주세 등을 부과받는 데 비해 소규모 맥주 제조자들은 제조원가에 세금을 부과 받고 이후 마진을 붙일 수 있는 구조다. 마진에 대해서는 세금 부과가 안 되기 때문에 소규모 맥주 제조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면이 있다.
그러나 소매점 유통에 있어서는 소규모 면허든 일반 면허든 관계 없이 과세표준이 출고가로 통일됐다. 대기업들과 똑 같은 입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것이다.한 브루어리 관계자는 “출고가가 과세표준이 되는 상황에서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소매점에 공급할 경우 오히려 손해를 본다는 계산이 나온다”며 “일단 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병입, 캔입장비를 들여놓고는 있지만 공격적으로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 라고 전했다.
다른 브루어리 관계자는 “캔입, 병입 장비에 투자하는 것보다 케그 필링 장비를 바꿔서 케그 단가를 낮추고 품질을 높이는 게 낫겠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며 “당분간 소매점 유통은 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밝혔다.
세금 부과 기준이 유통망마다 달라지면서 나타나는 현실적인 문제들도 있다. 주세가 출고가로 매겨지는 ‘가정용/할인매장용’ 맥주와 제조원가로 매겨지는 ‘유흥용’ 맥주를 구분해서 유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캔, 병을 따로 제작하거나 스티커를 부착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현재 국내에서 병ᆞ캔을 제조할 경우 최소 30만캔이 돼야 인쇄를 할 수 있다. 대기업에 맞춰 시스템이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다품종 소량 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크래프트 맥주 업체들의 실정과 동떨어져 있는 시장인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법이 풀렸지만 국내 시장 구조가 녹록지 않다”며 “추가적인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 소비자들이 다양한 맥주를 소매점에서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네 캔에 만원, 수입맥주 묶음 할인 판매의 명과 암
퇴근길 집 앞, 맥주 한 잔이 생각날 때면 편의점을 찾게 되곤 한다. 맥주가 진열되어 있는 냉장고 앞에 서면 자연스럽게 ‘네 캔 만원’인 수입맥주를 집어 든다. 500ml 한 캔에 2200-2300원선인 국산 맥주보다 여러모로 낫다는 생각이 든다. 대형마트에서도 마찬가지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진열대를 가득 채운 맥주를 보며 네 캔 만원 맥주를 찾는다.
우리나라에는 400여개의 대형 마트, 800여개 이상의 기업형 슈퍼마켓, 약 4만개의 편의점이 영업을 하고 있다. 체인점 형태가 아닌 곳들을 포함할 경우 이보다 더 많다. 편의점은 이미 동네슈퍼를 대체하는 위치에 이르게 되었으며, 기업형 슈퍼마켓과 대형 마트는 시장을 대체하는 역할을 시작한지 오래다. 특히 주류, 그 중에서도 맥주의 구매라는 관점에서는 재래시장이나 동네 슈퍼가 이미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몇 년 전부터 마트와 편의점을 시작으로 ‘네 캔 만원’으로 판매되는 수입 맥주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대형 마트의 기획 상품으로 1캔에 2천원 남짓으로 판매되던 제품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후 일부 브랜드의 할인 행사에서 어느새 수입 라거를 중심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어 나갔다. 대형마트의 수입 맥주 라인업 강화는 다양한 종류의 라거를 구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헤페바이젠 ,스타우트 등과 같은 스타일도 갖추기 시작했으며, 크래프트 맥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 시판되는 수입 크래프트 맥주가 마트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넓어지고, 이제는 맥주 전문 보틀숍보다 화려한 라인업을 갖춘 점포가 많을 정도다.
맥주 묶음 할인 판매의 긍정적인 면
맥주 묶음 할인 판매가 일회성 행사가 아니다 보니 사람들은 으레마트나 편의점을 찾으면 수입 맥주를 집어 든다. 단순히 같은 브랜드의 맥주를 묶어 싸게 파는 것이 아니라 여러 브랜드의 맥주를 섞어서 담더라도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마트의 경우 수백종의 맥주가 진열되어 있다 보니 이 중에서 어떤 맥주를 선택할지 오히려 고민이 되는 지경이다.
수입 맥주가 고가라는 인식 옅어져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맥주 브랜드가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기회 낮은 가격 저항에 새로운 맥주에 대한 접근성도 높아져
수입 맥주를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이 수입 맥주에 갖는 고가의 음료라는 인식이 옅어 졌다. 국산 대기업 라거가 500ml 캔 기준 마트에서 1600-2000원 선, 편의점 기준 2000-2500원 선이다. 수입 맥주는 500ml 캔 기준 마트에서 3000-4000원, 편의점에서 3700-4400원 정도이지만 4캔 1만원 할인행사를 할 경우 국산 캔맥주와 가격면에서 사실상 차이가 없다. 심지어 대형 마트에서는 4캔 9500원, 4캔 9000원 등 더 싼 값에도 판매하고 있다.
낮아진 가격 저항과 함께 다양한 라인업의 구성은 맥주의 다양성을 알리는 긍정적인 효과도 있다. 일부 유명 브랜드 맥주만 알던 사람들은 마트에 진열된 수백여 종의 맥주를 보게 되며 대부분이 처음 접하게 되는 브랜드다. 이를 통해 다양한 맥주 제조사와 다양한 맥주가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되며, 낮아진 가격적인 장벽은 자연스럽게 처음 보는 라벨의 맥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 이를 통해 자연히 다양한 맥주를 접하게 되고, 다양한 맥주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맥주에 대해 낮아진 문턱이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맥주의 묶음 할인 판매, 이른바 ‘네 캔 만원’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잡아 수입 맥주 가격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꿨다. 한 캔을 3000-4000원을 주고 구매하기보다는 묶음으로 구입하고, 그 가격을 일반적인 가격으로 인식하도록 했다. 이러한 마트와 편의점 맥주에 대한 가격 인식의 변화는 상대적으로 비싼 크래프트 맥주나 ‘프리미엄 급’으로 포지셔닝 한 맥주의 판매에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해 출시된 일본 맥주인 에비스는 한국 출시 초기 프리미엄 브랜드 이미지로 상대적인 고가 전략을 취했지만 3개월만에 3캔만원의 묶음 판매 행사를 시작했다. 또한 수입맥주와 치열한 가격경쟁에 놓이게 된 국산 맥주는 판매량 감소에 직면하게 되었다. 실제로 2017년 초반 언론 보도를 통해 편의점, 대형마트 등에서 국산 맥주의 판매량을 수입맥주가 역전했다고 알려졌다.
묶음 판매 맥주가 소비자의 맥주가격 인식에 큰 영향 스타일의 다양성보다는 브랜드의 다양성을 알리는데 그쳐 크래프트 맥주 유통의 걸림돌
가격 공세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수입맥주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러한 수입맥주의, 특히 묶음할인에 포함되는 맥주의 종류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일부 맥주를 제외하면 라거 스타일이 절대다수인 가운데 헤페바이젠, 윗비어 등 대중들에게 비교적 친숙한 스타일에 치우쳐 있다. 맥주는 다양한 스타일의 카테고리를 보유한 주류임에도 불구하고 묶음 판매에 포함되는 상품들은 스타일의 다양성보다는 브랜드의 다양성을 알리는데 그친다. 특히 맥주의 출신 국가 역시 독일, 일본, 체코 등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이들 맥주 중 오비맥주(AB Inbev), 하이트진로, 롯데아사히주류 등 자체 국산 맥주를 보유하고 있는 회사에서 수입되는 맥주가 많다는 점 역시 간과해서는 안된다.
가격 경쟁의 또 다른 효과는 크래프트 맥주에도 미치고 있다. 네캔 만원의 프레임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맥주 가격의 적정선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맥주에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맥주의 원재료가 무엇이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잘 알지 못한다. 특히 크래프트 맥주의 경우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싸다는 인식만 있을 뿐 어떤 재료를 얼만큼 사용하여 만드는 것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지, 누가 만드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더더욱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맥주 진열대에서 상대적으로 비싼 크래프트 맥주를 선택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맥주 가격의 결정 구조
우리나라에서 맥주 가격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세금이다. 국산 맥주의 경우 출고가의 72%에 해당하는 주세, 주세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가 부과된다. 이후 판매 가격의 10%에 해당하는 부가가치세가 매겨진다. 수입 맥주의 경우에도 국내까지의 운송료를 모두 포함한 가격에 관세가 매겨지며, 이후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매겨진다.
예를 들어 맥주의 출고가(또는 수입맥주의 경우 CIF조건 가격)이 1000원이라고 가정하면, 주세 720원, 교육세 216원, 부가가치세 193.6원 등 1129.6원의 세금이 더해져 2129.6원이 된다. 수입사,중간도매상, 소매상의 마진이 더해진 후 부가가치세가 포함된 최종 가격이 우리가 맥주를 구매하는 가격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주류 유통구조는 주류 제조자(또는 수입자)의 제품이 주류도매상을 통해 소매점에 전달되며, 그 것을 우리가 구입하게 된다. 이과정에서 주류제조자(또는 수입자), 주류도매상, 소매점의 이윤이 맥주의 가격에 포함된다. 그렇다면 수입맥주를 네 캔에 만원에 판매하기 위해서는 맥주의 수입 가격이 1000원보다 훨씬 낮아야 한다는 점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수입사의 경우 주류도매상을 겸하고 있어 직납이 가능하지만, 대형 마트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바이어를 관리하고, 제품에 관한 리스크를 부담하기보다는 도매상을 통해 거래하는 것이 유리하다. 편의점의 경우 입점 시 수수료가 높아 마트에 비해 더 낮은 가격으로 공급해야 한다. 이러한 면을 고려할 때 마진을 최소화하고 박리다매가 아니라면 가격을 맞추기 어렵다. 게다가 요즈음 대형 마트는 네 캔에 만원이 아니라 네 캔에 9500원, 9000원 등 더 낮은 가격으로 판매하기도 해 입고 가격 인하에 대한 압박이 큰 편이다.
또한 네 캔의 만원보다 더 싸게 판매하는 저가의 맥주의 경우 입고 가격은 더욱 낮아진다.
왜 마트와 편의점의 맥주 묶음 판매 시장에 뛰어드는가
우리나라의 전국 대형 마트는 400여개, 기업형 슈퍼마켓은 800여개, 편의점은 약 4만개에 이르고 있다. 맥주 묶음 판매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이들 채널에서 안정적인 판매가 이루어질 경우 이익율이 높진 않지만 박리다매를 통해 많은 수익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체인점 수가 1만여개에 이르는 편의점에 입점할 경우 연간 10만-12만 박스의 맥주를 판매할 수도 있다. 이는 40피트 컨테이너로 65-70개에 이르는 양이다. 게다가 편의점의 경우 높은 수수료율에도 불구하고 마트처럼 수백종의 맥주가 경쟁하는 것이 아닌 20-30종의 맥주가 경쟁하는 구조로 시장의 즉각적인 반응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격 경쟁은 크래프트 맥주에 치명적
4월 1일자로 국내 소규모맥주제조면허자의 맥주가 백화점, 편의점, 마트 등 일반 소매채널을 통해판매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가격을 중심으로 한 치열한 물량 경쟁이 이루어지는 이 시장에서 국내 크래프트 맥주는 수입 크래프트 맥주와 마찬가지로 매우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주세 부과 방식은 종가세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주세 부과 방식 아래에서 제조원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크래프트 맥주의 경우 가격 경쟁력을 가지기 어렵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 일반양조장인 플래티넘 맥주에서 출시한 페일 에일과 화이트 에일의 경우에도 330ml 3캔에 만원으로 묶음 할인을 하더라도 수입맥주와의 가격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잘 말해준다.
게다가 적은 생산량으로 인해 전국 단위의 안정적 공급을 필요로하는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 고객과의 접점이 가장 넓은 유통채널로의 진입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앞서 예로 든 10-12만 박스의 맥주를 킬로리터(kL) 단위로 환산하면 약 1200-1440kL에 이르는 양으로, 이는 왠만한 소규모양조장의 1년 생산량을 훌쩍 뛰어넘는 양이다. 따라서 당장의 법 개정으로 국내 크래프트 맥주가 소매점에 원활하게 유통될 것으로 기대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가격 경쟁은 결국 소매판매 채널 포화의 결과
2017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500ml 캔 맥주 시장의 경쟁은 신규 상품의 진입과 가격 경쟁이 동시에 치열하게 이루어지는 구조였다. 새롭게 소개되는 맥주와 판매 부진으로 사라지는 맥주도 많았으며, 대형마트 사이의 묶음판매 맥주 가격 경쟁 속에서 4캔, 5캔,6캔에 만원 이하에 판매되는 맥주의 각축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흐름은 2017년 후반부터 점차 고착화되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가격 경쟁 역시 9000원대에서 더 이상 최저가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지 않는 모양새다. 이러한 가운데 주요 대형마트, 편의점을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것은 10종 정도에 불과하다.
캔 맥주 시장의 성장은 유통 채널의 양적 성장과 같이 했다. 특히 편의점의 경우 2017년 약 1만개 정도가 증가하며 캔맥주 시장의 성장을 주도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편의점 수 약 4만개는 인구 기준으로 볼 때 약 1200여명당 1개꼴로 포화상태다. 마트 역시 인구 12만여명당 1개로 폭발적인 양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격을 중심으로 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 밖에 없고, 자본력에서 앞서는 대기업에 조금 더 유리한 지형이 펼쳐질 것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는 국내 소규모 양조장들도 전국 단위의 공급능력을 갖추고 마트나 편의점 시장에 뛰어든다는 결정을 내리기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맥주 묶음 할인 판매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맥주를 마실 수 있게 했다. 가격의 부담을 낮춰 새로운 맥주를 선택하는데 저항을 줄였고, 다양한 맥주를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시장을 열었다. 하지만 가격을 중심으로 한 치열한 경쟁은 중소기업이 시장에서 생존하는데 어려움으로 작용했으며, 자본력이 뛰어난 대기업에게 보다 유리하게 작용하게 되었다. 유럽 라거 중심의 맥주 구성은 브랜드의 차별성으로 그쳐 맥주의 다양함을 알리는데 있어서 아쉬움이 있다.
2018년의 캔 맥주 시장은 시장 포화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가격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가격을 중심으로 한 경쟁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비싼 크래프트 맥주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주세법시행령 개정으로 소매점으로 유통이 가능하게 된 소규모맥주제조자의 맥주 역시 이러한 가격 장벽에서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맥주의 다양함을 알리는데 역할을 했지만, 다양한 맥주를 선택하는데 있어서 가격의 기준이 된 것이 ‘네 캔 만원’ 맥주의 명과 암이 아닐까 한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