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알코올 맥주 스타트업 ‘부족한녀석들’의 황지혜 대표를 만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무알코올 맥주는 ‘울며 겨자 먹기’로 어쩔 수 없이 함께하는 존재다. 건강상의 이유, 운전, 다이어트, 운동 등으로 인해 알코올을 섭취할 수 없을 때에만 한시적으로 마시는 맥주맛 음료다. 금주 기간이 끝나면 다시는 무알코올 맥주를 집어 들지 않는다. 일반 맥주에 비해 한참 맛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알코올이 빠진 밍밍한 뒷맛, 상쾌하지 않은 맥아의 단맛은 그나마 낫다. 대기업에서 나오는 일부 무알코올 맥주는 아예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아 인공적인 향신료 맛으로 점철돼 있다.
이런 무알코올 맥주 풍미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겠다고 나선 팀이 있다. 국내에 처음 생긴 무알코올 수제맥주 양조장 ‘부족한녀석들’이다. 지난 8월 서울 구로구 신도림동에 생산 공간을 마련하고 최근 제품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 부족한녀석들의 황지혜 대표를 만났다.
회사 이름이 특이한데 이렇게 명명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무알코올 수제맥주를 상징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회사명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처음 지은 팀 이름은 진짜 맥주를 만든다는 의미의 ‘어센틱브루잉랩(Authentic brewing lab)’이었다. 어설프게 흉내만 낸 것이 아니라 양조 과정이나 맛에 있어 일반 맥주와 다를 바 없다는 의미는 담고 있었지만, 임팩트가 부족했다.
그러던 중 팀원이 부족한녀석들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일반 맥주에 비해 알코올이 부족하다는 의미를 위트 있게 담자는 말이 와 닿았다. 또 기존 무알코올 맥주를 생산하는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생산 장비, 인력 수, 자본 등에 있어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기
도 했다.
사실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겸양(謙讓)의 의미다. 자원이 부족한 상황 속에서도 맥주 맛 하나만은 자신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스스로 부족한 것을 알기에 항상 노력하겠다’, ‘앞으로 점점 나아지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기도 하다.
부족함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처음 창업을 결심하고 해결하고자 한 문제는 무알코올 맥주의 맛이다. 제조 프로세스 상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밍밍함, 호박물 같은 단맛 등 무알코올 맥주 특유의 맛을 없애기 위해 장기간에 걸친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는 정교한 레시피와 생산 공정을 완성해 어떤 무알코올 맥주와 비교해서도 맛과 품질에 대해서는 부족하지 않다고 확신한다. 물론 지금도 잘 만든 일반 수제맥주의 맛과 비교하면 단점이 지적될 수 있다. 이런 면까지 해소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 나가겠다.
부족한녀석들이 만든 녀석들(제품)을 소개해 달라.
어프리데이(AfreeDay)라는 브랜드로 제품을 생산해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판매하고 있다. 어프리데이는 알코올 프리 데일리 라이프(Alcohol-free Daily Life)의 약자로 ‘일상 속에서 즐길 수 있는 맛있는 무알코올 맥주’를 표방하고 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제품은 어프리데이 페일 에일과 어프리데이 스타우트 두 스타일이다. 어프리데이 페일 에일은 망고, 자몽 등 상큼한 열대과일의 아로마와 시트러스함이 돋보이는 호박색 외관의 아메리칸 페일 에일 스타일이고 어프리데이 스타우트는 커피, 초콜릿 등의 묵직한 풍미가 도드라지는 흑갈색의 아이리시 스타우트 스타일 맥주다. 두 맥주 모두 0.5% 정도의 도수를 갖는다.
신문기자 출신으로 알고 있다. 어쩌다가 무알코올 맥주 생산을 하게 되었나?
기자 일을 하면서 술 마실 기회가 적지 않았고 술을 좋아하기도 했다. 그 중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 수제맥주에 특히 빠져들게 됐다.
맥주 애호가로서 일반 수제맥주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뒤늦게 진입해 앞줄에 서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외에 이미 훌륭한 맥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무알코올 수제맥주 시장은 무주공산이다. 어떻게 보면 현재 상황에서 무알코올 수제맥주는 자본력이 있건 없건 모두가 출발선상에 있다. 이런 면에서 무알코올 수제맥주에 도전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맛있는 무알코올 음료에 대한 선택권이 넓어지면 음주운전, 주취폭력 등과 같은 알코올로 인한 사회문제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일부 제품 제조에 쓰고 있는 국산 맥아를 좀 더 확대해서 농업의 6차산업화, 탄소 중립 등에도 기여했으면 좋겠다.
무알콜 맥주를 사업 아이템으로 잡게 된 이유는?
무알코올 맥주를 접해 본 주변 사람들은 모두 맛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다. 알코올 분해 능력이 떨어지거나 단기적으로 알코올을 섭취할 수 없어 마시게 됐지만, 차라리 안 마시는 것이 낫겠다는 말이었다. 무알코올 맥주는 수요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맛때문에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무알코올 맥주의 맛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고 다양성을 늘린다면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선택할 수 있는 일상 속 음료로 외연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비대면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시대에 온라인 주문과 배송이 가능한 무알코올 맥주는 빠른 성장을 기대해 볼만한 분야라고 판단했다.
미국, 영국 등 해외의 무알코올 전문 수제맥주 양조장들이 주목받고 있는 점도 고무적이었다. 최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들의 자료에 따르면 건강을 고려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알코올 테크’라고 불리는 알코올 대체 음료 시장이 커지고 있다.
직접 생산에 뛰어들어보니 어떤가?
취미는 취미로 즐겨야 한다는 말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처음에는 레시피만 완성되면 모든 것이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이었다. 브루잉에서부터 포장, 발송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하다 보니 늘 바쁘기만 하고 보이는 성과는 크지 않다. 또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를 캔에 담아 품질을 유지하면서 각 가정에 배송하기 위한 준비 과정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또 한 단계 한 단계 넘어가는 데서 느끼는 기쁨이 있다. 국내에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는 점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동안 맥주 좀 마셔봤다고 입만 살아서 쉽게 남의 맥주를 평가했는데, 이제 어떤 맥주를 마시더라도 맛을 표현하기 전에 두 번 세 번 더 생각한다.
향후 시장에 대한 전망 및 포부, 계획
앞으로 무알코올 맥주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건강과 자기관리를 중시하는 MZ 세대들이 소비의 주류로 부상하고 있고, 젊은 시절 한창 술을 마시던 세대도 이제 여러 가지 이유로 알코올 섭취를 줄이고 있다. 고령화가 진전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부족한녀석들은 국내에서 가장 먼저 무알코올 수제맥주 생산을 시작한 기업으로서 이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노력해 나갈 것이다. 첫단계로는 생산 규모를 키워 현재 소매에 머물러 있는 시장을 도매로 확대하고, 동시에 맥주의 품질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장비들을 확충해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