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A의 전설, 러시안 리버 브루잉 비니 실루조
1년에 한 번, 캘리포니아주 산타 로사 4번가에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이 줄을 선다. 매년 2월 딱 한 번 출시되는 러시안 리버 브루잉의 트리플 IPA인 Pliny the Younger를 마시기 위해서다. 1년에 한 번 출시된다는, 대부분은 입소문으로만 듣는 소문의 그 맥주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든다.
러시안 리버 브루잉 컴퍼니는 미국 크래프트 맥주를 오래 좋아해 왔던 사람이라면 회사의 이름은 물론이고 Pliny the Elder와 Pliny the Younger, 혹은 사워 에일을 함께 떠올릴 것이다.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던 8월의 마지막 날, 미국의 야키마에서 열린 홉앤브루 스쿨에서 러시안 리버 양조장의 오너인 비니 실루조(Vinnie Cilurzo)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최근에서부터 과거로 거슬러올라가 그 당시에 출시되었던 홉 품종을 언급하며, 그 홉으로 맥주를 담가 본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 그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다. 강연이 끝난 후 그는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과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비니는 오늘날 크래프트 맥주의 IPA를 말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이름 중 하나이자 최초로 더블 IPA를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IPA의 발전을 이끈 러시안리버 브루잉
러시안 리버 양조장의 대표맥주는 Pliny the Elder와 Pliny the Younger라는 더블IPA와 트리플 IPA다. 높은 알코올 도수와 강한 쓴맛이 특징인 이 맥주들은 대중적인 사랑을 받거나 넓은 유통망을 이용해 유통되기는 힘든 종류의 맥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맥주 애호가들은 이 맥주를 좋아하고, 마시고 싶어한다 “우리 맥주들은 일반적인 IPA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맥주가 인기를 끌고, 해외로 수출까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죠.”
러시안 리버 브루잉 컴퍼니는 1997년 Korbel Champagne Cellars 사가 캘리포니아 주 겐빌(Guerneville)에 설립한 브루어리다. 이때 브루마스터이자 유일한 직원으로 고용된 사람이 비니 실루조다. 비니의 부모님은 캘리포니아 주 테메큘라에서 와인 제조업을 했다. 어려서부터 발효에 익숙했던 그는 80년대 후반부터 홈 브루잉을 시작했고, 1994년에 Blind Pig브루잉 컴퍼니를 테메큘라에 설립했으며, 그곳에서 더블 IPA를 처음으로 양조했다. 이는 미국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더블 IPA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 그는 1997년 그는 러시안 리버 브루잉 컴퍼니에 브루마스터로 고용되며 아내와 함께 겐빌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상업적 더블 IPA인 Pliny the Elder가 처음 탄생한 것도 이 시기이며, 벨기에 맥주에서 영감을 얻은 배럴 에이징 맥주들도 만들기 시작했다. 2003년 Korbel Champagne Cellars사가 맥주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비니와 그의 아내인 나탈리(Natalie)는 러시안 리버 브루잉 컴퍼니의 모든 레시피와 권리를 인수한뒤 산타 로사(Santo Rosa)로 옮겨가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러시안 리버 브루잉 컴퍼니와 비니는 GABF(Great American Beer Festival)과 World Beer Cup에서 맥주로 수십차례 수상함과 동시에 올해의 브루어리, 올해의 브루마스터로 2번씩 선정되는 영애를 누리기도 했다. 또한 2017년에는 미국 양조사 협회에서 양조 혁신 분야에 수여하는 Russell Scherrer Award를 수상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전설의 브루마스터이자 양조장이다.
맥주에 있어 품질은 첫 번째이자 기본
비니에게 있어 러시안리버 브루잉과 크래프트 맥주에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라고 한다. “맥주에 최고의 이름을 붙이고 최고의 라벨을 붙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수한 마케팅 기법으로 누군가 그 맥주를 구매한다고 해도 그 안에 들어 있는 맥주의 품질이 엉망이라면 소비자는 다시 구매하지 않을 것입니다. 즉, 맥주에 있어서 품질이 모든 것의 기초이며 이를 기반으로 유통과 마케팅 기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그는 품질 높은 맥주를 위해 브루어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준 높은 브루잉 팀을 운용해야 한다. 어느 정도 품질 수준을 넘어섰을 때 비로소 소비자를 마주 볼 수 있고, 소비자역시 그들의 맥주에 주목함으로써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2018년 10월 러시안 리버 브루잉은 산타 로사 북쪽의 윈저(Windsor)에 두 번째 브루어리를 열었다. 2014년 처음 계획된 이 프로젝트는 양조장 부지를 선정하는 데만 거의 2년이 걸렸다. 이 프로젝트는 85,000 제곱미터 규모로 사무실과 브루펍, 야외 비어가든, 테이스팅 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니는 이 모든 것이 높은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고객들이 브루잉 과정뿐만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고객들은 저와 나탈리가 이 일을 해오면서 겪었던 힘겨운 일들과 노력에 관해서 들을 수 있습니다. 고객들 덕분에 우리는 더욱 겸손해지고 더 나은 맥주를 만들도록 노력하게 됩니다. 새로운 브루어리를 만든 또 다른 이유는 매우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직원들을 위해 좋은 업무환경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객에게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죠. 단지 맥주를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건 맥주건 이 모든 것들이 최고의 품질을 유지해야 하는 상품이기 때문입니다.”
크래프트 브루어리는 품질로 말해야 한다
얼마 전 국내에서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정의에 관한 이슈가 불거진 적이 있다. 자본의 출처, 크기 등 다양한 기준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이와 관련해 비니는 크래프트 맥주의 정의에 있어 크기보다는 품질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양조자 협회 이사회에서 크래프트 맥주의 정의를 만드는 일을 감독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과정에 대해서 매우 자세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래프트 맥주를 정의하는 데 크기에 관한 것이 반드시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시에라 네바다와 같은 브루어리들이 아직 크래프트 브루어리로 남아있다는 것이 좋은 예입니다. 크래프트 맥주는 크기보다는 품질이 중요하며, 그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미국에서도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글로벌 맥주 회사에 인수되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매각과 독립성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어떤 브루어리는 매각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브루어리는 직원이 소유권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각자가 처한 입장과 상황에 따른 선택에 의한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는 일을 즐겁게 하고 있어요. 몇몇 기업들이 우리 와 협상을 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저는 브루어리를 매각한 이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련의 전략과 함께 떠날 준비가 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맥주를 만드는 일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쉽지 않죠. 하지만 저는 이일을 사랑하고, 일주일에 거의 7일을 일하고 있죠.”
러시안 리버 브루어리의 오너이자 브루어로서, 비니는 맥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브루어리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관계 맺는 것을 좋아한다. 맥주가 사람을 모이게 하는 것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맥주란 자신이 만든 품질 좋은 맥주를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