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C 2019 Report 세계 최대의 크래프트 맥주 컨퍼런스
해마다 4월이면 미국에서 가장 큰 맥주 행사인 Craft Brewers Conference(이하 CBC)가 열린다. Brewers Association(이하 BA)에서 주최하는 행사로, 소규모 양조장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맥주 정보를 나누고 네트워킹을 늘리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행사다. 맥주 업계에 들어와서 매년 소문만 듣다가, 어차피 한번은 갈 거라면 한 해라도 더 빨리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 싶어 결심하고 콜로라도 덴버 행 비행기를 끊었다.
3~4년 전부터 우리나라 맥주 산업을 위해서 맥주만의 전시와 컨퍼런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지난 3월 드디어 처음으로 대한민국 맥주 산업 박람회(Korea International Beer Expo 이하 KIBEX)를 개최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이 여럿 있었으나, 다양한 이들과의 협업을 통해 다음을 기약할 수 있을 정도로 마무리되어 다행이었다. 한편으로는 내년에 더 멋진 행사를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크래프트 맥주 산업의 본토, 미국에서 가장 큰 행사에 참여해 보고 배움으로써 한국의 KIBEX를 더 널리 알리고 싶었다.
콜로라도 덴버는 한국에서 가기 쉽지 않은 도시다. 직항이 없는 까닭에 LA나 시애틀, 시카고 등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거나 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차는 10시간 이상 걸릴 뿐더러 국내선 비행기는 갈아타는 데 화물의 무게에 따른 부가 요금이 발생할 수 있기에 맥주 여행자들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이다. 왜냐면 맥주 여행자들은 도시를 들를 때마다 구입한 맥주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이다.
나는 시애틀까지 직항으로 간 뒤 거기서 덴버로 이동하는 경로를 설계했다. 시애틀 또한 크래프트 맥주가 유명한데, 그곳에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네다섯시간 내려가면 포틀랜드가 있다. 이곳 또한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도시이기에 기왕지사 가는 김에 느낌이라도 보고 오자는 요량이었다.
시애틀에서는 Farm house ale을 잘 만든다는 Holy Mountain Brewing을 찾아가서 시큼한 맥주를 한잔 마신 뒤, 시나몬 커피스타우트로 유명한 Fremont Brewing에 들러 여러 가지 맥주를 마셔보았다.
홀리마운틴(Holy Mountain)은 건물 뒤로 기차가 지나가고 프리몬트(Fremont)는 요트가 정박해 있는 작은 항구를 앞에 두고 있었다. 두 곳 모두 찾아가기 쉽지 않은 위치지만, 낮부터 때를 가리지 않고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이 이제는 신기하지도 않다. 이런 문화가 그저 부러울 뿐이고, 어느덧 나도 그 무리에 껴서 맥주를 마실 뿐이다.
인구 50만명 남짓한 도시 시애틀에는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약 50개 정도 있다고 한다. 산술적으로 인구 만명당 브루어리 하나씩인 셈인데, 서울로 따지면 적게 잡아 인구가 천만명이라 쳤을 때 브루어리 1000개 정도는 가능하다는 얘기 아닌가? 이것은 단지 숫자상의 가정일 뿐이지만, 전체 130여개 남짓 되는 대한민국 브루어리의 숫자를 가지고 포화 상태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엄살이 아닌가 싶다. 양조장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시장을 만들고 파이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커피인 스타벅스 1호점이 시애틀에 있기에 안 들르면 서운할 것 같아, 커피 한 잔 테이크 아웃해서 힙스터들의 도시, 포틀랜드로 향한다.
5-6년 전쯤 인사동에서 어느 미국 맥덕 친구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자기를 비어 헌터(Beer hunter)라고 소개하면서 비어바나(Beervana)를 아느냐고 물었다. 한참 맥주 공부 열심히 하고 이것저것 찾아 마시며 경험치를 올리던 때라 귀를 쫑긋 세 우면서 무슨 새로운 맥주 브랜드라고 되물으니, 비어바나는 포틀랜드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다. Beer와 Nirvana를 합성하여 만든 말인데 의역하자면 ‘맥주 천국’ 정도다. 미국 맥덕들에게도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 같은 도시가 포틀랜드였던 것이다. 그때 자칭 비어 헌터인 그 친구를 만나고 언젠가 한 번쯤은 포틀랜드에 가봐야지 동경만 하다가, 이번 기회에 드디어 포틀랜드를 만나게 된 것이다.
Keep Portland Weird!
‘아이러브 뉴욕’과는 완전 결이 다른 이 문구에서 포틀랜드의 도시민들이 지향하는 방향을 읽을 수 있다. 요새 말로 완전 ‘똘끼’ 있는 슬로건이라 할 수 있는데, 자연을 지키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도시의 이미지와 연결이 된다. 다양성 측면에서 빠질 수 없는 크래프트 맥주가 여기서 잘되고 인기를 끄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남과 다른 맥주를 만들고 싶은 브루어들이 남들과 다른 소비를 하고 싶어 하는 ‘이상한(weird)’ 소비자들과 결합하여 새로운 맛을 탄생시키고 좋은 맥주 회사로 발전하는 것이리라.
포틀랜드에서는 왠지 차를 타는 대신 걷고 싶은 마음이 든다. 운 좋게 토요일에 포틀랜드에 머물게 돼서 그 유명한 새러데이 (saturday) 마켓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정말 온갖 힙스터들은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그림 그리는 사람들, 조각가, 포토그래퍼 등등 저마다 자기만의 표현 방식으로 생각을 이미지화하여 판매하고 있었는데, 그중 특히 눈에 들어오는 친구는 포틀랜드에 있는 52개 브루어리를 그림으로 그려서 플레잉카드(playing card)로 만들어서 팔고 있는 Aaron이었다. 일러스트레이터인데 맥주를 좋아해서 포틀랜드의 대표 브루어리 52개를 그려 카드로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도시의 랜드마크 52개를 그려 카드로 만들어 판매하는데, 미국의 주요 도시와 런던, 도쿄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작업하기도 한단다.
포틀랜드 크래프트 브루어리 카드를 하나 사면서 추천할만한 5개의 브루어리를 소개해 달라고 했더니, 고르기가 너무 힘들단다. 하지만 대기업에 인수된 10 Barrel 같은 브루어리는 자신의 카드에서 뺐다고 한다. 역시 똘끼있는 포틀랜디안이다. 겨우 이틀을 보내고 포틀랜드를 이야기하기엔 부족하지만, 그들만의 Land라는 느낌은 확실히 있었다.
Deschutes Brewery, Hair of the dog, Cascade, Modern times 등 유명한 브루어리를 돌며 성지순례하듯 맥주를 마시다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본 목적지인 덴버로 향한다.
올해로 36회째인 CBC에는 13,000명의 맥주 업계 종사자 및 관계자가 참가했으며, 240명의 연사가 96개의 세미나를 진행하는 미국에서 가장 큰 크래프트 맥주 컨퍼런스다. 또한 브루 엑스포에는 1000개가 넘는 회사가 저마다 다른 크기로 부스를 꾸려 세계 소비자들과 소통의 장을 만들었다.
컨퍼런스는 맥주의 생산 및 기술과 더불어 맥주의 재료, 패키징, 유통, 홍보, 마케팅, 회계 등 전 비즈니스 과정에 필요한 전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3일 동안 자신에게 필요한 강의 위주로 시간표를 짜서 들으면 된다.
컨퍼런스의 시작을 알리는 기조연설(Keynote Address)은 유명한 영국 헤비메탈 밴드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의 리드보컬 Bruce Dickinson이 맡았다. 힙합을 좋아하는 젊은 독자들에겐 그가 생소하겠지만, 1980년대 헤비메탈 씬은 미국의 메탈리카와 영국의 아이언 메이든이 양대 산맥을 이룰 정도였다. 그만큼 슈퍼 밴드였으며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전설적인 밴드다. 그런데 갑자기 맥주 컨퍼런스에는 왜 왔을까? 브루스 디킨슨은 이력이 아주 독특하다. 앞서 말한 유명 록밴드의 리드 싱어인데다 항공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이기도 하고, 사업가이며 브루어(Brewer)이기까지. 한 사람이 이 모든 걸 한다는 게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입이 딱 벌어진다. 좋아하던 맥주를 공부하고 만들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이 한마디가 뇌리에 박혔다. 당시에는 파격적인 음악 장르였던 헤비메탈로 수많은 팬을 만들었듯, 크래프트 맥주도 새로운 맛과 브랜드를 만들고 그것을 추종하는 팬을 만들어야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할 수 있다는 얘기겠지.
기조연설이 끝나자 아이언 메이든의 팬들이 무대로 달려와 사진을 찍고 음반에 싸인을 받는 모습을 보니, 아직은 브루어보다 뮤지션으로 더 유명한 것 같다. Bellco Theater를 가득 채웠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때부터 각자의 스케즐로 움직이는 본격적인 컨퍼런스와 브루엑스포가 시작되었다.
행사를 통해서 생각해볼 단어들!
크래프트 문화 그리고 협회의 기능
30년이 넘는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역사는 이제 어느 정도 시장이 완성되는 단계에 도달한 듯 보였다. 여전히 브루어리 숫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생산 설비에 관한 이슈보다는 생산된 맥주를 어떻게 보관하고 유통하며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주제인 것 같다. 산업의 초기 단계에 있는 우리나라는 양조 장비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원재료도 다양한 통로로 공급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산업이 구축되는 시기에는 박람회를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초기 사업을 구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다. 그다음은 패키징과 품질 관리(Quality control) 등의 주제로 이동하며, 브랜딩과 마케팅을 함으로써 산업에 필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산업이 발전해나가는 방법이다. 미국은 지금 시장이 완성되는 단계에서 시장의 규모를 공고히 하고 맥주 소비문화를 만드는 단계에 있다. 문화가 정착되면 시장은 당분간 어려움 없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우리나라는 시장이 혼재되어 있어서 더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우스 맥주 시절부터 10여년 정도 된 역사지만, 크래프트 맥주의 외부 유통이 가능해진 2014년을 본격적인 시작점으로 본다면 이제 5-6년 정도의 역사다. 그런데 생산, 유통, 홍보, 문화 등의 분야가 두서없이 섞여 있어서 소비자들이 맛있는 맥주를 제대로 인식하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 산업은 BA(Brewers Association, 양조사 협회)를 통해 체계적으로 메시지를 관리하면서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는데,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협회가 그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미국 협회는 안정된 예산을 기반으로 100여명의 전담 인력이 있어서 파트별로 업무를 추진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수제맥주협회는 현업 중인 브루어리 대표 중 임원진을 선출하다 보니 각자의 생업에 밀려 협회의 일에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도 BA를 벤치마크하여 지원 조직을 만들고 맥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며 시장을 조금씩 넓혀 간다면 3-4년 내 안정적인 시장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해본다.
독립성
BA는 최근 몇 년 동안 ‘Independence’ 즉 독립성을 매우 강조해 왔다. 이번 행사에 비친 BA의 메시지도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수많은 크래프트 맥주 회사들이 대자본에 인수되는 일을 겪으면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을 만들고 지켜내는 핵심 가치로 ‘독립’이라는 메시지를 도출한 것이다. BA는 모든 회원사에게 ‘Independent’ 마크를 사용하도록 권한다. 그리하여 소비자들은 병이나 캔에 붙어 있는 ‘독립’이라는 마크를 보고 남과 다른 소비를 할 수 있다.
농산물이 다량 유통되는 시장 구조 속에서 유기농산물에 대한 특별한 마크를 붙이듯, 크래프트 맥주는 특별하며 다양성을 존중하는 ‘독립’된 음료임을 강조하여 시장을 차별화하고 만들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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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한 맥주
그야말로 헤이지한 맥주가 열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Hazy는 아주 탁한 맥주의 외관을 일컫는데 오렌지 주스 같은 색깔과 탁도를 띠기 때문에 쥬시(Juicy)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뉴잉글랜드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여 스타일상 New England IPA라고 분류하는데, 시트러스한 풍미를 가진 홉을 많이 넣어서 오렌지, 자몽계열의 과일 향이 풍부하고 쓴맛이 도드라지는 게 특징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쓴맛을 줄이고 파인애플, 열대과일 등의 아로마를 강조하면서 좀 더 마시기 편하게 변화하고 있다. 주스처럼 마시기 편하게 음용성이 좋은(drinkable) 맥주로 변신하면서 뉴잉글랜드 IPA보다 헤이지 IPA, 쥬시 IPA등으로 편하게 불린다.
당분간 이 맥주의 유행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응용성이 좋은 음료로 탈바꿈하면서 양조장 입장에서는 잘 팔릴 뿐더러 양조장의 특색을 단시간에 드러낼 수 있는 스타일의 맥주이기 때문이다. 또한 홉 서플라이어 입장에서는 헤이지 맥주가 홉의 소비량이 많아서 재고를 소진하기 좋으니, 이런 맥주가 유행하는 것이 아니 좋을 리가 없다. 홉의 공급이 부족한 상황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크래프트 맥주의 트렌드는 헤이지하게 흘러갈 것이다.
다양성
상업 맥주에 비교해 볼 때 크래프트 맥주의 가장 큰 경쟁력은 다양성이다. 생산자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양조장은 다양한 맥주를 생산하게 되고 다양한 라인업을 구축한다면 맛에 대한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도 충족할 것이다. 상업 맥주는 단위 생산량이 크기 때문에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기 어렵다. 따라서 크래프트 맥주 회사들은 제품의 퀄리티를 높이며 다양한 맛에 대한 탐구를 지속해야 한다.
브루엑스포에 참가한 부스에서 눈여겨 볼만한 제품은 다름아닌 과일 퓨레였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과일이 들어간 프룻 비어 Fruit Beer가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브루잉에 용이할 뿐만 아니라 크래프트 맥주의 정체성을 지키며 다양한 맛을 낼 수 있기에 퓨레 시장도 프룻비어와 맞물려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협업
크래프트 맥주에서 협업은 대단히 중요한 덕목이라고 여러 번 강조되곤 했는데, 이번 CBC를 통해 이것을 다시 한번 확신을 하게 되었다. 예컨대, 브루엑스포에 참가한 몇몇 회사가 각각의 자원을 모아서 커다란 콘텐츠를 만들고 이것을 공동으로 프로모션하면서 다른 회사들과는 차별화된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컨퍼런스 기간 내내 저녁이면 참가사들은 맥주 파티를 열고 고객들을 초대해서 좀 더 자유로운 공간에서 마케팅을 이어간다. 이때 단독으로 하면 작은 공간을 대여할 수밖에 없지만, 몇몇 회사가 모여서 파티를 하면 더 큰 공간에서 공연도 할 수 있고 음식도 넉넉하게 준비할 수 있으니 파티 주최 측이나 초대받은 고객이나 서로 좋을 수 밖에 없다. 사업은 각자의 영역이지만 공간과 컨텐츠를 공유함으로써 같은 비용으로 좀 더 풍성하게 마케팅 활동을 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맥주를 같이 만드는 협업을 넘어 시장을 함께 키우는 해법이 어쩌면 ‘협업’에 있지 않을까? 우리에게도 다양하고 멋진 컬래버레이션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포장
맥주를 어떻게 담고 어떻게 옮길지 고민을 많이 하는 듯하다. 특히 병보다는 캔으로 맥주를 유통하는 것이 크래프트 맥주에 적합하다고 강조한다. 캔은 환경 보호의 측면에서 재활용에 용이하며 패키징 후 유통 과정에서 공간을 덜 차지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유리하다. 또한 병보다 빛에 강하고 산소 차단율도 높아 변질을 방지하고 향을 지키기에 좋다고 평가 받는다. 이번 전시에서도 캔 패키징과 그것을 둘러싼 다양한 부가 사업이 상당한 부스를 차지하고 있었다. 향후 소매점 유통이 좀 더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우리나라 크래프트 맥주 시장도 캔맥주 유통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아웃도어 장비에서 많이 봤던 보온 물병이 맥주를 담는 그라울러로 변신하여 많은 부스에서 비슷한 상품을 볼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유리재질로 된 그라울러보다 온도 관리와 빛을 차단하기에 좋고 깨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어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맥주 시장 현황
BA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맥주 시장은 전체적으로 1%p 줄었지만 크래프트 맥주는 4%p 성장했다. 몇가지 숫자와 그림을 통해 시장을 보면 현재 미국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는 7,500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는데, 2018년을 기준으로 폐업한 브루어리는 219개, 그에 비해 새로 문을 연 브루어리는 1,049개라고 한다.
게다가 최근 3년 동안 개업한 브루어리 숫자는 무려 3,194개라고 하니 가히 폭발적인 증가다. 아무리 미국이 중국과 인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나라라고 하지만, 인구 3억 2천만명에 브루어리가 7,500개라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미국 브루어 협회에 의하면 개업을 준비하는 크래프트 브루어리의 숫자가 대략 2,500개라고 하니 브루어리 일만 개의 시대가 오는 것은 시간 문제인 것 같다.
숫자도 놀랍지만, 이 많은 양조장이 비즈니스를 하며 맥주 산업 생태계 안에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더 놀랍다. 이러한 산업의 성장 요인은 무엇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번 컨퍼런스에서 얻은 결론은 소비의 다양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소비자의 다양성은 그저 다양한 미각적 욕구만으로 해석하기 보다 좀더 복잡한 소비 심리적 요인을 해석해야 시장에 접목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소비자는 더 이상 그저 그런 것을 소비하길 원치 않는다. 하나를 소비하더라도 남과 다르게 확실한 구매를 하길 원하고 그것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전시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스몰 럭셔리, 소확행 등의 말로 이러한 소비 경향을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소비자들은 맥주에 있어서는 정책적으로 구조적으로 다양성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수제 맥주 또는 크래프트 맥주라는 말이 이제 겨우 태동하여 1%도 안되는 소비자들이 정보를 공유하며 소비할 뿐, 일반 대중에 속하는 소비자들은 아직 그런 맥주가 있는지도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30년 이상 내공을 키워오며 맛에 대한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거쳤고, 지역과 역사를 같이하며 성장해온 충성도 높은 소비자들이 있기에 지금의 시장 규모가 가능한 것이다. 맥주의 생산과 더불어, 협회는 산업의 구성원들이 사업을 잘 할 수 있도록 돕고 통계 자료를 만들어 공유하는 등 꾸준히 산업에 투자해 왔다. 관련 미디어는 끊임없이 기사를 생산하여 일반 소비자들에게 산업와 소식과 정보를 알리고 교육기관은 지식을 전달해 전문가를 양성함으로써 전체적인 품질을 끌어 올리며 시장을 넓히는 것이다.
이번 CBC와 Brew Expo를 방문하면서 일단 이 수많은 사람들이 맥주에 대한 열정으로 이렇게 모일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일을 하는 동지 의식으로 발생하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또한 우리도 다양성에 기반한 맥주의 생산, 유통, 재료의 공급, 미디어, 아카데미, 홈브루잉 등등 관련 산업 밸류체인을 공고히 하면 충분히 시장이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보았다.
우리도 하면 된다. 다만 조금 긴 호흡으로 시장을 만들어 가야할 것이다. 30년 된 시애틀의 작은 양조장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지속가능하게 비즈니스를 설계하고 움직이면 기회는 반드시 올것이다.
대한민국 크래프트 맥주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