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대표 크래프트 브루어리 BFM의 제롬 레베테즈 대표
와인 배럴과 향신료가 만나 맥주 변주곡이 탄생했다
처음으로 스위스의 크래프트 맥주가 수입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때마침 브루어리의 대표가 한국에 온다고 해 인터뷰 약속을 잡았다. 사전조사를 해야 하는데 스위스 맥주에 대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스위스 는 알프스산맥, 시계, 치즈가 유명한 중립국이라고밖에...
레이트비어에서 국가별로 검색을 하니 스위스 크래프트 맥주 톱10 중 8개가 만나기로 한 프랑쉐 몽타뉴 브 루어리(Brasserie des Franches Montagne, 이하 BFM)의 맥주였다. (스위스 크래프트 브루어리 수는 600 개가 넘는다.) BFM은 와인 배럴에 맥주를 숙성해 이를 블렌딩하는 빈티지 맥주로 이름이 높았다.
또 이국적인 향신료를 맥주 양조에 활용해 독특한 풍미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유명했다.
맥주, 와인과 만나 특별해지다
글로 공부한 BFM 맥주를 실제로 확인하기 위해 벚꽃이 만개한 봄날 강남 아크펍에서 BFM의 대표이 자 브루마스터인 제롬 레베테즈(Jérôme Rebetez)를 만났다.
제롬 레베테즈 대표는 와인 양조학을 공부한 후 집에서 맥주 양조를 시작해 스위스에서 열린 홈브루잉 대회를 휩쓸었다. 23세였던 1997년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스위스 북서쪽 쥐라에 브루어리를 열 수 있 었던 것도 큰 규모의 경연대회에서 받은 우승 상금 덕분이었다.
레베테즈 대표는 지난 20년간 크래프트 맥주의 불모지와도 같은 스위스에서 그만의 양조 세계를 구축 해 ‘스위스 크래프트 맥주의 선구자’로 불린다. 현재는 두 곳의 브루어리에서 총 40헥토리터를 생산하 고 15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맥주가 아니라 제가 마시고 싶은 맥주를 만듭니다. 맥주만 마시고도 BFM 맥주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도록 어디에도 없는 독창적인 맥주를 양조하죠.”
처음에는 지나친 자신감이 아닌가 하 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BFM의 맥주 를 하나하나 시음하면서 그의 태도를 점점 이해하게 됐다.
배럴 숙성 빈티지 맥주 ‘봉시앙’
맥주 애호가들의 큰 지지를 받고 있는 BFM의 맥주는 봉시앙(L’abbaye de st bon-chien)과 루트225세 종(√225 Saison)이다.
봉시앙은 도수 11%의 사워 에일로 와인 배럴에서 1년의 숙성 과정을 거친다. 이후 복합적인 맛과 향을 더하기 위해 양조한지 얼마 안 된 맥주를 블렌딩해 맛을 완성한다. 와인 양조학을 공부한 레베테즈 대 표답게 와인 양조법을 결합한 것이다.
봉시앙은 스파이시하면서도 포도의 달콤함이 묻어나는 향에 신맛과 와인의 풍미가 가득해 균형 있으 면서도 복합적인 맛을 느낄 수 있다.
제롬 레베테즈 대표는 “숙성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미생물이 들어가 배럴마다 맛이 다른 맥주가 생산 된다”며 “특별히 훌륭한 맥주가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그랑크루(Grand Cru)라는 이름을 붙여 내놓는다”라고 설명했다. 봉시앙의 품질유지기한은 10년으로, 장기 숙성하면서 달라지는 맛을 즐길 수 도 있다.
루트225 세종은 봉시앙의 ‘동생’뻘 사워 에일. 봉시앙을 숙성했던 오래된 오크 배럴에서 약 4~5개월 동안 숙성한다. 벨기에 세종의 풍미에 배럴의 나무 향, 신맛이 한층 더해진 매력적인 맥주다.
루트225 세종에는 루바브(rhubarb)라는 향신료가 사용돼 신맛과 향기를 더했다.
BFM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제품은 밀로 만든 에일인 살라만더(Salamandre)다. BFM의 생산량 중 45% 를 차지한다. 꿀을 넣어 발효시켜 부드러운 질감(mouthfeel)을 완성했다.
그는 맥주를 만들 때 중국 차의 탄닌 성분을 맛에 활용하기도 하고, 사라왁 후추, 세이지(sage)나 허브 등도 사용한다. 다양한 향신료를 활용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요리를 좋아하고 식료품에 관심이 많아 서 요리 재료에서 맥주 레시피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다”며 “감칠맛(umami taste)을 발전시켜 자 꾸 먹고 싶은 맥주를 만드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재미있게 마시자구요”
BFM은 자유로운 재료 활용과 양조 방식에 더해 재기 발랄한 작명과 마케팅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맥주 이 름 봉시앙은 브루어리에서 키우던 고양이 이름이다. 세종 이름인 루트225는 계산하면 15가 되는데 15주년 기념 맥주 로 만들진 데 따른 것이다.
20주년 기념 로고는 한자를 넣어 ‘20歳(세)’로 정했다. 일본어로 된 디자인도 눈에 띄었다. 동양의 문자를 활용하는 이유를 묻자 “프랑스어로 쓰면 평범하기 때문에 특별하게 보이고 싶어 동양문자로 썼다”고 답했다. 임페리얼 스타우 트의 도수를 소수점 아래 세 자리까지 표시(10.276%)한 것도 재미있자고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벤트 기념 뱃지나 코스터에도 소변 금지, 구토 금지 등의 유머러스한 상징으로 재미를 추구한다.
젊음을 모두 맥주에 바친 그에게 맥주는 어떤 의미일까. “저에게 맥주는 여행하고 사람을 만나는 좋은 방법입니다. 최 근에 알바니아에 자전거 여행을 갔는데 말이 한마디도 안 통하는 브루어와 하루 내내 맥주 얘기를 나눌 수 있었죠. 그 게 바로 맥주의 매력 아니겠어요!”
제롬 레베테즈 대표는 인터뷰를 마친 후 한국 마트에 장을 보러 갔다. “스위스에 쌈장과 고추장을 사갈 겁니다. 신제 품 맥주에 이런 한국 소스들을 활용할 지도 몰라요. 또 아름다운 한글도 라벨에 쓰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맥주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BFM 맥주를 맛보고 난 후 머릿속은 스위스 맥주로 가득 찼다. 와인 배럴의 은은한 오크 향이 오랫동안 입안에 머물렀고 어디서도 맛 본 적 없 었던 복잡다단한 맛의 맥주들이 자꾸 떠올랐다. 이제 스위 스라고 하면 알프스산맥 대신 BFM 맥주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