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의 휴식과 고즈넉함을 담은 맥주, 전남 담양 브루어리 ‘담주브로이’
전남 담양하면 떠오르는 것은 단연 대나무겠지만, 여러 번 가본 사람은 담양이 주는 아늑하고 고즈넉한 느낌에 더욱 사로잡힌다. 거대한 산과 광활한 평지가 번갈아 나타나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어느새 산세도 나지막해지고 단아한 가로수들이 늘어선 2차선 도로에 진입한다. 주변을 살피면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혹은 작은 대나무 숲들이 눈에 띄어 비로소 이곳이 담양임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순간 도로변에 갑자기 담주브로이가 나타난다. 흔히 생각하는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 같은 외관은 아니다. 심지어 모르고 온다면 지나칠 수도 있을 것 같다. 중소도시의 교외에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너무 익숙한 모습의 음식점의 모습이어서 크래프트 브루어리라기엔 낯설게 느껴지는 역설. 하지만 이곳이 사실 ‘진짜’ 크래프트 브루어리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건물 외관이나 위치로 설명할 수는 없는, 바로 김형락 대표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에있다.
담주브로이에 녹아있는 역사
2012년 설립된 담주브로이는 최근 밤블리(Bambly, Bamboo+Lovely)라는 브랜드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사실 김형락대표는 오래 전 하우스 맥주 시장이 열리기 시작할 때부터 이 업계에 종사한 한국 크래프트 맥주계의 시조새라고 할 수 있다. 2002년 하우스 맥주라는 이름으로 브루펍이 생겨났던 그 시절에 김 대표는 전남 광주 수산동에서 ‘광주 브루어리’를 운영했었다. 그 후 11년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하우스 맥주를 판매했고, 맥주 비즈니스에 대한 많은 지식과 노하우를 얻을 수 있었다. 한국마이크로브루어리협회의 이사직까지 맡으며 소규모 양조와 맥주 비즈니스를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그 역시도 150개의 회원사가 35개 내외로 줄어드는 하우스 맥주 시장의 쇠락을 이기지는 못했고, 그의 첫 브루어리도 문을 닫게 된다.
좋은 맥주는 몸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그가 만드는 밤블리 맥주 다섯 종은 모두 몸에 좋은 성분이 들어가 있다. 밤부 바이젠, 밤부 둔켈은 대나무잎으로 만든 댓잎차가 들어갔고 스포라이스, 스포필스는 죽순이 들어갔다. 전국 각지에서 자라는 식물인 ‘우슬’을 넣은 맥주도 있다. 모두 댓잎, 죽순, 우슬의 효능이 충분히 우러나올 수 있는 방식으로 김형락 대표의 손에서 직접 만들어진 레시피들이다. 이 레시피로 만든 맥주는 정부지원을 받게 되었고, 현재는 다섯 종의 맥주 모두 특허 등록까지 되어있는 상태다.
그 역시도 맥주를 모르던 시절엔 호프집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면 속이 안 좋아서 매번 배탈이 나곤 했었는데, 사업차 방문했던 타국에서 신선한 크래프트 맥주를 마셨을 때는 속이 아프지 않았던 경험을 했다고 한다. 그때 그가 우연히 체험했던 ‘좋은 맥주는 몸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그 믿음은 지금도 맥주를 만드는 단 한가지 철학으로 오롯이 남아있다. 생맥주란 이름으로 판매되지만 유통이나 서비스 과정에서 관리를 하지 않아 효모나 영양소가 다 죽은 ‘살아있지 않은 생맥주’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강한 맛과 향으로만 대중들의 입맛을 매혹하려고 하려고 하면 멀리 발전할 수 없다는 것. 이 두 가지 생각이 그가 생각하는 ‘몸에 좋은’ 맥주에 대한 철학이다.
그가 멈출 수 없는 이유
하필 왜 맥주에 매료되었을까. 맥주집 사장이기 전에 그는 가구 제조사를 운영했다. 스스로 ‘손재주가 좀 있다’고 훈장처럼 이야기하는 김형락 대표는 또 그 재주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고 털어놓는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내놓는 재주. 그 재주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 크래프트 맥주에 손을 대지도 않았을 것 같다. 브루마스터라면 당연히 양조와 동시에 양조 기계도 다룰 줄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단순히 레시피를 통해 양조만 하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의미로 브루마스터라 불리긴 어렵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는 그는 실제로 레시피 개발부터 양조, 기기 설비 관리까지 손수 진행하는 진정한 의미의 ‘수제’ 맥주를 만들고 있다. 내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에 대한 애정 때문일까. 하우스 맥주시장이 쇠락하던 시절에 운영하던 매장 문을 닫으면서도 다른 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맥주 공장을 매입했었다고 한다. 매장이 아닌 공장을 매입한 것도 ‘뭔가를 만드는 것’에 대한 그의 집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집밥 같은 밤블리 맥주와 죽순 떡갈비의 조합
담주브로이는 담주영농조합법인이라는 이름으로 댓잎과 죽순 등이 들어간 자체 맥주 레시피를 개발하는 동시에 죽순이 들어간 소시지, 떡갈비 등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인터뷰 도중 맥주와 안주를 내오며 환하게 웃는 중년의 여성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담주브로이의 또 하나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김 대표의 아내였다. 직접 죽순이 들어간 떡갈비와 수제 소시지를 만들고 매장 운영까지 도맡아 하는 것을 보며 밤블리 맥주와 소시지가 친근하고 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엄마가 해주는 집밥처럼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고, 언제 먹어도 탈이 나지 않는 착한 음식과 맥주. 그것이 바로 김형락 대표가 담주브로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진짜 맥주였던 것 같다.
빨간 벽돌의 양조장 건물, 이색적인 향과 맛으로 가득한 고도수의 맥주, 해외 팝이 흘러나오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모를 외국인들이 각자의 애완동물과 함께 길거리에 서서 맥주 한잔을 들고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그러니까 내가 크래프트 맥주에 매혹되었던 그 이미지와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남도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지만, 신나는 맥주가 아닌 기대어 쉴 수 있는 맥주가 필요한 순간이 온다면 바로 밤블리 맥주를 떠올리게 될 것 같다. ‘몸에 나쁜 것 먹지 마라’, ‘꼭꼭 씹어먹어라’를 주문처럼 외우던 부모님이 권하는 크래프트 맥주. 그 상반된 이미지가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다면 바로 담양으로 떠나보자. 마침 담양은 불어오는 선선한 가을바람에 대나무 숲이 속살거리는 계절이다.
담주브로이
주소 전남 담양군 담양읍 추성로 1134
전화번호 061-381-6788
영업시간 10:00~22:30
블로그 http://blog.naver.com/damju6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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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_이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