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가리 브루어리 투어&박지훈 대표 인터뷰
인천 토박이와 함께한 한나절
5월 22일, 부처님 오신 날을 반기듯 촉촉한 봄비가 내렸다. 올해 초 인천 개항장 부근에 문을 연 칼리가리 브루어리를 방문하기 위해 인천역으로 떠났다. 인천역에서 칼리가리 브루어리까지는 천천히 구경하며 도보 이동하기 괜찮은 거리다. 차이나타운을 시작으로 자유공원과 개항장 문화지구를 거친 이날 여정은 맥주를 즐겨 마시는 인천 토박이 2명과 함께했다.
차이나타운에서 먹은 짜장면을 소화시키며 언덕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자유공원이 보인다. 한 친구 말로는 중고등학교 현장학습 시간에 자주 오던 곳이라고 한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멀찍이 서해 바다가 보인다. 자유공원에서는 맥아더 장군 동상을 지키는 할아버지들을 만났다. 장군의 동상 근처에 포진하여 공원 내 질서를 유지하고 있던 할아버지들은 함께 사진 찍기를 제안하자 인자한 미소와 함께 흔쾌히 응했다. 자유공원은 본래 1880년대 개항 이후 인천에 다양한 국가와 문화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만국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설되었으나, 전쟁 이후 인천 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해 1957년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운 뒤 지금의 ‘자유공원’으로 바뀌었다.
자유공원 한 쪽 편에는 얼핏 보면 관리사무소로 착각할 수도 있는 수수한 외관의 ‘구락부’가 있다. 이는 영어 단어 ‘Club(클럽)’을 한자 표기한 발음으로,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장이었다. 개항 이후 무역시장이 자리 잡으면서 인천에는 외국인이 자유롭게 거주 할 수 있는 ‘조계지’가 생겨났고, 외국인 인구가 급증했다. 구락부는 칼리가리 브루어리의 박지훈 대표가 한 번쯤 가볼만 한 의미가 있다며 추천한 장소기도 하다. 자유공원 언덕을 내려와 통과할 수 있는 ‘홍예문’은 개항 당시 일본인 조계지에서 원활한 통행을 위해 뚫은 고즈넉한 돌문이다. 언덕을 타고 쭉 내려와 옛 건물들이 있는 거리를 지나면 드디어 칼리가리 브루어리를 만난다.
칼리가리 브루어리 박지훈 대표 인터뷰
칼리가리의 탄생 배경
2016년 인천 송도에 크래프트 비어 펍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오픈한 박지훈 대표는 약 2년 만에 인천의 다른 지역을 비롯해 서울 각지로 매장을 확장했고, 현재는 열 군데에 이르는 매장을 운영중이며 올해 안으로 이태원과 익선동에도 추가 지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그간 다른 양조장에 위탁생산을 하며 맥주를 공급해온 박지훈 대표는 더 적극적으로 맥주를 생산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자 올해 초 자체 브루어리 ‘칼리가리’를 오픈했다. 위탁생산을 할 당시 한정적인 생산량 때문에 원하는 바를 맥주에 마음껏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자체 양조장에서 생산하는 맥주를 소진할 수 있는 매장이 갖춰져 있는 덕에 양조사들에게도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장려하기 좋은 조건이다. 양조장을 차리기 이전에 매장을 먼저 안정적으로 확보해 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양조장들도 한정된 맥주 양을 가지고 매장 운영에 집중할 것인지, 유통 부분에 집중할 것인지 고민이 많은 것으로 알고있어요. 저 역시 그 고민을 많이 했고요. 그런데 사람마다 잘하는 게 있고 좋아하는 게 있잖아요. 저는 매장을 꾸미고, 돌아다니고, 오픈해서 그 안에서 노는 게 좋더라고요. 매장 없이 공장에만 있으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아요.”
박지훈 대표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라는 이름이 어려워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그의 가게를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약 100년 전 만들어진 무성 흑백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을 보고 얻은 인상에 착안하여 독특한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했다. 기묘한 보라색 조명 밑에서 맥주를 홀짝이고있노라면, 어딘가 숨겨진 밀실에서 미치광이 과학자가 밀주를 만들고 있을 것만 같은 으스스한 상상이 든다.
칼리가리와 인천
칼리가리 브루어리가 위치한 자리는 인천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박지훈 대표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인천개항박물관 및인천아트플랫폼과 가까운 이 건물은 펍과 나이트클럽 등 여러가지 모습으로 변모해왔는데, 신포동 일대를 활보하던 20대시절의 그가 꾸준히 드나들어 세월과 추억이 담겨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전부터 계속 이쪽에 가게를 차리고 싶었는데,양조장을 차리려던 시기에 때마침 이 건물에 붙은 ‘임대문의’ 공지를 발견한 거죠. 당시 구청에서 근방의 오래된 창고 건물
을 매입하여 공공시설로 활용하는 상황이었는데, 이곳은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몇 안 남은 창고 중 하나였어요.”
칼리가리 브루어리는 곧 개최되는 지역 축제 '개항장 문화축제' 시기에 발맞춰 인천아트플랫폼과 협력하여 지역 주민과 재미나게 만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원래는 개항장 문화축제에 직접 참가하여 시민들에게 맥주를 선보이고자 하였으나, 주최측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이다. 축제에서 술을 판매한다는 발상이 아직까지 잘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거리에 위치한 업장만이 참여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참여가 어렵다. 박지훈 대표는 ‘축제를 통해 확장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이 한정되는 것 같다’며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최근 젊은 층 중심의 다양한 문화축제에서 맥주가 큰 역할을 하고있다. 칼리가리 브루어리의 맥주가 축제의 콘텐츠로 활용된다면 지역색과 맞물려 긍정적인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
칼리가리의 맥주
처음 생긴 브루어리의 첫 배치 치고는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이 박지훈 대표의 생각이다.
동인천 부근 신포동은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하다. ‘신포우리맥주’는 신포동에서 탄생한 프렌차이즈 분식집의 상호명을 패러디해 만든 맥주로, 적당히 쌉싸름하고 가볍게 마실 수 있는 페일 에일이다. ‘바나나 바이젠’은 상큼한 바나나향이 가미되어 바이젠 특유의 걸쭉하고 탁한 바나나 풍미를 가볍게 끌어올려주는 밀맥주며, ‘사브작 IPA’ 는 아주 탁하고 홉 향이 진한 IPA인데, 쓴맛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걸 스타우트’는 커피와 바닐라 풍미를 거쳐 시나몬 향으로 마무리되는 가벼운 스타우트로 스페셜 몰트를 적절히 배치하고 끓이는 단계에서 온도 조절을 하여 쓴맛을 줄이고 산미를 주었다. 그리고 ‘세종 드 히미코’는 레몬 껍질과 핑크 페퍼 등으로 상큼한 아로마를 주었으며 세종과 벨지안 윗의 경계에 있는 맥주다. 이외에 ‘슬립 워커 더블IPA’와 ‘개항장 임페리얼 스타우트’가 출시를 앞두고 있다고 한다
브루어리를 안내 받으면서 뜻밖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2층에 위치해 브루어리 전체를 전망하는 알록달록한 사무실이었다. 건너편 맥주 마시는 공간에서도 그 사무실은 훤히 보이는 구조라, 평소 그곳에서 사무업무를 보는 박지훈 대표는 손님에게 사진도 자주 찍힌다고 했다. 사무실 옆쪽으로는 홈브루잉을 하는 공간과 연구실 등이 마련되어 있고, 안쪽에는 취미로 하는 밴드 합주실까지 있다.
향후 계획
최근 소매점에서 크래프트 맥주의 유통이 가능해지면서 병입 맥주를 마트 등에 유통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마트에서 술을 사 마시지 않는 편이라, 처음에는 마트 유통을 고려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먼저 입점한 몇몇 양조장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반응이 좋은가 봐요.” 박지훈 대표는 크래프트 맥주에게 새로운 길이 개방되었고 시장 상황이 긍정적으로 흘러가고 있으므로 향후 마트 유통을 하며 경과를 지켜볼 계획이라고 했다.
또한 지금보다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1층 공간을 활용하여 발효조를 증설할 계획이다. 24kl에 그치는 지금의 발효조 용량을 최대로 늘린다면 70kl까지 가능하다. 법적으로 ‘소규모 양조장’에 허용되는 발효조의 용량은 5kl 이상 120kl 이하이다.
박지훈 대표는 현행 기준이 개선되어야 할 필요성을 언급했다. “120kl 정도의 용량을 갖춘 양조장을 ‘소규모 양조장'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3조에 달하는 전체 맥주 시장 규모 중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규모는겨우 200억에 그치는데, 그 정도 용량을 두고 ‘소규모 양조장'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잖아요. 지금처럼 적은 생산량으로 운영을 하면 전혀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에요. 그래서 저는 소규모 양조장을 기준 짓는 용량이 120kl보다 더 커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물론 크래프트 맥주 소비량도 함께 늘어나고 전체적인 시장의 규모도 더 커져야 하겠죠.” 맥주 애호가에게 있어 ‘여행’은 지역의 정취와 지역에서 만들어진 맥주 맛이 함께 뒤섞이며 공감각적 기억으로 남는 체험이다. 지역적 특색을 결정짓는 갖가지 이야기와 자연환경 그리고 지역사람들이 풍기는 인상은 여행에서 핵심적인 요소를차지하곤 한다. 거기에 지역에서 만든 맥주 맛까지 더해진다면 여행은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