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비어 소믈리에 이지희 씨를 만나다
취향에 안 맞는 맥주는 있어도 맛 없는 맥주는 없다
대한민국 1호 비어 소믈리에 이지희 씨를 만나다
한국인 최초 비어 소믈리에, 해외에서 활동하는 유일한 동양인 비어 소믈리에… 그녀가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에 최초, 유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이지희 비어 소믈리에의 얘기다.
시작은 단순했다. 2003년 독일 바이에른주로 이주해 처음 만난 다양한 맥주의 세계가 마냥 신기했다. “원래 술을 입에도 안 댔어 요. 제가 이런 직업을 갖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죠. 그런데 독일에 와서 가는 곳마다 다른 맛의 맥주가 있는 게 정말 재밌고 신기하더라구요.”
맥주가 맛있기도 했지만 맥주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더 큰 기쁨이었다. 독일어로 된 맥주 책들을 보면서 혼자 공부를 했다. 책을 보는 것만으로 성이 차지 않았다. 맥주의 나라 독일에서, 그것도 맥주의 성지 바이에른주에 사는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 집 근처 에 브루어리가 4개나 있고 동네에 맥주 박물관도 있었다. 브루어리에 찾아가 2개월 동안 일을 배웠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데 공부 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죠. 그래도 하나하나 알게 될 때마다 그 성취감이 엄청났어요.” 그러던 중 맥주 박물관장으로 있는 은퇴한 양조가에게서 비어 소믈리에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2014년 자격증을 취득 했다.
비어 소믈리에는 독일의 맥주교육기관 되멘스 아카데미(Doemens Academy)가 2004년 만든 말로 자격증인 동시에 직업이 다. 되멘스에서 테이스팅, 양조, 푸드페어링 등이 포함된 교육을 수료하고 시험에 통과하면 ‘디플롬 비어 소믈리에(DiplomBiersommelier)’를 취득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이후 디플롬 비어 소믈리에 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바로 비어 소 믈리에다. 맥주 테이스팅, 브루어리·펍 컨설팅 및 마케팅, 맥주 교육 등의 분야에 종사할 수 있고 맥주 대회 심사위원이 될 수도 있 다.
전세계적으로 3000명 가량, 한국에는 한국에는 약 100명의 비어 소믈리에 과정 졸업자가 있다. “제가 생각하는 비어 소믈리에는 보리 재배에서부터 브루잉까지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집약된 소중한 결과물을 갖고 고 객과 소통하는 직업입니다. 세상에 취향에 안 맞는 맥주는 있어도 맛 없는 맥주는 없죠. 맥주에서 장점을 찾는 게 비어 소 믈리에의 일입니다.”
독일에서는 그녀가 자격증을 따는 것 자체가 화제였다. 까만 머리의 동양인, 그것도 여성이 비어 소믈리에 시험을 본다는 것에 시선을 모였다. 시험 과정이 생방송으로 중계될 정도였다. 맥주 종주국에서 동양인 여자가 비어 소믈리에로 활동하 는 것을 백안시하는 시선도 있었다.
“맥주 세미나에서 어떤 독일인이 약간 비아냥거리면서 한국에도 맥주가 있냐고 묻더라구요.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 다. 내 나라의 맥주부터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한국 맥주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블로그도 열심히 했어요.
한국 맥주를 알아가다 보니 한국에도 맥주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때마침 대기업 맥주 이취 사태가 일어 났는데 어떤 전문가도 제대로 지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독일 되멘스 아카데미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한국어로 강의 를 해야 한다고 설득했다. “알고 마시는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으면 했어요. 맥주는 벌컥벌컥 마셔도 좋지만 즐 기는 방법을 알면 더 재미있게 마실 수 있잖아요.”
이런 과정을 거쳐 2015년 4월 되멘스 비어소믈리에 한국어과정 1기가 문을 열게 됐다. 현재 5기까지 배출됐다. 그녀는 여 전히 독일에 살면서 교육 과정이 열릴 때 한국에 와서 강의를 진행한다.
올해는 처음으로 그 동안 탄생한 한국인 디플롬 비어 소믈리에 중 대표를 선발해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월드 비어 소믈리 에 챔피언십에 도전한다.
“한국에 올 때마다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성장세에 놀라게 돼요. 맥주에 대해 열정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죠. 그 분들 의 열정을 더욱 불타오르게 만드는 게 저의 바람이에요.”
해외에서 활동하는 그녀에게 전 세계의 맥주 트렌드를 묻자 최근 전문가들이 ‘효모’를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호피한 맥 주에서 몰티한 맥주로 트렌드가 바뀌었다면 이제는 효모로 맛을 내는 맥주들이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맥주를 알고 난 후 이지희 비어 소믈리에의 인생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했다. “원래는 익숙한 것만 계속 하는 성격이었거든요. 먹던 것만 먹고, 하던 것만 했 는데 이제는 새로운 맥주를 보면 안 마셔보고는 못 배겨요. 예전에는 생선을 안 먹었는데 이제는 호기심 에 회까지 먹게 됐으니까요. 맥’주는 저에게 새 인생 이죠.”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