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방콕에서 맛보는 한국 크래프트 치맥- 창원 익스프레스
태국은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 따뜻한 기후 덕에 식자재와 음식의 천국이라고 불릴 만한 곳이다. 열대과일, 향신료, 해산물 등 다양한 식재료를 기반으로 한 요리들은 태국을 찾는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태국 요리는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잘 맞아 인기가 좋다. 그러나 타지의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 한들, 늘 먹던 익숙한 음식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타국에서 만나는 고향의 음식은 그 자체로도 특별하지만, 맛까지 훌륭하다면 금상첨화다. 이를테면 크래프트 맥주와 한국식 치킨을 만난다면 어떨까? 방콕의 도심에는 거짓말처럼 한국식 크래프트 치맥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다. 그 이름도 정겨운 ‘창원 익스프레스(Changwon Express)’다.
창원 익스프레스의 안태영(Ted Ahn) 대표는 6년 전 건설사 주재원으로 파견을 오게 되면서 태국에 자리를 잡았다. 회사원 신분으로 온 태국의 삶은 재미가 없었다. 발전소 영업을 맡고 있었는데, 프로젝트 금액이 많다 보니 스트레스도 많았다. 그러다가 ‘작은 가게를 하면서 살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태국이 좋았고, 그렇게 방콕에 자리를 잡았다. 주재원 생활을 그만둔 뒤 그는 방콕에서 한국 음식을 크래프트 맥주와 함께 팔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창원’과 미국식 중화요리 체인점 ‘판다 익스프레스(Panda Express)’의 ‘익스프레스’를 따서 창원 익스프레스라는 이름을 붙여 2015년 12월부터 영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한국식 게스트로펍으로 출발해 음식 위주로 콘셉트를 잡았다. 가게를 준비하던 당시 방콕은 한국 음식이나 문화를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일본 자본이 태국에 진출했기에 일본인 관광객을 위한 가게들이 많았으며, 그 가운데 한국식 게스트로펍을 표방하며 한국에서 맥주와 함께 즐겨 먹는 음식으로 메뉴를 구성하고 레시피도 직접 준비했다.
“가게 문을 열면서 주변 사람들과 손님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손님이 식자재를 공급받을 수 있는 슈퍼마켓을 연결해주기도 했어요.”
안태영 대표는 크래프트 맥주를 취급하게된 이유가 ‘사람’ 때문이라고 했다. “만나는 사람이 재밌잖아요. 만약 제가 싱하와 같은 대기업 맥주를 팔고 있었다면 우리도 만나지 못했을 거잖아요?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거예요.”
그는 미국에서 학교에 다니던 당시 뉴욕 브루클린 지역에서 지냈고,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매우 가까운 거리에 살았다. 자연스럽게 크래프트 맥주를 접하며 그 매력에 빠졌다. 처음 브루독과 이블 트윈 등 탭 2개로 시작한 창원 익스프레스는 이후 시간이 지나며 태국 홈브루잉 맥주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가게를 찾는 사람들의 반응이 좋아 홈브루잉 탭을 늘리다 보니,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태국 홈브루어들이 맥주를 마시러 오는 장소가 되었다.
“태국 홈브루잉 맥주들을 취급하면서부터, 태국에 사는 맥주 애호가들이 가게를 찾기 시작했어요. 당시만 해도 가게를 찾는 손님들의 90% 정도가 외국인이었지만, 지금은 90%가 태국 사람들이에요. 그때보다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커졌고, 한류의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일반 손님들이 많이 늘었어요.”
태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점유율은 전체 맥주 시장의 0.1% 수준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보다 맥주 시장의 절대적인 규모가 크다 보니, 같은 0.1%라고 해도 한국보다 시장이 크다. 태국 크래프트 맥주 시장은 초기 2~3년간 폭발적으로 증가하다가 현재는 성장의 정체를 겪고 있다. 크래프트맥주의 가격이 일반인들의 소득수준에 비해 매우 비싸다 보니, 고소득층과 외국인 위주의 소비에서 벗어나 일반 소비층까지 확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수입품에 대한 높은 관세율과 높은 주세, 그리고 대량생산을 할 수 없는 양조장에 주류 생산 허가를 내주지 않는 문제가 함께 존재한다. 태국 내에서는 일정 규모 이하의 시설에서 양조가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태국 내 맥주 양조장은 대기업이 운영하는 네 곳 밖에 없고,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들은 캄보디아 등 주변국에서 맥주를 생산한 뒤 수입을 거쳐 유통한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다. 또한 크래프트 맥주는 소셜미디어에 민감한 젊은층을 중심으로 소비된다.
“최근 태국에선 한류의 바람이 정말 강합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일본보다 한국을 더 좋아하는 분위기에요. 반면 맥주 애호가들은 평균 연령대도 높고, 일본 문화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많다 보니 한국 문화를 잘 모르는 부분도 있어요. 태국 손님들이 늘어난 데는 이런 이유도 있는 것 같아요. 가게를 찾는 태국인 20대 여성들이 한국의 막걸리와 소주를 찾고, 한국 맥주를 마셔요.”
안태영 대표는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에서 캔맥주를 생산해 태국에 유통하기도 했다. 태국의 4개 크래프트 맥주회사가 함께 만든 레시피로 한국의 핸드앤몰트에서 맥주를 생산한 것이다.
“당시 한국과 태국의 관세 협정이 체결되어있지 않아, 관세가 매우 비싸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캔 맥주를 유통하고 싶었는데 그때는 아시아에서 캔맥주를 공급해줄 수 있는 곳이 핸드앤몰트 밖에 없어 그곳에서 맥주를 만들었어요. 첫 맥주를 20피트 컨테이너를 가득 채워서 가져왔는데, 3주 만에 모두 판매가 될 정도로 인기가 좋았어요.”
캔맥주를 유통하며 태국 맥주 시장에 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세 차례에 걸친 맥주 수입 및 유통 과정에서 태국 맥주시장의 급속한 성장 속도, 맥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 등을 직접 체험했다. 태국 시장에 진출하고 싶은 한국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주의해야 할 점을 그에게 물었다.
“날씨가 덥다 보니 맥주가 변질될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특히 방콕에서 벗어나 치앙마이나 푸켓 같은 곳까지 맥주가 유통된다면, 완벽한 콜드체인이 보장된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필터링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고, 저온살균도 고려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콕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맥주를 매개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그의 모습이 즐겁고 여유로워 보였다. 안태영 대표는 자신에게 맥주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매개체’라고 말했다.
“어떤 술을 마시느냐에 따라 만나는 사람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크래프트맥주 업계 사람들은 여유가 있고 밝아요. 그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크래프트 맥주가 좋아요.”
그는 지금 운영하는 가게의 규모를 늘려가며 한국 치킨과 크래프트 맥주를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한다. 첫 번째로 올해 안에 작은 가게를 하나 늘릴 계획이다. 창원 익스프레스의 치맥이 태국에서 또 다른 한류가 되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