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맛과 품질의 일관성을 높여주는 맥주 연구실, 카브루 맥주 연구원 윤제현 인터뷰
일반적으로 작은 규모의 맥주 양조장에서 연구실의 존재는 핵심적인 요인이기보다는 부가적인 요인으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맥주를 만드는 과정은 일종의 화학작용이기 때문에, 관찰과 실험은 가장 기본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국내에서 자체 연구실을 갖춘 소규모 맥주 양조장은 카브루가 거의 유일하다. 그렇다면 맥주 회사에는 연구실이 왜 필요하며, 맥주 연구원은 실제로 어떤 업무를 할까?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카브루의 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윤제현 씨를 만나 맥주 연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미경 하나로 시작된 연구실
윤제현 씨는 식음료에 적용되는 화학과 미생물학을 모두 공부했다. 술 마시는 걸 좋아했던 그는 원래 막걸리를 공부하다가 교수님의 추천으로 카브루에 합류하게 되었다. 연구실이 생긴 지 얼마 안 된 초기에는 효모의 건강 상태 확인 및 관리하는 비교적 간단한 일만 했다. 당시 윤제현 씨는 현장에 투입되어 실제 양조 업무에 참여했는데, 현장직 사람들과 함께 양조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한 경험이 지금의 연구직 업무에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양조 과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처음에 왔을 땐 현미경 하나 달랑 있었거든요. 아침에 와서 현미경으로 효모만 확인하고 나머지 일은 현장직과 똑같이 했어요. 맥주를 케깅하고, 이송하고, 양조하는 일을 같이 한 거죠. 그렇게 2년을 보낸 후 재작년에 연구실이 만들어지고 나서 지금의 '연구개발팀’으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일을 같이하며 배웠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말도 잘 통하고, 오히려 지금 일하는 것이 더 수월하다고 말했다.
카브루 연구실의 일과
연구실에서는 주로 효모의 상태를 확인하고, 양조 과정에서 문제는 없는지 측정하는 일을 한다. 효모의 상태 확인은 주로 사멸균의 비율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사멸균이 많으면 맥주의 풍미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발효 속도도 늦어지기 때문에 좋지 않다. 회사마다 기준이 다르지만, 카브루에서는 샤멸균의 비율이 10-20% 이상이면 충분히 건강하지 않다고 판단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효모는 특히 온도에 예민하기 때문에 항상 냉장 상태로 배송되어야 하는데, 그런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거나 햇빛에 노출되는경 우 사멸균이 생긴다.
양조의 과정이 의도한 대로 진행되는지 확인하는 작업 역시 구체적인 수치로 증명된다. 우선 맥아에서 맥즙을 뽑아내는 ‘당화’를 하는 동안 pH를 확인한다. pH 수치가 너무 높거나 낮으면 당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맥즙을 끓이는 과정에서는 당도를 측정하여 알코올 수치와 발효 후 맛을 예측한다. 그리고 효모를 접종하기 전에는 끓인 맥즙의 샘플을 가져와 원심분리기로 불순물을 분리한 다음 당도와 ph를 측정하고, 발효가 끝난 후에는 알코올 수치를 측정한다.
앞으로는 장비를 몇 가지 더 갖추어 맥주 품질의 일관성을 더욱 높이기 위한 실험을 해나갈 계획이다. 예를 들면 환원당, 즉 효모가 먹을 수 있는 당이 발효 후에 남아있는지 알아봄으로써 케깅(Kegging) 이후 효모가 추가 발효를 일으키지 않도록 제어할 것이다. 또한 맥주의 쓴맛을 나타내는 IBU와 색상을 나타내는 SRM도 정확한 수치로 측정할 것이다. “어떤 맥주는 마셨을 때 적혀 있는 IBU에 비해 쓴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도 하잖아요. 정확한 실험이 이루어지지 않고 이론으로 추측해서 나온 결과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양조사의 맥주 개발과 다른 점
양조사도 신제품 개발을 하고, 연구원도 신제품 개발을 한다. 윤제현 씨의 설명에 따르면 양조사의 경우 맥주의 스타일에 초점을 맞춰 맥주 개발을 하는 데 비해, 그는 주로 연구실 유지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하는 방향으로 맥주를 개발한다. 주로 가평군에서 지원을 받아 가평 농가에서 생산된 특산물을 재료로 활용하는 맥주를 개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올해에는 가평 쌀을 이용한 맥주를 만들어 출시한 바 있으며, 하반기에는 가평에서 난 포도즙으로 보랏빛이 나는 대중적인 사워 맥주를 개발할 계획이다. 지역에 도움이 되는 맥주를 만듦으로써 정부의 지원을 받고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다.
양조사와의 협업도 수시로 이루어진다. 양조사가 맥주 개발을 하면서 구체적인 수치로 확인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 있으면 적극 적으로 도와준다. 윤제현 씨 역시 맥주를 어떻게 만드는 것이 좋을지 양조사에게 조언을 구하곤 하며, 함께 상의해서 당화 온도를 정하는 등 양조 레시피의 세세한 부분에도 관여한다. 그는 지금도 일손이 부족할 때 현장에 가서 일을 도와주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현장직 사람들과도 사이가 좋다는 이야기를 했다.
맥주 양조장에 연구 부서가 필요한 이유
윤제현 씨는 연구실이 생긴 이후 양조사들이 맥주를 만드는 모습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정확한 측정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소한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 더욱 철저하게 양조하게 되었다. 결과값을 산출해 양조사들에게 보여줌으로써 맥주가 객관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예전에 발효가 안 된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때마다 원인이나 정확한 수치를 몰라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이제는 효모 상태를 항상 확인하니까 발효가 안 될 수가 없죠.”
그는 맥주에 관심이 있다면 맥주를 직접 만드는 양조사가 되는 것도 좋지만, 품질 연구를 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라는 뜻을 전했다. 또한 아직 연구실이 없는 다른 양조장에서도 맥주 품질을 생각한다면 연구실을 만들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연구실을 만든다고 해서 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진 않아요. 나중에 정부에 신청하면 연구 설비 등의 지원도 나오기 때문에, 생각보다 큰 투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또한 다른 식품회사와는 달리 수제맥주 회사에는 일반적으로 연구실이 없기 때문에, 연구원으로 일하려면 스스로 처음부터 연구실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식품회사의 경우는 이미 연구 장비가 다 마련되어 있는 상태에서 신입으로 들어가 배우면 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배우기보다는 직접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도전하려는 자세가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