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맥주? 없어도 돼!" 불매운동 직격탄맞은 일본맥주
맥주가 일본 제품 불매 운동의 핵심 품목으로 떠올랐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초부터 한국 사법부의 강제노역 배상 판결에 반발해 경제 보복을 진행했다. 이에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 일본산 제품에 대한 반감이 생기면서 불매 운동이 불붙기 시작했고 여러 제품 중에서도 아사히, 기린, 삿포로 등 일본 대기업 맥주에 대한 불매 운동이 크게 두각을 드러냈다. 소비자들의 즉각적인 대응에 따라 일본 맥주를 들여놓지 않거나 할인 제품에서 제외하는 식당, 마트, 편의점 등이 줄을 이었다. 불매 운동이 시작된 지 한 달 만에 일본 맥주 수입액은 30% 이상 눈에 띄게 감소했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고 다양한 대체재가 있는 맥주가 효과적인 불매 운동의 대상이 된 것이다
10년간 연간 수입액 1위를 지켰던 일본 맥주
그동안 일본산 식품의 안전성에 대한 논란과 불신이 많았다. 하지만 유독 일본 맥주만은 국내 시장에서 환영을 받았다. 일본 맥주는 2009년 이후 지난해까지 10년간 연간 맥주 수입액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해왔다. 일본 전체 맥주 수출량의 60% 이상이 한국에 집중될 정도였다. 아사히 맥주는 지난해 칭다오 맥주가 1위로 치고 올라오기 전까지 오랜 기간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 맥주였다.
아사히, 기린, 삿포로, 산토리 등 일본 맥주는 국내 대기업 맥주보다 풍미가 깊은 프리미엄 맥주라고 소비자들에게 인식됐다. 일본 맥주회사들이 내놓은 시즌 한정 제품 역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일본 맥주는 편의점, 마트 등 소매점에서 500㎖ 4캔을 1만 원에 판매하는 할인 마케팅의 대표 상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안정적인 매출을 올렸다. 일본 현지 편의점에서 팔리는 가격과 비교해 비슷하거나 오히려 낮은 가격을 책정한 공격적인 마케팅이었다. 올해 6월까지만 해도 일본 맥주 수입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가량 성장했다.
불매 운동으로 일본 맥주 수입액 35% 감소
7월 들어 이런 일본 맥주의 성장 곡선이 꺾였다.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에 대해 소비자들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7월 일본 맥주 수입액은 434만2000달러로 2018년 7월 663만9000달러와 비교해 34.6% 줄었다. 전달인 6월(790만4000달러)에 비해서도 45.1%나 급감했다. 일본 맥주 수입이 줄면서 7월 전체 맥주 수입액도 전년 대비 1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맥주를 판매하지 않는 업장이 늘었다. 또 편의점 4캔 1만원 판촉에서 일본 맥주가 빠진 것도 판매 감소에 영향을 미친것으로 보인다. 편의점에서 일본 맥주 판매는 전년 동기 대비
80~90% 가파르게 줄었다.
일본 맥주 빈 자리는 벨기에ᆞ미국 맥주가 채워
일본 맥주가 불매 운동 대상이 되면서 빈자리는 다른 국가에서 수입된 맥주와 국산 대기업 맥주가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액 1위를 고수하던 일본 맥주는 3위로 고꾸라졌다. 일본 맥주가 내준 국가별 맥주 수입액 1위 자리는 벨기에 맥주가 차지했다. 7월 벨기에에서는 456만3000달러 상당의 맥주가 수입됐다. 6월(305만2000달러)보다 49.5% 증가한 수치다. 두 번째로 많이 수입된 맥주는 미국 맥주였다. 미국 맥주 7월 수입액은 444만 3000달러로, 전달(227만 달러)에 비해 95.7% 크게 증가했다.
수입 맥주 4위는 310만 달러 어치가 수입된 네덜란드 맥주가 차지했다. 5위는 중국 맥주였다.
이는 소비자들이 일본 맥주 대신 스텔라, 호가든, 버드와이저, 하이네켄 등 비일본 수입 맥주들을 선택한 결과로 분석된다. 이 기간 시중에서는 비일본 수입 맥주들의 가격 프로모션이 활발하게 진행됐다. GS25 편의점에서는 스텔라, 버드와이저 등 500㎖ 5캔을 1만1000원에 상시 판매하고 있다. 대형 유통 할인점 코스트코에서는 스텔라 8캔을 1만1490원에 판매하기도 했다.
카스ᆞ테라 국내 대기업 맥주도 주목 받아
일본 맥주 대신 국산 대기업 맥주를 고른 소비자들도 크게 늘었다. 하이트진로 관계자는 “기존에 신제품 테라가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 일본 맥주 불매 운동으로 인한 영향이라고만 단정 짓기는 어렵다.”라면서도 “판매가 확실하게 상승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오비맥주 역시 판매량이 늘어났다. 오비맥주는 3월 올렸던 카스맥주 출고가를 다시 내리기도 했다. 특히 편의점의 4캔 1만 원 프로모션 제품에 카스, 클라우드 등이 포함되면서 국산 대기업 맥주에 소비자들의 지갑이 열린 것으로 파악된다. CU 편의점에서는 8월 들어 국산 맥주 판매가 전달대비 38% 증가했다. CU 관계자는 “과거 국산 맥주를 이벤트성으로 4캔 1만원에 판매한 적은 있지만, 상시 할인 판매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설명했다.
반면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는 일본 맥주 불매 운동으로 인한 실질적인 영향이 없는 상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크래프트 맥주는 가격대가 다르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일본 대기업 맥주의 대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 국산으로는 플래티넘의 ‘퇴근길’, 카브루의 ‘경복궁’ 등이, 수입으로는 로스트코스트, 코나브루잉 등의 제품이 편의점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지만 일본 맥주의 공백으로 인한 수혜는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 맥주 불매, 언제까지
일본 맥주 불매 운동은 계속 확산하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일본 대형 맥주들이 사들인 맥주 브랜드까지 불매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일본 아사히 맥주는 2016년 체코의 필스너 우르켈을 인수하는 등 전 세계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코젤, 감브리너스, 그롤쉬, 페로니 등도 아사히 소속이다.
시장에서는 한일 관계가 개선되더라도 당분간은 소비자들이 다시 일본 맥주를 집어 들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국가에서 수입된 맥주들이 일본 맥주를 충분히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즐길만한 다른 맥주들이 많은 만큼, 일본 맥주로 돌아갈 이유는 없을 것 같다.”라며 “장기적으로는 맥주 시장이 다양화되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