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맥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먹고 사는 문제는 대개의 사람들에게 인생 최대의 난제인데, 여기에 ‘맥주’라는 변수가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렇다면 문제의 난이도는 낮아지기 보다는 높아진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지난 몇 년 동안 맥주 언저리에서 지내온 사람으로서, 업계와 소비자의 중간 어디쯤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부디 맥주로 먹고 사는 문제에 희미한 빛이라도 비출 수 있길 소망한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나의 ‘맥주 생업 도전기’에 대해 간략히 말해보고자 한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나와 맥주 사이에는 취미 혹은 취향 이외의 연결고리는 전혀 없었다. 90년대 후반 잠시 외국 생활을 하며 접했던 사무엘 아담스Samuel Adams가 (몰래) 심어 놓은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기 전이었다. “네가 지금껏 마신 맥주가 올림픽 규격 수영장 두 개 쯤은 되겠다”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흔들려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전공을 살려 대학 시절부터 번역을 업으로 삼고 있었고, 원래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 저것 이야기하기를 좋아했던 터라 글과 말을 책으로 엮는 것은 비교적 수월한 일이었다. 다만 책의 완성도는 별개의 문제임은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변변치 않지만 내 이름으로 책도 한 권 출간했으니, 호랑이 까지는 아니어도 고라니 가죽 정도는 남기고 가겠구나 생각했다. 그 이상을 생각할 이유도, 또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인생의 향방은 참으로 오묘했다. 베스트셀러 목록의 냄새조차 맡지 못 했던 내 책을 읽고 맥주에 관한 원고와 강연을 부탁하는 연락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글을 써달라 하시니 글을 썼고, 이야기를 해달라 하시니 이야기를 했다. 부족한 실력이나마 애써 활용하다 보니 처음 보다는 다소 나아지게 되었다. 적어도 의뢰인이 본전 생각은 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려 노력했다.
시시한 이야기를 이렇게 장황하게 풀어놓은 것은 평범함 속에서도 비범항을 찾아낼 수 있는 독자들이 계시리라 믿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지금 맥주만으로 먹고 살고 있다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맥주를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것 또한 분명해 보인다. 지난 3년간 맥주에 대해 궁금해하는 독자의 숫자가 증가했고, 맥주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수강생의 규모가 커졌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맥주를 마시고 싶어하는 소비자와 맥주를 구입 하고 싶은 고객의 숫자 역시 증가했을 것이다. 맥주를 통해 먹고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최소한 한뼘 정도는 커지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어떤 분야가 됐든 현재 맥주 업계에 뛰어들고자 준비하고 있는 분들에게 나의 경험과 시행착오가 과연 도움이 될 지 많은 고민을 했다. 자랑과 우쭐거림 보다는 민망함과 쑥스러움을 마음 가득 채우고 몇 가지만 말해보고자 한다.
우선 맥주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무엇 보다 중요하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해서 간과하기 쉬운 부분이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설득하고 판매하는 일은 무척 어렵다. 막연히 “나는 맥주가 참 좋아!”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맥주의 어떤 측면이 특히 매력적이고 호소력을 갖는지 깊이 있게 고찰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신을 선명하고 구체적으로 설득할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맥주의 세계로 유혹하는 일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나의 설명과 열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의 말처럼 “계획 자체는 쓸모 없을 지 몰라도 계획을 세우는 일은 필수적이기 마련이다. (Plans are useless, but planning is indispensable.)” 설령 내가 상대방의 귀를 세차게 흔들 수 없을지라도, 나만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준비하는 것은 의미 있는 과정이 될 것이다.
두번째, 눈으로 마시는 맥주에 주목해야 한다. 맥주 강의를 하다 보면 시음이나 설명과 더불어 사진이나 그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게 된다. 구구절절한 이야기 보다 업체의 로고, 맥주의 레이블, 또는 브루어리 전경을 담은 사진 한 장이 맥주에 대한 이해와 감흥을 한층 높여주기 때문이다. MP3나 음원 중심으로 음악 시장이 재편되기 전에는 레코드 가게에 들러 음반을 구매하곤 했다. 청음 시설이나 사전 정보가 없을 때, 음반을 고르는 최우선 조건은 결국 앨범 커버였다. 사진 한 장, 그림 한 컷으로 그 안에 들어있는 음악의 지향점과 특징을 간파하는 매의 눈은 지갑이 얇은 학생들에겐 필수 덕목이었다. 맥주도 마찬가지이다. 뉴 벨지움(New Belgium)의 흥미로운 창업 과정과 직원 중심 경영 등에 대한 설명은 많은 사람들의 귀를 쫑긋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아기자기한 빨간색 자전거가 늘어서 있는 양조장 전경과 수채화 작가 앤 피치Anne Fitch가 그린 팻 타이어Fat Tire 레이블은 단박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관 청소나 온도 관리와 더불어 고객들의 ‘안구 관리’ 역시 중요한 덕목이 되리라 믿는다. 끝으로 우쭐거리지 않는 겸손한 태도를 미덕으로 꼽고 싶다. 이는 어쩌면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경계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나처럼 대수롭지 않은 역량으로 작가나 선생님 같은 호칭을 계속 듣다 보면,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듯 착각하며 깝죽거리게 된다. “내가 맥주를 마신 세월이 얼마인데!” 라든지 “이 정도 맥주는 마셔줘야 맥주 좀 안다고 할 수 있지!” 같은 불온한 태도가 마음 속에서 검은 연기처럼 피어오르게 된다.
얼마전 맥주 수업에서 벨칭 비버(Belching Beaver)의 팬텀 브라이드(Phantom Bride)를 소개한 적이 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 얼마나 맛있는 맥주인지 설명했지만, 막상 수강생들의 반응은 다소 뜨뜻미지근했다. 바로 이 때 내 안의 작은 악마가 속삭였다, “다들 아직 이 수준은 아닌가봐?” 라고. 번쩍 정신이 들었다. 사람들마다 경험의 폭과 지식의 넓이가 다를 수는 있지만, 취향과 감각에는 높낮이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맥주 업계에 몸담고 계신 분들이나 소위 ‘맥주 매니아’들을 만나보면, 이른바 ‘일반인’들을 얕잡아 보거나 우매한 대중으로 매도하는 태도를 간혹 목격하게 된다. 겸손하자! 저 유명한 레이 다니엘스(Ray Daniels) 조차도 우유 대신 맥주 마시며 자랐다는 기록은 그 어디에도 없다.
맥주로 먹고 사는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약속해 놓고, 양조, 취업, 창업, 세무, 그리고 위생 등에 대한 정보는 털끝 만큼도 제공하지 못 했다. 죄송하다. 하지만 맥주 주변부에서 보고, 듣고, 느낀 나의 경험이 소수의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어느날 시가 나를 찾아왔다”고 했다. 나는 “어느날 맥주가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이제 내가 맥주를 찾아간다”고 쓰고 싶다.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쓰고 싶다. 물론 맥주로 잘 먹고 잘 살면서 말이다.
EDITOR_안호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