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 소주 배럴 에이징 맥주를 탄생시킨 ‘고릴라’와 ‘화요’
‘소맥’은 외국인들에게도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로 인식될 만큼 우리나라 음주문화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우리의 문화로 자신 있게 꼽기엔, 그저 취하기 위해 싼 술 두 종류를 섞는다는 것이 어딘가 모양 빠지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한 소주 회사와 맥주 회사가 손을 잡아 제대로 맛있고 멋들어진 ‘소맥’을 만들어냈다. 감압증류방식 등 다양하고 현대적인 방식으로 소주를 만들어내는 회사 ‘화요’와, 다양한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어내는 부산의 ‘고릴라 브루잉 컴퍼니’가 그 주인공이다.
크래프트 맥주의 가장 큰 문화적 특징 중 하나는 언제나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크래프트 맥주를 우리나라 전통주와 접목시키기 위한 노력은 이전부터도 간혹 있었다. 누룩에서 채취한 균을 이용한 와일드웨이브 브루잉의 베를리너 바이세가 대표적이다. 소주와 맥주의 접목 역시 크래프트 맥주 씬의 많은 이들이 관심을 두던 분야였으나, 이러한 상상을 현실화시킨 첫 주인공은 ‘고릴라 브루잉 컴퍼니’가 됐다.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보고자 했던 고릴라 브루잉 컴퍼니의 창립자이자 헤드 브루어 폴 에드워드는 그간 맥주의 배럴 에이징에 많이 쓰이던 위스키 배럴이나 와인 배럴 이외에 다른 특별한 배럴을 이용하여 맥주를 만들고자 했다. 평소 소맥을 좋아하던 그는 배럴에 묵힌 소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곤 화요의 대표를 찾아갔다. 그리고 화요를 숙성했던 배럴에 맥주를 배럴 에이징 할 계획을 설명해주었다. 화요 측은 흔쾌히 승낙했고, 2017년 12월에 ‘화요 X.Premium’을 숙성했던 배럴을 고릴라 브루잉에 넘겨주게 된다.
이후 고릴라 브루잉 양조팀은 본래 생산해오던 알코올 도수 11%짜리 임페리얼 스타우트인 ‘킹콩’을 해당 배럴에 숙성했고, 1년간의 숙성 끝에 1월 26일 출시를 앞두고 있다.
역사상 첫 ‘소주 배럴 에이징 맥주’가 될 스타일로 왜 하필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그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라는 단순명쾌한 대답을 남겼다. 그러면서 맥주를 양조함에 있어 그가 중요시하는 것 중 하나인 음용성(Drinkability)을 좋게 만드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고 했다.
기자는 폴 에드워드를 만나 인터뷰를 하면서 아직 이름도 정해지지 않은 이 맥주를 미리 맛볼 수 있었다. ‘화요 X.Premium’은 미국식 위스키인 버번을 숙성했던 배럴에 ‘화요 41’을 넣어 5년 이상 숙성시킨 소주이다. 그래서인지 이 맥주도 향에선 소주보다 버번 배럴 특유의 바닐라 향과 나무 향이 주로 느껴졌다. 물론 입에 넣었을 땐 소주의 뜨겁고 향긋한(?) 느낌이 입안을 감싸고 돌았다. 그런데도 생각보단 마시기 편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신기한 맥주였다.
고릴라 브루잉 컴퍼니는 이 맥주를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출시할 계획이다. 가까운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뿐만 아니라 크래프트 맥주의 성지인 미국, 고릴라 브루잉 창립자들의 모국인 영국에까지 말이다. 국내에서의 인기도 충분할 텐데 해외 출시까지 계획 중인 이유를 묻자, 폴 에드워드는 사뭇 진지한 답을 해주었다.
“한국의 문화는 현재 마치 파도처럼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유명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적인 것을 경험하길 원한다. 우리가 그들에게 독특한 한국적인 경험을 제공해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가능한 한 많은 나라에 이 맥주를 수출하고 싶다.”
고릴라 브루잉 컴퍼니가 선보일 이번 맥주는 한국 크래프트 맥주의 역사에 있어서도 의미 있는 일로 기억될 것이다. 또한 세계에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심어줄 맥주가 될지도 모른다. 진정한 ‘소맥’을 선보여준 이들의 실험 정신과 크래프트 정신에 박수를 보내며, 다가올 1월 26일을 기대해본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