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 송정역 시장 ‘밀밭양조장’ 이한샘 대표 인터뷰
100년 역사 전통시장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문화를 맛보다
‘1913송정역시장’은 광주광역시와 현대차그룹이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재탄생시킨 전통시장이다. 1913년 ‘매일 송전 역전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돼 1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갖고 있는 이 곳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고, 재작년까지만 해도 몇 안 되는 가게들만 겨우 남아있던 낙후된 골목이었다. 그랬던 이 곳이 2016년 봄, 기존 상인들과 청년창업자들이 함께 50여 개의 점포를 재 오픈하며 전에 없는 핫 플레이스로 다시 태어났다. 그리고 크래프트 맥주 전문 펍이 문을 열었다.
1913송정역시장은 국밥집, 정육점, 어물전, 방앗간과 같은 기존 터줏대감 가게들과 SNS 등에서 화제가 된 빵, 디저트, 소프트 음료 등을 판매하는 청년들의 트렌디하고 감각적인 가게들이 함께 어우러져 푸근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동시에 준다. 이 색다른 시장 한가운데 위치한 밀밭양조장은 누가 뭐래도 1913송정역 시장의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광주 지역에 전파하기 위해 ‘열일’ 중인 청년창업자 이한샘 대표는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6년여 동안 광주의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창업자다. 카페, 디저트 매장부터 지역 축제와 파티 플레이스 기획까지 여러 성공과 실패의 경험이 있는 이한샘 대표는 밀밭양조장을 통해 새롭게 도약할 꿈을 꾸고 있다.
Q 밀밭양조장의 대박을 축하 드린다.
A 아직 대박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잘 될것 같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잘 되고 있긴 하다.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손님들이 많이 오는 편이고 꾸준하게 오는 편이다.
Q 어떤 계기로 밀밭양조장을 오픈하게 되었나?
A 몇 년 전에 서울 이태원에 점심을 먹으러 한 식당에 갔었다.
그때 한 외국인이 혼자 선글라스를 쓰고 들어와서 맥주 한잔을 시켜서 마시더라. 그 때 광주 지역에는 없었던 이태원이나 경리단길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낮 시간에 자유롭게 즐기는 문화를 직접 목격하게 된 것인데 거기서 매력을 많이 느꼈던 것 같다. 그 문화를 광주 지역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 싶었다.
Q 생각했던 대로 광주지역 사람들에게 크래프트 맥주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가?
A 아직도 광주전남 지역에서 크래프트 맥주는 낯선 존재다. 크래프트 맥주의 맛 자체가 생소할뿐더러 취하기 위해서가 아닌 즐기기 위해서 맥주를 마신다는 것 또한 낯선 문화다. 그런 중에 밀밭양조장은 크래프트 맥주의 정수를 맛보게 하는 역할보다는 즐기는 문화 자체를 사람들에게 체험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1913송정역시장이 관광지인 이유도 있겠지만 음주를 목적으로 오기보다는 대부분의 손님들이 샘플러를 주문하거나, 테이크 아웃을 해서 시장을 돌아보면서 맥주를 즐긴다.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많은 이유도 색다른 문화를 체험하기 위한 장소로 여겨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손님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SNS을 돌아보면 밀밭양조장에서의 낮맥을 가장 신선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Q 밀맥주를 시그니처로 내세운 이유도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전략인가?
A 그렇다. 사실 크래프트 맥주 문화에 매력을 느끼긴 했지만 나조차도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크래프트 맥주에 대해 좀 더 공부하려고 고창에서 맥주 양조에 대해서도 배우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각지의 펍에서 맥주 맛을 익혀갔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데도 하루에 4차, 5차씩 맥주를 마시며 크래프트 맥주에 대해 이해하려고 했는데, 당시에도 굉장히 다양하고 강렬한 맥주 종류들 중에 대중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러던 중 홉향이나 알코올 도수가 강하지 않지만 향긋하고 달달한 바이젠 스타일이 아직 크래프트 맥주에 대해 잘 모르는 대중들에게 다가가기엔 가장 좋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밀맥주를 중심으로 알코올 도수가 강한 맥주보다는 부담 없이 마실 수 있지만 색다른 향과 맛을 즐길 수 있게끔 라인업을 구상했다. 맥주는 모두 고창드림카운티(GDC) 브루어리에서 만들어진다.
Q 매장 공간도 매우 특이해 보인다.
A 사람들에게 특별하고 새로운 느낌을 선사하는 공간을 기획하는 것에 열정이 있다. 이전에는 매장을 할 때 자금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테리어 공사도 직접 하곤 했는데, 그때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밀밭양조장은 1920년대 미국의 금주법 시대의 컨셉을 가지고 있다. 금주법 시대에 어둡고 숨겨진 공간에서 밀주를 파는 ‘스피키지(Speakeasy) 바’의 이미지가 흥미로워서 매장 컨셉으로 가져왔다. 마침 이 건물이 송정 매일 시장 시절에는 새마을금고였는데, 내부 인테리어를 하면서 옛 공간의 느낌을 최대한 살려서 어둡고 조용한 느낌을 구현해내려고 노력했다.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매장 스텝들도 1920년대 미국 노동자들의 의상 컨셉으로 일하고 있다.
Q 추천하는 메뉴는?
A 메뉴 중 ‘치킨 팬케이크’는 1920년대 미국 컨셉의 아이디어로 개발한 메뉴다. 1920년대 미국의 노동자들은 와플 위에 튀긴 치킨을 얹어 먹거나, 샌드위치처럼 사이에 끼워 먹는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그래서 부드럽게 구운 팬케이크 위에 튀긴 닭다리살을 얹고 치즈와 파슬리가루, 시럽 등으로 마무리해 케이준이나 믹스 베리 소스에 찍어 먹는 메뉴를 개발해봤다. 그외에 ‘피시 앤 칩스’도 안주로 내고 있는데 손님으로 온 외국인이 자기 나라에서 파는 것보다 맛있다고 칭찬해서 매우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맥주는 밀맥주가 시그니처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둔켈을 좋아한다. 홉의 쓴 맛을 별로 즐기지 못하는데 가볍게 즐길 수 있지만 묵직하고 향긋한 몰트 향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가까운 시일 내로는 아니지만 IPA처럼 조금 더 알코올과 맛이 강한 맥주를 추가해보려 한다. 처음과는 다르게 크래프트 맥주 맛을 즐기러 방문하는 손님들도 늘어나고 있는데다 가벼운 맥주 위주로 구성되다 보니 라인업에 있는 스트롱 에일도 시중의 IPA 등과 비교했을 때는 다소 부드러워 음주를 좋아하는 손님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맥주가 필요하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밀밭양조장 외에도 새로운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색다른 공간을 많이 기획하고 만들어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Q 이한샘 대표에게 맥주란?
A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 ‘맥주’다. 그만큼 맥주에 대한 애정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밀밭양조장을 통해서 이전보다
많은 기회를 얻고 발전할 수 있었듯이, 앞으로도 맥주를 통해 스스로도 발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일을 만들어가고 싶다.
광주지역에서 수제맥주 매장을 낸다는 것이 창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모험이라고 얘기하면서도, 기꺼이 그 모험을 헤쳐가고 있는 이한샘 대표의 순수한 열정이 인터뷰를 하는 내내 돋보였다.
그의 열정과 새로운 시도가 앞으로 다양한 형태와 깊이를 가진 크래프트 맥주 펍들이 광주전남 지역에 들어서기 위한 경쾌한 첫걸음 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DITOR_이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