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하는 어린 사무엘 by 조슈아 레이놀즈 X 시메이 골드, 시메이 브루어리
새해가 왔다. 노트를 펴고서 올해는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연필로 차근차근 눌러 소망을 써본다. 몇 가지 써내려다가 보니, 작년과 같은 소망들이 눈에 걸린다. 이렇게 바로 생각날 중요한 일이었는 데 왜 지키질 못했는지, 기도라도 하면서 하루하루 새기면 올해는 이뤄낼 수 있을까?
그림 제목이나 화가의 이름만 보면 갸우뚱할 수도 있지만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 그림을 직접 보면 ‘아! 이 그림!’하고 기억할 사람들이 많을 듯 하다. 마음 속에 소망을 가득 담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작은 아이.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올해 이루고 싶은 일들을 되새긴다면 어떤 일이든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가끔 막막하다면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수행을 하며 만들고 마셨던 향긋한 트라피스트 에일을 한 모금 들이켜보자.
영국의 화가인 조슈아 레이놀즈는 18세기 초상화로 유명세를 떨쳤다. 런던에서 그림을 배우고 이탈리아에서 대가들의 스타일을 연구했던 그는 영국 미술계에 새로운 초상화 기법을 확립했다. 당대 유명인사들의 초상화를 자신만의 화풍으로 그려냈던 그는 큰인정을 받아 기사 작위를 받고 궁정 화가가 되는 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심지어 그의 장례식은 런던 세인트폴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치러진다. 살아있을 때 가난에 시달리며 갖은 고난을 겪고 작품 몇 점을 남긴 몇몇 유명한 화가들과는 사뭇 다르다.
조슈아 레이놀즈가 남긴 다양한 초상화 이외에 사람들의 눈에 익숙한 그림은 단연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일 것이다. 어두운 방에서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응시하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어린 소년의 모습. 재미있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이 아이가 성경에 나오는 사무엘인지, 심지어는 소년인지 소녀인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사실 이 작품은 누군가가 조슈아 레이놀즈의 그림을 ‘소녀의기도’라는 제목으로 옮겨 그린 후 달력이나 교회에서 자주 사용된 그림이다. 시쳇말로 ‘이발소 그림’으로 여기저기 보이던 그림이라 구도와 주제는 익숙하면서도 화가나 작품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머리가 긴 어린 사무엘의 모습을 소녀로 착각했고 ‘기도하는 소녀’가 더 감성적으로 다가오기에 그런 제목을 붙였으리라.
성경 속의 사무엘은 유대의 예언자로 어머니는 한나이다. 아기가 없어서 괴로워하던 한나는 여호와에게 아들을 주시면 그를 여호와께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사무엘을 임신하게 된다. 태어나 젖을뗀 후 바로 대제사장 엘리에게 맡겨진 어린 사무엘은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하나하나 신의 뜻을 행하며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된다. 이 어린 사무엘이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고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 바로 조슈아 레이놀즈의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이다.
이 그림과 가장 잘 어울리는 맥주를 꼽자면 단연코 수도원에서 생산되는 트라피스트 에일일 것이다. 트라피스트 에일은 수도사들이 수도원에서 직접 빚는 맥주를 말한다. 몇 세기 전부터 수도사들은 수도원 방문객을 위해서, 혹은 자신들이 직접 소비하기 위해서 에일을 만들어 왔다. 단식을 해야 하는 기간 다른 음식은 먹지 못하기 때문에 ‘액체 빵’이라고도 불리는 맥주를 만들어 마시기 시작 했다는 설도 있고, 수도원의 재정 유지를 위해 직접 맥주와 치즈를 만들어 팔았다는 설도 있다. 트라피스트 에일로 인정받기 위해서 는 트라피스트 협회가 정한 엄격한 기준을 충족시켜야 하는데, 이를 만족시키는 양조장은 현재 세계에 오직 12개뿐이다. 가장 많은 트라피스트 에일 양조장을 가진 나라는 벨기에로 총 6곳의 양조장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진 양조장이 시메이 브루어리다. 벨기에의 트라피스트 양조장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많은 소비자들에게 사랑 받는 곳이다. 트라피스트 에일답게 맥주 수익금은 수도원의 렌트비를 내거나, 내부 커뮤니티를 위해 쓰이거나 혹은 자선사업을 위해 사용된다고 한다. 시메이 브루어리의 맥주에 쓰이는 물은 수도원 내 위치한 우물에서 나오며, 맥주를 만들고 남은 부산물들은 수도원에서 기르는 가축의 사료로 쓰이기도 한다고. 수도원에서는 ‘시메이 치즈’도 만들어 판매한다고 하는데 바로 이 소가 생산하는 우유로 치즈를 만든다고 하니, 치즈마저도 맥주와 관련이 있는 셈이다.
시메이 양조장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레드, 화이트, 블루, 골드 네가지 종류가 있다. 시메이 골드는 이전에는 수도원 안에서나 근처 카페 등에서만 판매되었으나 요즘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트라피스트 에일보다 낮은 4.8%의 도수를 가지고 있는 시메이 골드는 향긋하고 마시기 편해 트라피스트 에일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온다. 벨기에 맥주 특유의 꽃향기와 향긋함이 가득하며 시트러스함, 고소함과 달착지근함이 느껴지는 맥주이다. 밝은 황금빛의 맥주를 보면 이래서 골드라는 이름이 붙었나 싶을 정도로 색도 예쁘다.
수도사들이 정성을 담아 빚고 있는 트라피스트 에일을 한 모금 향긋하게 들이키다 보면, 수도사들이 힘든 고행 속에서도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혹시 맥주는 아니었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도 하게 된다. 오랜 시간 동안 묵묵하게 좋은 맥주를 위해 노력을 하고, 수익금은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수도원과 이웃을 위해 사용했던 수도사들. 새해 소망도 이런 묵묵함과 정성이 있다면 이뤄낼 수 있지 않을까? 혹시라도 힘들 때면 ‘기도하는 어린 사무엘’ 그림 속 사무엘의 간절한 눈빛을 보며 힘을 얻고, 2018년 한 해도 알차고 단단하게 채워 보도록 하자.
EDITOR_비어캣(Beerk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