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도 크래프트 소주다! 100% 뉴욕 로컬 소주 “여보소주”
‘소주가 크래프트 소주라니, Craft가 유행하니까 별게 다 크래프트네’라고 생각하면서 이름도 희한한 ‘여보소주(YOBO SOJU)’가 궁금해졌다. 한번 들으면 절대 까먹지 않을 이름의 소주, ‘누가 만들었을까?’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지?’ 심지어 뉴욕에서 만든 소주라니 호기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때마침 여보소주를 만든이가 서울에 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만나러 갔다.
한국 DNA, 소주를 아는 사람만 상상할 수 있는 프로젝트!
“제가 한국인 2세가 아니었으면 여보소주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절대 못했을 거예요” 만나자 마자 ‘여보소주’를 만든 이유를 묻자 캐롤린이 대답했다. “미국에서도 소주를 자주 마시는데 외국 친구들과 같이 마실 때마다 드는 생각이 좀더 좋은 품질의 소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자주 마시는 희석식 소주는 맛도 없고 싸구려 술이라고 인식되어 있어요. 영국의 위스키, 멕시코의 데낄라, 러시아의 보드카 등이 각 나라를 대표하는 것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소주도 저렴한 소주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모든 위대한 발명품은 누군가의 사소한 필요에 의해서 종종 만들어지는데 여보소주는 그렇게 한국인2세로서 미국에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추천해도 맛있는 퀄리티 좋은 소주를 만들고자 하는 개인의 필요에 의해서 탄생한 것이다.
한국의 소주는 본래 쌀로 빚어서 증류를 하여 만드는 증류주 였지만 1965년 박정희정권이 시행한 ‘양곡관리법’은 쌀로 만드는 술을 빚지 못하게 만들어 전통 방식의 소주를 금지시켰다. 전통 방식의 진짜 소주가 사라진 자리에 에틸 알코올에 물을 타서 만든 희석식 소주가 득세하여 현재의 소주를 대변하고 진짜 오리지날 소주는 ‘전통’이나 ‘증류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부르게 되었다.
캐롤린은 현재 LA에 위치한 비영리 기관 아시안 아메리칸 정의진 흥협회(Asian Americans Advancing Justice: AAAJ)에서 공익 변호사이자 슈퍼바이저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다섯 살 된 쌍둥이의 엄마이다.
미국에 사는 아시아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공익변호사로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무척이나 바쁘고 여유 없을 것 같은데 어떻게 여보소주를 만들었을까? “쌍둥이 낳고 육아를 하는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닌 거예요. 저녁에 아이들 잠들면 남편하고 자연스럽게 술을 한잔씩 하게 되었는데 기존 소주는 맛이 없어서 좀더 맛있는 소주를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죠. 인생에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해보고 싶었습니다.”노스 웨스턴 대학에서 영문학 학사 이수 후 뉴욕에서 수년을 보낸 후 포담 대학교 법학 대학원에서 공부한 그녀는 뉴욕에서 남편제임스를 만났다. 뉴욕에서 태어나고 자란 남편 덕분에 청명한 호수, 빙하호, 수려한 자연경관 그리고 세계 10대 와인 여행지로 유명한 미국 북동부 뉴욕주의 핑거 레이크 디스틸링(Finger Lakes Distilling)에서 여보소주를 만들게 된다.
100% 뉴욕 로컬 소주,
YOBO SOJU는 일체의 첨가물 없이 순수 청정지역 핑거 레이크스에서 재배되는 최상급 포도와 세계 최상급수로 유명한 핑거 레이크스 물(빙하호)만을 사용하여 만들어진다. 포도로 만든 첫 번째 소주이며 아황산 염을 포함해 어떠한 방부제도 첨가하지 않으며 일년에 단 한 번 추수기에만 생산한다
“포도 농장이 많아서 쌀보다 구하기 쉽고 당도도 높아서 포도로 소주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하고 포도농장에서 포도를 구하고 와이너리에서 1차로 와인을 만든 다음 근처 디스틸러리(증류소)에서 증류하여 소주를 만들었습니다. 주변에 포도 농장과 와이너리, 증류소가 있고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특히 남편과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었죠” 라고 캐롤린은 회상한다.
인터뷰 내내 캐롤린보다 더 열정적으로 여보소주를 칭찬하던 남편 제임스는 “처음에는 가족 친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캐롤린에게 뉴욕에서 고급 소주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미친 짓이거나 바보짓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의견을 바꿔 캐롤린과 여보소주의 열렬한 팬이 되었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매우 회의적이었지만 지금은 여보소주의 넘버원 지지자가 되었습니다.” 말하면서 처음에는 모두 반대 했다고 한다.
세상에 없던 것이 태어나려면 많은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주변의 이야기를 듣고 비싼 프리미엄 소주를 만드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포기했다면 아마 세상에는 여보소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의 거의 모든 존재는 포기하지 않는 열정의 결과물이다. 캐롤린이 없었다면 포도로 만들어진 향기로운 소주를 세상 사람들은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입소문으로 뉴욕의 작은 한식당으로 시작해서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퍼지면서 지금은 미국 20여개주에서 판매되고 있으니 여보소주는 소주의 홍보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결국 소주의 본고장 한국까지 진출하게 되었으니 감회가 남다르지 않을 수 없다.
“한인2세로 미국에서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찾아가야 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릴 때부터 엄마 아빠가 서로를 다정하게 부르던 말 “여보”와 한국의 대표 주류인 “소주”가 합쳐진 여보소주는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보소주를 마시는 모든 사람들이 좋은 음식과 좋은 시간을 함께 공유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즐기기를 바란다.”라고 ‘여보’의 의미를 설명하는 캐롤린. 그녀는 포도밭도 와이너리도 증류소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각을 실천으로 옮기고 도전해서 세상에 없던 “여보소주”를 만든 보통의 위대한 발명가라는 생각 들었다.
오늘 저녁 보고싶은 친구와 소주한잔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여보~소주 한잔 할까?
EDITOR_이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