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동 골목을 거닐다 만난 작은 맥주공장 ‘서울 브루어리’
이수용 대표, 장성민 설립자, 헤드 브루어 조슈아 이스턴(Joshua Easton)과 함께한 인터뷰
서울에 여러 브루어리가 있지만 지금껏 수도인 서울을 이름으로 내건 곳은 없었다. 대표성을 띠는 도시 ‘서울'을 가져왔다는 사실만으로 호기심과 기대감을 증폭시키기 충분하다. 올해 3월에 문을 연 신생 브루펍 서울 브루어리는 합정동 당인리 발전소 인근에 위치해 있다. 당인리 발전소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화력 발전소로, 작년에 가동을 중지한 이후 공원과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탄생할 예정이다. ‘서울 브루어리’를 꾸린 이들은 내로라하는 맥주 전문가도, 업계에 뿌리내린 유명인사도 아닌 평범하고 재능 있는 두 명의 친구였다.
동네 술친구에서 동업자로 다재다능한 두 사업가의 컬래버레이션
이수용 대표는 본래 맥주 업계에 종사하진 않았지만, 전부터 맥주를 즐겨 마시는 홈브루어였다. 2008년 공부를 위해 독일에서 지낼 때 동네 마트에서 여러 지역 맥주를 접하며 맥주의 세계에 눈뜨게 되었다. 삶의 모토가 ‘하고 싶은 건 좀 하고 살자'인 그는 본래 건축을 전공했지만, 경영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한 후 해외 사업개발에도 참여했으며, 건설회사에 다니기도 했다. 그 밖에 부동산 컨설팅, 리스크 매니지먼트 컨설팅, 인테리어 등 계속해서 다른 분야를 경험해왔다. 장성민 설립자 역시 다채로운 이력의 소유자다. 본래 약품을 개발하는 약사인 그는 벤처 기업을 운영하는가 하면 부동산 개발에도 종사했으며, 배낭여행 1세대로서 여행 에세이를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이수용 대표와 장성민 설립자는 사업 파트너이기 이전에 오랜 술 친구이다. 몇 년 전 파주에 거주할 당시 우연히 어린이집에서 만난 그들은 같은 타운하우스 단지의 이웃이었고, 퇴근 후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가 되었다. 두 사람은 항상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좀 하고 살면 좋겠다는 막연하지만 공통된 소망이 있었다. 맥주를 비롯해 술을 사랑하던 그들은 맛있는 맥주를 직접 만들고 국내에 널리 알리는 일이 재미있을 뿐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두 사람은 재작년에 처음 브루펍 창업에 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누게 됐고, 작년 8월 말 본격적으로 공간을 꾸리기 시작했다.
이수용 대표는 브루어리 창업을 준비하며 수수보리 아카데미의 상업 양조 강좌와 씨서론 강좌 역시 이수하며 기본기를 다졌다. “물론 이 업종의 비전과 시장성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도 개인적으로 갖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하고 싶은 건 하자’는 생각이 컸어요. 지금까지 그렇게 하나씩 시도해 왔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서울 브루어리 역시 실수와 실패의 가능성이 따르지만 일단 시도 자체에 의미를 두고 싶어요.”
도심 속 맥주공장이 만들어지기까지
이수용 대표는 ‘내 손으로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직접 공사와 설계를 진행했다. 하지만 재미를 추구하자고 시작한 일이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여러모로 힘겨웠던 건 사실이다. 합정동 주거지역의 오밀조밀한 골목에 무려 ‘맥주 공장’이 들어선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도심 속에 폭 들어와 있는 느낌을 추구했고, 워낙 자연을 좋아하다 보니 작게나마 마당이 있는 공간이길 바랐어요. 그런데 마침 괜찮은 뒷마당이 있는 이 집을 발견한 거죠. 근처 당인리 발전소가 공원화 되면서 같이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있었어요.”
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온 만큼 탐스러운 오동나무와 감나무가 있는 뒷마당을 손님을 위한 상업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지만, 주택가이기에 소음을 최소화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한국 법 테두리가 이 공간에 적합하게 맞아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문제가 생길 때마다 하나씩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거죠.
다행히 당인리 발전소 공원화와 맞물려 동네가 전체적으로 공사하는 분위기로 근방에 상업공간들이 많이 들어서고 있어요.”
다문화 도시 서울을 닮은 서울 브루어리
‘서울 브루어리'라는 이름의 탄생 배경에는 도시를 바라보는 이수용 대표의 관점이 녹아 들어있다. “서울안에 여러 가지 모습이 있는데, 그 ‘서울'로 통용되는 감성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서울이라는 도시는 서울 태생에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곳이 아니라, 서로 다른 지역에서 온 이들의 문화가 섞여 있잖아요. 외국인들도 많이 살고, 지방에서 살다 온 서울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의미들을 생각하다가 가감 없이 ‘서울'이란 이름을 선택하게 되었어요. 마치 ‘서울우유'처럼 단순한 이름인데, 그 안에 담긴 콘텐츠는 다채로울 수 있으니까요.”
장성민 설립자는 서울에 살아가는 우리가 실제로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맥주를 추구한다고 했다. “페일 라거 스타일로만 이루어진 획일화된 맥주 시장에 새로운 맥주를 제안하며 활기를 불어넣고 싶었고, 그 제안이 현실적으로 가장 잘 먹힐 수 있는 곳이 서울이잖아요. 서울 사람들이 주로 소비를 하며 트렌드와 감성을 이끌어가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외국 스타일을 그대로 옮겨와 그것을 어필하는 듯한 분위기를 가져와 사람들에게 제안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발붙인 서울의 방식으로 재탄생한 맥주를 제공하고 싶어요.”
서울 브루어리 역시 다양한 국적과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모여 탄생한 곳이다. 헤드 브루어 조슈아 이스턴(Joshua Easton)은 캐나다에서 왔고, 주방 직원은 스위스에서의 요리 경험이 있다. 요리 컨설팅을 해주는 셰프는 어릴 때부터 영국에서 요리를 공부했고, 가구 디자인을 맡은 이는 이수용 대표와 함께 작업한 적이 있는 일본인이다. “그분들도 왜 이름이 ‘서울 브루어리'냐는 질문을 많이 했어요. ‘서울은 다채로운 도시고 당신도 그 다양성의 하나다. 같이 표현해보면 좋겠다.’라고 이야기 했어요.”
서울 브루어리의 맥주와 요리
현재 서울 브루어리는 여섯 가지의 자체 맥주를 보유하고 있다. 엠버 라거 스타일의 ‘골드러쉬 캘리포니아 커먼’, 벨지안 윗 스타일의 ‘밤에 핀 벚꽃’, 바닐라와 카카오 풍미가 진한 로버스트 포터, 샐린저 호밀 IPA, 페일 블루닷 IPA, 그리고 아직 이름이 정해지지 않은 또 다른 호밀 IPA가 그것이다. 헤드브루어 조슈아 이스턴은 맥파이 브루어리에서 초창기에 맥주를 만들던 구성원으로, 캐나다로 돌아가 있던 그를 우연히 연이 닿은 이수용 대표가 섭외했다. 이수용 대표 역시 조슈아에게 배워가며 양조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조슈아는 두 가지 호밀 IPA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름 없는 호밀 IPA는 좀 더 전통적인 의미의 호밀 IPA로 캐러멜 몰트의 풍미가 두드러지는 맥주에요. 샐린저 IPA의 경우 더 홉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맥주로 하나는 옛날식이고, 다른 하나는 새롭고 트렌디한 스타일이라고 볼 수 있죠.” 봄과 여름 시즌을 겨냥해 기획한 ‘밤에 피는 벚꽃’은 연분홍빛을 띠는 새콤한 맥주로 처음 맛봤을 때 일본 하이쿠 작가의 벚꽃 시가 떠올라 붙인 이름이다. ‘샐린저 호밀 IPA’는 미국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의 저자 이름에서 따왔다.
이곳의 대표 음식은 키쉬(Quiche)다. 머쉬룸 소시지, 치즈 갈릭, 명란, 치킨 등 속재료를 달리한 프랑스식 타르트 요리와 맥주를 매칭했다. 얼마 전 도쿄 브루어리 투어를 다녀온 그들은 특히 오키나와 음식이나 일본 가정식 등 일본 요리와 크래프트 맥주를 페어링 한 다양한 경우를 보고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도 했다.
앞으로의 계획
서울 브루어리는 조만간 한남동에 2호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5월에 공사에 들어갈 한남 지점은 ‘브루잉 랩' 개념으로, 홈브루잉이나 여러 실험과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운영하며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이어 나가는데 집중할 방침이다. 그 후엔 또 다른 브루어리를 차리는 것도 구상 중이다. 맥주 외부 유통 역시 곧 시작하기 위해 냉장차를 갖춰 놓았다. 또 지역 아티스트와 협업이나, 가까운 펍들과 함께 모여 행사도 하고 상생해 나가길 바라는 소망도 내비쳤다.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하고, 거기서 배우며 발전해 나가자는 마음입니다. ‘한국 최고의 완벽한 맥주를 만들자’는건 아니에요. 대신 ‘재미를 쫓아가 보자'는 생각입니다. 누구든 일상 속에서 조금만 신경 써서 즐기며 살자는 메시지를 서울 브루어리를 통해 전하고 싶어요.”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