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발목 잡는 세금·유통 풀어 ‘맥주 한류’로
19대 대통령에게 바란다 . 업계 발목 잡는 세금·유통 풀어 ‘맥주 한류’로
19대 대통령 선거가 성큼 다가오면서 대한민국을 이끌어 새 리더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새 대통령은 사회 전반적으로 의심과 불신으로 가득했던 과거를 털어내고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을 열어가야 한다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안고 있어 그 어느 때보다도 국민들의 대선에 대한 관심이 높은 상황이다.
대선은 맥주 업계에도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주류 시장은 대표적인 규제 산업인 만큼 새 대통령과 정부가 어떤 시각을 갖고 정책을 이끌어가느냐에 따라 산업의 흥망성쇠가 결정될 수 있다. 특히 국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서서히 기지개를 펴고 있는 상황에서 맥주에 대한 세제, 유통 규제 등을 포함한 정책의 변화는 업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시의 적절한 정책 변화를 동력 삼아 도약할 것인가, 시장 변화와 엇갈린 정책 방향 때문에 한 순간의 유행으로 사라져 것인가… 크래프트 맥주 업계가 19대 대통령 후보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기대와 불안이 뒤섞여 있다.
크래프트 맥주의 경제적 효과 주목해주길
업계에서는 무엇보다 19대 대통령이 크래프트 맥주 산업의 잠재력을 인지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크래프트 맥주 문화가 정착될 때 거둘 수 있는 경제적 가치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이 정책의 틀을 짜는 데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크래프트 맥주 업계의 고용 창출 효과는 실제로 눈에 보인다. 최근 3~4년 만에 국내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가 20개 이상 늘어났다. 맥주 대기업들이 소품종 대량생산으로 거의 모든 공정을 자동화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들은 인력이 투입되는 경우가 많아 규모 대비 고용 효과가 훨씬 크다. 또한 크래프트 맥주의 유통, 판매 관련 일자리도 최근 크게 늘고 있다. 한국수제맥주협회(구 한국마이 로브루어리협회)는 브루어리뿐 아니라 크래프트 맥주 전문점, 전문 유통업체 등도 크게 늘어 2~3년만에 관련 일자리가 000개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런 일자리 숫자는 시장이 커질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1970년대 후반 홈브루잉 규제가 풀리면서 크래프트 맥주 혁명이 시작된 미국에서 국내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미래를 엿볼 수 있다. 1980년 92개에 불과했던 미국 내 브루어리 수는 2016년 말 기준 5005개까지 늘어났다. 미국양조협회(Brewers Association)에 따르면 2014년 기준 크래프트 맥주 관련 일자리가 42만4000여개로 집계됐다.
크래프트 맥주는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도 역할을 톡톡히 할 수 있다. 사과, 딸기, 복분자 등 지역 특산 과일을 비롯해 홉과 보리 농업과도 연계해서 발전 가능하다. 현재도 충북 제천, 전북 고창 등 지역에 자리잡은 브루어리들이 인근 농가와 력을 진행하고 있다. 또 이를 엮어 지역 관광상품까지도 개발할 수 있다. 농장 체험과 브루어리 투어를 결합하면 경쟁력 있는 일정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국산 크래프트 맥주가 발전을 거듭해 맥주 한류를 이끌게 된다면 관련 경제적 효과는 상상을 뛰어넘는 수치가 될 것이다. 맥주는 전 세계에서 소비하는 상품으로 맛있는 맥주는 국경을 넘어 충분히 퍼져나갈 수 있다. 이미 플래티넘, 더핸드앤몰트 등의 브루어리에서 생산한 맥주가 아시아 비어 컵, 인터내셔널 비어 컵 등 권위 있는 세계 맥주 평가 대회에서 수상하는 등 인정 받고 있다.
이렇게 성장 잠재력이 큰 국내 크래프트 맥주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다양한 맥주에 대한 요구는 나날이 커지고 있는데 이 부분을 수입맥주가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12년 7359만 달러였던 맥주 수입액은 매년 가파르게 늘어 지난해 1억8206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수입맥주가 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 10%를 돌파하기도 했다.
“세금 줄여줄 대통령 원해”
지난 해 기준 국내 전체 맥주 시장에서 크래프트 맥주의 비중은 1% 정도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크래프트 맥주가 국내 시장 깊숙이 침투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로 ‘가격 장벽’을 꼽는다.
크래프트 맥주는 일반적으로 대기업 맥주에 비해 3배 이상, 크게는 10배 이상 비싸 소비자들이 부담 없이 접근하는 데 분명한 한계가 있다. 대기업 맥주와 차별화해 좋은 재료를 많이 투입해 만드는 맥주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소규모 양조장에 대한 세제혜택을 받더라도 소비자 가격의 절반 가까이가 세금이라는 점은 크래프트 맥주 업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주세의 경우 생산 원가에 판매관리비, 마진까지 포함된 출고가격에 세금이 붙는 종가세 구조이기 때문에 크래프트 맥주에 불리하게 작용될 수밖에 없다는 진단이다. 좋은 재료를 쓸수록, 생산량이 적어 관리·유통 비용이 높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하게 된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세계 주요 지역에서 생산량에 따른 주세 부과체계(종량세)나 알코올 도수에 따른 주세 부과 체계를 채택해 소규모 양조장들이 대기업과 당당하게 경쟁할 토대를 만들어주는 것과 대조된다.
또 맥주에 붙는 주세도 다른 주류와 비교할 때 높은 편이다. 맥주에는 주세, 교육세, 부가가치세가 부과돼 전체 세율이 출고가의 약 113%에 달하는 상황이다. 주세만 72%가 붙고, 교육세(주세의 30%), 이를 모두 합한 금액에 10%의 부가가치세가 더해진다. 맥주보다 도수가 높은 와인이나 청주의 주세가 30%, 교육세율이 10%고 탁주나 약주에는 교육세가 아예 붙지 않는다는 점에서 맥주의 세금은 차별적이라는 것이 업계의 항변이다.
특히 대부분 주류가 알코올 도수의 고저에 따라 상대적인 세율이 매겨지고 있는데 맥주는 저도수주류임에도 높은 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통상 도수가 18% 이하인 탁주, 약주, 청주, 과실주의 세율이 5~30%고, 18~50도인 소주, 위스키, 브랜디, 고량주의 세율이 72%다.
한 맥주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휴대폰 등 수출 효자 산업들이 국내 시장을 테스트베드로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처럼 맥주도 가격 장벽을 낮춰 국내 시장을 넓히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단 시간 내 근본적인 세제 개혁이 어렵다면 세금 감면 범위를 늘리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현재 소규모 맥주 양조장의 경우 생산량 구간별로 과세표준 감면(100kl 이하는 60%, 100kl~300kl는 40%, 300kl 이상은 20%)을 받고 있는데 이 구간을 늘리거나 감면 폭을 넓혀야 한다는 것이다. 임성빈 한국수제맥주협회장은 “소규모 양조장의 경쟁력 확보에 효과적으로 기여하려면 40% 감면 구간을 500kl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측에서는 다른 주류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맥주 관련 세금 체계 변화에 미온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 관계자는 “소규모 맥주 제조자 관련 규제 전반적인 내용에 대해서 기획재정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를 포함한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며 “전문가 간담회, 공청회 등을 거쳐서 확정될 부분으로 아직 밝힐 수 있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세금을 비롯해 재료 수급 상황이나 높은 인건비 등 국내 맥주 제조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부스, 플래티넘 등 일부 브루어리는 미국, 중국 등 해외로 생산 기지를 옮겨가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해외에서 생산한 맥주를 국내로 역수입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맥주 유통 보장”
업계에서는 새 대통령이 유통상의 어려움도 해소해줄 것을 바란다. 지난 2월 말 정부의 11차 무역투자진흥회의 결과 소규모 맥주 제조자가 소매점에도 유통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겠다고 발표해 큰 문제는 해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사안에도 미비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재부는 주류 유통 분야 규제 합리화를 위해 다품종소량 유통 주류의 용도구분(가정용, 대형매장용 등) 표시 의무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용도를 전환하거나 반품이 발생할 때 제조자·수입업자가 상표를 재부착해야 하는 등 추가 비용이 유발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 규제 완화안은 와인이나 증류식 소주에만 해당되고 맥주는 제외됐다. 한 수입업체 대표는 “크래프트 맥주야말로 다품종 소량유통 주류인데 빼놓은 점이 이해되지 않는다”며 “와인에 적용된다면 맥주에 적용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업계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맥주의 온라인 유통을 허용해준다면 미국이나 중국처럼 크래프트 맥주 배달 등 새로운 서비스 산업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밖에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도 존재한다. 브루어리의 경우 국세청과 식약청의 이중 규제를 받고 있다. 새로운 맥주를 만들 때 국세청 기술연구소의 허가를 받은 후 국세청에 샘플을 보내 최종 허가를 받는다. 그 후에 식약청에 관련 서류를 또 보내야 한다. 또 국세청에서 맥아 등 원재료 관련 재고 파악 등을 담당하고 있는데 식약청에서도 따로 요구를 하고 있다.
한 브루어리 대표는 “소규모 제조자 입장에서 여러 정부 기관을 상대하며 많은 서류 업무를 하는 것이 벅차다”며 “관리 주체가 일원화가 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행히 지난해 맥주 배달 허용 범위가 넓어지고 올 들어서도 유통, 맥주 재료 등에 대한 제한을 풀겠다는 안이 발표되는 등 규제가 완화되는 분위기다. 맥주 업계에서는 대통령이 바뀌고 나서도 이런 기조가 일관되게 이어져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한 브루어리의 대표는 “크래프트 맥주는 일자리 창출, 수출 증대 등의 측면에서 국가 경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산”이라며 “대통령 후보 중 누군가가 맥주 업계에 획기적인 개선안을 공약으로 들고 나온다면 지지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EDIROT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