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링 페어링 #11 편의점 크래프트 앰버 에일 X 초간단 식빵 피자
국내에서 맥주의 다양성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너무도 지배적이었던 라거의 시대를 지나 세분화된 맥주종류를 맛볼 수 있게 된 지금, 그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를 편의점에서 캔으로 어렵지 않게 만나는 현실은 불과 3~4년 전만 해도 꿈같은 이야기였지만 이제 가능해졌다. 당장 집앞 편의점만 가도 경복궁, 광화문, 인생에일, 제주 백록담 에일 등등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을 한 각양각색 맥주들이 그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국내 양조장의 맥주를 편의점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의 종이 독점적 위치를 누리는 생태계보다 다양한 종이 공생하는 생태계는 예기치 못할 변화를 극복할 가능성이 클 테니까.
한국 맥주 생태계의 다양성이 언젠가 세계 맥주 생태계에도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민족주의나 애국심을 떠나서, 언더독이 예상을 깰 때 느끼는 카타르시스가 있지 않은가(한국어로 된 영화가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할 때 느꼈던 기쁨 같은). 그런 날을 꿈꾸며 국내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을 위해 건배!
아메리칸 앰버 에일 혹은 레드 에일이라고 불리는 맥주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신대륙에서 태어난 어린 맥주인 셈이다. 처음 등장한건 1980년대 한창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가 성장하던 무렵이었다. 앰버(Amber)는 호박색(먹는 호박 말고, 보석) 및 황색을 의미하는데, 맥주의 색깔을 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알 수 있다. 앰버 에일은 보통 캐러맬 맥아의 맛이 주인공이며 가볍지 않은 바디감이 특징이다. 은은한 단맛이 지배적이다가 끝에 쓴맛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앰버 에일은 평범하면서도 매력있는 맥주여서 일상적으로 마시기에 적당하다. 가끔은 편안하게 아무 생각 없이 마셔도 좋은 맥주가 필요하다. 거기에 딱 맞는 맥주가 바로 앰버 에일이다. 집에 들어와 간단히 혼술하기 좋은 맥주로 제격! 게다가 웬만한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초간단 식빵 피자 레시피
재료(2개 분량)
식빵 2장, 토마토소스 두 큰술, 잘게 썬 스팸 두 큰술, 캔옥수수 두 큰술, 올리브 다섯 알, 모차렐라 치즈 한 팩, 파슬리가루 약간
만드는 법
1. 옥수수는 체에 밭쳐 물기를 제거한다.
2. 올리브와 햄은 작은 크기로 썰어 준비한다.
3. 빵에 토마토소스를 바른다.
4. 스팸, 올리브, 옥수수를 올린다.
5. 모차렐라 치즈를 듬뿍 얹는다.
6. 남은 올리브와 옥수수 한 큰술을 더 얹는다. 치즈 위에 먹음직스럽게 올라간 게 포인트!
7. 오븐을 사용할 경우 200도에 5분~7분간,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경우 1분 30초간 돌린다.
8. 파슬리 가루를 솔솔 뿌린다.
편의점 재료로 만드는 초간단 식빵 피자
종종 제대로 된 요리를 하기는 귀찮은데, 맛있는 건 먹고 싶고, 그렇다고 밖에 나가서 사 먹고 싶지는 않을 때가 있다. 왜 이리 까다롭나 싶을 수도 있지만 사람이라면 그럴 때가 있는 법이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서 온 금요일 밤이면 그런 기분이 되기가 특히 쉽다. 잘 어울리는 안주를 곁들인 맥주는 한 주의 피로를 녹여주기 딱 좋으니까. 그런 이들을 위해 준비한 메뉴는 초간단 식빵 피자!
초간단 식빵 피자는 편의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10분 이내면 만들 수 있다. 정해진 토핑만 올려도 되지만, 기호나 상황에 따라 올리브 대신 통조림 파인애플을 올려도 좋고 스팸 대신 베이컨을 올려도 괜찮다. 그것도 귀찮으면 토마토소스만 쓱쓱 바르고 모차렐라 치즈만 올려도 맛이 좋다. 완성된 비주얼도 제법 훌륭해서 멋진 요리를 만들었다고 스스로 칭찬할 기분도 든다.
새콤한 토마토소스와 달콤한 옥수수, 짭조름한 햄, 고소한 치즈, 거기에 올리브가 감칠맛을 더해준다. 전체적으로 균형 잡힌 맛이다. 식감도 다채롭다. 식빵은 말랑말랑, 옥수수는 톡톡, 치즈는 쫀쫀한 게 재미난 감촉이다. 바로 만들어 바로 먹어서 그런지, 놀랄만큼 따뜻해서 마음속까지 데워준다.
엠버 에일 X 초간단 식빵 피자
엠버 에일은 캐러멜 맥아의 은은한 단맛이 특징이다. 동시에 뚜렷한 홉의 풍미도 적절하게 배합되어 씁쓸한 맛과 약한 단맛의 조화가 좋다. 탄산이 강하지 않고 목넘김도 적당해 보통 우리가 안주로 선호하는 요리 대부분과 잘 어울린다. 따라서 엠버 에일을 위한 페어링 전략은 간단하다. 야식 메뉴를 고를것! 피자, 치킨, 감자튀김, 햄버거 등등에 곁들여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 자체로 섬세한 향을 지닌 요리, 이를테면 생선회같은 것과는 안 어울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번에 사용한 페어링 전략은 무엇보다 편안히 즐기는 ‘혼술’에 방점을 찍었다. 맛의 조화만큼이나 마시는 사람의 감정과 상태가 중요하다. 편의점에서 사 온 맥주와 곁들일 간단한 식빵 피자라면 목적 달성에 제격이다. 새콤한 토마토스와 부드러운 치즈, 그리고 말랑한 식빵의 식감이라면 엠버 에일에 훌륭하게 녹아든다.
우선 맥주를 잔에 따라 본다. 색이 예쁘다. 영롱한 호박색. 30년 이상 숙성한 위스키처럼 진하고 기품있는 색이다. 예쁘게 세공한 크리스털 잔에 따라 마셔도 좋을 듯하다. 오븐에서 갓 꺼낸 식빵 같은 달큰한 향이 난다. 이제 마셔 볼 차례. 연한 에스프레소 같은 맛이 우선 입으로 찾아온다. 태운 캐러멜의 고소한 맛이 이어지고. 탕약 같은 쓴맛이 난다. 한약처럼 쓰면서 감질나는 맛은 어디서 왔을까, 궁금해서 찾아보니 맥문동이라는 약재를 첨가했다고 한다. 맥문동은 국내에 자생하는 약초로 라벤더처럼 보라색 꽃을 피우는 식물이다. 문득 떠오른다. 여름철 산길에서 봤던 길쭉하고 보랏빛 나는 꽃들이. 미디엄 바디로 목 넘김이 부드럽고, 탄산도 강하지 않아 맥주 자체의 맛에 집중하기 좋다. 전형적인 엠버 에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요리에 곁들여 마시기에 아주 좋은 맥주. 피자와 맥주, 이른바 피맥의 완성도는 오랜 전통을 지닌 치맥의 역사에 도전한다. 피자를 한 입 먹고 맥주를 마시면 엠버 에일이 가진 향과 풍미가 더욱더 강조된다. 균형 잡힌 단맛과 쓴맛, 감칠맛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피자를 먹으면 피자에 있는 다양한 맛이 화려하게 피어난다. 올리브, 치즈, 햄, 토마토, 옥수수, 식빵까지 식재료 본연의 맛이 강해진다. 피맥은 과히 새로운 종교라고 할 만하다.
맥주와 피자를 챙겨서 침대로 간다. 쏟아지지 않게 자리를 잡고 침대에 눕는다. 몇 번 뒤척이며 위치를 조정하니 안정적이다. 넷플릭스를 켜고 맥주를 홀짝이며 영화를 고른다. 노곤노곤, 피로가 조금씩 녹는다. 영화를 보고, 맥주를 마시고, 피자를 마신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 아닐까.
EDITOR
젠엔콩 Jenenkong
먹고 마시기를 사랑하는 자유기고가. 보다 맛있는 조합을 찾기 위해 늘 먹고 마시는 삶을 실천하고 있다. 레시피와 초단편소설을 엮은 <그래도 집밥이 먹고플 때>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