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링 페어링 #5 투올 비 마이 발렌타인 X 퐁당 오 쇼콜라
임페리얼 스타우트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역사를 톺아보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교훈을 얻는다.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러시아 황제를 위한 맥주였다. 긴 항해 기간 맥주를 보존하기 위해 홉을 다량으로 넣었고, 홉에서 나오는 쓴맛과 균형을 맞추며 춥디추운 북유럽 바다에서 결빙을 막기 위해 맥아도 많이 넣었다. 덕분에 쓴맛과 단맛, 높은 도수를 지닌 독특한 매력을 지닌 맥주가 탄생했다. 러시아 황제는 그 맛에 반해 많은 양을 수입했고 그런 맥주를 황제가 마시는 스타우트라는 의미에서 ‘임페리얼 스타우트’라고 불렀다.
세상에 영원한 권력은 없다. 막강한 힘으로 거대한 제국을 통치하던 러시아 황실도 결국 몰락했다. 가장 중요한 고객이 사라진 임페리얼 스타우트도 같은 길을 걸었다. 수요가 적어지면 공급도 줄어드는 법. 강력한 지지자를 잃은 임페리얼 스타우트도 쇠퇴했다. 거기다 세계 대전으로 인해 고도수 주류에 부과된 높은 세금도 양조자로 하여금 임페리얼 스타우트 생산을 꺼리게 만들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선 명맥이 거의 끊기고 말았다.
하지만, 반전이 찾아온다. 70년대 중반 시작된 캄라(Campaign for Real Ale)가 ‘잊혀진 맥주’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맥주시장을 지배하던 라거 계열 맥주에 지쳤던 이들은 진하고 강한 임페리얼 스타우트에 매료되었다. 새로운 바람은 미국으로 넘어가며 더욱 거세진다. 미국에선 80년대 이후 소규모 양조장이 급속도로 성장했고, 그들은 스타우트에 주목하며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스타우트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선 임페리얼 스타우트의 전성기 시절보다 더 다채로운 종류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임페리얼 스타우트가 걸어온 여정을 보며, 현재 상황에 매몰되어 좌절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배운다. 무소불위로 권력을 휘두르던 제정 러시아가 무너졌듯, 7080 레트로 무드가 촌스럽다는 평가를 넘어 새로운 트렌드로 도약했듯, 임페리얼 스타우트도 엄청난 인기를 얻기도 하고 모두에게 잊히기도 했다. 인생도 다르지 않다. 지금은 힘들지라도 얼마 안 가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른다. 반대로 지금은 거침없이 성공하다가 다음 날이면 무너질지도 모른다. 따라서 현재를 있는 그대로 즐기며 사는 편이 좋다. 때때로 맛있는 임페리얼 스타우트 한 잔을 마시면서.
투올 비 마이 발렌타인
투올은 덴마크에서 시작한 집시 브루어리다. 자세한 내용은 투올 브루어리 담당자 에밀 실베스터와의 인터뷰가 실린 비어포스트 Batch 034를 참고하세요, 라고 쓰며 설명을 마치지는 않겠다. 투올은 라거 일변도인 덴마크 맥주시장에 염증을 느낀 두 사람, 토비아스 에밀 한센과 토르 귄터가 설립했다. 둘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새로운 맥주를 위한 양조 실험에 몰두했고, 이는 현재 투올이 보여주는 창의적인 맥주에 큰 보탬이 되었다. 참고로 미켈러 브루어리의 미켈이 두 사람을 맥주의 세계로 안내한 장본인이다.
종류 상면발효맥주 , 임페리얼 스타우트
원산지 벨기에, 헨트
양조장 드 프루프 브루어리 (De Proefbrouwerij)
원료 물, 보리맥아, 밀맥아, 홉, 꿀, 초콜릿, 딸기
도수 8%
용량 330ml
투올은 기본적으론 집시 브루어리지만, 실제론 벨기에에 위치한 데 프로프 브루어리에서 대부분의 맥주를 생산한다. 그들 표현에 따르면 ‘정착한 유목민 브루어리’. 돌아온 탕아 같은 느낌을 주는 이름이다. 신뢰하는 양조장과 꾸준히 협업하는 덕분에 일정한 수준의 맥주를 양조하고 있다.
‘비 마이 발렌타인’은 밸런타인데이에 센스 있는 선물이 될 수 있는 맥주다. 이름에서부터 양조한 의도가 드러난달까. 꿀과 초콜릿, 과일의 풍미가 조화로운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달콤한 분위기를 만들기에 적합하다. 짙고 어두운 검은색도 초콜릿을 연상시키기에 딱 좋고 맥주를 좋아하는 연인이 있다면 초콜릿 대신 선택해 보시길.
퐁당 오 쇼콜라
퐁당 오 쇼콜라는 ‘녹아서 흘러내리는 초콜릿’이란 뜻을 지닌 프랑스 디저트. 다크초콜릿이 많이 들어가 힘을 내고 싶을 때 자주 만든다. 다크초콜릿 때문에 씁쓸한 맛도 있지만, 그 외의 다양한 재료 덕분에 달콤한 맛이 더욱 강하다. 살짝 바삭한 겉을 포크로 눌러 주면 주르륵 흐르는 초콜릿. 활화산에서 분출한 용암 같은 초콜릿을 입에 넣어보자. 용암에 지지 않는 파괴력을 지녔다. 달콤한 맛으로 내 마음을 초토화 시키니까.
만들기 까다로운 디저트에 속하지만, 만들고 나면 후회없는 디저트에도 속한다. 머릿속이 복잡한 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손놀림에 정신을 맡기 채 초콜릿과 버터를 녹이고 달걀과 섞고 오븐에 굽는다. 구워지는 동안 부엌을 가득 채우는 달콤한 향기. 흠, 스트레스가 조금씩 풀리는 듯하다. 갓 구운 퐁당 오 쇼콜라를 예쁜 그릇에 올리고 포크로 푹! 찌르면 초콜릿이 흘러내린다. 빵 부분에 올려서 얌! 먹으면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퐁당 오 쇼콜라 만드는 법
재료(4개 분량) 다크초콜릿 80g, 발효버터 60g, 설탕 40g, 달걀 70g, 박력분 15g, 코코아가루 3g, 바닐라 익스트랙 약간
tip 1. 퐁당 오 쇼콜라는 굽는 시간에 따라 초콜릿이 흐르는 농도가 변한다.
tip 2. 퐁당 오 쇼콜라는 따뜻할 때 먹는 것이 가장 맛있다.
투올 비 마이 발렌타인 X 퐁당 오 쇼콜라
임페리얼 스타우트는 앞서 언급했듯 정말 다양한 맛을 낸다. 초콜릿부터 호두파이, 연유, 체리 케이크 등등. 따라서 임페리얼 스타우트에 맞는 페어링 전략은 어떤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마시느냐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호두파이 맛 맥주에 어울리는 요리와 체리 케이크 맛 맥주에 어울리는 요리는 분명 다르니까.
하지만, 기본을 지킨다면 어떤 맥주를 만나도 걱정 없다. 임페리얼 스타우트 푸드 페어링에 있어 실패하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 맥주가 지닌 맛을 보강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옴니폴로 피칸 머드 케이크엔 달콤하고 견과류 향이 가득한 피칸파이를 함께 하거나, 대체적으로 초콜릿 향이 강한 만큼 진한 다크초콜릿을 함께 먹으면 좋다. 이 방식이라면 그 어떤 임페리얼 스타우트라도 훌륭하게 대처 할 수 있다.
‘비 마이 발렌타인’에 퐁당 오 쇼콜라를 곁들인 이유는 2월에 밸런타인데이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은은한 초콜릿 향과 풍부한 과일 향이 매력인 ‘비 마이 발렌타인’을 더욱 빛내게 해줄 단짝은 깊고 달콤한 퐁당 오 쇼콜라가 알맞았다. 둘 다 달큼한 초콜릿 향을 풍긴다. 달달한 향기를 맡고 있자니 황홀하다.
둘을 나란히 놓으면 짙은 초콜릿색이 강렬하게 다가온다. 레몬을 본 강아지처럼 입에 침이 고인다. 달콤한 맛이 곧 나를 찾아오겠지, 라는 기대감.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달콤한 맛에 이어지는 시큼한 맛, 그리고 씁쓸한 향이 퍼지고 다시 마무리는 진한 단맛. 처음 단맛은 갓 추출한 꿀처럼 신선한 달콤함이다. 이어지는 시큼한 맛은 발효되기 시작한 딸기의 맛, 딸기로 담근 술이 이런 맛이겠지. 태웠다 싶을 정도로 쌉싸름한 에스프레소 향이 이전까지 나온 향취를 더욱 살려준다. 그 쓴맛은 카카오 열매와도 닿아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나는 다크초콜릿의 진한 단맛이 고급스럽다.
‘비 마이 발렌타인’은 산미가 느껴지는 부드러운 질감을 선사한다. 탄산감은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고 적당하다. 덕분에 목 넘김이 좋다. 찐득하고 부드러운 퐁당 오 쇼콜라와 잘 어울린다. 꾸덕했던 초콜릿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고 마시기 편한 맥주가 향을 더해주며 넘어간다.
퐁당 오 쇼콜라는 뜨거울 때 먹어야 제맛. 입안 가득 따듯하고 진득한 초콜릿을 채우고 곧이어 ‘비 마이 발렌타인’을 한 모금 더한다.
달콤한 맛이 배가 된다. 동시에 퐁당 오 쇼콜라가 지닌 다크초콜릿의 쌉싸름한 풍미도 살아난다. 단맛과 쓴맛은 서로를 더욱 부각하며 입을 기쁘게 해준다. 보통 퐁당 오 쇼콜라에 딸기 같은 과일을 곁들여 먹곤 하는데, ‘비 마이 발렌타인’이 잔뜩 머금은 상큼한 과일 내음 덕에 따로 과일이 필요 없다. 더불어 몸도 데워지는 기분.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을 지닌 러시아의 황제가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즐겼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러시아 황제는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매일 마셨으려나. 황제가 지녔던 권능보다, 그게 더 부러운걸.
EDITOR_젠엔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