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맛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맛과 향과 풍미에 대한 이해
이번 호의 주제인 ‘맥주의 맛’에 대해 전반적으로 논하기 전에, 일단 ‘맛’이 무엇인지, ‘향’과 ‘풍미’는 어떻게 다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맛은 대체 어떻게 느껴지는 것이며 맛과 향과 풍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보다 풍미를 잘인지하고 표현할 수 있는지, 이 글에서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자.
맛, 향, 그리고 풍미
음식을 표현할 때 가장 많이 쓰이는 용어가 ‘맛(Taste)’과 ‘향(Aroma)’, 그리고 ‘풍미(Flavor)’이다. 여기서 ‘맛’은 음식 등을 혀로 느끼는 감각, ‘향’은 코로 느끼는 감각이라고 쉽게 정의할 수 있다. 하지만 ‘풍미’는 생각보다 자주 쓰이는 표현임에도 그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일단 국어사전에서 ‘풍미’의 의미는 ‘음식의 고상한 맛’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이 단어를 활용하는 경우를 보면 ‘부드러운 풍미’라든지, ‘담백하고 진한 풍미’ 등 단순한 맛 표현 이외에 질감이나 느낌 등을 나타내는 데에도 ‘풍미’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즉 ‘풍미’는 음식의 종합적인 감상을 나타낼 때 쓰곤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와인이나 맥주, 커피와 같이 음식이나 음료를 표현하는 데 엄밀한 단어가 요구되는 분야에선 이를 보다 확실하게 규정하고 있다. ‘맛’은 혀로 느낄 수 있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 지방 맛만을 의미하는 말이며 ‘향’은 맛 외에 휘발성 물질에 의해 코에서 감지되는 것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맛과 향에 ‘촉감’까지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뇌에서 종합한 것을 ‘풍미’라고 한다. 가령 우리가 김치를 먹으면 배추의단맛과 젖산의 신맛, 소금의 짠맛과 같은 ‘맛’과 고추와 젓갈, 발효된 음식이 내는 특유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맛과 향, 그리고 고추의 매운 통각과 배추의 아삭한 식감, 즙이 나오는 감각, 차가운 냉기 등이 어우러져 김치의 ‘풍미’를 내는 것이다
혀로 느끼는 맛
모든 감각은 자극으로 시작해서 인지로 끝난다. 그중에서도 미각은 혀에 분포하는 작은 돌기인 유두, 그 안에 분포하고 있는 미세포의 집합체인 미뢰가 자극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음식을 먹게 되면 음식의 성분들이 침에 녹게 된다. 이 성분들이 미뢰 구멍으로 들어가 미뢰 속에 있는 미각 세포의 융털과 결합한다. 이 결합을 통해 미각 세포가 흥분하고, 흥분이 미신경을 통해 대뇌로 전달되면 비로소 맛을 인지하게 된다.
혀에서 느낄 수 있는 맛의 종류는 현재로선 단맛, 신맛, 짠맛, 쓴맛, 감칠맛, 지방 맛까지 6가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외의 것들은 ‘맛’이라 부르지 않는다. 과거엔 혀의 부위에 따라 이들 맛을 느끼는 영역이 다르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여러분의 경험이 말해주듯 이는 사실이 아니다. 다만 혀의 안쪽이나 양옆 쪽은 맛이 유달리 더 잘 감지되는 듯한 기분이 들긴 할 것이다. 이는 해당 부위에 유두가 보다 밀집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때 혀 안쪽에 밀집된 유두를 두고 성곽 유두(Circumvallate Papillae), 혀 양쪽에 밀집된 유두를 두고 엽상유두(Foliate Papillae)라 한다. 성곽 유두에서는 쓴맛, 단맛, 지방 맛을 보다 민감하게 감지해낸다. 따라서 맥주를 완전히 삼킬 때 인지하는 맛과, 맥주를 입안에서 굴리고 뱉을 때 인지하는 맛에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굉장히 쓴 맥주를 먹었을 때 혀 안쪽이 유독 괴로운 것도 성곽 유두 때문이다. 엽상 유두에서는 신맛과 지방 맛을 보다 민감하게 감지해낸다. 식초와 같은 신 음료를 먹었을 때 혀의 양옆이 아린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는 후에 초산과 같은 맥주의 이취를 잡아내는 데에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니, 보다 전문적으로 맥주를 시음하길 원하는 분들이라면 기억해두는 것이 좋다.
최근의 연구는 우리 혀가 비단 위의 6개 맛뿐만 아니라 다른 몇 가지 맛을 더 인지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그 가능성이 있는 예시로 칼슘이나 몇 가지 금속, 물, 알코올의 맛 등을 들고 있고 말이다. 하지만 아직 명확히 규정된 바는 없으니, 일단은 저 6가지만을 ‘맛’이라고 표현한다는 점만 알아두도록 하자.
코로 느끼는 향
후각은 특정 물질에서 확산하여 나온 분자가 비강 윗부분에 위치한 후세포(Olfactory Cells)를 자극하여 감지하게 되는 감각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코로 호흡할 때 대부분 공기는 비강의 아래쪽으로 흐르기에, 굳이 후세포를 자극하지 않는다. 하지만 휘발성 물질(가스 등)은 비강의 위쪽으로 자연스레 확산하고 후세포를 자극하므로 그 향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즉 휘발성 물질이 존재하고 비강이 뚫려 있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향을 느끼게 된다.
코는 별개의 기관이 아니라 입과 폐, 위 등과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관이며, 후각은 우리의 의도와는 별개로 기체의 확산에 의해 느껴지는 것이기에 ‘향’은 두 가지의 다른 경로로 감지할 수 있다. 하나는 코로 직접 들이마시며 향을 맡는 경로(전비강성 후각, Orthonasal Olfaction), 다른 하나는 음식을 입안에 넣고 난 후에 휘발성 물질이 입과 몸 안쪽에서부터 코를 지나며 향이 느껴지는 경로(후비강성 후각, Retronasal Olfaction)이다. 여기서 후비강성 후각이 잘 느껴지지 않는 감각이라고 오해하기 쉬운데, 전혀 그렇지 않다. 가령 ‘사과맛, 딸기 맛’ 같은 것은 정확히는 ‘맛’이 아니라 맛과 후비강성 후각이 합해져서 느껴지는 것이다. 고로 ‘맛’이라는 표현보단 ‘사과 향, 딸기 향’이라는 표현을 쓰는 쪽이 오히려 더 정확하다. 비강을 꽉 틀어막고 양파를 씹어 먹으면 사과인지 뭔지 구분을 못 하는 것이 이 때문이기도 하다.
머리로 느끼는 풍미
맛과 향과는 달리 풍미는 뇌로 인지하는 것이다. 음식이 입에 들어오기 직전에 느껴지는 전비강성 후각과 입에서 느껴지는 맛과 촉각, 입에서부터 코를 타고 올라가 느껴지는 후비강성 후각까지 모든 것이 뇌로 보내져서 합쳐지고 재구성된 것이 ‘풍미’이다. 그렇기에 풍미는 입과 코에서 인지된 감각 외에 개인의 기억과 경험, 문화, 고정관념, 심지어 언어에까지 영향을 받는다. 어느 나라에선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쓰이는 식재료가 다른 나라에선 매우 독특하고 강한 거부감이 드는 식재료로 인지되는 것(대표적인 예시로 고수를 꼽을 수 있다.), 한번 큰 트라우마를 준 음식은 두 번째에 멀쩡한 음식을 먹을 때에도 안 좋은 맛을 내는 것 같은 기분을 주며 심지어 구토감까지 주기도 하는 것, 위생이 안 좋은 가게의 음식은 괜히 이상한 맛이 나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는 점 등은 모두 풍미에 뇌가 관여한다는 증거이다.
맥주에서 예시를 드는 것도 간단하다. ‘서양배’는 서양권에선 벨기에 맥주등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표현이지만 한국인들은 이 표현을 떠올리기 힘들며, 아예 그 풍미를 인지하지 못하기도 한다. 서양배를 먹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시로 커피를 넣은 스타우트를 들 수도 있다. 이는 정말 저주와도 같은 강력한 표현이기 때문에 평소 커피 넣은 흑맥주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이 문단을 안 읽고 넘기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필자가 이 사실을 알려주자 굉장히 괴로워하는 주변인들을 몇 보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커피를 넣어서 만든 흑맥주들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십중팔구 고추 같은 풍미를 내곤 한다. 하지만 별다른 생각 없이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를 인지조차 못하곤 한다. 커피를 넣은 흑맥주에서 고추의 향이 날 것이라곤 상상도 못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고추의 향이 나지 않느냐고 알려주면 그제야 고추의 향을 느끼기 시작한다. 왜 여태이 향이 안 느껴졌나 신기해하는 사람도 많다. 이처럼 풍미는 개인의 경험, 고정관념 등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달라진다.
더 나은 인지능력을 위해서
앞서 언급한 내용에 의하면, 풍미를 잘 인지하고 잘 표현하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많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열린 마인드이다. 보통 소믈리에나 조향사 등이 인지 능력을 기르는 모습을 상상하면 미각과 후각을 가다듬고 신중히 단련하는 모습을 그리곤 하지만, 그보다도 이쪽이 훨씬 중요하다.
우선 최대한 많고 다양한 미각적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특정 풍미가 느껴지는데 이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른다면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심지어 모르는 풍미는 아예 안 느껴지기도 한다. ‘서양배’의 경우처럼 말이다. 경험이 다양할수록 혀와 코는 더욱 열리게 된다. 그러니 항상 새로운 풍미를 탐구하고, 기억하고자 노력하도록 하자.
맥주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들을 최대한 많이 공부해 두는 것은 맥주에 대한 감상을 작성할 때 빠르고 정확하게 맥주의 풍미를 표현하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된다. 더 나은 맥주 평가자가 되기 위해선 이 과정이 더욱 중요하기도 하다. 혼자서 보고 작성하는 시음기라면 본인만의 용어로 작성해도 그 맥주의 맛을 다시 떠올리는 것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지만, 맥주 심사와 같이 객관성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시음기를 작성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모두가 공통으로 쓰는 표현법을 알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풍미를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다면 남의 시음기를 참조해도 좋다. 또한 특정 맥주 스타일에선 어떠한 풍미가 나는지를 공부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도움이 된다. 많은 맥덕들이 괜히 BJCP를 통해 맥주를 공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닫혀있지 않은, 항상 무슨 맛과 향이든 맥주에서 날 수 있다는 열린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미각과 후각은 굉장히 간사하므로, 어떠한 풍미를 상상하고 맥주를 마시면 실제로 그 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항상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풍미에 의구심을 가지고, 객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은 맥주가 아닌 다른 음료의 시음회에 가보는 것이다. 와인이나 커피가 대표적이다. 같은 ‘음료’를 다루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와인과 커피, 차, 전통주 등은 맥주와 비교해서 사용하는 단어와 표현법 등이 꽤 다르다. 이러한 것을 알아가는 것은 미각적인 고정관념을 깨는 데 분명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