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미학’ 강태현 대표가 들려주는 람빅의 세계
람빅의 매력을 통해 살펴보는 맥주의 신맛
‘맥주미학’ 강태현 대표가 들려주는 람빅의 세계
맥주에는 다양한 스타일과 맛이 있지만, 람빅을 비롯해 신맛이 나는 맥주는 그중에서도 유별납니다. 처음엔 맥주에서 시큼한 맛이 난다는 낯선 사실에 당황할 수 있지만, 한번 빠져들면 그 독특하고 복잡한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기가 십상입니다. 대체 신맛 나는 맥주의 정체와 매력은 무엇일까요? 와인 소믈리에를 거쳐 사워 에일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보틀숍 <맥주미학>의 강태현 대표로부터 신맛이 나는 맥주, 그중에서도 람빅의 맛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사워 에일이 맥주 팬들에게 인기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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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스타일 구분 없이 다 드시죠. 그중에 사워 에일 역시 좋아하는 맥주의 외연이 더 넓어진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맥주뿐 아니라 다른 주종과 맛집을 다양하게 찾아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맛에 대한 도전정신과 수준이 높죠. 그러다 보니 사워 에일의 맛에서도 열린 마음을 가지고 매력을 알아봐주시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맥주의 트렌드 리더들이 먼저 이 맛을 발견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도수가 낮은 술은 풍미가 옅은데, 사워 에일은 도수도 낮으면서도 풍미가 깊고 인상이 강하죠. 또 깔끔하고 몸에 부담도 없고요. 맛도 맛이지만, 몸이 반응하는 술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워 에일에 입문하려면?
저의 경우 2015년에 부산에서 ‘뀌베 데 자코뱅’을 마셔본 게 사워 에일의 첫 경험이었죠. 사실 그때는 새로운 맛에 당혹스러울 뿐, 즐기지 못했습니다. 그 후 사워 에일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가, 2016년에 우연히 ‘부르고 뉴 디 플랜더스’와 ‘분 오드 괴즈’를 마시고 사워 에일이 매력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때부터 과감하게 여러 사워 에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재미있게도, 현재는 사워 에일 입문에 도움을 주었던 ‘부르고뉴 디 플랜더스’와 ‘분 오드 괴즈’가 심심하다는 생각에 잘 마시지 않아요. 처음에 힘들어했던 ‘뀌베 데 자코뱅’을 더 즐깁니다. 제 경험으로 볼 때, 사워 에일은 처음부터 강한 신맛으로 입문하는 것보다는 부드럽고 약한 신맛으로 매력을 느끼고 점차 익숙해지면서 다른 것도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람빅은 어떤 맥주인가
신맛이 나는 맥주 중에서도 남다른 종류가 있는데, 바로 ‘람빅(Lambic/Lambiek)’입니다. 전통적인 양조 방식에서 비롯한 특유의 풍미와 여러 방식의 변주에 따른 맛의 다양성이 람빅을 특별하게 만들어줍니다. 람빅, 도대체 정체가 뭘까요?
람빅은 벨기에 패요텐란트(Pajottenland) 지역에서 효모의 비예측성을 활용하여 자연적으로 발효한 맥주입니다. 일반적인 맥주와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야생 효모’를 활용한 ‘자연 발효’입니다. 배양된 효모를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맥아즙을 바깥 공기에 그대로 노출해 공기 중의 천연 효모와 박테리아를 유입시켜 발효하는 것입니다. 그 후 나무통으로 옮겨 발효를 가속하는데, 1년에서 3년까지 숙성하는 과정에서 알코올과 산미가 생기고, 깊이 있는 야생 향미가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람빅의 맛을 느껴보면 짜릿하게 아주 시고, 특별한 질감과 상쾌한 풍미가 느껴집니다. 산화된 맛과 치즈, 농장 냄새 같은 향미가 나며, 발효된 술통에서 오는 오크와 타닌 향미 역시 느낄 수 있습니다. 박테리아와 효모는 맥주에 다층적인 깊이와 함께 산성 향미와 퀴퀴함을 부여합니다. 80여 가지의 미생물이 람빅 안에서 발견되지만, 그중에서도 젖산 박테리아와 브렛(brettanomyces) 효모가 시큼하면서도 쿰쿰한 매력을 만듭니다. 재료는 ⅔ 정도의 보리맥아, ⅓ 정도의 발아되지 않은 밀, 묵은 홉,물, 미생물입니다.
다른 맥주보다 좀 더 호불호가 강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질리지 않고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거부감도 강하죠. 하지만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도전 정신이 강한 분들인지라, 처음에 인상이 좋지 않더라도 다시금 시도해보다가 결국 적응하시면서 좋아하게 되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람빅의 매력은 비교할 수 없는 특유의 펑키(쿰쿰)한 냄새와 깔끔한 맛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도수도 높지 않아 몸에 부담도 없고요. 빈티지 피노 누아(Vintage Pinot noir)를 마셨을 때도 비슷한 쿰쿰함을 느낀 적이 있었는데, 전 세계 사람이 피노 누아를 좋아하는 것만큼이나 매력은 뒤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피노누아를 좋아하는 분들이 이런 술이 있는지 몰라서 그렇지, 알게 되면 같이 좋아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람빅 맛의 다양성
극적인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 또한 람빅의 매력입니다. 과일 등의 재료를 첨가해 추가적인 발효를 거치기도 하고, 숙성 기간이 다른 두 가지 이상의 람빅을 블렌딩(blending) 함으로써 더 새롭고 복합적인 맛을 내기도 합니다. 섞는 비율에 따라 풍미가 달라지기에 ‘블렌더’라는 전문 직업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람빅의 종류와 맛의 특징엔 어떤 게 있을까요?
람빅의 종류는 크게 4종류로 아래와 같습니다.
첫 번째, 언블렌디드 람빅(Straight Lambic/Flat Lambic)은 블렌딩, 즉 다른 람빅과 섞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람빅입니다. 6개월 된 람빅부터 2~3년 묵은 람빅까지 다양하며, 병입해 묵은 올드 퓨어 람빅은 탄산이 적습니다.
두 번째, 파로 람빅(Faro Lambic)은 설탕으로 단맛을 내고, 살균 처리해 맥주의 지속적인 발효를 방지한 블렌딩 람빅입니다. 신맛이 덜한것이 특징입니다.
세 번째, 과일 람빅(Fruit Lambic)은 새로 만들어진 람빅에 과일의 천연당을 활용해 2차 숙성을 한 람빅입니다. 과일의 종류는 체리, 프랑브와즈(산딸기), 복숭아, 딸기 등 한계가 없습니다. 달콤한 람빅과 달지 않은 전통 람빅으로 또 나뉩니다. 과일 람빅을 고를 때 팁을 알려드린다면, ‘Oude’라고 적혀 있는 경우 달지 않은 과일 람빅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전통적인 방식이라는 뜻인데, 그건 달지 않게 만들었다는 의미죠. 그래도 간혹 단 것들이 섞여 있으니 신뢰 있는 참조로만 활용하세요.
네 번째, 괴즈(Gueuze)는 영 람빅(Young Lambic)과 올드 람빅(Old Lambic)을 블랜딩한 결과로, 탄산화한 맥주입니다. 보통 1년 미만의 숙성된 영 람빅과 1년 이상 3년 이하로 숙성된 올드 람빅을 섞습니다. 블랜딩 및 병입 후 숙성이 덜 된 맥주는 여전히 당분을 함유하고 있어, 병 속에서 또 한 차례 발효를 거쳐 샴페인처럼 탄산을 만들어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올드 람빅과 영람빅의 비율 및 올드 람빅의 오래된 정도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깐띠용 루페페(Cantillon Lou Pepe)’처럼 영 람빅을 사용하지 않고 올드 람빅에 달콤한 리큐르를 넣거나, 3분수 골든 블랜드(3 Fonteinen Golden Blend)처럼 4년 이상 된 올드 람빅을 사용하는 등 일반적인 블랜딩에서 벗어난 괴즈도 있습니다. 게다가 요즘에는 배럴 에이징한 괴즈도 많아서 더 복잡하죠. 여러 변수가 있다보니 블렌딩 방식에 따른 맛의 차이를 찾기는 쉽지 않지만, 제 경험에 따르면 오래된 올드 람빅을 더 많이 사용할수록 좀 더 바디감이 있고, 질감도 곱고, 산미도 부드러운 인상이었습니다.
괴즈의 경우, 오래 숙성할수록 신맛이나 펑키함, 과일 같은 풍미는 다소 줄고 퀴퀴한(Mustiness) 냄새가 더 생겨 새로운 밸런스와 복합 미를 만들어 줍니다. 제가 많은 올드 빈티지 괴즈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가끔 감칠맛이나 드라이한 리슬링(Riesling) 와인에서 느껴지는 기분 좋은 패트롤(Petrol) 향도 경험했습니다.
국내서 구할 수 있는 분(Boon) 양조장의 괴즈로 블렌딩 비율의 예를 들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와인과 람빅
와인과 람빅은 주종이 다르지만, 어딘가 닮은 듯도 합니다. 누군가 ‘와인이 좋으냐, 람빅이 좋으냐’라고 묻는다면 ‘강아지 파냐, 고양이 파냐’라는 질문과도 비슷하게 다가올 듯 합니다. 두 가지는 어떤 점에서 다르고, 어떤점에서 비슷할까요?
화이트 와인에서 보통 신맛이 많이 나는데, 과일과 꽃의 향미가 신맛과 같이 놀지만 ‘펑키함’, 즉 쿰쿰한 풍미가 없습니다. 레드 와인에서도 산지오베제, 템프라니오, 피노 누아 등에 신맛이 있지만, ‘펑키함’이 람빅보다는 적고 떫은맛을 내는 타닌이 좀 더 부각됩니다.
시음 방법에 있어서는, IPA와 같이 음용성이 위주가 되는 것이 아니기에 사워 에일과 와인에 별 다른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와인이라고 너무 어렵게 마실 필요도 없고, 개인적으로 향(fragrance)을 먼저 맡고 30ml 정도 머금고 입안에서 5초 정도 이상 굴리다가 마신후 입을 벌리지 않고 20초 동안 입안에서 풍미(flavor)를 느끼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30ml라고 한 이유는, 더 많은 양을 입속에서 굴리면 탄산이 있는 맥주는 입안에서 폭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 중 뭐가 더 낫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냥 아는 만큼 더 폭넓게 잘 즐길 수 있는 거죠. 그때그때 분위기와 음식에 따라 좋은 술을 매칭할 수 있는 게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 일반적으로 같은 값이면 람빅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맛이 좋은 맥주’란?
개인적으로 제 취향이 아니더라도 양조가의 의도가 잘 표현된 맥주를 ‘좋은 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스타일에 잘 부합하는지, 부재료들이 잘 표현돼있는지, 밸런스가 좋은지, 스케일(맛의 깊이 혹은 세기)이 큰지 등을 보고 좋은 맥주라고 판단합니다. 양조가들이 맛있게 만들려고 노력했을 텐데, 몇 가지 흠으로 깎아내리기보다는 긍정적인 부분을 더 높이사고 칭찬하는 편입니다.
브랜드로 보자면, 람빅 브랜드의 가치는 오랫동안 일관성 있게 쌓여온 신뢰도와 라인업의 전반적인 만족도에 따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바탕으로 했을 때, 저는 괴즈 스타일은 3분수(3 Fonteinen), 과일 람빅은 깐띠용(Cantillon)을 가장 선호하는 편입니다. 역사는 짧지만 틸퀸(Tilquin) 양조장도 제 취향에 맞습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브랜드를 떠나 맛있으면 됩니다.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