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올인원 홈브루잉 장비의 자존심 브루캐스케이드
이번 KIBEX에 참가한 많은 업체들 가운데 유독 관심이 가던 부스가 하나 있었다. 바로 올인원(All-in-One) 홈브루잉 장비를 생산하는 인천의 ‘브루캐스케이드’라는 곳이었다. 필자를 비롯한 많은 홈브루어들은 누구나 한 번쯤 중국이나 미국에서 생산되는 올인원 장비에 눈독을 들여봤을 것이다. 그런 올인원 홈브루잉 장비가 한국에서 만들어지고 있었다니! 브루케스케이드가 이번 KIBEX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임윤환 대표를 만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내 맥주를 만드는 것을 꿈꾸곤 한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맥주를 만들 것이라는 야심도 잠시, 막상 집에서 맥주 만드는 법을 찾다 보면 회의감이 들곤 한다. 맥주 만들기가 생각보다 어렵고 번거롭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쉬운 방법을 찾자니 ‘내가 직접 맥주를 디자인한다’는 매력을 저버리고 키트 형태의 제품들을 쓰는 수밖에 없다. 퀄리티가 높으면서도 내가 디자인한 맥주를 좀 쉽고 편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걸까. 이러한 사람들을 위한 최적의 아이템이 바로 ‘올인원’ 홈브루잉 장비이다. 올인원 홈브루잉 장비에 대한 수요 자체는 꾸준히 있는 편이지만, 우리나라에는 홈브루잉 문화가 그다지 보급돼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시장성이 부족할 텐데도 이러한 제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저는 조그마한 제조업체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취미로 테니스를 치곤 했는데 너무 무리하다 보니 몸이 망가지게 됐죠. 그래서 다른 취미를 찾는 와중에 맥주를 발견하게 됐어요. 운이 좋게도 제 친한 친구의 형님이 당시 ‘카브루’의 사장님이었거든요. 맥주를 접하고, 공부하고, 카브루를 직접 둘러보다 보니 양조 설비에 대한 것을 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처음엔 야심 차게 양조장을 만들어서 운영해 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양조 공구와 장치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장비도 이것저것 만들어봤고요. 그러다 보니 양조장보단 20L짜리 소규모 장비에 관심이 가서 이러한 것을 만들게 됐습니다. 업은 아니고 취미 삼아서 만들고 있어요.”
현재 판매 중인 이곳의 대표작 ‘New BC-20L’은 기본적으론 홈브루잉의 방식 중 하나인 ‘BIAB(Brew In A Bag)’의 방식을 따른다. 겉에 큰 통이 있고, 그 안에 맥아를 넣을 수 있는 통이 하나 더 있으며 맥아를 넣을 수 있는 통의 겉면과 아랫면에는 작은 구멍들이 여럿 뚫려있다. 당화(Mashing)는 안쪽 통에 맥아를 넣고 따뜻한 물을 넣고 진행하면 된다. 이후 이 통을 들어내는 것만으로 라우터링 (Lautering)이 끝나므로 빠르고 간편하다는 것이 ‘BIAB’의 장점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맥즙(Wort)이 다소 탁하게 나오고, 당이 추출되는 수율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브루캐스케이드’의 ‘New BC-20L’은 이런 문제를 월풀(Whirlpool)을 통해 해결했다. 당화가 진행되는 동안 맥즙을 일정한 방향으로 회전시켜 줌으로써 당 추출 수율을 높이고, 그레인 베드(Grain Bed)를 더 탄탄하고 조밀하게 만들어줌으로써 맑은 워트가 나오도록 했다. 당화를 하는 동안 볼라우프(Vorlauf)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이로써 맥주의 퀄리티와 수율, 편의성을 모두 챙길 수 있게 된다. 물론 BIAB 시스템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평범한 라우터링과 스파징도 할 수 있게 만들어 두었다.
이러한 편의성과 퀄리티에도 불구하고 올인원 장비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가격이다. 30만원 남짓이면 홈브루잉 장비를 나름대로 충분히 맞출 수 있는데 반해, 올인원 장비의 가격은 이것의 몇 배를 호가하기 때문이다. 물론 올인원 장비가 훨씬 좋은 첨단 기술을 갖추고 있긴 하지만, 이러한 가격 차에도 불구하고 올인원 장비를 구매해야 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을까.
“홈브루잉을 제대로 하기 위해선 적어도 통이 3개는 필요합니다. 당화를 하는 당화조, 스파징용 뜨거운 물을 담아두는 통, 맥즙을 끓이기 위한 자비조까지 총 세 개죠. 이것들을 전부 옮기고 들고, 청소하는 것은 대단히 번거로운 일입니다. 그리고 통에서 통으로 옮기는 과정도 역시나 번거롭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 장비로는 손쉬운 양조가 가능합니다. 이 장비 안에서 모든 것이 이루어지니까요. 또한 홈브루잉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이 쉽게 홈브루잉을 익히는 데에도 도움이 많이 될것입니다. 홈브루잉이 익숙한 분들은 훨씬 간편하고 전문적인 양조가 가능해지고요.”
사실 올인원 홈브루잉 장비는 해외에선 이전부터 판매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임윤환 대표는 다시금 한국에서 새로운 올인원 장비를 만들어 냈다. 후발주자로서의 장점은 선행 제품들의 단점을 미리 알고 보완할 수 있다는 점 아니겠는가. ‘브루캐스케이드’의 장비들이 ‘로보브루(Robobrau)’, ‘브라우마이스터(Braumeister)’, ‘그레인파더(Grainfather)’ 등의 이미 시장에 존재하는 상품들에 비해 가지는 장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브라우마이스터’는 탄탄하고 좋은 장비예요. 하지만 접근하기엔 가격이 높은 감이 있죠. 그리고 사용해야 하는 물의 양과 맥아의 양이 어느 정도 룰처럼 정해져 있는 편이에요. 다양성의 측면이 아쉽죠. 그에 비해 저희 제품은 변화에 자유롭습니다. 또 ‘그레인파더’는 뉴질랜드, ‘로보브루’는 호주의 기술력으로 중국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이에요. 덕분에 가격이 장점이긴 하지만, 퀄리티가 아쉬운 곳이 많습니다. 가령 용기 마감 시 철판 두 개를 서로 접은 이후에 용접을 해뒀어요. 이 경우 이음매에 틈이 생겨서 식품용기로선 위생상 좋지 않거든요. 저희는 이러한 틈새가 없도록 디테일하게 마감을 합니다. 또 ‘로보브루’ 등은 보일러를 본체 하단에 용접해 놓은 형태여서 보일러에 문제가 생기면 통 전체를 다 바꿔야 한다는 점도 문제가 됩니다. 반면 저희는 보일러를 따로 둬서 고장 나면 손쉽게 교체가 가능합니다. 이처럼 다른 해외 제품들을 보고 아쉬웠던 점을 많이 개선했어요.”
이외에도 ‘브루캐스케이드’의 제품은 양조사가 원하는 대로 온도 스케줄링을 설정할 수 있고, 이를 자동으로 실행해준다는 장점이 있다. 평소 귀찮아서 거의 건너뛰는 스탭 매슁(Step Mashing) 등을 알아서 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마다 알람이 울리게끔 설정할 수도 있어서, 보일링 할 때 홉이나 월플록(Whirlfloc) 등을 넣는 타이밍 등을 놓치지 않도록 해준다. 이러한 편의성과 퀄리티 때문에 현재 ‘카브루(Kabrew)’나 ‘와일드 웨이브(Wild Wave)’ 등의 많은 우리나라 브루어리에서도 이곳의 제품을 테스트 배치용으로 쓰곤 한단다. ‘몽트비어’ 같은 곳은 100L짜리 파일럿 배치용 장비를 직접 만들어주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추가로 계획하는 것이 있냐는 질문에 임윤환 대표는 굉장히 흥미로운 답변을 들려주었다. “일단 새로운 올인원 장비인 ‘술통’을 출시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한 배치에 200~300L 정도 되는 굉장히 작은 사이즈의 브루하우스 제품을 만들 계획입니다. 3개월쯤 뒤에 그러한 저희 제품을 직접 이용해서 양조해 볼 수 있는 공간을 인천에 만들 생각이고요. 코니컬 발효조와 BBT, 케그 세척 기계까지 갖춰서요. 병입 기계도 한번 도전해보고 싶네요. 사실 브루하우스는 아무리 전문가라도 직접 돌려보기 전까진 맥주가 어떻게 만들어질지 모릅니다. 그래서 직접 양조를 해보고 저희 장비를 선택할 수 있게끔 해주고 싶었어요. 자금이나 규모에 어려움이 있는 곳이어도 부담 없이 양조할 수 있게끔 말이죠.”
인터뷰에 응하는 그의 모습은 시종일관 양조와 장비에 열정적이었다. 본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별다른 시장성이 없음에도 과감히 뛰어들어 훌륭한 장비를 만들어내고, 멈추지 않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자 하는 ‘브루캐스케이드’. 우리나라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미래는 분명 긍정적일 것이다. 이러한 열의와 노력을 쏟는 사람들이 꾸준히 함께하는 한말이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