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3년차 F64 탭하우스 변성진 대표 인터뷰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 공간의 힘
월요일보다 금요일이 더 기다려지는 직장인의 삶은 고달프다. 무표정한 사람들 사이에서 꿈과 비전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반복되는 일상이 답답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벽 앞에 오늘도 한숨을 내쉬며 출근길에 나선다. 회사를 그만두고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하고 싶지만,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경제적 수익은 어떻게 담보할지, 불분명한 미래가 눈 앞에 펼쳐진다. 막막한 무력감을 떠안은 채 언젠가 나와야 할 회사 책상을 바짝 당겨 앉으며 그저 오늘을 살아간다. 많은 직장인의 삶이 갑갑한 이유이다.
서울 성북동에는 갤러리에 온 듯 묘한 경험을 선사하는 크래프트 맥주 펍이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과 시끄러운 음악으로 치장했지만, 역설적으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흔한 동네 맥줏집이 아니라 자신만의 독특한 전문성을 공간에 군데군데 녹여 냈다. 감각적인 구성 때문인지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성북동을 찾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F64’라는 크래프트 맥주 펍의 이야기이다.
한 때 잘 나가던 사진기자를 뒤로하고, 지금은 크래프트 맥주 펍 오너가 된 F64의 변성진 대표는 어떻게 퇴사 이후의 삶을 준비했을까? 시장 분석을 했다면 누구라도 기피했을 성북동에서 크래프트 맥주로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이룩해낸 변성진 대표를 만나보았다.
#1. 취미를 넘어선 전문성을 갖춰라
F64는 카메라 조리개 값의 이름이다. 다소 생소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변성진 대표의 이색적인 커리어 때문이다. 그는 1998년부터 사진기자로 커리어를 시작, 국내 유명 언론사를 두루 거치며 15년간 사진 전문기자로 일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시기, 하우스 맥주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 처음으로 크래프트 맥주를 맛보았다. 그 길로 맥주에 푹 빠졌고, 전국에 날고 긴다는 펍을 두루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유투브를 선생님 삼아 취미로 시작한 양조가 수준급에 이르렀을 무렵, 그는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하게 된다. “회사를 다닐 때는 남 좋은 일만 하는 기분이었어요. 잘해도 욕먹고, 못해도 욕 먹는 게 직장인이잖아요.” 좋아하는 사진을 평생 하기 위해 제2의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결심, 자연스레 크래프트 맥주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전문성을 갖추기 위해 되멘스(Doemens) 아카데미 비어 소믈리에 과정과 경희대 비어마스터 과정을 수료했다. 어느 정도 때가 되었다고 판단했을 때 퇴사를 감행했다. 이후 낮에는 프리랜서 사진작가로서 전문 스튜디오 촬영, 웨딩 촬영 등 사진으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했고, 밤에는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조금씩 채워 나갔다. 유명 이자카야에 취업, 1년여간 근무하며 주류 관리부터 메뉴 개발, 고객 응대까지 펍 운영에 필요한 노하우를 습득했다. “하루 3~4시간씩 자면서 일했는데 전혀 피곤하지 않았어요. 하고 싶은 일이 있었으니까요.” 쉬는 날이면 장사가 안되는 펍을 골라 다니며, 안되는 곳은 왜 안되는지 관찰했다. 유행을 예측하기보다 몇 년을 해도 변치 않는 것을 고민하고 싶었다. ‘무엇을 보는지’보다 ‘어떻게 보는지’가 중요한 이유이다.
#2. 콘셉트의 힘
크래프트 맥주 펍 창업에서 매장의 위치와 콘셉트는 중요한 고려 요소이다. 변성진 대표가 F64 1호점을 성북동에 낸 이유는 예술에 최적화된 고객 경험을 주기에 적합한 지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회화나 시각 디자인 등 예술 계통 대학이 주변에 있고, 갤러리와 박물관이 도처에 있어서 ‘예술 하는 분위기’를 느끼기에 이만한 곳이 없었다. 1호점의 콘셉트는 ‘예술 하는 사람들을 위한 펍’이다. 곳곳에 변성진 대표가 촬영한 사진과 각종 사진용품들이 도드라지지 않게 깔려 있다. 벽면을 활용하여 전시 공간이 필요한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전시회를 열어주기도 한다. 맥주 탭 핸들도 카메라를 모티브 삼아 어떤 펍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참신한 재미가 있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던 성북동에서 살아남은 뒤 변성진 대표는 또 다른 실험에 나섰다. 종로 모텔촌에 F64 2호점을 낸 것인데, 그 콘셉트 또한 이색적이다. ‘우주’를 소재로 벽면을 검게 칠했다. 별이 빛나는 듯한 미러볼과 사이키델릭한 일렉트로닉 음악으로 공간을 채웠다. 변성진 대표는 F64 2호점을 ‘종로점’이 아닌 ‘코스모스’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미식 강국인 일본의 프로듀싱 계열점이 그러하듯 모체의 노하우를 유지한 채 브랜드와 메뉴가 서로 다른 공간을 늘려 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흔히 어떤 외식 브랜드가 잘 되면 이를 전국 브랜드화하여 체인망을 넓혀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한 통념을 F64는 과감히 깨뜨리려고 한다. “종로 모텔촌은 젊은 청춘들이 쉬어가는 곳이에요. 그들이 좋아하는 메뉴가 필요했고 떡볶이와 튀김을 주메뉴로 선정했어요.” 크래프트 맥주 펍임에도 불구하고 배달의민족과 연계, 상권 특성을 꿰뚫은 덕분인지 인터뷰 내내 떡볶이와 튀김 배달 주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피 끓는 남녀노소의 혈기가 한데 뒤섞인 종로 상권은 분위기를 정의 내리기 쉽지않다. 이러한 지역 특색을 반영하듯 F64 코스모스는 콘셉트가 규정되지 않은 것이 콘셉트라는 변성진 대표의 설명이 이해되었다.
#3. 결국 사람이다
변성진 대표는 F64 크래프트 맥주 비즈니스를 시작한 지 올해로 3년 차가 되었다. 스타트업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 창업 3년 차 이후 자금난으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을 넘기고 사업을 지속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결국 모든 것은 사람으로 귀결되더라고요. 다양한 소비자들의 취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없어서 제 기준대로 세분하게 분류했어요. 그랬더니 타깃에 맞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그들의 취향을 추종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분들까지 만족시킬 수 있게 되었죠.” 창업 전 이자카야에서 일하며 직원 입장에서 생각하는 법을 배웠던 경험 또한 큰 자산이 되었다. “직원들에게 자부심을 심어 주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에요. 다른 곳보다 더 많은 급여를 주고, 제대로 펍 비즈니스 업을 배울 수 환경을 제공하는 겁니다.” F64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는 2년이 넘는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라 다같이 성장하고 과실을 나누는 팀이라고 정의했더니, 성장의 속도도 빨라졌다.
변성진 대표가 꿈꾸는 F64의 미래는 무엇일까? 그는 맥주를 매개로 사람들이 모이는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2년에 하나씩 새로운 콘셉트의 펍을 내고, 그 숫자가 4~5개가 되면 꿈을 현실화할 기회가 찾아올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난 뒤 종로 뒷거리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술집과 내일이 없는 듯 한껏 취해 오늘의 안녕을 노래하는 사람들을 보았다. 모두가 퇴사하고, 창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체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살아야 한다. 누구나 언젠가 마지막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뿐이다. 앞으로도 F64가 오랫동안 살아남아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도전의 씨앗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남아있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EDITOR_오명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