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 분자 단위까지 구석구석 파헤쳐보기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커짐에 따라 이젠 맥주 재료에 대한 정보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됐다. 많은 사람들이 홉이 맥주에 쓴맛과 여러 향을 준다는 정도는 알게 된 것 같고 맥주 대기업도 홉을 마케팅용으로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또 나아가 홈브루잉 등을 위해 홉을 직접 구입해서 사용해보기도 한 사람도 꽤나 많이 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배치에서는 시중의 흔한 홉에 대한 정보 그 이상으로 훨씬 심도 있는 내용을 원하는 분들을 위해 홉에 대해 구석구석 파헤쳐 보는 글을 준비했다
홉이란 무엇인가
비어포스트 Batch05(2016년 4월호)에서 다룬 바 있는 식물로서의 홉을 다시 한번 짚어보도록 하자. 홉은 기둥을 타고 올라가 성장하는 덩굴 형태의 식물로 오랜 기간 생장할 수 있으며 주기적으로 꽃을 틔우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맥주에 사용되는 홉이라는 것은 홉 덩굴의 열매가 아니라 홉의 암꽃을 지칭한다. 수정되지 않은 홉의 암꽃이 성장하여 수정 적기가 되면 꽃잎 내부의 루플린 선(Luplin Gland)이 노랗게 부풀어 오르며 이 선 내부에 있는 레진 (Resin)과 에센셜 오일(Essential Oil)이 실질적으로 맥주의 맛과 향을 내는데 사용된다. 반면 홉의 수꽃은 암꽃과는 달리 루플린 선을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맥주엔 사용되지 않는다.
홉은 한 나무에서 한 종류의 성별만을 지니고 있는 꽃을 틔우는 ‘자웅 이주’ 식물이다. 암꽃을 틔우는 나무는 암꽃만을, 수꽃을 틔우는 나무는 수꽃만을 틔우는 식으로 말이다. 이때 수꽃의 꽃가루와 암꽃이 만나 수정을 하고 씨를 형성하게 되면 더 이상 맥주에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다. 때문에 홉 농장에선 홉 수꽃의 존재를 배제하고 오로지 암꽃만을 키운다.
홉의 구성 요소들
홉의 암꽃(이하 홉)은 절반 이상이 셀룰로오스(Cellulose, 식물 세포벽의 주된 구성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15% 정도의 단백질, 10% 정도의 수분, 8% 정도의 미네랄, 기타 소량의 폴리페놀, 지질과 지방산, 펙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외에 앞서 말한 레진이 홉의 종류에 따라 15~25%, 에센셜 오일이 0.5~3% 정도 포함되어 있다. 레진은 크게 알파 산(α-Acid)과 베타 산(β-Acid)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중 알파 산은 가열시 이소 알파 산(Iso-α-Acid)으로 이성질체화 하는 성질이 있고 이 이소 알파 산이 홉이 맥주에 쓴맛을 주게 되는 주된 원인이 된다. 그리고 에센셜 오일은 맥주에 홉 특유의 향을 입혀주는 물질이다. 아마 여기까지는 홈 브루잉에 대한 강의를 들어봤거나 어느 정도 맥주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혹은 비어포스트를 꾸준히 읽어 오셨다면) 다들 알고 있을 내용일 것이다.
홉의 에센셜 오일
여기서 조금만 더 깊숙이 들어가 보자. 먼저 살펴볼 것은 에센셜 오일이다. 에센셜 오일은 크게 탄화수소들(Hydrocarbons)과 함산소 화합물(Oxygenate Compounds), 그리고 함질소 화합물(Sulfer Containing Compounds)로 나뉜다. 이들은 각각 또 세부적으로 분류가 되는데 이는 글보다는 표로 보는 것이 더 편할 것 같다.
이렇게 구구절절 에센셜 오일의 성분들을 밝혀 두는 이유는 이들 각각이 얼마나 많이 포함돼 있는지, 어떻게 조합을 이루는지에 따라 홉이 맥주에 들어갔을 때의 맛이 제각기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신선한 IPA를 마실 때 주로 느낄 수 있는 풀잎 같은 그라시 (Grassy)함은 헥사날(Hexenal)과 같은 여러 알데히드(Aldehyde)들에 의해 나며 우리에게 친숙한 홉 향인 오렌지, 자몽 등의 시트러스(Citrus)함은 여러 에스테르(Ester)들과 네롤(Nerol), 리날룰 (Linalool)이, 꽃과 여러 과일과 같은 화사함과 다채로움은 리날룰, 제라뉼(Geraniol), 시트로네롤(Citronellol), 4MMP, 3MH 등이 관여한다. 그리고 허브나 레진(수지, 솔잎과 유사한 향)의 향미는 미르센(Myrcene)과 같은 단분자테르펜과 후물레놀(Humulenol I, II)과 같은 세스퀴테르펜 알코올들로부터 기인한다. 이처럼 같은 홉이라도 어떤 물질이 얼마나, 어떻게 들어있는가에 따라 홉의 맛과 향은 천차만별로 달라지므로 홉을 사용할 기회가 있다면 원하는 풍미를 내기 위해 그 홉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한번쯤 살펴보는 것이 좋다. 실제로 홉에 대한 정보를 다루는 사이트들에 들어가 보면 홉마다 어떤 물질이 어느 정도 들어있는지 상세하게 표기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홉의 레진
이번엔 레진의 이야기를 해보자. 레진은 에센셜 오일과 마찬가지로 루플린 선 내부에 주로 존재하는 물질로 앞서 말한 알파산과 베타산 이외에 연수지(Soft resin), 경수지(Hard Resin) 등도 포함하고 있다. 이 중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단연 알파산인데, 알파산은 단순히 한 종류의 물질만을 칭하는 것이 아니라 후물론 (Humulone), 코후물론(Cohumulone), 아드후물론(Adhumulone), 프리후물론(Prehumulone), 포스트후물론(Posthumulone) 등을 총칭하여 일컫는 말이다(주된 성분은 후물론이다). 앞서 말했듯 열을 가하면 이성질체화 하여 이소 알파산(후물론의 경우 이소후물론(Isohumulone))으로 변하며 맥주에 쓴맛을 준다. 추가적으로 홉의 방부제로서 역할 또한 주로 이소 알파 산이 담당한다. 그러나 사실 현대엔 냉장 기술과 포장 기술 등의 발달로 홉의 방부제 역할의 의미는 많이 퇴색됐고, 실질적으론 쓴맛을 얼마나 주어야 할지를 계산하기 위해 홉의 알파산 수치를 확인하여 맥주에 사용한다.
그리고 이렇게 알파산을 통해 산출해 낸 예상 쓴맛 지수를 두고 IBU(International Bitterness Unit)라 칭한다.
이외에 베타산이나 연수지는 맥주의 쓴맛에 기여를 하기는 하나알파산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이기에 크게 고려되진 않으며, 경수지는 쓴맛은 없고 계면활성제로 작용하거나 향미에 기여하는 역할을 한다. 또 레진은 장기간 저장될 경우 산화되거나 중합되는 성질이 있어 점점 쓴맛을 내는 능력을 잃게 된다. 람빅과 같은 쓴맛과 홉향의 비중이 미미한 맥주의 경우는 이를 이용하여 오랜 기간동안 묵힌 홉을 사용해 맥주를 만들곤 한다.
최근에는 이러한 레진의 수율을 높이기 위하여 홉 추출물(Hop Extract)을 사용하기도 한다. 맥주를 만들 때는 수확된 생 홉(Wet Hop)채로 바로 넣거나 유통 시 부피를 줄이기 위해 갈아서 압축한 펠렛(Pellet) 형태의 홉을 쓰기도 한다.
이러한 방식은 사용하기 간편하다는 장점은 있으나 이소 알파 산의 수율이 떨어진다는 점, 또 홉의 꽃잎(초록색 이파리 같은)의 수분 흡수로 인한 맥주 로스가 생긴다는 점, 홉의 보관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홉에서부터 원치 않는 이취(Off-Flavor)가 날 수도 있다는 점 등의 단점들이 있으므로 최근에는 홉 추출물도 활발히 사용되는 추세다. 가령 이소 알파 산의 수율의 측면에서 봤을 때 생 홉은 25~30%, 펠렛은 35~40%정도의 이소 알파 산 수율을 보이는 반면 이를 추출해서 사용했을 경우에는 40~45%정도의 효과적인 이소 알파 산 수율을 보인다. 추가적으로 홉 추출물을 사용했을 때는 쓴맛 등의 지표에서 원하는 수치의 결과를 좀 더 일관되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홉은 추출 방식이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론 에탄올이나 헥산과 같은 유기 용매(Organic Solvent)를 이용하는 법과 액화 이산화탄소 또는 초임계 이산화탄소F1)(Supercritical Carbondioxide) 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보통은 분쇄기(Macerator)를 이용하여 홉을 분쇄한 뒤 추출기를 이용하여 위의 방법을 통해 레진 등 홉의 내용물을 추출하고, 필터를 통해 잔여 홉 찌꺼기를 걸러낸 후 증발시킨 뒤에 농축시켜서 판매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에센셜 오일 손실이 커서 사실상 향을 입히는 용도로 홉 익스트랙트를 사용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비터링을 위한 용도로는 홈브루잉에서도 사용이 늘고 있는 추세다.
복잡한 글을 읽느라 수고 많으셨다. 여러분이 평범한 맥주인이라면 홉에 대해 이 정도까지 알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홉에 대해 좀 더 깊은 정보를 원했던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하는 바람이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