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와 함께하는 시원한 맥주 한 잔’ 수박과 들쥐 by 신사임당 X 로스트 코스트 브루어리, 워터멜론 위트
장마가 이어져 연일 비가 내리더니, 어느새 다시 해가 쨍하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8월.
누군가는 무더위를 이겨내는 최고의 방법이 제철 과일 - 그 중에서도 수박이라 하고, 누군가는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최고라 한다. 그렇다면 수박이 들어간 맥주는 더위를 이기기에 궁극의 비책이 아닐까? 시원한 수박 그림과 함께, 로스트 코스트 브루어리의 프룻 비어를 하나 소개한다.
혹시 5만원권이 있다면 한 번 꺼내어 보자. 거기에는 갑론을박을 거쳐 지폐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선정된 그녀, 신사임당이 있다. 조선 중기에 활동한 그녀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한계를 극복하고 시, 그림, 글씨에 능한 여류 예술가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또한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도 집안의 현모양처로서도 빠지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그녀는 요즘 말로 소위 ‘원더우먼’ 같은 여성이었다.
어릴 때부터 안견의 몽유도원도, 적벽도 등의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그림 실력을 키워온 그녀는 풀벌레와 과일 등을 그리는 데에 탁월한 재주가 있었다. 신사임당의 천재성에 대한 이야기는 아마 누구라도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빌린 치마가 잔칫집에서 더러워져서 곤란해하는 한 부인을 위해 신사임당은 얼룩진 치마폭에 슥슥 탐스러운 포도 한 송이를 그려준다. 진짜 같은 포도 그림에 치마를 사겠다는 사람들은 너도나도 값을 올려 불렀고, 그 돈으로 새치마를 사고도 오히려 돈이 남았다는 일화에서 그녀의 훌륭한 그림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신사임당의 ‘수박과 들쥐’는 자연의 한 경치를 포착한 것으로 들쥐가 수박밭에 몰려와 수박을 파먹고 있는 그림이다. 오른쪽의 패랭 이꽃은 청춘을 뜻하고, 쥐는 재물과 다산을 뜻하며 씨가 많은 수박도 역시 자손의 번창을 기원한다고 한다. 아들 율곡과 그 형제들의 안녕을 기원하며 그린 그림이라 전해진다. 어머니다운 마음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단순한 구도에 그녀만의 섬세하고 여성적인 표현이 묻어난다. 무더운 여름 오죽헌의 대청마루에 앉아서 수박을 보며, 가족과 자식들의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화폭에 담아냈을 신사임당의 모습이 그려진다. 정물화를 그리고서는 수박을 알뜰히 잘라 가족들과 나누어 먹으며 더위를 식히지 않았을까?
함께 소개하는 로스트 코스트 브루어리의 워터멜론 위트 비어는 달달한 수박향이 느껴지는 프룻 비어다. 사실 ‘프룻 비어’라는 맥주의 종류는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고대 이집트 시절 맥주에 석류 등의 과일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었다고 하기도 하나 맥아, 홉, 물, 효모 이외의 원료를 양조에 사용하지 못하게 한 독일의 ‘맥주 순수령’의 영향인지, 벨기에의 람빅 외에는 특별히 과일이 들어간 맥주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다양한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생기고, 맥주 양조에 여러 시도를 하고, 새로운 재료를 실험적으로 사용하면서 맥주계에서 다양한 프룻 비어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프룻‘비어’라는 이름답게 맥아, 홉, 물, 효모의 베이스에 자신만의 개성이 더해진 맥주들이다.
그 중에서도 워터멜론 위트 비어는 밀맥주에 천연 수박 추출물이 들어간 가볍고, 상큼한 수박 에일이다. 탄산은 강한 편이고 전반적으로 마시기 편하며 한 모금 마실 때마다 은근하게 달콤한 수박향이 느껴진다. 여름이 되면 이태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수박 모양이 그려진 워터멜론 위트의 잔을 여기저기서 볼 수가 있다. 몇몇 펍에서는 수박 조각을 잘라 가니쉬로 사용해서 멋과 맛을 더하기도 한다. 점점 더 더워지니 인스타그램에도 ‘수박맥주’로 다양한 사진들이 올라오고 있다.
워터멜론 위트 비어, 로스트 코스트 브루어리
프룻 비어 / 5.0 %
워터멜론 위트 비어를 만든 로스트 코스트 브루어리는 1990년 처음 양조장을 오픈하고 지금도 여러 시도를 멈추지 않는 브루어리다. 지금에야 캘리포니아 하면 내로라하는 크래프트 브루어리 이름들이 술술 나오지만, 이 당시에만 해도 마이크로 브루어리에서 양조를 하고, 실험적인 맥주를 만드는 일은 꽤나 생소한 일이었다.
그들은 꾸준히 양조를 이어나갔고, 한국의 크래프트 비어 초창기 코끼리, 상어가 그려진 독특한 라벨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기도 했다. 요즘도 꾸준히 귤, 라즈베리, 수박 등 다채로운 맛이 나는 프룻비어나 다채로운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 내고 있다. 훌륭한 맥주의 기본을 지키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가며 자신만의 개성을 뽐내는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들의 모습은 조선시대 현모양처의 롤모델이면서도 자신만의 재능을 펼쳤던 신사임당의 모습과도 어쩌면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오늘, 한적한 펍에 혼자 앉아 수박 맥주 한 잔 하며 잠시 기분을 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한참 읽었으니, 홍대 쪽의 펍이면 더 좋겠다. 수박 맥주에 수박을 꽂아주는 곳을 한 번 찾아서 가보자. 왠지 있어 보이는 잡지도 하나 옆구리에 껴들고, 가는 길에 5만원 권 하나도 뽑아가 볼 것. 맥주를 마시면서 상쾌함을 양껏 느끼고 계산할 때 신사임당 얼굴을 슥 내민다면 예술을 사랑하는 서울 힙스터의 느낌이 더욱 더해질 것 같다. 뭐, 아니면 말고.
EDITOR_비어캣(Beerk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