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산업 뉴스 읽기 대기업도 포기하는 맥주 국내 생산, 무엇이 문제인가?
지난 7월 초순, 오비맥주가 그간 국내에서 생산하던 호가든과 버드와이저 캔맥주의 국내 생산을 중단하고 전량 수입하기로 결정했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관련 기사를 소셜미디어에 링크하면서 이에 대한 의견을 적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의 관심이 있어 다듬어서 여기에 쓴다.
여러 뉴스 중 하나로 무심코 지나가는 기사일 수 있겠으나 몇가지는 생각해 볼만한 대목이 있다.
국내 생산을 중단하고 같은 맥주를 수입하는 것.
보도에 나온 수입 맥주를 선호하는 소비자의 편견 때문에 국내 생산을 중지하고 수입으로 전환한다는 이유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본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호가든을 ‘오가든’으로 불렀던 이유는 처음 수입할 때의 맥주 맛과 2008년부터 국내 생산된 맥주의 맛이 다름을 소비자가 인지했기 때문이다. 편견이라니, 맥주가 맛 없다고 얘기하면 편견이란 말인가? 제품의 퀄리티 문제를 소비자의 편견으로 돌리는 것은 궁색한 변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국내에도 이미 소규모 브루어리에서 만드는 맥주 중 호가든보다 맛있는 맥주가 많다. 국내 생산했다는 이유로 맛이 없다고 하는 편견을 소유한 소비자는 극히 일부가 아닐까 하는데 이것을 일반화하여 수입 맥주로 전환의 구실을 삼은 것으로 보인다. 허나 국내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는 절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현 주세법상 종가세 방식은 대기업에게 유리하다. 대규모 생산 설비를 갖추고 대량으로 재료를 구매할 수 있는 자본은 생산원가를 낮출 수 있어 소규모 양조장이 절대 따라 갈 수 없는데 세금은 같은 요율이 적용된다. (단 소규모 양조장의 경우 생산량에 따라 차등적으로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는 있다.) 그런 유리한 상황에서도 국내 생산을 포기하고 수입으로 전환한다는 것은 국내 생산해서 유통하는 것보다 수입해서 유통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이 대목은 맥주 업계에 시사하는 바가 큰데,
1) 세금체계 및 정책이 변화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맥주 산업은 발전하기 어렵다. 대량 생산으로 유리한 대기업마저 생산을 포기하고 수입하는 상황에 소규모 양조장은 지속적으로 시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2) 국내 크래프트 맥주를 표방하는 몇몇 회사들도 해외 양조장에 위탁 생산하여 우리 브랜드를 붙여 수입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이 또한 국내 생산보다 수입이 유리한 상황을 사업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해석된다. 맛있는 맥주에 대한 수요는 늘어나는데 국내 맥주 정책은 쉽게 변할 것 같지 않으니 대기업이든 소기업이든 시장 상황에서 유리한 방향으로 비지니스를 하는 것이 사업적 관점에서 보면 이해는 간다.
그러나 당장 조금 더 이해타산이 낫다고 하여 너도나도 외국 브루어리에 위탁생산하여 수입하다보면 우리나라 맥주의 퀄리티는 향상되지 못할 뿐더러 정말 어렵게 찾아온 새로운 맥주 산업의 기회가 맥주 거품처럼 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2000년 초반에 경험했던 하우스 맥주의 몰락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다면 업계는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3) 영세 수입맥주 회사들 입장에서는 이중고일 수 있다. 맥주를 만드는 대기업이 맥주를 수입해서 만원에 네 캔으로 시장 질서를 재편하면 독립 수입사들은 고육지책으로 그 안에 들어가거나 독자적으로 시장을 개척해야 하는데 이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다. 수입사도 빈익빈 부익부를 타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심히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전세계적으로 크래프트 맥주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에 5000여개의 맥주 브루어리가 있고, 우리와 비슷한 면적의 영국에도 1800여개의 브루어리가 있다고 한다.
개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맥주도 IT 스타트업 회사처럼 사업할 수 있는 환경과 정책이 뒷받침 되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양적 질적 발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000개의 브루어리에서 4명씩만 일한다고 해도 20,00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브루어리에서 생산된 맥주를 판매하는 펍이 브루어리의 10배라고 가정해보면 고용과 경제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 뿐만 아니라 홉 재배나 보리의 재배를 통한 농업과 브루어리 투어나 체험 등의 관광 산업까지 따지면 맥주는 그저 맥주가 아닌 것이다.
정책이, 법이 하루아침에 바뀐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다.
때문에 업계에 많은 사람들이 협심하여 방향을 잡고 왜 바뀌어야 하는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그리하여 그것이 전체에게 무엇이 이로운 지 정책 당국과 지속적으로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
기업이 자사 브랜드의 맥주를 자체 생산하든 수입을 하던 그것은 자율의지지만 왜 그렇게 판단하는지 숙고하여 들여다 볼 일이다.
수입으로 전환하여 외화가 나가는 것은 국가의 손실일 수 있으며 자국의 산업 경쟁력 약화는 더 큰 손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K-POP이 세계의 주목을 받고 한식 또한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는 시대에 맥주라고 그렇지 말라는 법은 없다. 중국으로 수출하는 K-BEER가 왜 아니되겠는가.
EDITOR_이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