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비스킷, 말린과일, 감초... 맥아가 만들어내는 맛
맥아는 맥주의 색, 맛, 향, 질감 모두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맥아의 맛’에 대해 좀 더 집중적으로 다뤄보려 한다. 맥주에서 맥아의 맛이 그저 구수하고 달달한 보리내음 정도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맥아에서 오는 맛은 기본적으로 빵, 비스킷, 토스트 같은 맛부터 감초, 초콜릿, 말린 과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과 캐러멜화 반응(Caramelization)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 반응은 맥아의 맛에 대해 얘기할 때 우선적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이다. 마이야르 반응은 프랑스의 생화학자 L. C. Maillard의 이름을 딴 반응으로 식품 내의 환원당과 아미노기를 갖는 화합물(단백질 등) 사이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나타낸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식품의 가열처리, 조리 혹은 저장 중 일어나는 갈변과 향기의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반응을 말하는데, 고기나 옥수수나 빵을 구울 때 색이 갈색으로 변하고 맛이 좋아지는 것이 모두 마이야르 반응과 관련이 있다.
마이야르 반응이 당과 단백질 사이의 반응이라면 캐러멜화 반응은 단백질이 없을 때 당의 산화에 의해 갈색으로 변하는 반응이다. 쉽게 말해 당을 구워 갈색으로 만드는 반응으로, 말 그대로 캐러멜을 만들거나 길거리에서 파는 뽑기 등을 만들 때 사용되는 반응이다.
대부분의 맥아는 열을 가하는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맥아의 단백질과 당들은 마이야르 반응을 일으키게 된다. 또 캐러멜 몰트 (Caramel Malt)와 같은 몇몇 특수 맥아들은 맥아 내부에서 캐러멜화 반응을 일으켜 만들어진다. 때문에 이러한 맥아들에선 마찬가지로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 반응을 통해 만들어진 음식들인 빵, 비스킷, 토스트, 캐러멜, 흑설탕, 초콜릿, 커피, 토피(서양식 캐러멜)등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맥아에 가한 열처리에 의해 생긴 맛은 크게 ‘캐러멜류의 맛’과 ‘탄맛’ 두 가지로 구분이 가능하다. 이중 캐러멜류의 맛은 약한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 반응에 의해 생기는 맛으로, 주로 기본 맥아와 캐러멜 몰트로부터 기인하는 맛이다. 적합한 말이 없어 뭉뚱그려 ‘캐러멜류’라고 칭하긴 했으나,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 안엔빵, 비스킷, 당밀, 꿀, 토스트, 캐러멜, 흑설탕, 토피, 감초 등 굉장히 다양한 단맛들이 포함되어 있다.
캐러멜 류의 맛(Caramel Taste)
맥아에서 느낄 수 있는 주된 풍미는 가열로 인한 마이야르 반응과 캐러멜화 반응을 통해 만들어진 풍미들이다. 이 반응으로 만들어진 맛 이외에 곡물에서 오는 거친(Grainy) 맛과 비발효당인 말토오즈 (Maltose)에서 오는 맛, 워티(Worty)함과 페놀(Phenol)에서 오는 맛등은 숙달된 전문가가 아닌 이상 이해하거나 구분하기 어려운 맛이므로 이번 글에선 생략하도록 하겠다.
이러한 캐러멜류의 맛은 찾기가 굉장히 쉽다. 바이젠 같이 맥아의 캐릭터를 많이 절제한 맥주가 아닌 이상, 사실상 모든 맥주에서 드러나는 맛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친숙한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 (Pilsener Urquell)을 예시로 들어보자. 그간 몰트로부터 오는 맛에 집중하지 않고 들이켰다면 그저 시원하고 쌉쌀한 맥주로 인식되었을지도 모르나, 조금만 자세히 음미해보면 빵과 캐러멜 등의 달짝지근함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좀 더 풍부하게 캐러멜류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이러한 맛들을 집약시켜 놓은 맥주인 브라운 에일이나 잉글리시 비터, 벨지안 두벨 등을 찾아 마셔보는 것도 좋다. 풀러스 (Fuller’s)의 런던 프라이드(London Pride)나 ESB, 뉴캐슬 브라운 에일(Newcastle Brown Ale), 베스트말레 두벨(Westmalle Dubbel) 등이 시중에서 찾기 수월한 예시가 될 것이다.
이외에 재밌는 예시로 벨지안 다크 스트롱 에일(쿼드루펠 등)을 꼽아 볼 수 있다. 이 스타일은 어두운 색을 띄고 있기는 하나 생각만큼 탄 맛의 캐릭터가 풍부히 들어있진 않다. 대신 건포도, 말린 자두 등의 말린 과일류의 독특한 맛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맛은 효모에서 기인하는 것도 있기는 하나, 독특한 캐러멜 몰트(Special B 등)를 비롯한 여러 맥아를 다양하게 섞어 써서 내는 맥아의 맛이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 세인트 버나두스 앱트 12(St. Bernardus abt12) 나 트라피스트 로슈포트 10(Trappist Rochefort 10) 등이 이러한 맥주의 좋은 예시가 되어 줄 것이다.
탄 맛(Burnt Taste)
탄 맛은 강한 마이야르 반응과 더불어 맥아의 내부나 껍질이 타면서 생기는 맛이다. 초콜릿 몰트, 로스티드 발리 등 색이 까만 일부 특수 맥아에서 주로 기인한다. 그 색에서 느껴지듯 탄 맛은 주로 커피, 카카오, 다크 초콜릿, 스모키(Smoky) 등으로 표현이 되곤 한다.
이들의 맛을 가장 잘 감지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하게도 검은색 맥주의 대표주자인 포터와 스타우트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어느 포터나 스타우트를 마셔 봐도 커피나 다크 초콜릿, 구운 빵 정도의 캐릭터는 존재한다. 그 외에 감초, 건포도, 말린 과일, 토피 등의 추가적인 개성이 맥주별로 다르게 나타난다.
이외에 저 분류에 속하지 않은 굉장히 독특한 맥아의 맛도 존재하긴 한다. 대표적인 것이 라우흐비어에 쓰이는 라우흐 몰트(Rauch Malt)로, 훈제를 하여 만들어진 맥아이기에 먹어보면 정말로 훈제 고기와도 같은 맛이 난다. 혹은 위스키에 주로 쓰이는 피트(Peat)로 구운 몰트를 이용하여 피트향이 나는 맥주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맥아 하나만으로도 여러 맛을 낼 수 있기에 맥주는 그 어떤 주류보다도 다양하고 복잡한 맛을 낸다는 매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