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링 페어링 #7 세종 뒤퐁 X 새우 팟타이
비어링 페어링 일곱 번째 맞춤
세종 뒤퐁 X 새우 팟타이
도시에선 익숙지 않은 일이지만 농촌에선 일하는 중에 술을 마실 때가 종종 생긴다. 밭을 매거나 고추를 수확하다가 보면 새참 생각이 간절하고, 새참에 곁들일 술이 빠지면 섭섭하기 마련. 작업 중에 술이 웬 말인가, 하신다면 한 번쯤 농촌 일을 도우러 내려가 보길 추천한다. 새참으로 나온 매콤한 비빔국에서 막걸리 한 잔에 딱딱하게 굳었던 어깨가 풀리는 경험을 해본다면 그 필요성을 깨닫게 되실 테니.
우리나라나 벨기에나 농부에게 술 한 잔 필요한 마음은 비슷한 모양이다. 우리나라 농부에게 피로를 달래주는 막걸리가 있듯 벨기에 농부에겐 갈증을 몰아내는 세종이 있었으니까.
조선 시대엔 집마다 자신만의 막걸리 양조법이 있었던 것처럼 벨기에도 과거엔 농가마다 특색있는 세종 양조법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세종은 분류 자체가 상당히 어려운 맥주 종류이기도 하다. 양조자에 따라 재료가 천차만별이어서 맛, 색상, 향을 하나의 계통으로 통일하기 어렵기 때문.
하지만 점차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다양했던 가양주 문화가 자취를 감췄다는 흔하면서도 슬픈 이야기가 벨기에서도 전해진다. 게다가 맥주 역사를 돌아보다 보면 악당처럼 등장하는 필스너 계열 라거 맥주는 언제나처럼 맥주 생태계를 파괴했다. 20세기 중반을 거치는 동안 라거 폭풍 아래 수많은 소규모 세종 양조장이 문을 닫았다.
세종 뒤퐁
뒤퐁 양조장은 그 거대한 흐름 앞에 패배하지 않았다. 노하우를 살린 필스너 맥주를 도입해 흐름을 타면서, 동시에 전통적으로 만들던 세종도 지켜냈다. 덕분에 벨기에 농가에서 맛볼 수 있던 전통적인 세종을 지켜냈다. 현재까지도 세종 뒤퐁은 세종 본연의 스타일과 맛에 가장 가까운 맥주로서 전 세계 맥주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다. 그들이 정립한 세종은 밝지만 탁한 색감, 홉이 주는 씁쓸함에 더해진 은은한 과일 향, 그리고 강한 탄산감을 지녔다. 다만 집마다 다른 양조법이 특징이었던 만큼 현대에 와서 시도되는 세종의 변주는 무궁무진하니 이게 세종의 정답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종류 상면발효맥주, 세종
원산지 벨기에, 투르프
양조장 뒤퐁 양조장(Brasserie Dupont)
원료 물, 보리맥아, 효모, 홉, 설탕
도수 6.5%
용량 250ml
새우 팟타이
무더운 여름엔 무더운 나라의 요리를 먹어주면 좋지 않을까. 1년중 4개월 정도 더운 우리나라보다 1년 내내 더운 그곳 나라 사람들이 더위에 있어선 더욱 전문가가 아니려나. 그래서인지 입맛이 떨어지는 더위가 찾아오는 8월이면 동남아 요리를 많이 먹게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주 만드는 건 태국 요리. 태국 요리를 하나의 맛으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대체로 맵고 달고 짜고 고소하다. 어쩜 한 요리에 이렇게나 다양한 맛이 들어갈수 있지, 맛을 볼 때마다 감탄한다. 그래서인지 전 세계를 대상으로 가장 맛있는 요리 선발 앙케트를 하면 태국 요리는 늘 상위권에 들어간다. 그 강렬한 맛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한번 맛을 보면 언젠간 꼭 다시 떠오르는 그런 맛이다. 강한 향신료 탓에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지구온난화 탓인지, 아니면 해빙기가 찾아온 탓인지, 여름은 점점 더 뜨거워진다. 몸은 녹아내릴 것처럼 축축 처지고 입맛은 저멀리 도망쳐서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 태국인들의 지혜를 빌려와야 할 순간이다. 여름에 어울리는 태국 요리로 새우 팟타이를 골라 보았다. 뜨겁게 볶아낸 면을 후루룩 삼키면서 입 안 가득 퍼지는 매콤함을 즐기면 어느새 몸이 조금씩 달아오른다.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이열치열 그 자체. 입에서 펼쳐지는 여러 가지 맛의 향연은 어느샌가 집 나간 입맛을 불러왔다. 몸에서 열이 나니 더위도 한결 가신다. 팟타이에는 보통 돼지고기, 닭고기, 새우 등등을 사용한다. 이번엔 새우를 넣어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바다에 가고 싶은 소망을 나타내는 나만의 상징!
팟타이 레시피 (1인분)
면 1인분(80-90g), 마늘 3알, 양파 1/2개, 청양고추 1개, 쪽파 5줄기, 숙주 두 줌, 달걀 1개, 칵테일 새우 7마리, 소금 한 꼬집, 후추 약간, 라임 1/2개, 땅콩 한 줌
tip 1. 면을 잘 불리지 않아 요리할 때 너무 뻑뻑할 경우 물을 추가하며 볶는다. 간이 심심해졌다면 피시 소스를 더 해 간을 맞추는 것을 추천.
tip 2. 취향에 따라 고수를 올린다.
세종 뒤퐁 X 새우 팟타이
세종 뒤퐁은 농가 맥주 특유의 거친 풍미를 완성도있게 재현했다. 뜨거운 여름 태양 아래서 갈증을 느낄 농부를 위한 맥주답게 강한 탄산이 청량감을 더해준다. 풍부한 홉의 풍미가 입안을 쌉싸름하게 채우고 곧이어 이어지는 효모의 달큰한 내음은 갈증을 해소하기에 좋다. 전체적으로 잘 익은 밀밭처럼 밝은 노란빛이다. 침전물이 떠다니는 탁한 색은 막걸리를 떠올린다.
지글지글 끓어오를 듯한 여름 날씨를 떠올리며 한 모금 마셔본다. 햇살 아래 빳빳하게 건조된 건초더미가 내뿜는 기분 좋은 향과 더불어 초원에 가득 피어난 들꽃이 주는 향기가 코에 닿는다.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맛과 풍부한 탄산감이 자아내는 시원한 목넘김이 인상 깊다. 갈증을 느끼는 농부의 마음으로 쉬지 않고 모두 마셔버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이번에 사용한 페어링 전략은 ‘조화로운 맛 찾기’였다. 알싸한 요리와 씁쓸한 홉은 조화로운 맛에 속한다. 멕시코 요리와 아이피에이가 잘 어울리고, 양념치킨과 드라이한 라거 맥주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매콤한 맛과 씁쓸한 맛은 서로를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세종 뒤퐁과 새우 팟타이를 함께 페어링한 이유다.
새우 팟타이는 다채로운 맛과 식감을 선사한다. 고추에서 나온 매콤함, 피시소스의 감칠맛, 갓 짠 라임즙의 새콤함과 더불어 고소한 땅콩과 전체적으로 달달한 열대의 맛 등, 맛의 팔레트가 펼쳐진다. 아삭한 숙주와 부드러운 면, 포슬포슬 달걀과 오도독 씹히는 땅콩까지, 식감 또한 여러 가지. 팟타이를 먹고 있으면 입이 심심할 틈이 없다.
이제 함께 먹어볼 차례. 팟타이를 한 젓가락 먹고 세종을 한 모금 마셔본다. 매콤한 맛을 홉이 한 번 눌러주고 이윽고 더욱더 매콤하게 입을 데운다. 폭력적인 매운맛이 아니다. 솜씨 좋은 태국 마사지사처럼 자극적이면서 부드럽게 혀를 풀어준다. 그 섬세한 자극으로 예민해진 혀는 맥주에 담긴 달큰한 과일 향을 보다 세심하게 포착한다. 맥주가 숙주와도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문득 떠오른다. 세종은 신선한 채소 샐러드랑 함께 마셔도 좋을 듯.
어느새 더위를 잊은 채 팟타이와 세종에 집중한다. 입안에선 여러 가지 맛이 팡팡 터져 나온다.
마치 한여름 밤의 불꽃놀이처럼. 세종은 여름에 마시기 위해 그 직전 겨울에 양조했다(세종 Saison은 프랑스어로 계절을 뜻한다). 그래서일까. 다음 농번기를 준비하며 설레면서도 걱정했을 농부의 마음이 담겨 있는 듯하다. 어쩌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계절처럼 반복되는 삶에서 맥주를 만들고 마시는 일은 소소한 행복이었을 지도. 그리고 세종은 삶에서 비롯된 갈증을 풀어주었겠지. 올여름은 일할 때마다 새참을 먹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일상에서 생긴 갈증을 풀어 줄 세종을 곁들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