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국에 혼술 & 홈술을 위한 맥주 고르기
언제부터였을까. 대형 마트나 편의점에서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수입 맥주들이 ‘4캔 1만원’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충분한 양, 낮은 가격,기존의 국산 라거와는 다른 맛, 높은 접근성까지 갖춘 ‘4캔 1만원’ 맥주는 술이 고픈 이들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서기에 충분했다. 보통은 캔당 가격이 4,000원 정도인데, 이걸 4개 묶음으로 구매하면 무려 5,000원 넘게 할인을 받게 된다. 이쯤 되면 제값 주고 사 마시는 게 아쉬울 정도라, 애초에 한 캔만 사려다가도 일부러 수량을 4개로 맞춰 구매하기도 한다.
‘4캔 1만원’ 맥주는 맛을 경험과 힐링 요소로 소비하는 ‘혼술족’과 ‘홈술족’의 상비 품목으로 자리 잡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최근 발발한 코로나19(COVID-19) 사태까지 가세하여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이 시국에, 마트・편의점 캔맥주의 접근성은 더욱더 활약하고 있다.
한편 올해 맥주에 대한 주세 부과 방식이 종량세로 전환되면서, 일부 수제맥주 회사 역시 ‘4캔 1만원’ 행렬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편의점과 마트에 가보면, 전과 달리 디자인이 독특하고 예쁜 수제맥주들을 쉽사리 만나볼 수 있다. 지난 2018년, 수제맥주의 유통 채널 확대가 허용된 이후로 수제맥주는 마트와 편의점 등지에서 그 존재감을 확보해 왔다. 맥주에 대한 주세 부과 방식이 종량세로 바뀐 올해, 일부 수제맥주는 ‘3캔에 9,900원’, ‘4캔에 1만원’을 넘어 무려 ‘네 캔에 9,400원’이란 황송한 가격으로까지 판매되고 있다. 평소 다양하고 질 좋은 맥주를 갈망해온 사람이라면, 바로 지금이 좋은 맥주를 낮은 가격에 마실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기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매대에 줄지어 있는 수많은 캔맥주 중 최선의 맥주를 고르는 방법은 무엇일까? 혹시 그저 ‘느낌적인 느낌으로’ 맥주를 고르고 있지는 않은가? 디자인만 봤을 땐 왠지 마음에 들어 골랐는데, 막상 마셔보니 기대했던 맛과 달라서 실망한 적이 있지는 않은가? 당신의 맥주 생활에 한 줄기 빛이 되어줄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겠다.
캔맥주 실패 확률을 줄여주는 꿀팁
1. 맥주의 스타일을 파악하자
당연한 얘기지만, 내가 뭘 원하는지 아는 것은 선택의 기본이다. 맥주 라벨에 적힌 스타일명이 무엇인지에 따라 맛의 스펙트럼을 예측할 수 있으므로, 스타일을 확인하는 것은 도움이 된다. 우선 맥주 스타일을 보기 이전에 내가 집어 든 캔이 정말로 맥주가 맞는지부터 확인해보자. 맥주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엄연히 따지면 사실 맥주가 아닌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맥주 옆면에 빼곡히 적힌 글자 중에 ‘제품명’ 바로 다음으로 나와 있는 것이 ‘식품유형’인데, 여기에 ‘맥주’라고 적혀있는지 확인하면 된다. 맥주인 줄 알고 집었는데 ‘기타주류’라고 적혀있는 경우도 있다. ‘맥주’와 ‘기타주류’의 기준은 맥아 함유량으로 나뉜다. 맥주는 함유된 전체 곡류 중 맥아의 무게가 10% 이상이고, 기타주류는 그보다 맥아의 함량이 낮으며 대신에 전분 등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타일을 살펴보자. 스타일명은 대개 라벨의 제품명 근처에 적혀있다. 스타일명을 통해 우리는 이 맥주의 맛이 대략 어떤 느낌일지 예측할 수 있다. 예를 들어 IPA라고 한다면 눈에 띄게 쌉싸름한 맛과 홉이 도드라지는 풍미를 떠올릴 수 있고, 바이젠 혹은 Weizen이라고 적혀있다면 뽀얀 황금빛 외관과 바나나, 정향을 닮은 풍미를 기대할 수 있다. Witbier 혹은 Belgian Wit 등이 적혀있다면 향긋한 오렌지 계열의 향과 살짝 톡 쏘는 향신료의 느낌, 부드러운 질감을 예상해볼 수 있다. 물론, 소비자의 직관적인 이해를 돕고자 비공식적인 스타일명이 적혀있을 수도 있으며, 공식적인 스타일명이 적혀있다고 해서 맛을 100% 설명해주진 않는다. 맥주에 적혀있는 스타일명은 맛의 스펙트럼으로 이해해야 함을 명심하자.
2. 사용된 원료를 확인하자
내 몸에 들어가는 식품에 어떤 재료가 쓰였는지는 알고 마시자. 이는 비단 맥주가 아니더라도 모든 식품 유형에 해당한다. 식습관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식품을 구매할 때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유심히 살펴보곤 하지 않는가. 맥주를 고를 때도 이처럼 뒤를 살펴주시라. 맥주의 옆면을 살펴보면 ‘원료명’ 항목에 어떤 재료가 들어갔는지 적혀있다. 맥주의 기본 재료는 물, 맥아, 효모, 홉이며, 이 네 가지가 들어가 있어야 제대로된 맥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부분 맥주의 원료명에는 정제수(물), 보리맥아, 효모, 호프(홉, 홉스, 호프펠렛)가 적혀있고, 추가로 밀이나 귀리 등의 곡물과 과일 등 기타 부재료가 적혀있다. 각 원료명에는 원산지까지 적혀있다(많은 경우 미국산, 독일산, 덴마크산, 벨기에산이다).
때로 사용된 재료가 맛을 직접적으로 설명해주기도 한다. 예를들어 호가든(Hoegaarden)이나 1664 블랑(Kronenbourg 1664 Blanc)같은 벨지안윗 스타일의 맥주에는 대부분 오렌지껍질(오렌지필)과 고수 씨(코리엔더씨드)가 들어갔다고 적혀있을 텐데, 맥주를 마셔보면 정말 정직하게도 그 두 가지의 맛을 느낄 수 있다. 다른 한편, 원재료에 합성향료나 ‘◦◦향’이 들어갔다면 그것 역시 맥주 맛의 중요한 단서다. 이런 경우 특정한 향미를 낼 목적으로 향료를 사용한 것이므로 인공적인 풍미가 느껴진다. 이때 나는 맛은 여러 재료의 조합을 통해 자연스레 만들어진 맛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3. 맥주의 신선도를 확인하자.
신선한 맥주를 마다할 사람이 있을까? 숙성 맥주와 같이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신선한 맥주가 처음 양조되었을 때의 본래 맛을 보존하고 있다. 맥주의 신선도는 크게 제조일과보관 상태로 판단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제조일이 현재와 가까울수록 신선한 맥주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맥주는 산화 되기 마련이며, 오래된 맥주에서는 산화로 인해 불쾌하게 변질된 맛이 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보통 캔맥주는 바닥 면에 연월일 순서로 날짜가 적혀있다. 수입 맥주의 경우는 제조일이나 품질유지기한이 일/월/연도 순서로 적혀있으니 참고하도록 하자. 이 날짜가 뜻하는 바는 맥주마다 다른데, ‘제조일’ 즉 맥주를 캔에 포장한 날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고, ‘품질유지기한’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고, ‘유통기한’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바닥 면에 적힌 날짜의 정체가 셋 중 무엇인지는 맥주 옆면 어딘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품질유지기한은 식품의 특성에 맞는 적절한 보존방법이나 기준에 따라 보관할 경우 해당식품 고유의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기한을 말한다. 즉, ‘이 날짜 이후로는 품질을 장담할 수 없으니 마시길 권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품질유지기한은 따로 명시되어있지 않되 ‘제조일로부터 ◦◦개월’이라고 안내되어있는 경우도 있으니 참고하자. 유통기한은 제조일로부터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을 말한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도매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맥주를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다.
맥주의 보관 상태 역시 신선도를 결정하는 기준이다. 맥주가 열에 노출되면 산화나 단백질 분해 등 화학 반응이 일어나는 속도가 빨라지고, 이때문에 맥주가 좋지 않은 맛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러므로 맥주를 가장 신선하게 유지하는 방법은 가능한 한 3도에서 5도 사이의 낮은 온도에 보관하는 것이다. 따라서 편의점이나 마트 등에서 맥주를 구매할 때 웬만하면 냉장 상태로 보관되어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좋으며, 상온에 보관되어 있더라도 꺼낸지 얼마 안 된 듯 차가운 맥주, 열과 멀리 떨어져 서늘한 곳에 진열된 맥주를 고르는 것이 도움이 된다.
4. 용량과 알코올 함량을 확인하자
용량과 알코올 함량은 오늘 내가 얼마만큼 취할 것인지를 결정짓는 참고자료다. 현재 ‘4캔 1만원’ 행사로 판매되는 맥주의 용량은 대부분 500mL로 통일되어 있긴 하지만, 작은 캔이나 병에 담긴 맥주를 고를 때 용량을 확인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맥주의 알코올 도수는 보통 4%에서 6% 사이 정도로 비록 큰 차이는 없지만, 되도록 덜 취하고 싶다면 수치가 낮은 맥주를 고르는 게 도움이 된다. 알코올 함량은 캔 어딘가에서 ‘◦◦%’라고 적힌 수치로 확인할 수 있으며, ALC(Alcohol)나 ABV(Alcohol By Volume) 등으로 적혀있기도 한다. 맥주로 힐링 좀 하려다가 ‘알코올 술애기’가 되고 싶지 않다면, 알코올 함량 수치 역시 놓치지 말자.
5. 제조장의 소재지 혹은원산지를 확인하자
내가 집어 든 맥주가 어디서 생산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굳이 그걸 왜 알아야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가끔은 내가 마시는 맥주를 누가 어디서 만들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 않은가?
수입맥주의 경우 ‘원산지’로 표기되어 있고, 국산 맥주라면 ‘업장명 및 소재지’로 적혀있다. 내가 마시고자 하는 맥주가 수입된 것인지, 국내산이라면 어느 지역에서 생산된 것인지 앎으로써 소비를 더욱더 의식적으로 실행할 수 있다. 특히 국산 수제맥주의 경우에는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한 번쯤 확인해보자. 알고 보니 그 맥주를 만든 곳이 당신의 집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르며, 나중에 그곳을 방문하게 될 수도 있다. 맥주 양조장은 생각보다 당신 가까이에 있다.
지금까지 맥주를 고를 때 실패 확률을 낮출 간단한 방법을 살펴보았다. 편의점, 마트, 슈퍼마켓 등에서 행사 등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캔맥주를 기준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맥주가 ‘4캔에 1만원’만 있는 건 아니다. 눈을 들어 반경을 살펴보자. 맥주를 마치 반려생물 키우듯 애지중지 아끼며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펍, 브루어리, 보틀숍 등이 우리 주위에 생각보다 많다. 오늘 마시는 이 맥주보다 더 좋은 맥주가 세상에 널렸다. 좋은 맥주를 마시기 가장 좋은 이 시기가 바로 맛 탐험의 적기 아니겠는가? 더 다양한 맛, 많은 고민과 정성이 담겨있는 맛, 자부심이 담긴 맛을 느껴보고 싶다면, 오늘은 한번 마트와 편의점을 벗어나 보는 게 어떨까.
EDITOR
홍희주 Hiju Hong
비어포스트에서 이야기, 맥락, 문장, 단어를 궁리한다. 글과 이미지의 관계, 이미지와 소리의 관계에 관심이 있다. 덕력은 다소 떨어지지만 누가 맥주를 내밀면 일단 마시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