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의 가치가 맥주를 만든다; 덴마크 집시 브루어리 투올
브랜드의 가치가 맥주를 만든다; 덴마크 집시 브루어리 투올
‘맥주 선진국' 하면 우리 머릿속에는 미국이나 독일 등 몇몇 국가가 쉽게 떠오를 것입니다. 북유럽에 위치한 덴마크 역시 내로라하는 맥주 선진국입니다. 미켈러, 이블 트윈, 투올 등 덴마크 맥주는 트렌디한 브랜드로 자리매김하며 국내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고 있습니다. 그중 우리에게 ‘투올’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덴마크 브루어리 ‘To Øl’은 2010년에 설립되어 올해로 8년째를 맞이한 곳입니다. 실제로는 ‘투올'보다는 ‘투 을’에 가깝게 발음하는데, 투는 ‘2’, 을은 ‘맥주’라는 뜻입니다. 투올 브루어리에서 브랜드 전략과 마케팅 등을 담당하는 에밀 실베스터(Emil Sylvester)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국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투올 브루어리
“제 이름은 에밀 실베스터입니다. 온라인으로 맥주를 판매하는 투올 웹 샵과 가입하면 매달 맥주 꾸러미를 집으로 배달해주는 온라인 서비스 투올 비어 클럽을 기획했습니다.”
투올은 설립 2년 만인 2012년에 맥주 평가 사이트인 레이트 비어(Rate Beer)에서 세계 100대 브루어리 안에 들었으며, 2014년에는 세계에서 아홉 번째 가는 브루어리로 꼽힌 바 있습니다. 현재까지 300가지 이상의 맥주를 만들어온 투올은 올해에만 60개의 새로운 라인업을 내놓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많은 라인업을 관리하기 위해 세일즈, 프로덕션, 레시피 등을 전체 직원 중 4명이 담당하고 있습니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제품을 들고나왔기에 가능했고, 한편으로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합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무실 인원은 6명이었는데, 지금은 14명의 직원이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어요. 협력하여 일하는 3개의 서로 다른 회사 안에 투올이 있습니다. 펍도 여러 지점이 있기 때문에 정확히 몇 명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거나 큰 회사입니다.”
출범 이래 실험적인 맥주를 만들며 ‘희한하고 말도 안 되는 짓’을 시도해온 투올은 보수적인 길은 가지 않으려 합니다. “한쪽에서는 소비자의 말을 들으라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러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밀고 나가라고 하죠. 이미 대중을 위한 맥주는 이미 아주 많이 나오고 있고, 잘 팔리고 있어요. 잘 팔리는 맥주를 위한 브루어리가 아니라, 한 번쯤 도전해보고 마시는 모험을 해볼 만한 브루어리가 투올입니다. 딱히 재정적 상황이 탄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실험적인 맥주를 만드는 것은 정말로 큰 모험이기도 하죠.”
놀라운 점은 투올의 매출 중 95% 이상이 수출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최근 도쿄에서 열린 MBCT(Mikkeller Beer Celebration Tokyo)에 다녀온 그는 투올을 사랑하는 충성스러운 팬들이 많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 역시 3년-5년 안에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저희는 한 번도 덴마크 시장에 집중한 적이 없어요. 솔직히 덴마크에서는 ‘투올'이라는 브랜드보다 저희가 코펜하겐에서 운영하는 브루펍 ‘BRUS’가 더 유명할 거에요. 종종 해외 수입업자의 의견을 듣고 맥주 라인업 구성에 반영하기도 합니다. 수입업자야말로 해당 국가의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를 저보다 잘 알고 있을 테니까요.”
집시 브루어리는 품질 관리를 어떻게 할까?
자체 양조 시설을 갖추지 않고, 매번 다른 양조장에 양조를 위탁하는 곳을 우리는 ‘집시 브루어리(Gypsy Brewery)’라고 부릅니다. 집시처럼 여기저기 유랑하며 양조를 하러 다닌다는 점 때문에 붙은 별명입니다. 한국에도 ‘서울집시’, ‘테트라포드’, ‘핑거 크래프트’등 몇몇 집시 브루어리가 있는데요. 집시 브루어리만이 겪는 일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스타일에 있어서 자율성이 크다는 점이 집시 브루어리의 특징입니다. 하지만 아이디어로 시작해 실제로 맥주가 나오기까지 6개월 정도 걸리는데, 그 과정 모두를 양조사들이 직접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 점입니다.”
자체 시설이 없어서 양조 과정을 하나부터 열까지 통제하기 어렵다는 점 때문에 집시 브루어리의 품질 관리는 쉽지 않을 법합니다. 그렇다면 덴마크 집시 브루어리 투올은 일관된 품질을 유지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까요?
“말로만 집시 브루어리지, 우리 맥주의 대부분은 벨기에 양조장 ‘De Proef’ 한 군데에서 만들어집니다. 정확히는 집시 브루어리라기 보다 ‘정착한 유목민 브루어리’라고 할 수 있겠죠.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맥주의 품질 향상과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맥주를 만들 때 가장 어려운 것은 한번 만든 맥주를 똑같이 재현하는 일입니다. ‘De Proef’는 연구소가 있는 아주 과학적인 양조장이라서 믿고 맡길 수 있는 안전한 곳입니다. 맥주의 품질이 보장되어있다고 할 수 있죠. 거기선 항상 일관된 품질의 재료를 요구합니다. 한 곳의 양조장과 지속해서 협업하면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더 쉽고 정확하게 알아듣기 때문에 안정적인 작업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함께 성장해가기에 서
로 좋은 관계죠.”
디자인을 넘어선 예술적 표현, 맥주 라벨
투올의 병맥주나 캔맥주를 보면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주로 추상적인 이미지의 낯선 배열을 통해 잠들어있던 우리의 상상력을 꿈틀거리게 합니다. 예술적이고 일관성 있는 맥주 디자인은 투올 뿐 아니라 미켈러, 옴니폴로 등 다른 북유럽권 브루어리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브루어리를 단지 맥주 산업의 일부로 보기보다는, 일종의 패션으로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웨덴 집시 브루어리인 옴니폴로(Omnipollo)의 디자이너 칼(Karl Grandin)도 패션 디자이너였고요. 맥주를 만들면서 최종 결과물만 생각한다면 그건 너무 한정적이라고 생각해요. 음식, 옷, 예술 등 많은 것들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잖아요. 투올에는 모든 맥주 디자인을 담당하는 디 자이너 캐스퍼(Kasper Ledet)가 있습니다. 건축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인데, 각각의 라벨에 메시지를 담고, 예술적인 방식으로 소비자를 자극합니다.”
브랜드의 가치가 맥주를 만든다
어떤 회사든 추구하는 핵심 가치가 있을 것이고, 그것이 회사의 서비스나 제품으로 투영되기 마련입니다. 소비자는 단순히 제품이나 서비스의 표면적이고 기능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브랜드의 가치를 소비합니다. 회사에 어떤 가치가 확립되어있고 그것이 구성원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지가 중요한 이유 또한 이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 회사의 전체적인 구조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구조입니다.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의견을 내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는 점이 우리 회사의 주요 가치죠. 그러한 가치가 밸런스를 만들어내는 등 맥주에도 반영된다고 생각해요.”
EDITOR_홍희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