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 동굴에서 갓 뽑아낸 맥주
카브루 청담동 브루펍 오픈
국내 수제맥주 1세대 브루어리인 카브루가 지난 10월 23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첫 번째 브루펍을 오픈했다. 브루펍 'KABREW - Kumiho Beer Cave'는 마치 구미호가 사는 동굴처럼 신비롭고 그윽하게 꾸며진 공간이다.
본래 경기도 가평에 맥주 공장을 둔 카브루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구미호 캐릭터와 함께 수제맥주의 대중화에 힘써왔다. 구미호는 신통한 능력이 있는 여우의 정령으로, 동아시아의 민간 설화에 자주 등장하여 우리에게 친근하다. 청담동에 새로 문을 연 카브루 브루펍은 이러한 브랜드 이미지가 더욱더 생생하고, 공고하게 실현되는 곳이다. 지금까지 카브루 맥주는 펍에서 생맥주로 맛보거나 마트 및 편의점에서 캔맥주로 만나볼 수 있었다. 이제는 카브루만의 독특한 감성으로 꾸며진 공간에서 직접 만든 신선한 맥주를 체험할 수 있으니, 맥주에 목마른 모든 이에게 희소식임이 분명하다.
크리에이티브 카브루를 체험하다
브루펍 앞에 당도하면 가장 먼저 양조 시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전체 공간 100평 중 양조 공간이 약 20평을 차지하며, 맥주 저장조는 10t 규모다. 구미호 세계로 통하는 비밀스러운 굴처럼 길쭉한 입구를 지나면 4m 높이로 탁 트인 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늘어진 덩굴, 거친 질감이 살아있는 나무줄기, 투명하게 내부를 비추는 구미호 우물을 보고 있노라면 비상한 능력을 들켜버린 구미호가 어딘가에 몸을 누이고 있을 것 같다.
중앙에는 카브루에서 초기 양조 장비로 사용되었던 오래된 탱크가 자리한다. 옛날식 냉각 재킷으로 인해 더는 사용되지 않지만,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카브루의 다짐을 확인할 수 있다. 먼 옛날 맥주를 인간에게 가져다주었다는 카브루 구미호의 이야기가 탱크 위에 오래된 벽화처럼 표현되어 있어 상상력을 자극한다. 테라스에 풍경화처럼 조성된 대나무 숲은 마치 구미호가 숨고 뒹구는 아지트처럼 사각거린다. 맥주에 취하러 왔더니, 우연히 들어선 판타지 세계에 먼저 취할 것만 같다.
그동안 카브루는 '수제맥주 페스티벌'을 매해 개최하고, ‘젊음의 거리’ 홍대입구에 팝업스토어를 여는 등 맥주로 즐거움을 전파하는 행보를 이어왔다. 이처럼 꾸준히 브랜드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해온 카브루가 본격적으로 도시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소비자에게 성큼 다가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결정은 맥주의 연구개발에 대한 갈망에서 출발했다. 나영수 카브루 마케팅 부장은 "카브루의 가평 공장들이 규모가 크다 보니, 맥주로 새롭고 다양한 실험을 하기가 어려워서 R&D 센터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굳이 가평을 고집할 이유가 없어 위치를 서울로 정하게 됐고, 이왕 서울로 오는 김에 꼭 R&D 센터의 기능에만 그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외식 사업은 본 프로젝트의 주요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초기 구상 단계에서부터 외식업은 브루펍의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다양한 맥주를 시도하는 R&D 센터이자, 고객들이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선보이려는 취지가 핵심입니다." 라며 '맥주 연구개발'과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이 브루펍 개설의 주목적임을 분명히 했다.
홍대입구나 이태원처럼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이 아니라 강남구 청담동에 자리 잡은 것 역시 브루펍의 설립 취지와 연관이 있다. 만약 외식 사업이 목적이었다면 내리지 못했을 결정이다. "외식업을 하고자 했으면 당연히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에 가야 했을 겁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유흥 상권에는 이미1,300개가 넘는 카브루의 거래처가 있어요. 그분들이 장사하시는 곳에 굳이 뛰어들고 싶지 않았습니다."라고 나영수 부장은 설명했다. 카브루 맥주를 판매하는 업장이 모여있는 상권을 피해서 자리를 찾다 보니 청담동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청담동은 전통적인 부촌이기도 합니다. 이 동네에 없는 것이 없지만, 브루펍은 없더라고요. 청담동에 21평짜리 양조 시설을 운영할 만한 회사는 카브루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흑미 사워부터 백미 세종까지⋯ 새롭고 도전적이며 한국적인 맥주 시도할 것
카브루 브루펍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맥주 연구개발이다. 그 말인즉슨, 기존에 알려졌던 카브루 맥주와는 다른, 조금 더 매니악한 맥주를 이곳에서 실험 양조할 예정이라는 것이다. 맥주의 세계에 이제 막 눈 뜨는 사람뿐 아니라 맥주 마니아에게도 반가운 소식이다. 이 공간을 통해 카브루의 기본 라인업에 새로운 맥주들이 생겨날 전망이다.
신설 브루펍에서 양조 업무를 총괄하게 된 김규선 양조사는 벨기에식 맥주와 영국식 맥주 취향을 바탕으로 한국적 특색이 드러나는 재료를 사용하여 도전적인 맥주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몇 가지 예시 중 하나는 흑미를 넣은 사워 에일이다. 가평 공장에서부터 개발해온 맥주로서 흑미, 생강, 후추, 간장등을 넣어 약간의 짭짤한 감칠맛과 오미자와 같은 복합적인 풍미가 특징이라고 했다. 그뿐 아니라 흰쌀을 넣어 만들 세종도흥미롭다. 기존 세종 스타일의 맥주가 조금 무거운 편이었다면, 백미를 넣어 비교적 가볍고 드라이한 세종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참신한 시도는 기존의 틀과 조금씩 다른 창의성을 발휘하고자 하는 카브루의 방향성과도 맞물려있다. 김규선 양조사는 "맥주만 맛있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직영 펍의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며 본격적인 브루어리 가동을 앞두고 들뜬 마음을 내비쳤다. 카브루의 새롭고 도전적인 맥주를 본격적으로 맛볼 수 있는 시기는 올 연말부터다.
음식 역시 맥주만큼이나 다체롭게 꾸려진다. 카브루는 기존에 '맥주 안주'로 통용되던 종류의 음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음식 메뉴를 구성하고자 한다. 나영수 부장은 "대부분의 브루펍에서 주로 선보이는 음식 메뉴는 피자, 햄버거, 나초, 포테이토 등인데, 거기서 벗어나는것 역시 우리 브루펍의 실험적인 방향과 맞물린다고 생각합니다. 'Tapas and Dinning'이라는 콘셉트를 중심으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무국적 음식을 준비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박찬일, 강레오 등 유명 셰프와 함께 일 하며 실력을 닦은 수준급의 헤드 셰프가 페어링 요리를 선보이게 되어 기대를 모은다.
박정진 카브루 대표는 수제맥주의 정체성을 언급하며 브루펍 설립을 대하는 마음가짐을 다졌다.
“다양성은 수제맥주의 핵심적인 DNA라고 생각합니다. 큰 맥주 회사일수록 정형화된 라인업이 있다 보니 다양한 시도를 하기가 쉽진 않잖아요. 그런 점을 극복하고 다양성의 DNA를 잃지 않고자 하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기에 이런 공간이 꼭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맥주 실험을 통해 소비자의 반응을 즉각 파악하고, 성공적인 맥주에 대해서는 큰 규모로 생산하는, 혁신의 심장 같은 역할을 이곳이 해내길 바랍니다.”
일상에서 출발하는 '조금 다른 변화'로 사랑받는 카브루 맥주. 야심 차게 단장한 청담동 브루펍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맥주 브랜드가 되길 고대한다. 카브루 브루펍을 방문할 때 주의할 점이 있다면, 즐겁게 맥주를 마시고 난 뒤 본인에게 꼬리 아홉 개가 달려있진 않은 지 확인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