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명절 쇠러 홍대에 간다 - 홍대 3대 명절, 경록절
무대에서는 아티스트들이 끊임없이 공연하고, 관객은 그 공연을 보며 다양한 종류의 술을 무제한 마실 수 있는 곳. 술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생일파티를 꿈꿔봤을지도 모른다. 올해로 데뷔 25주년을 맞은 록 밴드 크라잉넛에서 베이스를 담당하는 한경록의 생일파티, ‘경록절’이 바로 이런 풍경이다. 평소 생일파티에 대한 로망을 꿈꿔왔다면 경록절이 그를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
‘홍대 3대 명절은 크리스마스이브, 핼러윈 데이, 그리고 경록절’이라는 말이 있다. 경록절을 처음 들어봤다면 생일파티가 어떻게 홍대의 명절이 될 수 있냐며 의아해할지도 모르지만, 한 번이라도 경록절에 다녀와 본다면 홍대 명절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문난 잔치에다 먹을거리까지 다채로웠던 경록절. 준비 과정부터 당일의 홍대 무브홀 현장까지 밀착 취재해봤다.
홍대 명절 ‘경록절’의 탄생
올해 ‘마포 인디 대잔치’라는 부제를 달게된 경록절은 이제는 한경록의 생일파티를 넘어 마포구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는 인디밴드 행사로 발걸음을 새롭게 내디뎠다.
14년 전 처음 ‘경록절’이라는 타이틀이 붙은 이 행사는 2월 11일 한경록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모인 지인들이 함께 호프집을 빌려서 노래 부르며 노는 생일파티로 출발했으며, 그 규모가 매년 점점 커지고 있다.
“오래 활동하다 보니 같이 음악을 하는 뮤지션 동료들이 많아요. 절친하게 지내는동료들이 대부분 밴드를 하다 보니 몇 팀만 해도 정말 많은 사람이 모이게 됐죠. 인원이 많아서 홍대의 한 통닭집을 빌려 치킨과 맥주를 마시는 생일파티를 하게 됐어요. 초창기에는 50명 정도 모이던 파티원이 매년 점점 늘어나 웬만한 호프집을 빌려서는 다 같이 놀 수 없게 됐어요. 그래서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홍대 무브홀에서 파티를 하게 됐죠.”
홍대에 있는 무브홀은 1,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으로 매년 경록절에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무대를 채운다. 처음에는 한경록 씨와 친분이 있는 밴드들이 하나둘 올라가 공연을 선보이던 것이 이제는 신인 밴드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서고 싶어 하는 무대가 됐다.
큰 무대에 서서 관객들과 에너지를 나누는 것, 그리고 록 밴드의 대선배 크라잉넛 앞에서 무대를 채우는 것은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신인 밴드들에는 영광스러운 경험이다. 그래서인지 매년 무대에 서고 싶어 하는 신인 밴드가 많다고 한다.
경록절의 공연 순서는 대략 정해져 있지만, 즉흥적으로 올라가 공연을 하게 되는 때도 있다. 작년에는 무대 밑에서 공연을 즐기던 아티스트의 이름을 관객들이 외쳐 그 밴드가 갑자기 무대에 올라 즉흥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짜이지 않은 자유로운 무대가 마련된 축제다.
크래프트 맥주 러버, 크라잉넛
“크라잉넛이 아무래도 공연 때 땀도 많이 흘리고 격하게 공연을 하는 편이라서, 맥주를 많이 즐겨 마시곤 하죠.”
3년 전, 이미 비어포스트 Batch 004의 표지 모델을 했을 만큼 크라잉넛의 맥주 사랑은 전부터 유명하다. 그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록 밴드의 특성상 공연을 마치고 나면 자연스레 시원하게 목을 축일 맥주를 찾던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고 말한다. 주 활동 지역인 홍대 인근에 크래프트 맥주 펍이 여럿 생긴 뒤로는 다양한 스타일의 크래프트 맥주도 접하게 됐다. 처음에는 맥주를 마시면서 취하려고 했다면, 크래프트 맥주를 알고 나서부터는 취향에 맞는 맥주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즐기게 됐다.
“특히 부산 와일드웨이브 양조장의 ‘설레임 맥주’를 먹어보고 신맛이 나는 사워 맥주의 매력을 알게 됐어요. 사워 맥주는 향과 맛이 굉장히 새콤한 것이 특징인 맥주인데, 이 맛이 가끔 집에 있다가도 생각이 나더라고요. 뒤셰스 드 부르고뉴(벨기에의 플랜더스 지역에서 유래한 레드에일로, 젖산균 발효로 인해 새콤달콤한 맛이 특징이다.)도 한 병 놓고 친구들과 나눠 마시기 좋았고요. 사워 맥주는 아무래도 기름진 고기와 생선을 먹고 난 뒤에 입가심으로 마시기 딱 좋은 맥주라고 생각해요.”
한경록의 크래프트 맥주 사랑이 소문을 탄 걸까. 경록절에는 다른 주종보다 맥주 협찬 비중이 훨씬 높다. 올해 경록절에는 무려 크래프트 맥주 100만cc가 하룻밤 파티를 위해 준비됐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 바네하임, 플래티넘, 문베어, 화수 브루어리, 히든트랙, 비어바나가 직접 양조한 맥주를 협찬했으며, 수입사 모어 댄 크래프트는 다양한 수입 맥주를 협찬했다.
경록절을 위한 ‘록’같은 맥주, 비어바나의 경록절 페일 에일
서울 영등포구 소재의 양조장 비어바나는 올해 경록절 행사를 특별히 기념하는 맥주 ‘경록절 페일에일’을 출시했다. 이 맥주는 경록절 당일 무브홀에서 처음 선보였으며, 현재 ‘록바나 페일에일’이라는 이름으로 비어바나에서도 만날 수 있다. 한경록은 문래동 비어바나 양조장에 방문해 직접 양조 과정에 참여하는 열정을 보였다.
“너무 도수가 높지 않고, 귤껍질을 깠을 때 나는 시트러스한 과일 향이 났으면 좋겠어요. 상큼한 과일 향을 천천히 즐기면서 취할 수 있는, 따뜻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에 어울리는 맥주가 좋을 것 같아요. 경록절에서는 음악도 끊임없이 나오니까, 문화예술과 함께 즐기는 맥주를 만들고 싶어요.”
‘경록절 페일에일’은 한경록의 맥주 취향을 적극 반영했다. 그는 평소에 편안하게 마실 수 있는 라거 맥주나 가벼운 시트러스 향을 느낄 수 있는 세션 IPA를 가장 선호한다. 그래서 이번 맥주 역시 가볍고 도수가 낮은 페일 에일 스타일로 정했으며, 호주산 Vic secret 홉을 사용해서 파인애플, 자몽, 패션프루트 같은 풍부한 과일 향을 이끌어냈다. 또한 부드러운 질감을 위해 귀리 플레이크를 넣어 편안하게 즐길수 있는 페일 에일을 만들었다. 크라잉넛의 음악처럼 대중적이면서도 개성 있는 캐릭터로 양조한 것이 특징이다.
맥주에 젖고 음악에 취했던 파티
행사 당일, 홍대 한복판에 있는 무브홀에 들어서니 밴드 연주에 필요한 악기들이 세팅된 무대와 협찬받은 각종 주류가 전시되어 있었다. 무대의 오른편에는 국내 브루어리의 생맥주를 직접 탭으로 뽑아 마실 수 있는 장비가 준비됐다. 이 드래프트 시스템은 칩이 내장된 스티커를 탭 윗부분에 찍고 탭 핸들을 잡아당기면 원하는 맥주를 원하는 양만큼 따를 수 있도록 되어있다. 덕분에 공연 중간에 목이 탈 때면 다양한 맥주 스타일을 맛보고, 원하는 만큼 따라서 자유롭고 편리하게 즐길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고량주, 사케, 건강한 간을 위한 숙취해소제, 그리고 음주가 어려운 이들을 위한 커피까지 즐길 거리가 다채롭게 준비되어 있었다.
경록절 공연은 아티스트들도 함께 즐기는 공연이었다. 완벽을 위한 공연보다는 친구들끼리 노래방에 가서 즐겁게 뛰어노는듯한 공연이 이어졌다. 한경록 역시 크라잉넛 공연 외에도 다른 팀들의 공연 중간 마다 맥주를 들고 올라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췄다. 공연을 마친 아티스트들도 내려와 공연을 즐기며 맥주잔을 기울였다.
2월 10일 저녁 8시에 시작한 공연은 하룻밤을 훌쩍 넘어서도 계속됐다. 11일로 넘어가는 12시 정각에는 한경록을 위한 생일 축하 노래와 함께 진정한 경록절이 다시 시작됐다. 준비된 100만cc의 맥주가 모두 동이 나고서야 끝난 경록절은 관객과 아티스트 모두 음주가무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완벽한 파티였다.
한경록이 맥주를 마시며 듣기 좋은 노래로 추천하는 곡이 있다. 스코틀랜드의 쌍둥이 형제가 만든 팀 The Proclaimer의 <I’m gonna be (500 miles)>로, 밝고 경쾌해서 듣다 보면 마치 맥주 한 잔을 마시는 것처럼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한다.
올해 경록절에 참가하지 못했더라도 내년의 경록절을 기약하며 이 노래와 함께 맥주를 마셔보자.
Rock and Roll!
EDITOR
김소영 Soyoung Kim
비어포스트 에디터이자 비어포스트 바의 서버이다. 종류에 관계없이 모든 술을 좋아하지만, 특히 크래프트 맥주의 새로움과 독창성이 가장 마음에 든다. 매일 마셔도 심심할틈이 없는 크래프트 맥주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