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도 정기구독 서비스로 즐기고 싶다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지난 9월 서울 강남권을 대상으로 맥주 배달을 시작했다. 맥주 배달ᆞ테이크아웃 전문 매장인 어메이징 익스프레스를 열었다가 폐업한 지 2년여만이다. 2017년 당시 맥주 배달 규제 때문에 어메이징 익스프레스 서비스를 중단했던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어떻게 다시 서비스를 시작하게 된 것일까?
맥주 배달 관련 규제는 지난 몇 년간 빠르게 바뀌어왔다. 어떤 원칙도, 일관된 철학도 찾아보기 어려운 제도 변화였다. 맥주 업계에 도전장을 내밀었던 새로운 서비스들은 널뛰는 규제에 우왕좌왕하다가 결국 대부분 사업을 포기했다.
맥주 배달 이슈는 야구장 ‘맥주 보이’에서 촉발됐다. 주세법상 주류는 판매 허가를 받은 업장 내에서만 팔 수 있다. 이를 근거로 국세청은 2016년 4월 야구장에서 좌석 사이를 이동하면서 맥주를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한다고 밝혔다. 이 조치에 대해 여론이 악화되자 불과 세 달 만에 입장을 바꿔 한정된 공간에서 맥주를 팔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줬다.
이와 함께 원칙적으로 금지됐던 주류의 배달에 대해서 2016년 7월 ‘음식에 부수해서’ 배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가 1년 만에 다시 ‘조리한 음식’에 부수해야 한다고 규정을 바꿨다. 크래프트 맥주 정기 배달 구독서비스 등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후 맥주 구독 서비스들이 조리한 음식과 함께 맥주를 배달하는 식으로 서비스를 개편했지만 국세청이 ‘맥주 구독은 맥주가 주(主)가 되는 서비스’라고 판단하면서 관련 서비스들은 모두 사라졌다.
치킨집의 생맥주 배달은 지난 7월에서야 비로소 합법화됐다. 케그 단위로 출하된 생맥주를 캔이나 페트병에 담아서 판매하는 것에 대해 법적으로 허용해준 것이다. 그동안 공장에서부터 캔, 병에 담겨 나오는 맥주 제품만 조리된 음식에 부수해 배달이 가능했다.
이번 조치로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는 배달 서비스를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어메이징은 배달의민족 앱을 통해 2단계 성인인증을 거쳐 배달 주문을 받고, 배달 기사가 직접 주문한 사람의 신분증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청소년 대상 판매에 대한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일부 규제 완화로 맥주를 배달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비즈니스로 현실화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큐레이션 서비스, 정기 구독 서비스 등 소비자들이 크래프트 맥주를 편하게 즐기기 위한 서비스는 원천 차단돼 있다. ‘음식이 주가 되어야 한다’는 조항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어 개별 사안에 대해 국세청의 입장을 물어야 한다.
전 세계 주요국에서는 맥주 온라인 판매 및 배달이 허용돼 다양한 비즈니스가 자연스럽게 이뤄지고 크래프트 브루어리들도 성장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의 홉시(Hopsy)는 지역의 맥주 양조장과 협력해 가정에 크래프트 맥주를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하고 있다. 아마존과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들도 맥주, 와인 등을 주요 상품으로 다룬다. 중국에서는 전국 유통망을 갖추지 못한 지역 브루어리들도 인터넷 판매를 통해 전국적으로 판로를 개척한다. 이를 통해 역사가 채 몇 년 되지 않는 판다 브루잉 등이 급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중간 유통망을 통하지 않고 브루어리가 직접 소비자와 소통하면서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국내 맥주 업계가 규제에 억눌려 있는 반면 국내에서 자유롭게 온라인 판매, 배달을 하는 주류도 있다. 바로 전통주다. 전통주는 지난 2009년부터 통신(온라인) 판매가 허용됐다. 전통주 육성 차원의 규제 완화였다. 초기에는 우체국쇼핑몰 등 일부 정부 운영 사이트에서만 전통주를 판매할 수 있었는데 2017년 6월부터는 일반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전통주 판매가 가능해졌다. 또 공인인증서로만 할 수 있던 성인 인증을 휴대폰으로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지속적으로 규제가 완화돼 왔다.
이에 따라 ‘술담화’와 같은 전통주 정기 배달 서비스가 생겨날 수 있었다. 서비스를 구독하면 엄선된 전통주를 정기적으로 배달 받을 수 있다. 술담화는 전통주 양조장 투어, 술 만들기 체험 등 오프라인 서비스로 확대돼 전통주의 저변을 넓히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맥주 업계에서는 전통주의 사례를 크래프트 맥주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전통주가 온라인 판매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청소년 보호나 탈세 방지와 같은 면에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크래프트 맥주 업계 관계자는 “국산 재료와 우리 술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전통주 온라인 판매를 풀어줬던 만큼 국산 재료를 사용한 맥주에 대해 허용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설명했다. 규제가 개선될 경우 맥주 업계에 단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 종량세 도입과 맞물린다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도 주류 온라인 판매 및 배달이 이슈로 불거졌다. 권성동 의원은 “현행 국세청 고시에 따르면 주류 관련 신규 서비스는 등장할 수가 없다”며 “정부가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철폐하고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류 배달 규제 변화 추이 Changes in Liquor Delivery Regu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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