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초보가 자주하는 질문 feat. 살찐돼지
맥주 교육을 전업으로 시작한 것은 2016년 여름입니다. 이전에는 비어포럼이라는 맥주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주최하는 시음 클래스를 진행하거나, 운영하던 펍 ‘사계’에서 참가자를 모집해 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알음알음 맥주 교육을 본업으로 삼은 지도 3년 차가 되었습니다. 2014~2015년 주세법 개정 이후 국내에 크래프트 맥주 양조장과 크래프트 맥주 전문 펍들이 많이 생겨나면서, 사람들은 맥주라는 콘텐츠에 더 익숙해지고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맥주 강의를 전업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는 걸 보며 맥주 교육업이 가능성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2년 반 동안 어메이징 브루잉 컴퍼니에서 교육이사로 재직하며 내부 직원 강의를 비롯해 외부 행사나 강의를 도맡았고, 올해 독립해 성수동에서 어메이징 브루잉 아카데미의 원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강연 자리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만큼 다양한 질문들을 받지만, 그중에서도 보편적이고 공통된 질문들을 소개하려 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맥주 교육에 종사하는 분들이라면 자주 접해보았을 내용입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기에 비슷한 질문을 하는 것이겠죠.
Q. 병맥주/ 캔맥주/ 생맥주 중에 뭐가 가장 맛있나요?
A 관리 잘 된 제품이 맛있습니다.
만제’s comment. 단골 질문입니다. 이 질문을 받으면 항상 20분짜리 답변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나름 줄여 설명해보면, 병맥주는 병 색상에 따라 일광취 (Light-struck)로 인해 맛이 변질될 수 있습니다. 다른 한편 캔 맥주는 일광취 방어에는 탁월하나, 온도 변화에 민감한 재질이라 열이 있는 장소에서는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병맥주든 캔맥주든 각 재질의 특성을 고려해 좋은 상태로 보관한 맥주가 맛있다는 것입니다.
생맥주의 맛에 관해서는, 의외로 많이들 잘 모르는 ‘생맥주’와 ‘드래프트(Draft)’라는 용어의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맥주의 여과와 살균이 무엇인지, 국내 호프집과 음식점에서 쓰는 냉각기가 무엇인지, 맥주 유통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케그 순환과 장비 청소가 무엇인지, 케그 냉장고가 어째서 필요한지, 왜 국내 대기업 라거의 명소로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꼽히는지 이 모든 질문들은 생맥주의 맛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생맥주에도 좋은 관리법이라는 게 있으며, 관리가 잘 돼야 맛있습니다.
결국 생맥주, 캔맥주, 병맥주 중 ‘뭐가 더 맛있다’고 얘기할 게 아니며 관리 잘 된 게 맛있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Q 만든 지 얼마 안 된 신선한 맥주가 맛있는 거죠?
A 스타일에 따라 다릅니다. 라거나 바이젠, IPA 류는 그렇지만, 고도수 맥주나 사워 에일(신 맥주)은 묵혀 마실 때 더 좋을 수 있습니다.
만제’s comment. 맥주 스타일에 관해 이해도가 낮은 분들은 모든 것을 페일 라거에 맞춰 질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기성 맥주 회사에서 자사의 라거 맥주가 ‘신선하고 맛있다’고 하는 광고를 쉽게 접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편의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맥주 제품을 비롯해 크래프트 맥주 중 비교적 대중적인 페일 에일 혹은 IPA는 굳이 오래 두었다가 마실 필요는 없으니, 만든 지 얼마 안 되어 신선한 맥주가 맛있다는 것이 맞는 말이긴 합니다.
하지만 다양한 맥주를 소개하는 강의 현장에 있는 사람으로서 그렇지 않은 예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괴즈 스타일 맥주의 병에 새겨진 ‘Best Before’를 확인해 보십시오. ‘2016년 병입 ~ 2036년까지’라는 식으로 적혀있을 것입니다. 이건 오히려 3년은 더 묵혀야 더 깊고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4~5년 전쯤에는 대형 마트에서 트라피스트 맥주를 할인 판매하여 재미난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상미 기한이 임박한 IPA는 할인해도 사 먹지 않던 마니아들이, 트리펠, 쿼드루펠 같은 스타일의 트라피스트 맥주를 기한 임박으로 할인하자 열정적으로 달려들었습니다. 심지어는 사재기까지 발생했다고 합니다. 애당초 이러한 종류의 맥주는 장기 병입 숙성을 거쳐 숙성 연도별로 테이스팅까지 하는 맥주입니다. 이처럼 맥주 스타일에 따라 신선도와 맛의 상관관계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우와, 대형 마트가 서늘한 매장에서 트라피스트를 장기숙성 시켜준 뒤 할인까지 해서 파네!”라며 남모를 기쁨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Q 수제맥주들은 왜 이리 독하고, 강하고, 쓴가요?
A 페일 라거를 주로 마셔왔다면 그럴 수밖에요. 다만 수제맥주 회사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어서 입문용 맥주들은 편하고 순한 맛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만제’s comment. ‘페일 라거’ 스타일의 정의는 꼭 알 필요가 있습니다.
BJCP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페일 라거 스타일의 개념을 보면, 여러 잔을 마시기 좋은 대중 맥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니다. 맥아의 성향이 낮으며, 깔끔한 발효를 통해 에스테르나 페놀 등 발효 풍미도 적게 나도록 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호불호가 갈릴만한 향이 나거나 쓴맛이 강해지지 않도록 홉 투여량을 줄이고, 자칫 달거나 바디감이 강하지 않도록 맥아의 특색도 줄입니다. 결국 페일 라거에서는 홉, 맥아, 효모의 풍미가 적게 나야 하는데, 국내에서 대량 생산되는 페일 라거들은 그 기준을 잘 맞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평생 페일 라거만 마셔왔다면 홉 맛, 맥아 풍미, 효모 발효 맛이 무엇인지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런데 수제 맥주는 IPA, 스타우트, 바이젠 등 특정 재료의 특징을 강조하여 독특한 맛을 가미한 맥주를 주력으로 삼지요. 평소 접해보지 못한 맛이 튀어 나오니, 수제맥주를 별로 마셔보지 않은 입장에서는 ‘낯설고 쓰고 강하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께 맥주를 가르치는 저조차도 처음에 필스너 우르켈이 써서 잘 못 마시던 사람이었답니다.
결국 크래프트 맥주는 대중적이고 풍미가 낮은 맥주만 만들지도 않고, 무조건 도수 높고 강한 맥주만 취급하지도 않습니다.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기에, 관심 가지고 마신다면 분명 잘 맞는 맥주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Q 크래프트 맥주 하는 사람들은 왜 라거를 안 만드나요?
A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양조사들에게 라거는 정말 잘 만들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만제’s comment. 수제맥줏집에 가면 대중에게 익숙한 라거 맥주는 별로 없고, 낯선 이름의 에일 맥주가 많기에 이렇게 생각하는 분도 간혹 계십니다. 저 역시 기본적인 시음 수업을 에일 맥주 위주로 구성하기도 하고요.
심지어 혹자는 ‘크래프트 맥주 회사가 페일 라거 소비자의 취향을 무시한다’고 생각하기도 하지요. 이와 관련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질문 중 하나는 “그럼 강사님께서는 맥주 잘 아시니까 카스나 하이트 안 마시겠네요?”였습니다. 질문을 막 받았을 때는 어이 없었지만, 나름 차분하게 설명을 해나갔습니다.
“본인에게 지금 만 원 한 장이 있고, 어떤 맥주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면 임페리얼 스타우트를 한 병 마시겠습니까? 카스 생맥주를 석 잔 마시겠습니까? 만약 치킨이랑 함께 마실 상황이거나 여름에 조깅하고 땀 빼서 갈증 나는 상황이면 저라도 카스 석 잔 마십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 추운 겨울밤에 임페리얼 스타우트 한 병에 투자하면 마신 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면서 깊은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결국 TPO(Time, Place, Occasion)에 따라 더 어울릴 맥주가 바뀌는 법이라, 저도 여름에는 카스나 하이트 잘 마시고 친구들과 을지로에 맥주 마시러 자주 갑니다!”
Q 맥주 양조하면 그날 바로 가져갈 수 있나요?
A 맥주는 발효주라, 스타일에 따라 1~2개월 정도 발효 기간이 필요합니다.
만제’s comment. 이 질문은 강의 의뢰 단계에서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제 답변을 들으면 은근히 실망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아무래도 맥주가 자기 분야가 아니라면 맥주가 발효주라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도 계십니다. 심지어 한번은 출강을 나갔는데, 주최 측에서 치킨과 피자를 잔뜩 시켜놨기에 “왜 이리 음식이 많냐”라고 물었더니, “오늘 맥주 만들면 오늘 마실 수 있는 거 아닌가요?”라고 되물은 적도 있었습니다. 이는 맥주 양조뿐만 아니라 막걸리 쪽 강의하시는 분들도 공감하더군요. 다행히 당시에는 제가 시음 맥주를 준비해 갔었기에 무사히 음식을 안주 삼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다섯 가지 Q&A 외에도 강의 현장에서 자주 받는 질문들이 더 있습니다.
“강사님은 어떤 맥주를 가장 좋아하세요?”
“한국 맥주는 왜 맛이 없나요?”
“맥주 맛있게 마시는 방법 좀 알려주세요.”
“거품 없는 맥주는 신선하지 않은 거죠?”
“홈브루잉 수업 때 왜 하이네켄 같은 맥주는 안 만드나요?”
“맥주랑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을 알려주세요.”
“흑맥주는 왜 이리 맛이 강한가요?”
“수입 맥주는 국내 맥주 회사(?)들이 다 가져온다는데 사실인가요?”
“현지에서 마신 생맥주를 한국에서 마셨을 때, 맛이 왜 이리 다른가요?”
“결국 마니아들도 돌고 돌아 라거 맥주 아닌가요?”
“강사님이 자주 가는 맥줏집이 어딘가요? 가보고 싶네요.”
“홈브루잉하는 것보다 사 먹는 게 더 가성비 좋지 않나요?”
맥주를 잘 알거나 다양한 맥주를 오래 마셔온 분들에게는 당연한 질문들일 수도 있지만, 이제 크래프트 맥주에 첫발을 내디딘 사람들에게 맥주의 세계는 궁금한 것투성이입니다. 이 밖에도 더 많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음 시간에 다시 저의 번뇌를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만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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