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에 죽고 멋에 사는 영국 크래프트 맥주 디자인
맥주, 이제 브랜딩이다
영국적인 것은 묘한 ‘멋’이 있다. 영국 크래프트 맥주도 마찬가지다. 이 ‘멋’이란 맥주 맛 그 자체보다는 맥주를 대하는 문화와 혁신적인 실험정신, 전통을 새롭게 해석하는 시선과 감각적인 디자인으로부터 나온다. 예로부터 사람들이 모이던 사랑방 같던 수많은 유구한 펍을 비롯해 각 지역의 특색 있는 로컬 브루어리들, 세계적인 스트리트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마켓과 전 세대가 삼삼오오 맥주잔을 들고 스탠딩 바에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거리 벤치에 앉아 피쉬 앤 칩스와 맥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들에게 크래프트 맥주란 유행이자 생활이며, 일상 속에서 스스럼없이 즐기는 멋진 친구 같은 존재다.
디자인은 곧 경쟁력이다. 최근 소비자와의 소통과 접점을 중시하는 마케팅 전략이 중요시되면서 ‘디자인’은 브랜드를 강화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수단으로 인지되고 있다. 보통 디자인은 외형적인 것으로만 인지되는 경우가 많지만 더 넓게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까지 위한 과정을 이르며 이는 포장디자인, 콜라보레이션, 마케팅 전략, 행사 등을 포함한다. 패키징 디자인은 특히 브랜드의 첫 인상을 담당하며, 구매 유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또한 메시지가 뚜렷하거나 잘 만든 디자인은 입소문을 만들어낸다. 디자인 하나 만으로도 브랜드를 소비자에게 확실하게 인지시킬 수 있기에 소규모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에게 디자인은 중요한 브랜딩 전략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의하면 30% 소비자의 구매 의사 결정은 ‘패키징’에서 비롯되었다. 60% 소비자들이 패키징에 끌려 새로운 제품을 시도했다고 밝혔으며, 83% 구매 결정은 오프라인과 온라인 마케팅을 통틀어 최종적으로 상점에서 만들어졌다. 소비자 설문조사에 의하면 기타 광고 채널과 홍보보다 패키징 디자인이 구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영국 맥주는 세계 맥주 역사에 있어 누구보다 원조가 많다. IPA, 브라운 에일, 포터와 발리 와인 등이 영국에서 최초로 탄생했다. 최근 영국 내 크래프트 맥주의 붐이 심상치 않다. 2018년 기준 크래프트 맥주 소비량이 급격하게 늘고 있으며, 300여개가 넘는 신생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생겨났다. 이는 영국독립양조협회(SIBA)도 이례적이라 할 정도로 급격하고 빠른 성장이다. 최근 영국 크래프트 맥주는 유일무이하며 독보적인 특별함에서 자부심을 가진다. 볼드한 예술 디자인이 유행이며, 단순하지만 밝고 유쾌하며 다소 도발적인 메시지가 주류다. 영국 내에서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과거의 오래되고 전통적인 라벨들은 신선하면서도 실험적인 레시피를 상징하기에 부족한 경향이 있다. 그래서 다수의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티스트와 스튜디오와 전속 계약을 맺고 브루어리와 브루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디자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현재 전세계적으로 공통된 흐름이다. 영국 내에서는 보다 더 강렬하며, 독립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런던에서는 60개가 넘는 각기 다른 브루어리를 만날 수 있는데, 각기 다른 맥주처럼 개성 있고 차별화된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
브루독 - 맥주계의 이단아, 세계를 놀라게 한 퍼포먼스
스코틀랜드 최대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이자 ‘맥주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브루독은 파격적인 마케팅 행보로 전세계의 주목을 받는 곳이다. 두 공동 창업자가 소기업에 대한 기성 투자 시스템에 대한 항의로 브루독 로고를 붙인 탱크를 타고 영국은행과 런던증권거래소를 지나 런던 시내를 활보해 유명해진 ‘탱크 퍼포먼스’는 영국 맥주 문화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이 퍼포먼스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등에 대서특필되며 브루독을 전세계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력을 확보하는 브루독의 ‘에쿼티 포 펑크’는 이 행사를 계기로 새로운 투자자들을 모았고 2주 만에 500만 파운드가 넘는 투자금을 모았다. 2011년에는 2014년에는 러시아의 반(反)동성애 법에 항의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조롱하는 맥주, `
안녕, 내 이름은 블라디미르(Hello, My Name Is Vladimir)`를 출시했다. 브루독은 이 맥주 한 상자를 푸틴에게 선물로 보내기도 했다.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을 기념해 비아그라를 넣어 만든 ‘로얄 버릴리티 퍼포먼스’, 독일의 쇼르슈브라우와 독한 맥주 만들기 경쟁에서 내놓은 32도짜리 임페리얼 스타우트 ‘택티컬 뉴클리어 펭귄’, 이후 42도의 임페리얼 IPA인 ‘싱크 더 비스마르크’를 비롯해 단 12병만 생산한 한정판 55도짜리 `역사의 끝(The End of History)`을 생산해 다시 한 번 화제를 일으켰다. 브루독의 창업자인 제임스 와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과격하고 충격적인 마케팅 행보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 “창업 초기 마케팅에 투자할 만큼 충분한 돈이 없었지만 영국 맥주 문화를 바꾸고 싶었기에 최대한 주목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쓰고 있다”고 말하며, “중요한 건 이런 마케팅 수단이 단순히 주목을 끌기 위한 기행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벤트로 사람들을 놀라게 한 후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벤트에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브루독이 단시간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는 단순히 마케팅 뿐만이 아니라 좋은 퀄리티의 맥주를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루독이 선보인 크래프트 맥주들은 기존 라거와 에일에 비해 맛과 향이 강하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새로운 소비층을 끌어냈다. 이는 브루독의 지지층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며 고객이 아니라 ‘브루독의 마니아’를 스스로 자처하게 만든다. 최근에는 미국 오하이오주 콜럼버스에 ‘세계 최초의 수제 맥주 호텔’을 짓는 계획을 발표 하기도 했다.
브릭스톤 브루어리 – 로컬의, 로컬에 의한, 로컬을 위한 ‘B’
브릭스톤 브루어리는 2013년 런던에 문을 연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로 모든 맥주에 필터와 살균 처리를 하지 않는다. 엄격한 채식주의자도 마실 수 있는 맥주를 만들며 전통에 따라 소량의 배치만 양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브릭스톤은 과거 지역 주민들이 로컬 브루어리에서 만들어진 신선한 맥주를 마시던 영국 전통을 되살리고 싶다는 취지로 문을 열었다. 그래서 로컬 시장에서 손수 재료를 구매하고, 이웃 식당과 콜라보레이션을 하며 지역 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매주 연다. 브릭스톤의 로고 ‘B’는 런던뿐 아니라 영국 크래프트 맥주씬에서도 유명한 상징이 되었다. 브릭스톤의 창립자인 제즈 갈라운(Jez Galaun)은 브릭스톤 지역의 정체성과 브루어리의 철학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로컬 아티스트를 찾아나섰다. 그렇게 인연을 맺은 정션 스튜디오(Junction Studio)와의 콜라보레이션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정션 스튜디오는 브루어리와 가까운 로컬 시장인 브릭스톤 마켓에서 판매하는 아프리칸-발틱 패브릭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 거기에 팝아트적인 요소들을 더해 밝고 컬러풀하면서도 다양한 레이어의 조합들로 이뤄진 그래픽 디자인을 중심으로 패턴을 만들어내고, 그 위에 커다란 ‘B’ 로고를 올렸다. 브릭스톤 브루어리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맥주는 지역 랜드마크와 상징, 사물, 장소와 도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다. 브릭스톤의 ‘B’는 단순히 브루어리 뿐만 아니라 브릭스톤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많은 로컬 브루어리들이 디자인을 통해 ‘지역성’을 강조하고자 할 때 유명한 랜드마크나 역사에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브릭스톤과 정션 스튜디오의 경우 영국의 혹은 영국의 색채에만 집착하지 않고 지역의 스토리와 사소한 오브제 및 디테일을 패턴과 예술로 재해석해 소비자의 공감을 얻었다는데 의의가 있다
비버타운 브루어리 – 좋은 맥주에게 어울리는 옷
삐뚤삐뚤 손으로 그린 듯한, 짝짝이 눈을 가진 해골과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키는 디자인, 로켓과 무기를 든 해골들이 괴물들과 싸우며 강렬한 형광 컬러를 입힌 묵시록을 바탕으로 한 그림들, 그래픽 노블과 만화, 비디오 게임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비버타운 브루어리의 맥주 라벨들은 영국 내 유수의 디자인 상들을 수상했으며 해외 디자인 전문 잡지들도 주목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세인트 마틴 출신의 일러스트레이터 닉 드와이어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있는 이 브루어리는 빅토리아 시대의 고딕양식과 이야기들에서 영감을 받는다. 특히 그는 펑크록, 얼터네티브 록, 힙합과 헤비 메탈 등의 음악을 들으며 SF 소설과 초현실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로컬 맥주와 지역 전통에 유머러스한 재해석을 추구한다. 해골이 주 상징이 된 이유는 해골이야 말로 나이와 성별, 인종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마치 좋은 맥주가 모두에게 감동을 주듯 말이다. 비버타운은 좋은 디자인이란 맥주를 마시기 전 소비자에게 시각적 체험으로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라 믿는다. 또한 특별하고 좋은 맥주에게는 아울러 감각적이며 예술적인 옷도 필요하다는 말과 함께.
옐로우벨리 브루잉 – 만화 시리즈로 재탄생한 맥주들
아일랜드 웩스포드에 위치한 옐로우벨리 브루어리는 아일랜드 소비자들이 선택한 ‘올해의 디자인’ 상을 여러 차례 수상한 곳이다. 2015년에 문을 연 이 브루어리는 기네스의 나라 아일랜드에 250종이 넘는 크래프트 맥주를 선보이고, 그들이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만화책 시리즈에서 나오는 캐릭터 일러스트로 맥주 라벨을 장식한다. 옐로우벨리 브루어리에서는 새로운 맥주가 나올 때마다 새로운 스토리를 작업한다. 이 스토리를 쌓는 과정이 ‘옐로우벨리 테일즈’라는 스핀 오프 만화 시리즈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해당 만화들은 옐로우벨리 브루어리www.yellowbellybeer.ie/comics 웹사이트에서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옐로우밸리’는 라벨에 매번 등장하는 금색 수염을 기른 남자로 브루어리를 대표하는 캐릭터다. 유명한 코믹북과 비디오게임, B급 영화나 액션 장르를 패러디해 재구성하는 걸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크래프트 맥주가 점점 더 실험적이며 콘텐츠 디자인에 가까워지는 걸 보여주는 셈이다. 브루어리와 브루어리 사이만 콜라보레이션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콘텐츠의 영역에 발을 디디며 엔터테인먼트의 세계로 확장해 나가는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점점 더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요가 커지면서 소비자들을 유혹하는 무기로 ‘디자인’이 선택되는 이유다. 옐로우밸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폴 렉(Paul Reck)은 크래프트 맥주야말로 캔과 병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예술을 가능케한다고 말한다. 또한 기억에 오래 남는 맥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맛에 더해 디자인을 통한 브랜딩도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맥주를 마시면서 예술을 후원하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 또한 디자인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브루어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철학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시장이 커질수록 소비자들의 흥미와 선택을 유발하는 디자인의 힘도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독창적인 것과 실용성이 만나 삶의 일부가 되는 것.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되 혁신과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지는 곳. 기행과 실험, 재미와 혁신이 어우러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곳. 그럼에도 풍자와 유머를 잃지 않고 확고한 메시지를 던지는 자세를 잃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디자인’을 통해 맥주와 사람으로 연결된다. 좋은 원재료와 기술, 철학으로 만든 크래프트 맥주가 이제 디자인을 통한 브랜딩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크래프트 맥주는 결국 삶의 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사람들을 더 넓은 대화와 재미, 실험과 혁신으로 이끌어낸다. 더 좋은, 건강하고 좋은 맥주를 추구할 가치, 더 다양하고 정직한 사람들 간의 연대를 가능케 하는 하나의 장으로서 말이다. 영국 크래프트 맥주가 브랜딩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디자인의 가치도 크래프트 정신과 맞닿아 있다. 결국 디자인이란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세상을 총체적이면서도 새로운 관점으로 사고하게 해주는 힘이기 때문이다. 크래프트 맥주가 목표하는 브랜드의 힘이란 결국, 삶의 질을 높이고 사람들의 생활에 변화를 가져다주기 위함이다. 이 모든 것은 디자인에 대한 고민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크래프트는 ‘멋’이다. 디자인은 이 ‘멋’을 완성한다. 브루어리는 모두 이름으로 불리지만, 모두가 ‘브랜드’로 남는 건 아니다. 경쟁적으로 더 좋은 시설과 자본을 투여해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경쟁이 높아지는 지금, 우리는 어떻게 이 보이지 않는 ‘브랜드 전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고민해야한다. 영국 크래프트 맥주를 들여다보는 일은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들은 누구보다 ‘멋’을 아는 사람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