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페어링 A to Z 이것만 알아도 푸드페어링이 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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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1천만 원에 해당하는 재화를 구입한다면 그것은 반영구적 혹은 영구적으로 남아 일정 시간 간직할 수 있다. 같은 금액을 음료나 음식으로 소비한다면 몇 번의 배출만으로도 몸 안에서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다. 미식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사치 중 하나인 셈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마실 거리와 먹거리 소비를 더욱 가치 있고 조화롭게 즐겨야 하는 이유다.
맥주와 음식도 마찬가지다.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음식이 될 만큼 훌륭한 것이 맥주지만, 다른 음식과 함께했을 때 맛과 향이 배가 된다. 음료를 음식과 조화롭게 맞추는 작업은 맥주보다 와인에서부터 먼저 시작됐다. 맥주와 와인은 오랜 시간에 걸쳐 상류층부터 하층민까지 두루 즐겨져 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군사, 종교 등 더 많이 가진 부류들이 상대적으로 와인을 애호했기 때문에 학문적 접근이 빨리 이루어졌던 것이다. 와인과 음식의 연결은 ‘마리아주(Marriage, 결혼)’ 라는 다소 무게가 있는 용어를 쓰지만, 맥주와 음식에 있어서는 ‘페어링(Pairing, 짝짓기)이라는 캐쥬얼한 단어를 택하고 있는 이유겠다.
맥주 페어링의 3원칙
맥주와 음식 페어링(이하 맥주 페어링)의 이론적인 원칙은 3가지다. 맥주와 음식의 강도 맞추기(Match Intensity), 조화 찾기(Find Harmony/Bridge), 반대 찾기(Create Contrast)다. 먼저 음식과 맥주의 강도를 생각해보자. 음식의 강도에는 식자재 자체가 가지고 있는 강도가 있고, 조리법으로 조절할 수 있는 강도, 그리고 소스와 향신료에 의해서 덧붙여지는 강도가 있다. 식자재 자체의 강도는 야채/채소, 생선류, 가금류, 육류, 야생동물로 갈수록 세진다. 조리법에 의한 강도는 불에 얼마나 직접 닿았느냐, 혹은 얼마나 오랜 시간 연기에 노출되었느냐에 달려있다. 생, 찜/데침, 튀김, 구이, 직화구이, 훈연 순으로 조리에 의한 강도가 증가한다. 마지막으로 소스나 허브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맛과 향의 정도에 따라서 음식에 세기를 더해준다.
맥주의 강도는 양조자들이 맥주를 디자인할 때부터 어느 정도 정해진다. 맥주를 평가하는 방법에는 수치로 표현할 수 있는 정량적 지표들이 있는데, 그 항목들의 숫자가 높을수록 맥주의 강도가 높다. 맥주의 색을 나타내는 SRM, 맥아즙의 당도(OG), 쓴맛의 정도 (IBUs), 알코올 함유량(ABV) 등이 맥주의 강도를 수치로 나타내는 대표적인 정량적 지표다.
음식과 맥주의 강도를 어떻게 맞춰야 할까? 복잡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론적으로는 강도가 약한 맥주는 약한 음식과, 강도가 센 맥주는 그만큼 센 음식과 페어링하는 것이 정설이다. 맥주 스타일별로 정량적 지표의 강도가 약한 맥주부터 강한 순서대로 줄을 세워놓고, 음식과 페어링했을 때 압도하거나 압도당하지 않는 맥주를 짝짓기하는 것이다. 라거 스타일 – 마일드 에일 스타일 – 호피 에일 스타일 – 다크 맥주 스타일 – 고도수 맥주 스타일 정도로 맥주를 줄 세워놓고, 음식에 사용된 재료, 조리법, 기타 소스류를 고려해서 매칭하는 방법이다.
맥주 페어링, 재료의 이해가 중요하다
맥주와 음식의 조화를 맞추는 것은 맥주를 만들 때 사용하는 재료의 이해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물을 제외한 맥주의 주재료로는 맥아, 홉, 효모가 있고 부재료로는 곡식, 과일, 허브, 향신료, 꽃, 차등이 있다. 양조에 사용한 부재료가 음식에도 들어가 있다면 맥주가 가진 맛과 향이 음식에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특히, 허브나 향신료의 향이 가득한 맥주는 일반적으로 그 허브나 향신료들을 함께 곁들이는 음식과 잘 맞는다. 예를 들어 고수 향이 가득한 벨지안 스타일의 밀맥주는 고수를 자주 곁들이는 쌀국수나 반미 샌드위치, 마라탕 등 동남아 음식과 조합이 아주 좋다. 미국 홉을 사용하여 로즈마리나 오레가노의 뉘앙스를 품고 있는 호피한 에일은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음식과 뗄 수 없는 페어링을 보인다. 싹을 틔운 뒤 건조시킨 보리인 맥아는 발아 과정 후 건조 및 로스팅 과정에서 불에 얼마나 고온에 장시간 노출되었느냐에 따라 맛, 향, 색이 진해진다.
흰 밀가루 반죽을 불에서 구웠을 때 강해지는 맛과 향을 생각하면된다. 색이 짙은 맥주에서는 필연적으로 불에 의한 고소함발생하는데, 극단으로 갈수록 견과류, 초콜릿, 커피, 탄 향 등과 같은 짙은 재료의 맛과 향을 기대할 수 있다. 맥아 자체가 조리법에 의해 강도가 높아진 셈이다. 맥아에 의해 색이 짙어진 맥주일수록 조리법에 의해 강도가 세어진 음식이나 곡물 향이 가득한 음식을 함께 하면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 외에 ‘깔맞춤’ 페어링이라고 불리는 맥주와 음식의 색을 맞춰서 즐기는 방법, 맥주의 발효 및 숙성도에 따라 그에 맞는 제조 방식과 유사한 치즈와 함께 곁들이는 방법도 있다.
일상 속 몇 가지 맥주 페어링
맥주 페어링의 대표주자를 생각하면 시원한 맥주를 뜨거운 치킨과 함께 즐기는 ‘치맥’을 꼽을 수 있다. 라거 계열의 맥주와 프라이드 치킨을 함께 먹는 것인데, 혹자는 이것은 ‘페어링(Pairing)’이 아닌 ‘저스트 잇팅(Just Eating)’이라고 한다. 하지만 치맥을 경험적으로 맛있게 느끼고 본능적으로 열광하는 이유는 맥주 페어링의 이론적 원칙 중 마지막인 ‘반대점 찾기’에 있다. 맥주와 음식의 반대되는 요소가 만나 상쇄된다는 점에서 맛의 미를 느끼는 것이다. 라거 맥주가 지니고 있는 차가운 온도 감각과 뜨거운 치킨의 열기, 라거 맥주에 가득한 탄산감과 튀김 옷이 머금고 있는 기름기가 ‘사라짐의 미각’을 일깨우는 순간이다. 매운 음식을 먹었을 때 밥이나 단맛이 있는 음료를 마셔서 맵기를 없어지게 하고 또 그 매움의 통각을 찾는 것처럼, 쓴맛이 가득한 맥주를 마시고 단맛이나 단백질이 가득한 육류를 섭취하면 홉이 주는 쌉쌀함이 바로 생각나기도 한다. 그외에 신맛이나 로스팅 풍미가 강한 맥주를 단맛이 가득한 음식으로 없애는 방법도 대표적인 예다.
맥주 페어링을 핑계로 다양한 맥주를 음식과 즐기다 보면 의외의 조합을 발견할 수 있다. 가장 놀라웠던 맥주 페어링은 허브 중 향에 있어서 최강자인 고수, 삭힌 음식의 극강자인 홍어를 함께 하면서 다소 강도가 낮은 맥주로 치부했던 밀맥주와 함께했던 경우다. 강도가 다소 높은 IPA, 어두운 맥주, 숙성 맥주까지 튕겨냈던 홍어와 고수의 높은 맛과 향의 벽을 밀맥주가 조화롭게 아울러 버렸다. 같은 스타일의 맥주라고 할지라도 양조장에 따라 음식과 매칭이 오묘하게 어긋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때문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 스타일의 맥주 페어링이라 하더라도 완전히 똑같은 브랜드의 맥주와 음식이 아니면 직접 마시고 먹어보기 전에 100% 확신하면 안 된다. ‘양꼬치엔 칭따오~’처럼 음성지원까지 되는 카피라이트 하나로 맥주 페어링의 모든 이론적인 원칙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우도 있다. 사실 양꼬치와 같이 직화하고 향신료를 넉넉하게 찍어 먹는 음식에는 다소 단맛이 있거나 맛과 향이 강한 맥주가 더 잘 어울린다. 양꼬치만 놓고 보면 칭다오보다 단맛이 조금 더 있는 연경의 맥주가 더 나은 페어링을 보인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양꼬치와 칭다오만큼 만족감을 크게 줄 수 있는 페어링은 없다.
맥주나 음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맛과 향 이외에 외적인 요소가 미각에 환각을 주는 대표적인 경우다.
인간의 뇌는 실질적으로 인지하는 맛과 향을 기반으로 상황에 따라 ‘총체적인 맛’을 만들어 낸다. 총체적인 맛이라고 하면 미각으로 느낄 수 있는 맛과 후각으로 감지하는 향에 내적 요소와 외적 요소까지 합쳐진 맛이다. 촉각, 온도 감각, 통각, 내장감각 등과 같이 각자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내적 요소라고 보면 된다. 날씨, 분위기, 가격, 학습, 경험, 가격 등 외부 환경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외적 요소다. 맥주나 음식 그 자체 이외에도 고려해야 하는 페어링 요소가 다양하다는 의미다.
맥주 페어링은 절대적일 수 없고, 매번 맥주를 마실 때마다 적용하는 까다로운 작업이 될 필요까지는 없다. 편하고 즐겁게 마시는 맥주라면 그저 앞에 있는 음식과 맛있게 먹고 만족하면 그만이다. 다만 서두에 언급했듯이 이왕 부리는 미식의 사치라면 훨씬 좋은 미식 경험을 남기기 위해서 다소 복잡할 수 있는 맥주 페어링을 적용해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맥주를 만나 볼 수 있게 된 역사가 길지 않은 만큼, 아직 맥주 페어링도 걸음마 수준에 있다. 맥주가 문화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맥주 페어링을 경험한 젊은 층이 엄마, 아빠가 되어 자식들과 함께 즐기는 세대가 지나야 새로운 문화가 생활로 자리 잡을 수 있다.
EDITOR_손봉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