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 by 에드바르트 뭉크 X 카스, 오비맥주
2017년이 시작된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달력이 벌써 한장밖에 남지 않았다. 칼바람이 부는 거리에는 이제 곧 캐롤이 울려 퍼질 기세다. 한 해 동안 함께했던 사람들과, 혹은 바빠서 보지 못했던 사람들과 술 한 잔 걸치면서 내년을 바라보는 그런 계절이 왔다.
그 중에도 반가운 모임은 친한 친구들 모임이다. 서로 취향도 분명하고 하는 일도 다른 친구들이 모였을 때, 가장 ‘만만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라 하면 단연코 소맥이 아닐까. 웬만한 음식들과도 무척 잘 어울리고, 사람마다 취향껏 도수를 조절해 마실 수도 있다. 새롭게 소맥을 제조하는 법을 보여주겠다면서 갖은 방법을 시도하는 친구 한 명이 있으면 자리는 더욱 흥겨워진다. 한 가지 주의 할점 - 너무 마시면 다음날 뭉크의 그림 - ‘절규’ 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나는 두 친구와 길을 걸었다. 태양이 지고 있었으며, 나는 멜랑콜리의 기미를 느꼈다. 갑자기 하늘은 피 같은 레드로 변했다. 나는 멈추어, 길 난간에 기대었고 죽은 자처럼 피곤했다. 나는 블루 블랙의 피오르드와 도시를 넘어 피처럼 불타는 구름을 보았다. 친구들은 계속 걷고 있었고 나는 거기서 전율을 느끼며 서 있었다. 나는 자연을 꿰뚫은 큰 목소리의 절규를 느꼈다.” 뭉크가 ‘절규’를 그리기 전 그의 일기장에 적은 내용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잔병치레가 잦았던 뭉크는 삶의 대부분을 공포, 그리고 광기와 함께 보낸다. 그의 작품에는 죽음과 절망이 짙게 배어있으며 대표작인 ‘절규’는 그러한 인간의 내면적인 고통을 담고 있다.
신경질적인 아버지와 일찍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 정신병 진단을 받은 여동생. 심지어 아버지의 수입도 신통치 않은 탓에 뭉크의 유년시절은 고통과 절망의 나날이었다. 기술대학에서 공부하던 그는 병약한 몸 탓에 학업을 중단하고 취미였던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된다. 이후 파리로 건너가 사랑을 하고, 다른 화가들과 교류를 시작하면서 그는 인생 뒤에 깔려 있던 죽음, 허무함, 사랑, 공포 등을 작품으로 풀어내며 화가로서의 입지를 점점 굳히게 된다.
하지만 작품을 향한 언론의 혹평과 실패한 사랑은 뭉크의 삶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술과 자잘한 다툼은 늘 그의 삶과 함께했다. 그의 내면에 담긴 절망은 1983년에 그려진 ‘절규’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붉게 물든 하늘과 흔들리는 풍경, 공허하게 뜬 커다란 눈과 얼굴을 부여잡은 손 등 그림의 면면은 불안한 그의 내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벌린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우리에게 유명한 그림은 1893년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뭉크는 동일한 주제로 50종이 넘는 그림을 남겼다. 이후에도 긴 요양과 치료를 거치기 전까지 뭉크의 그림들에서는 슬쩍 보기만 해도 고뇌와 우울함이 뚝뚝 묻어난다.
연말 즈음에 술을 잔뜩 먹은 다음날이었나. 같이 술을 마신 친구에게서 아침에 메시지 하나가 왔다. 바짝 마른 입, 깨질 것 같은 머리를 추스르며 힘겹게 눈을 떠서 문자를 열었더니 내용은 없고 그림이 딱 하나 있다. 뭉크의 절규. 전날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에, 연말 분위기에 신나게 소맥을 말아서 생각 없이 쭉쭉 들이켰더니 다음날 기분이 딱 ‘절규’다. 하늘도 땅도 미묘하게 흔들리는 것 같고 몸은 잔뜩 피곤하고, 울렁거리는 속에 나도 모르게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듯 하다. 간밤의 기억을 떠올려보니 초록색 소주병들과 푸른색 라벨이 붙은 카스 맥주병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테이블밑에 차곡차곡 쌓아 놓은 빈 병들이 거의 벽을 이루고 있었다. 처음에는 ‘소주 한 병이요! 맥주 두 병이요!’하고 시키다 나중에는 알아서 맥주를 끊임없이 가져오던 친구 녀석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소맥에 단연코 가장 어울리는 맥주는 카스가 아닐까? 하이트와 함께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맥주인 카스는 1994년부터 판매되었다. 카스는 페일 라거로 분류되는데, 가벼운 맛에 ‘원샷’하기 제일 좋은 맥주가 페일 라거다. 밝은 노란색에 청량한 맛, 여기에 카스는 다른 맥주들보다 강화된 톡 쏘는 맛을 자랑한다. 크게 튀지않는 맛에 소주와 적당한 비율로 섞으면 깔끔하고 부드러운 ‘소맥’이 탄생한다. 한국에서 한 번이라도 술을 마셔본 외국인들이라면 소맥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을 정도로 한국 음주문화에서 빼놓기 힘든 술이 아닐까 싶다.
요즘에는 카스 광고에 유명 셰프인 고든 램지가 출현해 그 시원한 맛을 극찬해서 갑론을박이 일고 있다. 원래 그는 진한 맛의 맥주를 선호하지 않고 버드와이저를 좋아한다고 하니, 광고에서 하는 말들이 다 거짓말은 아닌 것 같다. 음식이든 맥주든 개인 취향이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나. 나의 경우에는 다른 때는 몰라도 치킨을 먹으면서 시원하게 톡 쏘는 맛이 생각나거나 소맥을 만들 때 카스만한 맥주가 없는 것 같다. 대학교 입학해서 여럿이 치킨을 시켜놓고 피처로 계속 주문해서 마셨던 카스 – 이런 추억들을 떠올려보면 맛 자체보다도 그 맥주와 함께 보냈던 기억에 “여기 카스 2병이 !”하고 편하게 외치게 된다.
물론 이렇게 술술 넘어가고, 자주 소주와 섞어 마시고, 친구들과 잔뜩 마시다 보니, 카스와 함께했을 때 예상 외로 과음한 기억이 많다. 다음날 얼굴이 하얘지고 속은 뭉크 그림 속의 하늘처럼 울렁 거리면 다시는 이렇게 마시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술자리에서는 뭉크의 그림과는 정 반대의 즐거운 추억이 많아 그나마 다행이다. 술자리가 더욱 많이 잡히는 연말, 모두 다음날의 ‘절규’를 한 번 떠올리며 적절히 술잔을 기울이는 행복한 맥주 생활 누리시길 빈다.
EDITOR_비어캣(Beerk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