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맥주에 관한 두 바퀴로 그리는 맥주 일기
도서 소개
유럽 2500km 63일간 32잔, 미국 2600km 62일간 36잔,
여행 초보, 맥주 초보의 두 바퀴로 달리며, 마시고 그린 맥주 이야기.
“이 책은 단순히 ‘맥주’ 하나에 국한된 책이 아니다. 자전거를 타고 ‘맥주를 찾아가는 과정’과 그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에 더욱 힘을 주는 책이다. 온전히 맥주만을 기대하고 책을 펼친 분들이 계시다면 조금 아쉬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난 앞으로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만들어가고 싶다. 나뿐만이 아닌 이 책을 펼친 모든 이들의 맥주 이야기가 풍부해 질 수 있도록.”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다. 맥주를 많이 마시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맥주를 마시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그 여행의 수단이 자전거라면? 겁 없이 자전거 한 대에 몸을 싣고 유럽과 미국을 누빈 여대생이 있다. [두바퀴로 그리는 맥주 일기]는 저자 최승하가 유럽에서 63일단 2500km를 누비며 마신 32잔의 맥주와, 유럽에서 62일간 2600km를 누비며 마신 36잔의 맥주 이야기를 담았다.
막연히 ‘할머니가 됐을 때 독일에서 소시지를 먹으며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이 꿈’이었던 대학 졸업반의 여대생은 다른 사람의 여행기를 읽으며, 그 막연한 꿈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맥주와 함께라면 그 또한 좋지 아니한가 하는 마음으로. 엉덩이가 부서지는 고통쯤은 아무 상관없이, 해외여행 경험도, 가진 돈도, 자전거 여행도 잘 모르던, 모르던 것투성이기에 더 용감하게 떠날 수 있었던, 맥주 하나만 바라봤던 여행기에 함께해보자.
열 번째 잔. 포틀랜드에 함께 머물다간 사람들
어떤 걸 봤을 때 불현듯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함께 있지 않아도 잠시나마 그 사람과 머물 시간을 만들어주니 말이다. 포틀랜드에 머무는 동안엔 이렇게 함께 있지 않아도 그 순간 머물다 간 사람이 많았다
# 1. 엄마의 얼굴
포틀랜드에서의 이튿날. 맥주 투어를 하기에 앞서 워싱턴 공원(Washington Park)에 있는 ‘로즈 가든 (International Rose Test Garden)’에 들렀다. ‘장미의 도시’라고도 불리는 포틀랜드의 필수 코스라고들 한다. 날씨가 화창한 탓인지 5~6월이 절정임에도 꽃들이 활짝 피어있었다. 빨갛고, 노랗고, 또 새하얀 형형색색의 장미꽃들. 그 앞에서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는 한 여자아이와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 니, 문득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어휴, 꽃은 무슨. 엄마 그런 거 안 좋아해!”
셋째 언니 웨딩 촬영 당일 날, 촬영 소품으로 준비된 부케를 받아 든 엄마는 말했다. 잠시 내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더니 평생 꽃이라곤 들여다볼 일도, 또 좋아하지도 않는다며 손사레를 치던 엄마였다.
“아냐. 엄마 진짜 예뻐!”
그 말에 “그래?”하며 슬며시 벽에 기대어 미소를 띠던 엄마의 모습은 수줍은 소녀 같았다. 몇 장 사진을 찍고 있으니 엄마는 장미꽃 배경인 자리에 서서 이 모습도 찍어달라고 하셨다. 옆으로 서서 손을 모으는 모습,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는 모습. 이리 저리 포즈를 취하며 미소 짓는 엄마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우리 엄마, 천상 여자였네.”
그러고 보니 엄마는 꽃을 좋아하지 않은 게 아니라, 꽃을 들여다볼 여유조차 없이 지난 세월을 지내왔을지도 모르겠다. 엄마랑 여기 왔으면 정말 좋아했을 텐데. 나도 저 모녀처럼 엄마 사진을 예쁘게 담아줄 수 있는데. 혼자 이 순간을 누리고 있자니 괜히 또 뭉클하고 미안해져 장미꽃을 카메라에 잔뜩 담았다. 다음번엔 이 자리에 선 엄마의 미소가 담겨있길 바라며.
# 2. 친구의 얼굴
로즈 가든을 다운타운을 향해 달렸다. 화사한 꽃들을 본 덕인지, 내리막길이 계속된 덕인지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내내 페달이 가볍기만 하다. 혼자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다 보니 어느 새 ‘10 배럴 브루잉(10 Barrel Brewing)’ 앞에 다다랐다. 나는 자전거를 입구 앞 기둥에 묶어두고 실내로 들어섰다.
북적거리던 실내는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세련된 느낌에 다른 곳에 비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공간인 듯했다. 넓은 내부에 목재 테이블, 천장을 채운 은색 파이프. 요즘 한국에서도 흔히 찾을 수 있는 카페 인테리어와도 비슷하다. 바(Bar)에는 빈자리가 없었던터라 바를 마주보는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풍채 좋은 직원이 다가왔다.
“주문하겠어요?”
여기에선 10개의 샘플러 세트를 꼭 마셔봐야 한다는 지인의 추천이 있었기에 1초의 고민 없이 샘플러를 주문했다(이곳 샘플러는 무조건 10개가 1세트이다.).
그래. 샘플러가 10개여 봤자 얼마나 되겠어. 모자라면 마시고 더 시켜야지. 룰루~ 라는 생각은 샘플러가내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됐다.
‘헐, 이 많은 걸 어떻게 다 마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번호가 적힌 순서대로 맛을 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차례대로 맥주를 마시다 보니 6잔쯤 되었을 땐 점점 시험치는 기분도 들고, 네 맛이 다 내 맛 같은 게 혀가 마비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아, 구원투수라도 있었으면. 이리저리 둘러보니 삼삼오오 모여 맥주를 나누는 이들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온다.
맥주라면 나만큼 난리가 나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여기 왔다면 지금쯤 1인 1샘플러를 마시고도 모자라다며 더 시키자고 직원을 향해 손을 들었겠지. 그렇게 밤새도록 맥주에 취해 포틀랜드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역시, 이렇게 맛있고 다양한 맥주도 혼자 마시니까 재미가 없다. 다음번엔 꼭 같이 오자, 친구야.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데슈츠 브루어리(Deschutes Brewery)’. 1988년 오리건주의 벤드(Bend)에서 시작된 이곳은 포틀랜드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브루어리 중 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풍기는 아우라가 남달랐다. 신생 브루어리의 파릇파릇하고 진취적인 느낌보다는 고향을 방문한 듯 편안하고 오래 묵은 느낌. 연예인으로 비유하자면 오랜 연기 경력의 내공을 가진 30대의 연기파 배우 느낌이랄까. 앞서 방문한 10 배럴과는 아주 상반된 느낌이었다.
포틀랜드의 관광 명소답게 대기 인원이 많았으나 난 혼자여서 바로 자리를 안내 받을 수 있었다. 널직한 내부는 다소 동양적인 느낌의 인테리어가 패밀리 레스토랑 같았다. 관광객, 현지인 상관없이 많은 이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는데 가족 단위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친구와 맥주를 나누는 사람들, 나처럼 혼자 맥주를 마시러 온 사람들. 모두 각양각색이었다.
실제로 포틀랜드는 이렇게 다양한 연령층이 함께 브루어리를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가족, 이웃 등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여유롭게 즐기는 삶의 질에 초점을 두는 포틀랜드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브루어리에서 맥주만 즐기기보다 가족 구성원이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오랜 시간 음식을 먹으며 천천히 머물다 간다. 때문에 브루어리에서도 로컬 푸드(Local Food)를 사용한다던가, 친환경재료를 사용한다던가. 맥주만큼이나 음식에 굉장한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고.
아침부터 빈속에 맥주를 들이켜온 터라 끼니를 해결할 겸 더블 머시룸 햄버거를 주문했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먼저 도착한 맥주는 ‘프레 시 스퀴즈 IPA(Fresh Squeezed IPA)’. 붉고 짙은 호박색에, 얕게 깔린 헤 드. 한 모금 마시자 마치 요리왕 비룡처럼 헉 소리와 함께 내 머릿속에 ‘미미(美味)’가 지나다녔다.
세상에나!
데슈츠브루어리는 음식이며, 맥주며, 분위기까지 삼박자가 골고루 갖춰진 곳이었다. 많은 사람이 찾아 바쁜 와중에도 미소를 잃지 않았던 직원의 서비스까지. 친구들과 그리고 우리 가족들과 함께 찾아도 모두가 만족스러워 할 그런 곳이다.
남은 맥주를 마시려고 잔을 들었는데 아까는 보이지 않던 코스터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GOOD BEER BRINGS PEOPLE TOGETHER좋은 맥주는 사람들을 한데 모은다.”
그러네. 이 장소, 이 분위기에 딱 어울리는 메시지다.
그리고 좋은 맥주는
여기 있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 순간 함께하도록 만들어주었다
작가소개
최승하
언니 셋, 남동생 하나가 있는 최 씨네 가문에 넷째 딸로 태어났다. 그중에서 유별나게 술을 좋아했고, 지금은 그 술 중에서
도 맥주를 가장 애정한다. 결국 2015년 8월, 독일에서 소시지와 맥주를 마시겠다는 꿈을 품고 유럽 자전거 맥주 여행을
다녀왔다. 그 과정에서 국내 크래프트 맥주 업계와 그 속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고, 2016년 8월, 다시 한 번 안장에 몸을 실었다. 크래프트 맥주 열풍의 근원지였던 미국을 향해!
페달을 밟으며 마주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만들어낸 다양한 맥주 이야기를 보다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즐기고 싶어, 이 책 『두 바퀴로 그리는 맥주 일기』를 썼다. 현재 부산 와일드웨이브에서 일하며 또 다른 맥주 이야기를 쌓아가고 있다.
EDITOR_최승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