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X Beer Series: 그네 by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X 마담 로제, 구스 아일랜드 비어 컴퍼니
거리를 비추는 햇살, 어느새 푸르게 변한 나뭇잎, 화려한 색으로 피어나는 꽃들을 보고 있자면 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좋은 계절에 시원한 맥주와 함께하는 로맨틱한 시간을 즐기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을 것이다.
5월에 가장 잘 맞는 로맨틱한 맥주로 구스 아일랜드 비어 컴퍼니의 ‘마담 로제’를 추천한다. 와인 병을 닮은 우아한 병 모양에 담긴 장밋빛 맥주. ‘마담 로제’ 라는 이름과 정말 딱 어울리는 새콤한 맥주다. 5월에 만개한 장미 앞에서 누군가와 한 잔 마신다면 연인이 아니더라도 사랑에 빠질 것 같다. 6.7% 도라는 도수를 잊은 채, 상큼한 맛에 홀짝홀짝 하다가는 로코코 시대의 걸작 중 하나인 “그네” 속의 연인들처럼 삼각관계에 빠질 수도 있으니, 아무리 계절이 아름답고 맥주 맛이 좋더라도 조금은 조심하도록 하자.
유럽의 유명한 미술관에서 찬찬히 시대별로 그림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방의 분위기가 확 밝아지는 지점이 있다. 바로 로코코 시대의 그림들이 전시된 방이다. 18세기의 프랑스 귀족들은 사치스러운 생황을 하면서 주위의 모든 것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에 심취했다. 정원의 구석구석도 조약돌(Rocaille)과 조개껍데기(Coquille) 로 꾸미는 화려하고 섬세했던 시절. 로코코라는 단어는 바로 이 조약돌과 조개껍데기를 조합한 단어이다. 그림에도 이러한 분위기는 반영되어 이 시대의 그림은 밝고 경쾌한 색채로 귀족들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묘사하는 데 집중한다. 사랑, 향락, 관능미가 넘치는 그림들은 짧은 시기 유행처럼 퍼져 나간다.
‘그네’ 의 작가인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는 ‘가장 로코코적인 화가’ 로 불린다. 로코코 회화의 대가인 부셰의 가르침을 받은 그는 초기에는 로마에서 유학을 하고 바로크 풍의 작업을 하며 엄숙한 주제의 그림들을 그린다. 그러나 이후 그의 화풍은 일견 바뀌어 국가와 관련된 작업에 매이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작품세계를 펼쳐 나간다. 그의 작품들은 풍경, 동물, 삽화 등 다양한데, 그 중에서도 연애 풍속화가 유명하다. 다양한 감정을 담고 있는 사람들, 순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이 가득 담겨있는 그의 그림은 보는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분홍색, 밝은 연두색으로 밝게 묘사된 그의 그림을 보며 사람들은 어느새 그림 속의 인물의 표정을 따라하게 되고, 대체 그림 속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상상하게 된다.
특히 ‘그네’ 그림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한껏 자극하는 그림 중 하나다. 그림을 찬찬히 뜯어보기 전부터 아름다운 색채로 눈을 사로잡는 이 그림에는 수많은 디테일이 담겨 있다. 마치 한 송이 장미 같이 화려한 분홍색 옷을 입은 여자는 작품 가운데서 그네를 타며 오른쪽과 왼쪽의 남자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장미 덤불에서 숨어서 그녀를 보고 있는 남자는 그네를 타는 여인과 은밀하게 눈을 맞춘다. 혹은, 그녀의 치마 속을 몰래 훔쳐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모르는 채, 여인의 남편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오른쪽에서 묵묵하게
그녀의 그네를 밀어주고 있다. 관찰력이 좀 더 좋은 사람이라면 여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 숨어있는 남자의 표정, 여인의 쭉 뻗은 발을 떠나 날아가는 분홍색 신발 등 디테일까지 꼼꼼히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행복, 사랑, 향락, 그리고 묘한 긴장감이 공존하는 이 그림을 보며 관객들은 각각의 상상 속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 아슬아슬하면서 아름다움이 가득한 그림과 구스 아일랜드의 맥주 ‘마담 로제’는 끝내주게 잘 어울린다. 그림 속의 여인이 입고 있는 핑크보다는 훨씬 짙지만 장밋빛을 띄는 맥주, 그리고 그 탄산감과 새콤하면서 톡 쏘는 풍미는 그림이 가진 발랄함을 닮아 있다.
벨기에 야생 효모와 체리를 듬뿍 넣어 발효시킨 마담 로제는 몰트 향도 풍기면서 침이 고이는 새콤함과 폭발적인 과일향을 담고 있는 맥주다. 와인병 모양의 예쁜 맥주병은 로코코 시대의 화려함과 딱 맞다. 와인과 비슷한 색깔에, 와인 용량과 같은 750ml 의 와인병에 담겨있는 맥주라니? 병에는 빈티지도 써 있고 잔도 파인트가 아니라 와인잔처럼 아름다운 굴곡을 가지고 있는 이 독특한 맥주를 보며 일견 ‘맥주가 아니라 와인 아니야?’ 할 분도 많을 듯 하다. 우선 답부터 말하자면 맥주가 맞다. 그렇지만 마담 로제는 독특하게도 ‘와인 배럴에서 숙성시킨 맥주’다.
맥주를 와인 배럴에 숙성시킨다고 하면 놀랄 사람들도 많겠지만 다양한 맥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배럴 에이징” 은 아주 생소한 이야기는 아니다. 맥주에 다양한 향과 풍미를 주기 위해서 시작된 배럴 에이징은 시카고의 브루어리인 구스 아일랜드 비어 컴퍼니가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2년, 창립자의 아들인 그렉 홀은 진 빔 위스키의 양조사와 저녁을 먹다가 문득 영감을 얻어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된다. 위스키를 만든 후 버려지는 오크 배럴을 가져와 거기에 맥주를 숙성시키고 독특한 풍미를 입히기로 한 것. 시카고의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은 오크통을 수축하고 팽창하게 만들어 위스키의 향이 온전히 맥주에 밸 수 있도록 했고 구스 아일랜드는 지금도 사람들이 1년에 단 1번 있는 출시일마다 줄을 서서 구매하는 “버번 카운티” 맥주를 만들어 내게 된다. .
또한 구스 아일랜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와인 배럴을 가져와 맥주를 1~2년간 발효시키며 실험적인 시도를 계속한다. 남성적인 스타우트를 버번 위스키 배럴에 발효시킨 것과 다르게, 와인 배럴에서 숙성된 맥주들은 벨기에 에일에 다양한 과일을 넣어 섬세한 신맛을 극대화 시켰다. 체리를 듬뿍 넣은 마담 로제를 포함하여 오렌지 껍질이 들어간 소피, 라즈베리가 들어간 롤리타, 복숭아가 들어간 할리아, 딸기가 들어간 질리안 등 향긋하고 화려한 맛을 가진 다양한 배럴 에이징 맥주들은 맥주 애호가들에게 꾸준한 인기를 끌고 있다.
장미 향기가 가득한 5월. 과일향 가득한 와인 배럴 에이징 맥주를 한 잔 가득 따라 놓고, 햇살아래서 즐긴다면 18세기 로코코시대에 프랑스 귀족들이 즐겼다던 향락도 얼마간은 따라갈 수 있을 듯 하다. 마담 로제는 아직 한국에 정식으로 수입되지는 않지만 소피,할리아, 질리안 등 구스 아일랜드의 와인 배럴 에이징 맥주는 다양한 곳에서 만나볼 수 있고 다른 맥주 브랜드에서도 여러 배럴 에이징 맥주들이 나오고 있으니 만일 이를 아직도 접하지 못했다면 꼭 마셔볼 것! 맥주와 함께 행복 가득한 5월을 보낼 수 있길, 건배!
EDITOR&ILLUSTRATOR_비어캣(Beerk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