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포스트 에디터 취중진담 지상중계, 맥주 업계를 돌아보다
청와대 공식행사에서 크래프트 맥주가 건배주로 선정됐다. 소규모 브루어리 맥주의 외부 유통을 전면 허용하고 시설 기준을 완화하는 정책이 발표됐다. 100억 원 이상 자금이 투자된 브루어리들이 문을 열었고 병, 캔에 담긴 맥주들이 대거 출시됐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의점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살 수 있는 시대가 열렸으며 국내에서는 절대 구경할 수 없을 것 같던 맥주들이 잇달아 수입되는 한편 국내 브루어리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올 한해 대한민국 맥주 업계는 내외부의 환경 변화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어려움도 많았지만 대한민국의 역사가 그렇듯 대한민국 크래프트 맥주 역사도 길게 보면 앞으로 나아갔다고 평가할 수 있는 한 해였다.
비어포스트에서는 2017년을 마무리하며 맥주 업계를 돌아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인기 비어포스트 발행인과 김정환·박지영·장명재 비어포스트 에디터, ‘맥덕’ 심현희 서울신문 기자가 모여 앉아 맥주잔을 기울였다.
3대 뉴스 : 더부스·어메이징 사건, 청와대 건배주, 홍종학 장관
황지혜(이하 황) 먼저 각자 2017년 맥주 업계 3대 뉴스를 꼽아보고 논의를 확대해 나가면 좋겠다.
심현희(이하 심) 일명 ‘더부스-어메이징 사건’이 기억에 남는다.
더부스브루어리의 퇴직금 지급을 둘러싸고 촉발된 이 일은 어메이징브루잉의 채용 취소로 불이 붙었고 불매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기존에는 맥주 자체에만 주목했다면 이 사건을 통해 도덕성이 소비의 기준으로 제시됐다. 긍정적으로 보면 업계가 커져서 일어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크래프트 정신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도록 한 일이었다.
두 번째로는 ‘맥주대통령’ 홍종학 전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된 것이다. 맥주 시장을 이해하는 사람이 중소벤처를 지원하는 부처의 장관이 된다는 것은 이 시장에 정말 좋은 소식이다.
마지막으로 브루펍이 주목 받은 한 해였다. 대표적으로 서울에서는 미스터리, 부산에서는 와일드웨이브가 일반인들까지 크래프트 맥주 펍으로 끌어들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박지영(이하 박) 역시 더부스-어메이징 사건이 업계에 가장 큰 파장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이와 함께 청와대에서 건배주로 크래프트 맥주를 선택한 것도 이슈였다. 대중들에게 크래프트 맥주를 각인시키는 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 또 올해는 ‘편의점 크래프트 맥주 시대’가 열렸다. 이마트24에는 밸라스트 포인트가, 세븐일레븐에는 플래티넘이 유통되는 등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접근성이 월등하게 좋아졌다.
장명재(이하 장) 정권이 교체되면서 소규모 기업 친화적인 쪽으로 정책이 가는 가운데 크래프트 맥주가 부각되고 있다. 홍종학 전의원이 장관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흐름이라고 본다. 또 올해는 보틀샵이 몰락하고 마트가 약진하는 모습이 두드러졌다. 마트의 크래프트 맥주 라인업이 눈에 띄게 다양해진 데다 보틀샵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요즘 잘 운영되는 보틀샵은 우리슈퍼, 위트위트, 이편한마트 등 몇몇 정도인 것 같다. 나 역시 더부스-어메이징 사건이 2017년 3대 뉴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김정환(이하 김) 올해 맥주 업계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국내 크래프트 맥주 초창기를 이끌었던 사계와 비어와인플레이스 명동점이 폐업했다는 것은 상징하는 바가 크다. 굿맨브루어리, 글로벌크 래프트코리아(GCK)도 내부적으로 문제를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
더부스-어메이징 사건도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 좋지 않은 뉴스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반면 토플링 골리앗이라든지 파이어스톤 워커의 파라볼라, 스티키 몽키 등이 수입돼 맥덕들을 즐겁게 해줬다. 맥주 수입사들의 맥주 선별 능력이 굉장히 좋아졌다.
이인기(이하 이) 홍종학 전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된 것이 가장 큰 뉴스라고 본다. 연장선상에서 청와대 건배주로 크래프트 맥주가 등장한 것은 이제 크래프트 맥주가 소수만의 취미가 아닌 대중성으로 가는 분수령이라고 볼 수 있다.
또 지난 7월 비어포스트가 주최한 ‘주세법 워크샵’도 의미 있는 행사였다. 크래프트 맥주 업계 최초로 업계가 나서 주도적으로 맥주관련 정책을 고민하는 자리였다.
지역 네이밍과 위탁 양조
이 사회적으로 크래프트 맥주가 주목 받은 한 해였던 것 같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지역명 네이밍 맥주가 인기를 얻었다. 대표적으로 청와대 건배주로 쓰인 세븐브로이 맥주가 강서 맥주, 달서 맥주 같은 지역 네이밍으로 일반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서빙고, 해운대, 강남 등도 눈길을 끌었다.
박 강남 페일 에일은 크래프트브로스 강남점 오픈 기념으로 만든 맥주였지 않나. 초기에는 나름대로 의미 있는 네이밍이었다. 하지만 전라, 해운대 맥주 같은 네이밍은 고민 없이 만든 것 같아 상술이라고 생각한다. 맥주를 모르는 소비자들을 호도하는 것 같다.
장 심각하게 느껴진 게 서빙고라는 네이밍이었다. 군사정권 때가 떠오르는데 이름을 너무 쉽게 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세븐브로이의 강서 맥주는 강서구에 본사가 있으니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전라로 넘어가면서 그냥 마케팅 수단이 된 것 같다. 지역 네이밍이 이렇게 유행처럼 번지면 온갖 지역명이 다 동원될 것 같다. 로컬 비어의 진정한 의미가 희석되는 네이밍이다.
심 지역 네이밍이라면 지역의 문화나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것들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만들고 지역 네이밍을 했다면 맥주가 그런 맛이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박 지역 네이밍도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지만 위탁 양조를 하면서 마치 자기 양조장에서 만드는 맥주인 양 파는 것도 문제다. 왜 밝히지 않나. 문제다. 위탁 양조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든지 구전으로 알게 되는데, 메뉴판에든 어디든 설명은 돼 있어야 한다.
심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일반인들은 어메이징의 쇼킹스타우트가 트레비어에서 만들 건 말 건 상관하지 않을 것 같다.
이 공급 받은 맥주를 마치 자신들이 만든 맥주인 양 이름만 붙여서 파는 ‘리브랜드’ 맥주를 비판해왔다. 일반 소비자들은 해당 펍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전체 업계를 위해 위탁 양조를 했다고 표기를 해야 한다. 리브랜드, 위탁양조, 지역 네이밍이 모두 마케팅에만 집중하는, 비슷한 궤의 일들이라고 본다.
장 병에는 생산 브루어리가 다 써 있지만 드래프트일 경우 알 수가 없으니 문제다
이 많은 사람들은 대강 페일 에일이 우리나라 맥주인 줄 알고 마신다.
심 위탁 양조와 지역 네이밍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지역 맥주는 비판 받아 마땅하지만 위탁 양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밝혀야 하나.
박 미켈러가 집시 브루어리인 것은 모두가 알고 어디서 그 맥주 만드는 지 알고 있으니 문제 없다. 알권리 측면에서 맥주는 양조장 맛에 따라가기 때문에 어딘가에 제조원을 써줬으면 좋겠다. 밝히지 않는 게 숨기는 것 같다.
김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 어디서 만든 맥주인지 다 궁금해 할 것이다.
올해 최고의 브루어리
황 이제 맥주도 몇 잔 했으니 오늘의 하이라이트로 넘어가보자.
올해 어떤 브루어리가 제일 맛있는 맥주를 만들었나?
박 와일드웨이브는 평균적으로 수준급으로 만드는 브루어리다.
양조장이 만들어지고 초반에는 이취가 나는데 와일드웨이브는 떨어지는 것 없이 준수하게 잘 만들었다. 사워 맥주 외에도 잘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설레임 하나로 여러 가지 시리즈 맥주를 만드는 게 맥덕들에게 재미를 준다. 재기발랄하게 갖고 있는 걸 잘 뽑아낸다.
김 나도 와일드웨이브가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비록 와일드웨이브의 맥주를 많이 마셔보진 못했지만, 그 몇 종의 맥주들이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와일드 세션 에일 같은 경우는 토플링 골리앗의 수도수를 마시고 난 뒤에 마셨음에도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외에 브루어리304의 맥주들도 전반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장 브루어리304가 최고였다. 평균적인 수준도 높고 플루토 블론드가 정말 만족스러웠다. 와일드웨이브도 수준이 높다.
황 그렇다면 아쉬움이 남았던 브루어리는?
박 테트라포드 맥주를 위탁 양조한 브루어리가 아쉬웠다. 완성되지 않은 맥주를 시장에 내놨다.
심 올해 마신 맥주 중에는 장앤크래프트가 좀 실망스러웠다. 직접 순창 브루어리에 가서 경험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해주고 싶지 않은 맛이었다.
맥주 배달과 인터넷 판매
황 올해는 주세법 해석 문제로 벨루가 같은 맥주 배달, 어메이징 익스프레스 같은 캔입 테이크아웃 업체들이 생겨났다가 사라졌다.
심 제도의 벽에 부딪혀서 괜찮은 아이템이 활성화가 못 됐다. 김 맥주 배달의 수요가 충분한지 잘 모르겠다. 전국민이 마시는 우유 배달도 없어지는 마당에…
박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정한 맥주를 집에서 편하게 주문해서 먹는 것이다. 정해진 맥주, 음식이 배달 오는 게 매력적이지 않다.
이 캔입의 경우 아직까지 보존성 등에서 완벽하지 않다. 비즈니스 모델로 성공하는 데 태생적인 한계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황 전통주만 인터넷 판매가 가능한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박 다른 주류는 다 금지하고 전통주만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이 청소년들의 구매 우려 때문에 맥주 온라인 판매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핑계인 것 같다. 얼마나 본인인증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나. 오히려 정부에서 와인의 온라인 판매를 풀어주는 것에 대해 더 우려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맥주를 풀어주면 와인도 해줘야 하니 고민일 것이다.
장 통신판매를 원칙적으로 막고 있으면서도 전통주에 대해서만 예외로 인정하는 논리의 가장 큰 부분이 자국 산업 보호라고 본다.
전통주의 기초 체력도 약해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과 함께 주류 시장에서 각각의 주종을 대체 관계로 보는 것 같다. 기초 체력이 약한 상태에서 과도한 경쟁도 문제지만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문제점이 크다고 본다.
박 만약 맥주를 배달해서 먹을 수 있다면 편의점이나 마트의 ‘4캔 만원’ 같은 행사가 없어질 것같다. 이런 행사 때문에 맥주에 대한 가격 기대치가 2500원 정도로 낮아졌다. 그래서 맥주 업계가 더 힘들어지는 것이다. 배달이 허용되면 가격 정상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본, 대중화, 대선
황 비어포스트가 꼽은 2017년 맥주업계 키워드(2017년 2월호 (Batch 014))는 ‘자본, 대중화, 대선’이었다. 대중화와 대선에 대해서는 앞서 얘기가 진행됐다. 더불어 올해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자본이 투입된 제주맥주 같은 브루어리가 등장했다. 또 기존 브루어리에 대한 투자도 이어졌다. 비어포스트의 키워드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맥주 업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장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 중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 곳이 많아질 것이다. 규모 있는 곳 중 사업을 영위하지 못하는 기업이 나올 것으로 본다. 또 업계에 인력난이 심해질 것이다. 헤드 브루어급이라든지 펍에 매니저급이라든지 훈련된 인력이 부족하다. 시장의 성장이 인력의 수급을 앞질렀다.
박 새로운 기업들 많이 생길 것이다. 반면 보틀샵, 펍 등 국내 크래프트 맥주 초창기부터 영업했던 소매점들 사라지는 데가 또 나올것 같다.
김 펍들도 아예 고급화한 전략을 쓰는 곳이 나타날 것이다. 가격은 좀 비싸지만 전문가가 공들여 맥주에 대해 설명해주고 맥주에 맞는 페어링 잘 해주는 곳들이다.
심 맥주뿐 아니라 전반적인 요식업이 그런 트렌드로 가는 것 같다. 한국 크래프트 맥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비스의 질이 높아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내년은 그런 전환점이 될 것 같다.
EDITOR_황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