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맥주 여행 기찻길 밑 맥주 천국, 런던 버몬지 비어 마일
영국 런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축구, 럭비, 크리켓, 런던아이, 템즈강, 비틀스, 롤링스톤즈, 콜드플 레이, 대영박물관 등등 각자의 관심사와 관점에 따라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제각각일 것이다. 요사이 누군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대답할 것 이다. “맥주”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맥주 하면 독일을 떠올리고 크래프트 맥주는 미국을 생각하지만 영국을 빼놓으면 아주 서운한 일이다. 왜냐하면 맥 주 덕후들이 열광하고 있는 IPA(India Pale Ale)와 흑맥주로 대변되는 포터(Porter)가 바로 영국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캐스크 에일, 리얼 에일이라고 불리는 맥주도 영국에서 특화된 맥주니 이쯤 되면 맥주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나라라 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현재의 영국 맥주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곳을 소개한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1마일 맥주 여행
1마일은 그저 1.6킬로미터에 불과한 거리지만 맥주를 좋아하는 사 람들에게 버몬지 비어 마일은 마치 160킬로미터와도 같이 느껴질 수 있는 거리다.
이 곳에는 1마일(거리로 정확히 따지면 1마일이 조금 넘는다) 안에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일곱 개가 있고 맥주를 살 수 있는 보틀샵과 펍들이 즐비하다. 맥주를 사랑한다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브루어 리에 들러서 구경하고 맥주 다 마셔 보다가 그 1마일을 다 못 가기 십상이다.
버몬지 비어 마일은 템즈강 남쪽 사우스 버몬지 역(South Bermondsey Station)에서 런던 브릿지 역(London Bridge Station) 방향으로 약 1마일 가량의 기차길 아래 아치 공간을 활용하여 형성 된 크래프트 맥주 거리를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2009년 더 커넬 브루어리(The Kernel Brewery)가 이곳에서 시작 한 이후 하나 둘 생기면서 지금의 크래프트 맥주 핫 플레이스가 되 기에 이른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런던에 가면 꼭 가보라고 추천하는 더 커넬 브루어리와 브루 바이 넘버스(Brew by Numbers: BBNo)가 바로 여기 버몬지 비어 마일을 대표하는 브루어리다.
런던을 여행한다 하더라도 쉽게 가 볼 수는 없다. 이곳은 행운이 따 라야 방문이 가능한데 그 이유는 대부분 토요일에만 영업을 하기 때문이다. 주중에는 가봐야 맥주를 맛볼 수 없으니 혹여 런던에서 토요일을 보낼 수 있다면 아침부터 부지런히 둘러보기를 권한다.
특히 더 커넬 브루어리 같은 경우는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 까지, 매우 짧은 시간만 오픈하기 때문에 브루어리마다 시간을 체 크하면서 방문 순서를 정하는 것이 좋다.
The Kernel Brewery
버몬지 비어 마일의 시조새 격인 더 커넬 브루어리는 맥주가 없어서 못 팔 정도로 런던에서 사랑받는 브루어리다. 생맥주는 판 매하지 않으며 병맥주를 사서 테이크 아웃해야 하는데, 그런 이유로 방문하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커다란 배낭이나 가방을 가져 와서 좋아하는 맥주를 담는 풍경이 꽤나 재미있어 보였다. 마치 일주일치 양식을 담는 듯 즐거운 몸동작이었다. 여행자들이라 면 맥주를 사고 옆 집의 맛있는 빵과 치즈, 햄 등을 사서 적당히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마셔도 좋을 것이다. 토요일이면 버몬지 마켓이 같이 열려서 신선하고 맛있는 먹거리와 볼거리가 많은 곳 또한 버몬지 비어 마일이니 이보다 더한 힙 플레이스가 또 어 디 있겠는가?
The Brew by Numbers
맥주 라벨을 숫자로 표시하는 브루 바이 넘버스에서는 생맥 주를 마실 수 있다. 창업자가 홈브루잉할 때 숫자를 붙이던 습관 그대로 라벨로 쓴다는 이곳은 앞의 두 자리 숫자는 맥 주 스타일을 표시하고 뒤의 두 자리 숫자는 몇 번째 만들었 는지를 표시한다고 한다. 0103이면 세종스타일(01)의 세번 째 만든(03) 맥주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같은 스타일 의 맥주라도 만들 때 레시피를 달리 할 수 있으므로 숫자별 로 비교 시음하는 재미도 있다. 내부 공간이 크지 않아서 많 은 사람들이 문밖에서 맥주 한잔 들고 이야기하면서 자유롭 게 맥주를 마신다. 전 세계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니 만큼 기다림과 수고로움이 동반하 지만 그래도 한잔의 맥주를 마시면 그 또한 이내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곳이다.
The Bottle Shop
아치(Arch) 위로 가끔 지나가는 기차가 아니면 이곳은 처음 부터 맥주를 위한 공간이 아닌가 하는생각이 들 정도로 멋 스러운 공간이다. 이 길을 따라 조금 걸으면 전세계의 맥주 를 맛볼 수 있는 보틀샵(the bottle shop)이 나온다. 빨간 벽 돌의 아치형 샵은 복층 구조로 1층에서 맥주를 사서 2층에 서 마실 수 있다. 1층에는 전세계 맥주가 박물관처럼 전시되 어 있는데 맥주 덕후들이 보면 눈이 휘둥그레 할만한 아이 템들이 있으니 지갑 관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다.
Ubrew
유 브루는 국내에서 하나둘씩 만들어지고 있는 홈브루잉 공 방의 업그레이드 버전 정도라 할만하다. 형태는 국내의 공 방과 비슷하나 좀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병입하고 라벨링까지, 그러니까 상업 양조 전단계에서 가능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볼 수 있는 곳이겠다. 물론 브루잉을 하지 않 는 사람들을 위해서 로컬 비어를 마실 수 있는 탭룸을 운영 하고 있으니 맥주 걱정은 하지 마시라. 또한 탭 테이크 오버 행사나 단계별 맥주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코스가 있으니 런 던에서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맥주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토요일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렇게 걷다 보면 1마일의 거리 를 다 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너 개의 브루어리를 들러 맥주 한잔씩 홀짝 홀짝 마시며 여러 나라에서 온 맥주 힙스터들과 같은 공간을 채우고 있노라면 어느새 이곳이 천 국이구나 싶어진다.
기차길 밑에 어찌 보면 쓸모 없어 보이는 이 공 간과 크래프트 맥주가 결합하여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버몬지 비어 마일. 대한 민국도 크래프트 맥주가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요즘, 그저 자 본으로 브루어리나 펍을 만들기보다 새로운 공간 을 모색하고 열정과 이 야기를 더해서 외국 관 광객들이 한국에 오면 꼭 들러볼 수 있는 그런 크래프트 컬처 플레이스가 생겼으면 하고 생각해본다.
한잔 두잔 맥주를 마시고 분위기를 마시다 보니 앞으로 가 야할 길이 몇 마일이 남았는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 다. 런던의 맥주천국 버몬지 비어 마일의 나머지 브루어리 는 다음을 기약한다
EDITOR_이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