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알콜 맥주의 세계
혹시 무알코올 맥주를 먹어본 경험이 있는가. 아마 남성이라면 군대에서, 여성의 경우는 혹여 임신 중이라 어쩔 수 없을 때, 아니면 큰 병을 앓고 있거나 알코올을 마시면 안 되는 중요한 상황일 때 등 여러 상황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접해보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감상은 아마 ‘맛없다’ 였을 것이다. 무알코올 맥주는 대체 어떻게 만들어지기에 그렇게 맛이 없는가. 크래프트 맥주 시장의 여러 브루어리는 무알코올 맥주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무알코올 맥주란
우리나라의 경우 ‘주류’란 지난 1949년 10월 제정·시행된 주세법 에 따라 알코올 1도 이상의 음료라고 정의되어 있다. 즉 알코올 도 수 1도 미만의 주류는 현행법상 주류에 속하지 않으며 혼합 음료 나 탄산음료로 분류된다. 그래서 도수나 주의 문구를 표시하지 않 아도 되며 '0' 도나 ‘무알코올’이라고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외에 미국이나 몇몇 유럽국가의 경우는 알코올 도수 0.5% 미만 (또는 이하)의 경우 무알코올(Non-Alcoholic)이라고 부른다거나 혹은 도수별로 명칭을 다르게 하는 등 나라마다 다른 기준을 지니 고 있다.
그럼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의 무알코올 맥주는 어떨까. 우선 어 느 정도 공신력을 가지고 있는 맥주 스타일 가이드인 BJCP(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의 경우는 무알코올 맥주에 대한 스 타일 구분을 따로 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수많은 맥주 애호가들이 이용하는 맥주 평가 사이트인 ‘레이트비어(Ratebeer.com)’에선 알 코올 도수 2.5% 이하의 맥주들을 ‘Low Alcohol’로 분류해 뒀고 다 른 맥주 평가 사이트인 ‘비어 애드보케이트(BeerAdvocate.com)’ 의 경우는 알코올 도수 1.0% 이하의 맥주들을 ‘Low Alcohol Beer’ 라 분류해 뒀다. 요컨대, 아직 크래프트 맥주 시장에서의 무알코올 맥주는 명확한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무알코올 맥주를 만드는 방법
무알코올 맥주를 보면 드는 생각은 ‘어떻게 알코올이 없지?’ 하는 점일 것이다. 맥주 만드는 과정에서 알코올 발효 과정만 빼면 되는 것 아닌가 싶지만 그랬다간 탄산과 감미료를 뺀 ‘맥콜’ 같은 달달 한 보리 맛만 날 것이다. 그렇다면 무알코올 맥주는 어떻게 만들어 지는가.
놀랍게도 무알코올 맥주는 당화를 하고, 홉을 넣고 끓이고선 효모 를 접종하여 발효까지 시키는 일련의 양조과정을 모두 거쳐서 완 성된 평범한 맥주로부터 만들어진다. 그래서 무알코올 맥주들이 ‘일단은’ 맥주와 비슷한 맛을 내는 것이다. 정상적인 맥주는 이 상 태에서 병입을 하거나 케깅을 하곤 하겠지만, 무알코올 맥주는 알 코올을 제거하는 과정을 추가하게 된다. 알코올을 제거하는 과정 중 가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맥주를 가 열하는 것이다. 알코올(주류에서의 알코올은 에탄올(Ethanol)을 지칭한다)은 물에 비해 낮은 끓는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알코올 의 끓는점인 78.3℃와 물의 끓는점인 100℃ 사이 온도에서 맥주를 가열하면 알코올은 기화되어 날아가지만 물은 그대로 남아있으므 로 무알코올 맥주를 만들 수 있게 된다. 다만 이 방법의 가장 큰 문 제점은 알코올이 기화되는 과정에서 맥주에 녹아있던 여러 향미 물질들이 같이 날아가 버린다는 점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 자 몇몇 맥주의 경우엔 진공 증류(Vacuum Distilling)라는 방법을 이용한다. 진공 증류란 기압이 낮을수록 끓는점이 낮아지는 액체 의 성질을 이용해서 진공상태에서 가열하여 더 낮은 온도로 알코 올을 기화시키는 방법을 말한다. 이를 통해 단순히 가열하는 방법 에 비해선 향미의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역삼투압을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엔 모 종의 필터가 필요한데 이 필터는 아주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어 물 분자나 에탄올 분자 같은 작은 크기의 물질만 통과할 수 있게끔 만 들어져 있다. 이 필터를 통해 강력한 역삼투압을 주어 맥주를 여과 하게 되면 물과 알코올, 기타 조그마한 향미 물질들은 필터 밖으로 나오게 되고, 당과 같은 크기가 큰 물질은 필터 안쪽에 남아있게 된다. 이렇게 걸러낸 물과 알코올을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알코올 만 기화시켜 물만 남긴다. 그리고 이를 다시 필터 안에 남겨져 있 던 여러 향미 물질에 섞음으로써 무알코올 맥주를 만드는 방법이 다. 물론 이 방법 역시도 향미의 손실은 존재하나 가열로 인한 맛 의 변형을 줄일 수는 있다. 어쨌든 이렇게 무알코올 상태로 만든 맥주에 다시 탄산을 인위적으로 집어넣고 병입을 함으로써 무알 코올 맥주가 완성된다.
여기서 보이는 이 두 방법의 공통점은 바로 전문적인 장비와 기술 이 따로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무알코올 맥주는 대기업에서 주로 생산하며 영세한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는 시도하기가 까 다롭고, 때문에 크래프트 맥주 업계에선 무알코올 맥주를 보기가 힘든 것이다. 무엇보다 인기도 별로 없으니 그만한 투자를 할 요인 도 많지 않을 것이다.
무알코올 맥주 풍미가 줄어든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해선 단순히 ‘알코올 맛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닌가’하 는 사람도 있겠지만, 맥주의 맛에 있어서 알코올은 생각보다 큰 비 중을 차지하진 않는다. 사실 이는 이미 앞서 설명한 것이 답이 되 었을 것이다. 홉이나 보리, 효모에서 기인한 여러 향미 성분들이 알코올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손실되고, 또 남아있는 향미 물질들 도 밸런스가 망가지거나 산화되어 맛이 변형되는 등의 고난을 겪 기 때문이다. 특히나 홉의 향을 주는 성분들은 열에 굉장히 약하 고 또 물에 녹아있다가도 차차 휘발되어 날아가 버릴 정도로 불안 정하므로 무알코올 맥주에 IPA와 같은 홉 향을 입혀 내는 것은 평 범한 방법으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뿐인가. 무알코올 맥주 는 알코올을 제거하는 과정 중에 사라진 탄산을 보충해주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산화탄소, 탄산염 등을 집어넣게 되는데 이 인위적 인 탄산이 주는 여러 안 좋은 맛(주로 약간 시큼하거나, 금속 성분 같은 맛)도 무알코올 맥주를 맛없게 만드는데 한몫을 한다. 그래서 여러분이 맛본 대다수의 무알코올 맥주들은 기존의 맥주보다 맛 이 없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무알코올 맥주의 현 주소
하지만 모름지기 인간이란 발전적이고 진보를 추구하는 동물이 아니 던가. 무알코올 맥주를 맛있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져 왔고, 현재는 무알코올 맥주들도 나름의 다양성을 띄게 되었다. 일단 태생 적으로 맛없을 수밖에 없는 무알코올 맥주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레모네이드와 같은 다른 음료를 섞은 무알코올 맥주를 가장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딜 봐도 맥주라기보다는 다른 과일 음료 같은 느낌이니 차치하도록 하고, 직접 먹어본 적은 없지만 나름대로 괜찮 다고 평가되는 외국 대기업들의 최근의 무알코올 맥주에 대한 평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의 몰티(Malty)함과 바디감에 더불어 나름대로 ‘맛’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크래프트 맥주 브루어리들도 소수이긴 하지만 무알코올 맥주를 만들고 있다. 대표적으로 브루독(Brewdog)의 Nanny State나 미 켈러(Mikkeller)의 Drink’in the Sun 같은 맥주는 몰티함과 호피함 을 고루 갖춘 무알코올 맥주라 평가되고 있으며, 독일의 케르위더 (Kehrwieder) 브루어리는 무알코올 IPA를, 벨기에의 스트루이스 (Struise)는 비록 2.0%의 도수이긴 하나 Black Damnation VII라는 저 알코올 스타우트마저 만들어냈다. 물론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무알코올 맥주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그래도 진짜 맥주보단 맛없다’ 이지만, 조금이라도 맛있는 맥주를 만들어 보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실험 정신엔 언제나 찬사를 보낸다.
EDITOR_김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