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BJCP 테이스팅 시험을 이끈 공인 심사위원이 소개하는 BJCP의 세계
BJCP를 말한다 한국 첫 BJCP 테이스팅 시험을 이끈 공인 심사위원이 소개하는 BJCP의 세계
올해 2월11일 한국 최초의 BJCP(Beer Judge Certification Program) 테이스팅 시험이 서울에서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19명의 신청 자들이 시험에 응시했으며 긴장된 얼굴로 총 90분 동안 6종의 맥주를 마시고 스코어시트를 작성했다. 대략 4-5개월 뒤 시험 결과가 발표 되면 국내에도 20명 남짓한 BJCP 공인 심사위원이 활동하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BJCP는 무언가 유명한 듯 하면서도 유명하지 않은 것 같다. BJCP에서 발행한 가이드라인은 많은 매니아들이 탐독을 하고 있지만, BJCP가 정확히 무엇을 추구하는 조직인지 어떠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듯하여 이번 기회 를 통해 간단히 소개해 보기로 한다. 이번 호에서는 BJCP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하고 다음 호에 BJCP 심사위원이 될 수 있는 방법을 소 개하면서 총 2회에 걸쳐 기고할 예정이다.
맥주 심사위원 양성을 위한 비영리 조직으로 출범
BJCP의 역사는 미국에서 홈브루잉이 태동하고 크래프트 브루어리가 하나 둘씩 생겨날 무렵인 1985년으로 거 슬러 올라간다. BJCP는 전미 홈브루어 협회인 AHA(American Homebrewers Association)와 HWBTA (Home Wine & Beer Trade Association)가 공동으로 설립한 단체로 맥주 심사 위원 양성을 위한 비영리 조직으로 출범 했다. 그러던 1995년 AHA가 떨어져 나가면서 BJCP는 완전히 독립적인 조직이 되었다. 그 당시 AHA는 BJCP와 는 철학이 맞지 않아 별도의 독자적인 심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 결별을 하였는데, 지금까지도 딱히 다른 시스템을 만들지는 못하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AHA와 BJCP 간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며 현재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BJCP에서는 6000여명의 심사위원이 활동하고 있으며, 총 7846회의 공인 대 회에서 128만여 개의 맥주가 BJCP의 기준에 따라 심사되었다.
BJCP가 하는 일은 아래와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 표준화된 BJCP 공인 경연 대회 운영 • 시험을 통한 맥주 심사위원 인증 및 랭크 관리 • BJCP 스타일 가이드라인 발행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성장에 있어서 홈브루잉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져 있다. 홈브루어 들이 상업 브루어리로 진출하여 성공신화를 보여주는 에피소드는 이제 살짝 지겹게 느껴질 정도이다. 이러한 홈브루잉 발전의 이면에는 AHA와 같은 전국구 단체, 각 지역마다 퍼져 있는 로컬 홈브루잉 클럽 등이 큰 역할을 해왔지만 무엇보다도 홈브루잉 맥주 경연대회가 중대한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질 높은 맥주 경연 대회를 위하여
일반적인 홈브루어라면 자신이 양조한 맥주를 주로 마시는 대상은 본인, 가족 또는 가까운 친구, 지인 정도일 것 이다. 홈브루어의 가족과 지인은 맥주에 대해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것이 보통이고 그 동안 마셔 온 그의 맥주 에 대한 선입견이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도 공짜로 얻어 마시는 입장이기 때문에 정말 맛이 없더라도 영혼 없는 긍정적인 멘트만을 연발할 뿐 싫은 내색을 하기 또한 그리 쉽지는 않다. 다시 말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진솔하면서도 냉정한 피드백을 얻기가 매우 어렵다. 반면에 대회에 출품을 하게 되면, 심사위원들이 누구의 맥주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블라인드로 맥주를 평가하게 되므로 보다 객관적인 시선에서 피드백 받을 수 있으며 전체 출품작들 중에서 자신의 맥주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덤으로 수상까지 하게 되면 크나 큰 자부심과 자신감도 얻을 수 있다. ‘Brew better beer’의 저자로 유명한 Gordon Strong은 미 국 최대의 홈브루 경연대회인 NHC(National Homebrew Competition) 우승자 출신으로 현재는 BJCP의 사장을 맡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수입이 되어 인기를 끌었던 Heretic Brewing의 Zamil Jainasheff도 역시 NHC 우승자 출신의 홈브루어로서 BJCP의 메인 스텝으로 근무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홈브루잉 대회 수상자 출신들 이 상업양조 업계에 진출해서 자신감 있는 행보를 보이는 것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BJCP가 하는 일 중의 대표적인 일이 바로 맥주 경연 대회를 운영하는 것이다. 중앙에서 모든 대회를 관장할 수 없다 보 니, 자율적으로 BJCP에 공인 대회로 등록을 하면 누구나 대 회를 개최하고 운영을 할 수 있게 되어있다. BJCP에 공식적 으로 등록이 된 대회를 BJCP Sanctioned Competition이라 고 하며, 이러한 대회를 운영하는 방법은 BJCP Competition Handbook이라는 문서에 잘 나와있다. 여기에는 대회의 이 름 정하기부터 대회의 준비 및 진행에 대한 전체적인 운영 방법뿐 아니라, 심사위원들의 식사 제공 방법, 뒷정리 요령 까지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이러한 매뉴얼을 통해 BJCP 공 인 대회라면 어느 정도 균일한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 기대 할 수 있다. BJCP 공인 대회로 등록을 하면 BJCP 사이트뿐 아니라 AHA에서 발행하는 홈브루잉 잡지인 Zymurgy에 공 지가 되며, 대회 결과 및 우승자도 마찬가지로 잡지에 수록 이 된다. 우승자에게는 또 하나의 멋진 선물이 되지 않을까?
경험을 쌓고 성장하는 공인 심사위원
대회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바로 심사위원인데 심사위원들의 양성 또한 BJCP가 하고 있는 대표적인 일이다. 출품작이 5개 밖에 없는 어느 대회를 가정해보자. 심사는 아주 간단하다. 맥주에 대해서 아주 잘 아는 최 고의 전문가를 한 분 모셔와서 5잔을 마시게 하면 된다. 그리고 어느 맥주가 제일 좋았냐고 물어 본 다음 그 맥 주에 1등상을 주면 된다. 하지만 출품작이 20개, 100개, 아니 1000개라면? 아마 그 심사위원은 심사 도중 쓰러 져서 병원에 실려가지 않을까? 그리고 아무리 전문가라고 한들 1명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까?
홈브루잉의 붐에 힘입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출품작을 심사하기 위해선 심사위원 양성이 절대적인 과제 이다. 마시면 마실수록 점점 취할 수 밖에 없는 맥주 심사의 특성상, 심사위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 명이 심사 해야 할 맥주의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심사의 질, 다시 말해서 스코어시트의 질이 올라갈 가능성이 커진다. 그 래서 BJCP에서는 시험을 통해 누구나 심사위원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두었다. BJCP 가이드라인, 양조 지식, 시 스템에 대해서 묻는 1차 온라인 시험을 통과한 후 맥주 시음 능력과 스코어시트 작성 능력을 보는 2차 테이스팅 시험까지 합격하면 BJCP 공인 심사위원이 될 수 있으며, 심사위원은 시험 점수 및 포인트에 따라서 랭크가 부여 된다.
BJCP는 기본적으로 비영리 조직이기 때문에 심사에 대한 금전적인 댓가를 받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심사에 참 여 할 때마다 소정의 포인트를 받게 되고, 그러한 포인트가 쌓이면 다음 레벨로 승급을 하여 성취감을 얻는 구조 로 되어있다. BJCP의 심사위원은 완성보다는 성장에 좀 더 방점을 두고 있다. BJCP의 심사위원이란 홈브루잉을 통해 배운 것을 심사에서 이용하고, 심사에서 배운 것을 다시 홈브루잉에 활용해서 결국은 보다 더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한 일련의 과정이며 평생교육의 일환으로 정의할 수 있겠다.
시음 용어를 정립한 BJCP 가이드라인
심사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제일 중요한 부분은 바로 객관 성인데, 실력과 경험뿐 아니라 취향이 천차만별인 심사위 원들 사이에서 일정한 객관성을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전 체를 관통하는 확고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러한 기준 역 할을 해주는 것이 바로 BJCP 가이드라인이다. 1990년대에 A4용지 6장 분량으로 시작된 조촐한 가이드라인은 현재 최신인 2015 버전의 경우 무려 100장에 육박하는 방대함 을 자랑한다.
총 34개 카테고리에 117개의 서브카테고리로 구성되어 있 는 가이드라인은 세밀한 분류 및 상세한 기술이 특징인데, 내용이 자세하면 자세할수록 심사자 개인의 주관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적어진다. 바로 이러한 디테일이 심사의 객 관성을 올려주는 툴이 된다. 이로 인하여 심사자들은 그저 자신의 입에 맞는 맥주가 아닌, 보다 스타일에 맞는 맥주에 손을 들어 줄 수 있게 된다. 현재 BJCP 가이드라인은 심사 기준으로 사용되기 보다는 오히려 크래프트 맥주 교 보재로 더 유명하다. 펍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가이드라인을 펼쳐놓고 토론하는 손님들도 간혹 볼 수 있고, 맥주 강의의 교재로도 빈번히 사용이 될 정도로 범용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는 BJCP 가이드라인이 상세함도 물론 상 세함이지만, 트렌디하게 최신의 사조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실제로 2015버전에서는 블랙 IPA, 화이트 IPA같은 변종 스타일은 물론, 고제, 리히텐하이너 같은 멸종에 가까운 역사적인 맥주뿐 아니라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아메리칸 와일드, 야생효모(Brett) 맥주 등도 수록되어 있다.
BJCP 가이드라인이 끼친 또 하나의 영향은 바로 시음 용어의 정립이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으로부터 이어져 내려 온 맥주 시음 용어들이 BJCP 가이드라인에서 집대성이 되어있다. 실제로 Beeradvocate와 같은 국 외 사이트는 물론 국내 인터넷 사이트의 시음기에서도 BJCP 가이드라인의 용어와 형식을 따르고 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를 통하여 소비자와 소비자, 혹은 소비자와 양조자들이 서로 같은 언어와 같은 문법으로 맥 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는 실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BJCP 가이드라인은 맥주를 해석 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일 뿐 절 대적인 기준은 아니기 때문에 가이드 라인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맥주를 비 난한다든지 하는 맹신은 금물이며, 기 존에 존재하던 스타일에서 약간의 변 형을 준 정도의 스타일, 다시 말해서 American으로 시작되는 스타일이 많 아서 지나치게 미국 크래프트씬 중심 이 아닌지는 한 번 쯤 생각해 볼 만한 여지가 있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미국 의 크래프트 맥주가 현재 세계적인 유 행의 중심에 있다고도 볼 수 있으며, 언 젠가 유행의 중심이 이동하게 되는 날 이 온다면 그러한 편향성은 깨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한국의 크래프트 맥 주들이 세계에서 인정을 받는 날이 오 게 된다면 Korean으로 시작되는 스타 일이 BJCP 가이드라인에 수록될 날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도 된다.
그 동안 한국에서도 많은 맥주 경연대 회가 BJCP의 형식을 빌어 개최되긴 했 으나, 그저 BJCP 가이드라인을 형식적 으로 준용했을 뿐 대회 운영 방식은 천 차만별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1~2년 동안에는 BJCP 사이트에 공인 이벤트로 등록을 하고 그에 걸맞게 핸드북에 의거해서 표준화된 대회를 운영하는 케이스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다. 비록 재료 수급이 쉽지 않고 아파트 위주의 거주 환경 상 홈브 루잉이 쉬운 환경은 아니나, 한국의 홈브루잉 인구도 점점 늘어나고 있고 그에 따라 결과물의 수준도 상당히 올 라가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맥주 경연 대회의 역할이 좀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과거 BJCP는 주로 북미권을 위주로 운영이 되었으나, 최근 1~2년 사이 아시아에서도 크래프트 맥주의 인기와 더불어 급속도로 확산이 되고 있으며 중국, 홍콩, 싱가폴, 대만 등지에서 80여명의 BJCP 심사위원들이 활동 중 에 있다. 아울러 아시아권에서 심사위원들의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에는 재한외국인을 포 함 5명의 BJCP 심사위원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1차 시험 결과에 따라 더 늘어날 전망이다. 아울러 향후에도 지 속적으로 국내에서 테이스팅 시험이 있을 예정이니 관심이 있는 분들은 차근차근히 준비를 해도 좋을 듯하다. 대회의 심사위원이나 진행요원에 자원해서 BJCP를 체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심사위원이 되기 위한 시 험에 대한 부분은 다음 호에서 다루도록 한다.
EDITOR_이상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