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링 페어링 #9 아우구스티너 라거비어 헬×모둠 소시지와 사워크라우트
아우구스티너 브로이 라거비어 헬
맥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커다란 오크통 모양 식탁과 통나무집 같은 인테리어, 지글지글 소리 내며 익어가는 소시지와 보글보글 거품을 자아내는 황금빛 맥주. 형형색색 다양한 맥주를 판매하는 세련된 펍이 많이 생기고 있지만,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원형 같은 모습은 위와 같지 않을까. 이른바 호프집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세기를 지배했던 라거 열풍 아래 맥주 문화를 수입했다. 그러다 보니 라거 하면 떠오르는 맥주순수령의 나라, 독일에서 영향을 받은ㅜ가게들이 많았다. 우리에게 익숙한 ‘호프Hof’라는 단어도 독일어로 ‘맥주’ 또는 ‘맥줏집’을 의미한다. 특히 두툼한 소시지와 커다란 맥주잔, 그리고 떠들썩한 분위기는 그중에서도 독일 남부 뮌헨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알게모르게 마음속 맥주 풍경은 바바리아 민족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는지도.
바바리아 민족의 땅, 뮌헨에서도 가장 오래된 맥주 양조장은 아우구스티너 브로이. 1328년도에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에서 시작한 유서 깊은 전통에서 유래했다. 세월이 흘러 수도원은 쇠퇴하고 양조장은 살아남았다. 현재까지 이어져 뮌헨을 대표하며 수도회 이름을 널리 알리고 있으니 수도승들은 기뻐하려나.
아우구스티너 브로이의 라거비어 헬은 깔끔한 맛이 인상적이다. 잘 익은 밀밭을 닮은 황금빛에 부드러운 탄산감 덕에 몇 잔을 마셔도 질리지 않는다. 맥아에서 나오는 달큰한 풍미가 잔잔하게 깔리는 홉의 씁쓸함이 균형 잡힌 맥주. 필스너만큼 홉이 주는 특성이 강하지 않아서 부드럽게 즐기기 좋다.
세계 최대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
운동선수에게 올림픽이, 영화인에게 영화제가, 미술인에게 비엔날레가 선망의 대상인 것처럼, 맥주 애호가에게 옥토버페스트 만큼 설레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행사가 또 있을까. 거대 맥주잔이 쉴 새 없이 떠다니고 흥겨운 음악이 끊이지 않는 왁자지껄한 축제. 뮌헨의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좋아하지 않아도 누구나 한번 쯤은 들어본 이름일 테다.
옥토버페스트는 바이에른 공국 태자 루드비히 1세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되었다. 때는 1810년 10월 17일. 200년이 훌쩍 넘은 과거의 일이다. 처음부터 맥주 축제는 아니었다. 평생 기억할 만한 결혼식을 치르고자 했던 루드비히 1세는 고대 그리스에서 거행된 제전을 부활시키기로 마음 먹었다. 그 결과로 마차 경주를 개최했고, 시합 뒤엔 성대한 뒤풀이가 벌어졌다. 당연히 맥주와 음식이 풍성하게 제공되었겠지. 그 풍요로운 술과 고기의 향연이 세월이 흘러 옥토버페스트가 되었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 왕자와 공주는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고 우리는 더 행복하게 맥주 축제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해피엔딩 딴딴.
종류 헬레스 라거
원산지 독일, 뮌헨
양조장 아우구스티너 브로이(Augustiner-Bräu)
원료 물, 맥아, 홉
도수 5.2%
용량 500ml
모듬 소시지와 사워크라우트
소시지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도시락에 들어간 줄줄이 비엔나 소시지부터 대학 축제에 빠지지 않던 소시지 야채 볶음, 길거리에서 사 먹던 케찹 뿌린 소시지바까지. 소시지는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머나먼 독일에서 시작했지만 이제 우리 방식으로 요리할 정도이니. 한국식 소시지 요리는 특색있고 매력적인 요리가 분명하다. 하지만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처럼 때론 원형이 그리워지는 법이다. 직화로 소시지를 구워보자. 거기에 사워크라우트를 곁들이면 독일식 소시지 요리 완성! 소시지는 직접 만들긴 어렵지만 사워크라우트는 비교적 만들기 간단하다. 겨우내 먹을 김치를 준비하듯, 옥토버페스트를 준비하는 마음으로 사워크라우트를 담궈 먹어보면 어떨까. 그렇게 해서 먹는 사워크라우트는 뮌헨에 가지 않아도 현지에 간 느낌을 물씬 풍긴다. 시큼시큼한 맛이 독일식 김치라는 별명에 걸맞게 소시지와 잘 어울린다.
<사워 크라우트 레시피>
재료: 양배추 900 소금 2큰술
아우구스티너 라거비어 헬 X 모듬 소시지와 사워크라우트
아우구스티너 라거비어 헬은 맥아적 특성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맥주다. 맥주 다양성이 국내에 자리 잡기 전 맥주 하면 떠오르는 상(相)에 적확하게 부합하는 맛. 부드러운 거품과 엿기름처럼 은은한 단맛이 입맛을 돋운다. 탄산감도 적당해 매끄럽게 목을 타고 넘어간다. 맥주 자체의 개성이 뚜렷하지 않은 덕분에 웬만한 요리와 잘 어울릴 듯하다. 페어링 전략은 간단하다. 맥주를 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요리를 고르면 된다. 그만큼 어느 요리와도 잘 어울리는 맛을 지닌 맥주다.
그중에서도 특히 잘 어울리는 요리를 꼽아보자면 단연코 기름진 요리들. 갓 튀겨낸 후라이드 치킨, 토마토소스를 듬뿍 올린 피자, 오동통 살이 오른 족발, 그리고 겉은 바삭 속은 탱글한 소시지. 옥토버페스트도 다가오고 있으니 독일풍 소시지를 골랐다. 입맛을 돋워주는 사워크라우트도 함께 곁들이면 더욱 좋겠지.
큼지막한 유리잔에 호박처럼 빛나는 맥주를 따르고, 여러 가지 소시지를 접시 한가득 올려놓으니 마음이 두둑하다. 친구들을 초대하고 맥주가 흘러넘치도록 잔을 부딪치며 건배를 하고 싶은 기분. 축제를 기획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생긴다. 일단은 어서 마셔야겠다는 욕망이 치고 올라온다. 기다릴 게 뭐 있어. "O'zapft is!(의역하자면, ‘마실 준비 완료’! 옥토버페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시장의 선언이기도 하다)“
우선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오는 맥주를 한 모금! 달큼한 몰트가 입안을 가득 메운다. 이어서 한여름 소나기를 머금은 잔디밭이 발산하는 듯한 풀 내음이 코를 간지럽힌다. 생명력 넘치는 단내랄까. 과하지 않게 존재감을 피력하는 홉도 훌륭한 조연이다. 벌컥벌컥 여러 모금을 마셔도 목에 부담이 없다. 탄산이 세지 않은 덕분. 몇 잔이고 마실 수 있을 듯하다.
소시지를 잘라서 한입에 쏙 넣는다. 이번에 선택한 소시지는 하얀색 바이스부어스트(Weißwurst), 얇고 긴 뉘른베르크 브라트 부어스트(Nűrnberger Bratwűrste), 짤막한 복부어스트(Bockwurst). 바이스부어스트는 뮌헨 지방의 전통 소시지로 풍미가 다채롭다. 여러 가지 향신료와 오묘한 육향이 특징이다. 브라트부어스트는 짭조름한 소시지로 입맛을 돋우는 역할에 제격. 복부어스트는 맛이 강하지 않으면서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혔다.
육즙 가득한 소시지를 먹다 보면 기름진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고이 보관해두었던 사워크라우트를 곁들이면 부담은 싹 사라진다. 적절하게 발효된 사워크라우트는 시큼하면서 아삭해서 입안을 정리한다. 수육에 곁들인 백김치와 비슷하다. 고소한 맛을 더해주기도.
아우구스티너 라거비어 헬과 소시지를 와구와구 벌컥벌컥 먹고 마신다. 샤이어 마을에 호빗 축제처럼 신이 나는 조합이다. 특출나거나 개성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누구라도 좋아할 만한(혹은 싫어하지는 않을).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축제에 제격이다. 타인에게 취향을 강요할 필요가 없다. 흥겨운 노래와 오가는 맥주잔에서 피어나는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이 모여 축제를 더욱 빛나게 만드는. 비워진 맥주잔과 깨끗해진 접시 위에는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우리의 축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O'zapft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