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에 도취하다- 맥주 소품 디자인 전문 기업 도취
매력적인 그 이름, 브랜드
브랜드는 자신을 투영한 이미지로 소비자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정체성을 직관적으로 함축한 로고부터 슬로건, 캐릭터나 모델, 색감과 재질, 공간, 파생 상품 등이 모여 총체적인 소비 경험을 조성한다. 그 핵심에는 브랜드가 내거는 가치와 라이프스타일, 이상향이 자리한다.
그중 맥주 브랜드는 패키지, 제품 이미지, 맥주 잔, 탭 핸들, 코스터, 오프너 등으로 다양하게 변모하여 소비자의 구미를 당긴다. 아무리 훌륭한 맛을 낸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적절한 방법으로 전달하고 표현하는 일에 지지부진하다면 소비자를 포섭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맥주 브랜드와 소비자를 세련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이어주는 곳이 있다. 바로 맥주 디자인 전문 기업 도취이다. 대전에 위치한 도취는 국내 맥주 회사의 판촉 제품을 다량 디자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취는 어쩌다 맥주 분야에 발을 담그게 되었을까? 도취가 바라보는 ‘좋은 디자인’과 그걸 실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윤진원 대표가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도취가 하는 일을 소개주세요. ‘맥주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 역시 궁금합니다.
‘맥주 디자인’이라고 표현하시니 뭔가 맥주라는 음료 자체를 디자인한다는 뜻 같아 재미있습니다. 엄밀하게는 ‘맥주 POCM(Point of Contact Material) 디자인'이라고 하는 것이 도취가 하는 일에 가장 근접할 것 같아요. 소비자가 맥주를 마시며 경험하는 모든 제품을 디자인한다고 할 수 있죠. 예를 들어 좋아하는 펍에 도착하면 보이는 간판부터 시작해서 무심한 듯 비치된 소품들, 맥주를 고르기 위해 펼쳐보는 메뉴판과 탭에 꽂혀 있는 탭 핸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맥주잔과 앉아 있는 스툴까지 모두 의도된 POCM이고 도취는 그것을 디자인 하는 거죠
저희가 처음 수제맥주를 접한 곳은 깔끔하면서도 아늑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풍기는 대전 ‘랜치펍(Ranch Pub)‘이었어요. 마치 프랑스의 아름다운 골목에 있는 나만 아는 펍에 온 것처럼 분위기가 정말 좋은 공간인데, 그에 어울리는 POCM이 없어 사장님께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만들어 드리기로 했죠. 크래프트 맥주를 처음 접했을 때 기존 맥주와 확연하게 다른 맛도 좋았지만, 사실 더 좋았던 것은 ‘수제(Craft)’라는 분위기가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준다는 점이었고, 그걸 유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저희는 POCM 디자인을 시작했습니다.
일반적인 디자인과 ‘맥주 디자인’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맥주 디자인만의 특징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맥주 디자인’은 ‘맥주’라는 제품의 본질적인 기능(맛, 향, 탄산 등)보다 아이덴티티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맥주의 맛보다 양조장의 철학과 비전을 담은 아이덴티티를 디자인으로 표현하니까요. 그래서 이런 아이덴티티를 잘 포착하여 POCM에 녹여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산업 디자인 분야지만, 철학을 보여주기 위한 제품을 제작한다는 점에서 예술에 가까운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최근 크래프트 맥주가 점차 대중화되면서 디자인의 중요도에 관한 인식 역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국내 맥주 기업들은 대체로 어떤 종류의 디자인을 선호하나요?
우리나라 맥주 기업들은 대체로 깔끔한 디자인을 좋아합니다. 저희도 그 부분이 정말 흥미로웠는데, 제작 상담을 하다 보면 기업의 국적에 따라 선호하는 디자인 성향이 달라져요. 예를 들어 미국 기업의 경우 대체로 조금은 투박하고 단단한 느낌을 선호하고, 유럽은 부드러운 선으로 이루어진 디테일을 좋아해요. 아시아 쪽은 대체로 세밀한 묘사에 관심이 많은데, 그중 유독 우리나라는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사실 단순하고 깔끔한 디자인은 크래프트 맥주보다는 와인이나 양주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고민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디테일을 가미한 제품을 생산할만한 인프라가 적다 보니, 제작이 잘될 확률이 높다는 점에서 깔끔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요즘 저희가 선택의 폭을 넓혀 드리기 위해 조금 더 디테일이 있는 ‘크래프트’한 디자인의 제품을 많이 권유하는 편입니다.
브랜드로부터 의뢰를 받을 때, 디자인하기가 난해한 경우는 어떤 경우인가요?
‘맥주 디자인’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덴티티라고 했는데, 간혹 그 중요성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덴티티가 불명확하죠. 이런 경우 디자인 작업이 진행되면서 아이덴티티가 계속 바뀌기에 결과적으로 좋은 디자인을 만들기가 어렵습니다.
또 다른 경우는 아이덴티티가 너무 평범한 경우가 있어요. 이때는 그 평범함을 따라 디자인도 뻔하게 진행되기가 쉽기 때문에 저희가 성취감을 느끼기가 어려운 경우죠.
도취 팀원들은 디자인 작업을 수행할 때 어떤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모으고 발전시키나요?
디자인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관련 자료를 꼼꼼하게 수집해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파악합니다. 그다음 브랜드와 긴밀한 소통을 거쳐 기획 의도를 파악하고, 그것과 결합했을 때 가장 잘 어울리는 형상, 재질, 색상, 광택 등 이미지를 고민합니다. 그리고 유사한 디자인 레퍼런스와 직원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집하여 정리하면 디자인 작업을 시작할 준비가 끝납니다.
그러고 나서 본격적인 디자인 작업에 들어갑니다. 도취의 강점 중 하나는 제작과 디자인이 융합되어 있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일반적인 디자인 작업의 단계와는 차이가 약간 있습니다. 일반적인 작업 순서는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고 나면 제작자가 제작을 고민하고, 제작단계에서의 문제를 서로 피드백하는 순환(Cycle)의 방식이죠. 저희는 디자인 단계에 제작자가 함께 참여하고 제작 단계에 디자이너가 참여하여 아이디어 발전의 속도를 높이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각자 포지션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장점을 취합해 최종 디자인을 도출하는 거미줄(Web) 방식이에요. 순환 방식의 작업보다 시간의 효율성은 떨어지지만, 프로젝트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지고 아이디어가 다양해지며 디자인 결과물의 제작 단계까지 한 번에 고려가 가능합니다.
디자인에 있어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과 배제해야 할 것이 있다면요?
보통 디자인 3요소라 하면 심미성, 양질성, 기능성이라고 하는데, 심미성은 대부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양질성과 기능성을 강조하고 싶어요. 디자인의 최종 결과물은 제품이니 가장 중요한 점은 실현 가능성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디자인이 미려해도 현실적으로 제작이 불가능하거나 핵심 기능을 못 하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재료나 공정을 먼저 정하고 진행하는 디자인 방식은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칫하면 아름다움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게 펼쳐질 디자인 세계를 단순하게 만들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디자인’과 소비자가 좋아하는, 즉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만한 디자인은 다를까요?
성격과 개성이 가지각색인 사람들 중 누가 ‘좋은사람’인지 평가하기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좋은 디자인’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다Review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있습니다. POCM(Point of Contact Material)이라는 용어에서도 드러나듯, 사실 디자인 제품은 소비자와 기업 간의 소통을 위한 하나의 매개체라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의도를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디자인 제품은 곧 기업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담아낸 것이고, 소비자는 그 의도에 따라 선택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하게 담아낸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고, 그것이 소비자의 선호와 일치한다면 ‘소비자가 좋아하는 디자인’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단지 심미적인 기능뿐 아니라 브랜드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역할 또한 디자인에 있어 중요하겠군요. 현재 국내 맥주 양조장의 디자인에 약간의 팁을 준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디자인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의도를 담아내고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 어떤 의도를 표현하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떻게 표현을 할지는 그 다음에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데, 어떻게 표현할지를 먼저 결정하고 의도를 끼워 맞추려고 하면 어려울 때가 많아요.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정확한 의도를 잘 담아내려면 심미성뿐만 아니라 기능성과 양질성도 같은 비중으로 고려해야 하죠. 하지만 기능성과 양질성을 먼저 고려하면 원하는 디자인을 얻기가 힘들어 집니다. 예를 들어 “나무가 따뜻한 느낌이고 가벼우니 나무로 탭 핸들을 만들어 주세요.”와 같은 접근은 기능성과 양질성을 먼저 고려한 경우죠. 사실 목재가 생각보다 무거운 소재에 속하고, 가공 방법에 따라 탭 핸들로서 잘 기능하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목격했습니다. 이런 경우 기능성과 양질성이 오히려 떨어지게 되는 거죠. 또한 소재의 범위가 ‘목재’에 한정되면서 더 좋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오히려 “따뜻한 느낌의 가벼운 소재로 탭 핸들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한다면 좋은 디자인이 나올 확률이 높아질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