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축제 진실 혹은 거짓말
여름이라 그런지 전국적으로 이런저런 맥주 축제가 즐비하다. 또한 전국 지자체에서 수제맥주 축제를 지역사업으로 설계하거나 맥주 축제를 기획 또는 진행하는 것을 요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요즘이다.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선택의 폭이 넓어져서 좋은데, 막상 찾아가 보면 맥주가 들러리인 경우도 있고 별다를 것 없는 축제를 만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다년간 맥주 축제를 취재하고 참가한 경험을 토대로 맥주 축제를 선택하는 노하우를 몇 가지 정리해 본다.
축제 타이틀
축제 이름은 그 행사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바로미터다. 예컨대 ‘치맥 축제’는 치킨과 맥주 축제라는 얘기다. 여기에 치킨이나 맥주에 대한 정의는 없으니 아무 치킨이나 아무 맥주가 참가해도 된다는 이다. 대기업 맥주, 수입 맥주, 수제 맥주 등 행사 주최 측의 능력과 의지에 따라 참가사가 결정된다.
지역 축제에 부가되는 맥주 축제는 맥주를 메인으로 삼는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지역 축제에 맥주가 들어가는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런 경우 맥주 회사들은 축제의 규모, 유동 인구 등을 고려하여 신중하게 참가를 결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수제맥주 축제’나 ‘크래프트 비어 페스티벌’이라고 타이틀을 붙이면 수제맥주 또는 크래프트 맥주만 한다는 얘기고, 월드 비어 페스티벌이면 수입 맥주가 주가 된다는 얘기다. 물론 수제맥주와 크래프트 맥주에 대한 정의가 명확해야겠지만, 현재로서는 일반 대기업 맥주와 지역 기반 중소 양조장의 맥주로 구분하면 편하겠다. 그리고 지자체 이름을 크게 내걸었는데 막상 가보면 지자체와 무관한 축제들이 있으니, 이 또한 꼼꼼히 들여다봐야 한다.
주최사, 주관사, 후원사, 협찬사 확인
축제에는 보통 주최사와 주관사가 있게 마련이다. 이걸 왜 확인해야 하냐면, 주최사나 주관사가 맥주와 연관이 없거나 이해력이 없으면 맥주는 행사의 들러리일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행사 전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저 공간을 채우는, 여타 음식 부스와 다름없는 하나의 '부스'일 뿐이다. 이런 행사는 말썽이 생길 가능성이 늘 높다.
일반적으로 주최 측은 지자체 또는 큰 기업이고 주관 측은 이벤트 대행사로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예산이 부족할 경우 협찬을 받게 되는데, 이때 협찬사가 대기업 맥주 회사라면 그 맥주 축제는 협찬사의 맥주 위주로 짤 수밖에 없다. 따라서 참가사뿐 아니라 크래프트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지점을 꼼꼼히 확인할 필요가 있다. 축제를 주최, 기획하는 회사는 수익을 내야 하기 때문에 협찬이나 후원을 얻기 위해 노력 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기획 의도와 다르게 축제가 흘러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주최사나 주관사가 축제와 맥주에 대해 갖는 가치관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밖에는 주최나 주관사가 바뀌는 행사가 종종 있는데, 이런 경우도 썩 잘되는 경우가 없다. 가지 많은 나무바람 잘 날 없듯, 행사의 주체가 바뀌고 이런저런 가지가 많이 생기면 작은 바람에도 나무가 쓰러질 수 있으니 조심하자.
연예인 혹은 콘텐츠의 구성
일관된 콘셉트 없이 연예인 이름이 축제 포스터에 잔뜩 들어가 있다면, 일단 축제의 초점은 맥주에 맞춰진게 아니다. 타이틀이 맥주 축제라도 이런 경우는 소위 ‘연예인 빨’로 무언가 해보려고 하는 의도가 다분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을 보러 행사장에 찾아가서 나쁠 것 없지만, 맥주를 판매하는 입장에서는 행사가 끝나면 사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기 때문에 판매에는 썩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록 페스티벌이나 재즈 페스티벌에 판매 부스로 참가하는 쪽이 참가사 입장에서는 예측이 명확하다. 입장료를 내고 제한된 공간에 머물면서 지속적으로 음료를 소비할 사람을 바탕으로 참가비 대비 예상 매출액을 고려하면 되기 때문이다.
지방 행사들은 연예인을 부르면 사람이 많이 올 것으로 생각해서, 연예인 섭외비에 많은 예산을 편성하고 나머지를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참가사들의 참가비가 상승하는 경우도 있다. 연예인 라인업이 좋다고 참가 결정을 했다가 참가비도 뽑지 못하고 돌아올 수 있으니 이 점을 간과하지 말자. 맥주 축제는 당연히 참가 회사의 라인업이 가장 중요하다.
각 회사들은 자사의 좋은 맥주를 가지고 새로운 소비자를 만나기 위해 축제에 참가한다. 참가사들이 해당 축제에서 소비자들을 어떻게 만나고자 하는지 웹사이트나 소셜미디어를 체크해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참가사들이 어떤 신제품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는지 적극적으로 홍보한다면 그 축제는 실패할 확률이 낮을 것이다.
맥주 회사 라인업
맥주 축제에서 맥주 회사는 그 자체로 콘텐츠다. 각 회사들은 각각의 팬과 오프라인 공간에서 만나 관계를 공고히 하며 브랜드를 확장해 나가기 위해 축제에 참가한다. 그래서 맥주 축제에서 중요한 것은 연예인보다는 맥주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어떻게 만들어가는가이다.
축제 운영 방식
축제는, 페스티벌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어야 하고, 유쾌하며 즐거워야 한다. 이 과정에서 축제 기획자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본적인 규칙을 만들어서 질서를 잡아주면 된다. 소비자 측면에서는 행사의 입장료 여부가 중요하다. 입장료를 받는다는 것은 그 비용에 대한 소비 가치가 있는 콘텐츠가 축제에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축제 중간에 연예인이 몇 명 온다고 해서 축제 전체에 입장료를 부과하면 소비자는 고민하게 된다. 그 돈을 내고 거기에 가는 게 옳은지, 아니면 동네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서 마시는 게 옳은지.
기획자 입장에서는 입장료를 통해 입장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겠으나, 축제와 콘서트는 분명하게 구분해야 한다. 입장료를 받으려면 참가사에게서 참가비를 받지 말든지, 입장 수익을 참가사와 나누든지 하는 게 공정하다. 그렇지 않으면 입장료가 있다고 하는 순간 축제에 오려던 일반 소비자들은 상당수가 편의점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축제에서는 소비자보다 참가사 스태프들이 더 많아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가능하면 축제는 오픈 플랫폼이 되고 관객들이 자유롭게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겠다.
끝으로, 맥주를 모르는 맥주 축제 기획자들에게...
맥주 축제가 타이틀이 아니라면 맥주를 능력껏 배치해도 아무 상관 없다. 하지만 적어도 ‘맥주 축제’라는 타이틀을 붙인다면, 맥주의 속성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행사를 기획하기 바란다. 예컨대, 맥주 축제를 홍보하겠다고 소셜미디어에 ‘댓글 달면 맥주 한잔 무료, 친구 초대하면 맥주 쿠폰 쏜다’ 같은 내용과 함께 맥주를 경품으로 건다면, 이 축제는 당장 망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자체가 명백히 불법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행사 기획자가 너무 많다. 주류 축제는 여타 축제와 달라서 주세법과 식품위생법 등을 고려하지 않으면 처음부터 허가가 나지 않는데도 그냥 진행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결국 콘텐츠의 속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기획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저작권, 공연권을 모르고 음악 축제를 기획하는 사람이 많던 시대가 있었다. 맥주 축제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맥주 축제를 함부로 하다가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니, 축제 기획에 있어 좀 더 신중해야 한다. 또한 맥주 관련 회사를 파트너로 축제를 시작했다가, 조금 잘 된다고 해서 상도의에 맞지 않게 협업을 깨고 독단적으로 나가다가는 큰코다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축제는 축제다워야 한다.
영화 축제에선 영화가, 음악 축제에선 음악이 주인공이고 맥주 축제에서는 당연히 맥주가 주인공이다. 우리나라에서 맥주는 오랜 시간 콘텐츠 주체로서 주목받지 못했다. 그만큼 우리나라 맥주는 스토리와 다양성이 부족했다. 그래서 오랜 시간 소맥의 보조제 역할을 해왔으며 지역 축제의 한 공간을 채우는 부가적 소비재였다. 그러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태동하고 성장하며 다양성을 띠게 된 우리 맥주 시장에서, 이제는 맥주를 바라보는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 우리는 지금 맥주의 시대를 살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