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고, 마시고, 사랑하라! 모두에게 열린 크래프트 맥주의 세계
2019 대한민국 맥주 산업 박람회에서 참관객들의 관심이 가장 높았던 부스는 ‘미국 양조사 협회’(이하 BA)였다. 나무를 깎아 만든 맥주병, 나란히 놓인 성조기와 태극기 장식품, 거대한 미국 지도가 벽 한 면을 차지한 대형 부스는 KIBEX에 참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환한 웃음을 지으며 참관객들에게 다양한 미국 크래프트 맥주를 소개하고 시음 잔을 나눠주는 이들 앞에서 누군들 마음이 풀어지지 않겠는가. 맥주를 나누며 모두를 내 친구라 부르는 이 유쾌한 이들, 그중에서도 BA의 홍보대사이자 셰프로 활동하고 있는 아담 둘리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B.A, 혹은 미국 양조사 협회는 비영리 단체로서 5,000명이 넘는 미국 내 소규모 독립 양조사들을 대표하고 있다. 주로 다양한 브루어리들을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비롯해 미국 크래프트 맥주 진흥, 그리고 정부 정책에 대응하는 사업을진행한다. 그 밖에도 미국 맥주 축제나, 2020년에 텍사스에서 개최될 ‘비어 컵’ 같은 행사를 주최하기도 한다. 미국 홈브루어들과 크래프트 맥주 양조사들을 위한 컨퍼런스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1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브루잉 기술을 배우고 업계에 대한 실무 교육을 이수했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양조 퀄리티와 맥주를 저장하는 기술적 방법 등, 기초부터 제품 관리까지 최상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운영을 돕는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매년 열리는 컨퍼런스의 경우 초보자부터 전문가까지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으며, 크래프트 맥주 전반에 관련한 다양한 의견들이 모이는 장(場)으로서 기능한다. 크래프트 맥주 산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도 정작 BA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자원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년 관련 출판물과 잡지를 내고, 맥주 스타일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며 구성원들과 함께 업계의 다양한 분야를 논하는 위원회를 꾸린다.
“BA가 제공하는 교육과 정보는 어떤 방법이 있고 그것들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거지, 브루어리를 열기 위해서는 꼭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혹은 어떤 것들을 사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아담 둘리는 멤버들에게 미국 크래프트 시장을 이끌고 있는 전문가들과 각 분야의 위원회가 제공하는 다양한 모범 사례와 경험이야말로 큰 자산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BA가 개최한 수많은 오프라인 세미나와 컨퍼런스를 통해 자유로운 토론과 아이디어 공유가 이루어졌다. BA의 멤버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이야기를, 혹은 공유하고 싶은 정보를 다른 이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할 수 있다. 위원회는 각 지역을 순회하는 컨퍼런스나 세미나를 통해 이러한 업계 종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모두에게 합리적인 해결방법을 고민한다. 기술 교육부터 마케팅, 국제 엑스포 참가까지 BA가 운영하는 프로그램들은 셀 수 없이 다양하다. 협회 내에서는 약 50명의 스태프가 일하고 있으며 이들은 멤버쉽 가입부터 영업, 행사 주최, 마케팅, 기술 문제 해결, 정부와의 협력과 정책별 대응까지 협력하며 연대를 이어가고 있다.
이즈음에서 어떻게 BA가 미국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영향력 있는 비영리 단체가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각기 다른 소규모의 크래프트 맥주 종사자들이 힘을 합쳐 크래프트 맥주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리는 모두에게 열려있거든요.” 아담이 대답했다. 그는 이 ‘열려있음’에 강조를 두었다. 크래프트 맥주시장이 성장하게 된 데에는 업계를 이끈 선구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열정적으로 사람들과 소통한 덕이 크다고 그는 덧붙였다. 만약 당신이 미국을 방문해 브루어리를 방문한다면, 다수의 브루어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맥주를 어떻게 만드는지 알려줄 뿐만 아니라 브루잉에 관한 당신의 고민을 비롯해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줄 것이다. 미국의 크래프트 맥주 산업은 매우 개방적이며 서로 정보를 공유하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한다. 5,000명의 멤버들이 5명의 인원이 전부인 소규모 브루어리가 겪는 어려움도 힘껏 도와주고 더 나은 스타일을 함께 고민하는 것. 개방적 연대의 힘. 그런 점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브루어리들을 다 함께 단단하고 진보할 수 있게 만드는 점이라 덧붙였다.
이번 KIBEX에서 BA가 가져온 미수입품을 비롯한 신상 맥주에 모든 맥주인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포장을 뜯기 전 선물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번에 소개되는 맥주들에 대해 물어봤다. 알래스카와 플로리다를 포함한 17개의 다른 주에서 온 35개의 미국 브루어리들이 참가한 이번 BA 부스에서는 현재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헤이지 IPA와 헤이지 더블 IPA, 케틀 사워 맥주를 비롯해 샴페인에서 영감을 받은 드라이한 브룻 IPA를 선보였다.
맥주 초보자부터 마니아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구성한 화려하고 다채로운 라인업 또한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다. 아담은 BA 부스를 일컬어 ‘홉의 마법’이 펼쳐지는 곳이라 말했다. 특히 한국 시장이 캐나다와 영국을 비롯한 미국 크래프트 비어 수출국 상위권을 차지하기에 보다 집중적이고 섬세하게 구성을 짰다고 한다.
현재 미국 내 크래프트 맥주의 최신 트렌드에 대해 물어봤다. 아담은 브룻 IPA와 헤이지 IPA를 꼽으면서 동시에 ABV가 낮은 맥주들에 대한 선호도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라거나 필스너, 쾰시 스타일의 귀환이랄까요.” 실제로 이번 박람회에 선보인 하디우드나 리치몬드 라거의 경우 ABV 수치가 5%보다 낮다. 또 다른 현상으로 미국 내 브루어리 수의 가파른 증가폭과 더불어 아주 소규모의 개성적인 브루어리들이 출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지역 특색을 보다 더 강조하고, 주변 이웃들이나 커뮤니티와의 유대감을 우선시하는 특징이 도드라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크래프트 맥주 시장이 점점 커지며 강력해지고 있다고 아담은 평가했다. 매년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유통사들이 크래프트 맥주에 점점 더 관심을 더 갖고 제품군을 갖추는 점이 인상적이라고 한다. 아울러 현재 한국 내 종량세 전환에 대한 논의를 언급하며, 종량세가 실행된다면 한국 내 맥주 산업 종사자 모두를 비롯해 소비자들과 맥주 시장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였다.
유행하는 맥주 소비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첫인상이 강렬하거나 자극적으로 높은 도수의 맥주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아담은 브루어리가 경쟁적으로 소비자의 요구에만 맞추기보다는, 본질로 돌아가 브루어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이야기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브루어리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와 각 맥주들이 탄생하게 된 사연은 모두 맥주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나타나는 비슷한 현상 중 하나로, 대중들이 점점 ‘가치’와 ‘경험’을 소비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요즘 사람들은 더 이상 펍에 가서 ‘나는 이런 IPA를 주문하고 싶어요.’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늘은 이런 멋진 장소에서 이런 특별한 맥주를 마셨지!’라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어 하죠. 장소를 태그하고 어떻게 그런 장소를 가게 되었는지, 어떤 멋진 경험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그러한 메시지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그들이 선택하게 된 맥주가 가진 독특한 이야기에 있습니다. 그러기에 펍과 브루어리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잘 전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경험을 갈망한다. 특별한 경험을 찾아다니는 시도가 곧 새로운 엔터테인먼트가 된다. 대중들은 전문적인 펍 서버나 스태프에게 어떤 맥주를 마시면 좋을지 자연스럽게 질문하고, 또 그들이 들려줄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한다. 이런 소비 흐름은 브루어리들이 더욱 새롭고 재미있는 맥주를 시도하도록 독려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미국 내 몇몇 브루어리들은 매우 실험적인 맥주를 한정판으로 내놓거나, 양조장에 찾아와야만 먹을 수 있는 특별한 맥주들을 내놓는 등 소비자들의 흥미와 발길을 끌어당기고자 하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BA에서 주목하고 있는 것은 ‘탭룸’이다.
탭룸은 브루어리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매우 중요한 공간으로, 소비자들이 신선한 맥주를 원할 때 바로 떠올릴 수 있는 곳이다. 최근 BA에서 이를 위한 카테고리를 신설했을 정도로, 탭룸은 현재 미국 내에서 주목받고 있는 분야다.
인터뷰를 마치고 다시 부스로 돌아가 참관객들에게 맥주를 나눠주는 아담의 표정이 매우 밝았다. 국경과 인종을 넘어 사람들과 허울 없이 맥주에 대해 이야기하고, 아낌없이 맛보게 하고 피드백을 경청하는 모습에서 모두에게 열린 그의 성실함과 맥주 산업의 모두를 위한 연대감이 느껴졌다. 아직 한국 정식 수입 전인 알래스칸 브루어리의 앰버 에일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알래스카에서 온 맥주를, BA가 선물처럼 전달한 새로운 경험을 천천히 들이켰다. 나누는 이도, 맛보는 이에게도 모두 특별한 시간이었으리라
EDITOR_조호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