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량세 전환 논의는 현재진행형… 50년만의 주세 개편 기대
"연구용역과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내년 상반기 중 주세 개편안을 마련하겠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2월 초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홍 부총리는 또 “맥주, 소주 등의 가격이 오르지 않는 범위 안에서 내년 종량세 전환을 검토하겠다."라며 "향후 주류산업 경쟁력 강화, 전체 주류 과세체계 형평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답했다.
사실상 정부가 주세 부과 체계를 현행 '종가세'에서 '종량세'로 전환키로 선언한 것이다. 지난 1969년 종량세에서 종가세로 주세 체계가 바뀐 이래 50여 년 만이다.
주세 체계의 변경은 맥주 업계 전반에 단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맥주 대기업들은 수입맥주와 공정한 경쟁을 하기 어려웠다. 현행 종가세 체제에서 수입맥주는 수입신고가격을 과세표준으로 세금을 부과받아 국산 맥주에 비해 유리한 입장에 있다. 종량세로 바뀐다면 가격이 아니라 생산량에 따라 과세가 되기 때문에 불공정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수제맥주의 경우 맥주의 가격을 기준으로 세금이 부과되면서 품질 개선, 시장 확대에 난항을 겪어왔다. 질 높은 맥주 생산을 위해맥주 재료, 인건비, 설비 등에 투자하면 할수록 큰 세금 부담을 떠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인건비에 대한 세금 부담이 커지면서 고용 확대에 어려움이 있었다.
또 주세로 인해 수제맥주의 가격이 높아지면서 좋은 맥주를 적정한 가격에 먹을 소비자의 권리가 침해당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맥주 종량세 전환이 공감을 얻기까지
주세에 대한 종량세 전환 방향이 발표되기까지는 수많은 고비가 있었다. 종량세 체계 전환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지난 2017년 6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주최로 열린 '주세 과세체계의 합리적 개편' 공청회였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종량세 전환은 장기과제로 검토해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종량세로 개편되면 ‘서민의 술’인 희석식 소주의 가격이 인상될 여지가 있어 국민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후 맥주의 세금 체계를 종량세로 바꿔 달라는 청와대 청원이 진행되고 수입맥주에 대해 국산맥주의 역차별 이슈가 부각되면서 종량세 개편에 대한 논의가 점화됐다. 그러던 지난해 7월 조세재 정연구원이 ‘맥주 과세체계 개선방안 공청회’를 개최하면서 ‘맥주’를 중심으로 한 주세법 개편 논의가 공식화됐다.
하지만 맥주 종량세 전환 논의가 한창 무르익을 때쯤 예기치 못한 장애물이 나타났다. 종량세로 바뀌면 수입맥주에 대한 세금이 늘어나 ‘4캔 1만 원’ 맥주가 사라진다는 보도가 쏟아졌고 여론이 급격하게 얼어붙은 것이다. 종량세 전환으로 4캔 1만 원 마케팅이 사라진다는 것은 사실과 달랐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여론은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됐고 정부는 종량세 전환을 유보하겠다고 밝혔다.
결국 지난해 7월 말 발표된 2018년 세법 개정안에는 종량세 전환 내용이 담기지 않아 맥주 업계는 실망에 휩싸였다.
국회 논의로 종량세 정책 급물살
다시 한번 종량세 전환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된 것은 국회가 힘을 실어 주면서다. 지난해 10월 초 더불어민주당 윤후덕 의원이 ‘주세과세체계 개편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열어 주세 체계를 시장 현실에 맞게 정비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같은 달 중순 기재부 국정감사에서는 맥주 종량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여야 의원들의 지적이 이어지자 김동연 전 부총리 겸 기재부장관이 "맥주뿐만 아니라 전체 주류의 종량세 전환 문제를 검토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어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이 주류 중 맥주에 대해서만 종량세를 적용하는 내용의 ‘주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주세법 개정이 큰 걸음을 내디뎠다. 이 개정안에서는 국산이든 수입이든 맥주 1리터당 세율이 835원으로 동일하게 책정됐다.
세율 835원은 2017년 맥주에서 거둬들인 총 세금을 총 맥주 생산량으로 나눠 나온 금액으로 정부의 세수를 감소시키지 않는 한도에서 맥주 업계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비록 이 주세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회기를 마쳤지만,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는 올 2월 임시회에서 맥주 종량세 전환 내용을 담은 주세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합의했다.
장기적인 육성 방안 따라와야
2019년 주세의 종량세 전환이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지만, 또 어떤 급반전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수제맥주협회에서는 주세법 개정안의 확정을 위해 지속적인 홍보와 정부 설득 등을 이어나간다는 방침이다.
또 종량세 개편 이후 하위 법령 개정과정에서 수제맥주에 대한 장기적인 육성 정책이 반영될 수 있도록 정책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수제맥주협회에서는 수제맥주가 대중화될 수 있도록 온라인 판매 허용, 주세 경감 등의 정책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전통주 중 탁주의 경우 경우 온라인에서도 유통할 수 있고 맥주 주세 72%에 비해 크게 낮은 2.5%의 주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협회는 수제맥주에 대해서도 온라인 판매가 전면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전체 수제맥주에 대한 즉각적인 허용이 어렵다면 지역 농산물을 활용해 맥주를 제조할 경우에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줄 것을 제안할 방침이다. 또 지역 농산물을 넣어 양조한 맥주에 대해 주세 경감 혜택도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현재는 쌀을 넣어 제조한 맥주만 주세 경감을 받고 있다. 수제맥주협회는 이와 함께 소규모 맥주에 대한 주세 경감 구간의 확대 및 조정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한 맥주 업계 관계자는 “우여곡절 끝에 온 종량세 개편 기회인 만큼 이번에 전환이 완료돼 맥주 업계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폭제가 되기 바란다.”라고 말했다.
EDITOR_황지혜